[더 나은 세상] 제비우스를 아십니까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은 슈팅게임이었다. 즉, 선악의 이분법적인 세계관 위에서 자신의 적(敵)을 무기로 섬멸해 버리는 단순한 스토리에 의해 게임의 문화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슈팅게임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1984년 일본 비디오게임회사 남코에서 개발한 '제비우스'이다. 이 제비우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유행했던 아케이드 게임은 다음과 같다. 1979년 '탁구게임', 1980년 '우주의 침략자', 1981년 '사과 먹기', 1982년 '겔러그', 1983년 '벽돌 깨기'. 이제 폐기되었거나 고물상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을 것만 같은 이 고전게임들은 액션에 있어 정적이었고, 디자인에 있어 엉성했으며, 원시적인 룰과 형편없는 스토리를 가진 흑백 비디오 게임들이었다. 하지만 제비우스는 달랐다. 화려한 색상과 산뜻한 디자인, 미리 렌더링 과정을 거친 그래픽스, 혁신적인 팔레트 시프팅까지…. 비록 30인치 남짓한 작고 어두운 가상공간이었지만 내가 조작하는 조이스틱의 움직임에 따라 자유로이 비행하며 적들을 멋지게 박살내어 버리는 그런 멋진 게임에 난 한동안 헤어날 수 없었다. 물론 그 당시 난 초등학생이었음으로 그 비디오게임 속에서 냉철한 현실인식이라던가 비정한 자본의 원리 같은 것들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슈팅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쾌감과 내가 우주전사의 일원이 되었다는 모종의 우월감에 한껏 매료되어 있었던 것 뿐이다. 동네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오십 원이 필요했는데 나의 하루 용돈은 이백 원이 다였다. 그런 관계로 나의 일상은 제비우스 네 판에 하루 용돈을 다 날려버리는 그런 정형화된 패턴의 연속이었다. 난 그 무모함을 사랑했으며, '이백 원의 행복'에 만족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내면에는 백 원만 더 있었으면 하는 돈에 대한 욕심이 커져가고 있었다. 솔직히 게임의 엔딩을 보기 위해선, 아니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기 위해선 돈,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에겐 정말 노력과 재능은 있어 보였지만 언제나 텅 빈 주머니가 문제였다. 오락실에서 들려오는 어린 부르주아의 거만한 목소리들. 나 벌써 열두 판째야. 나 이제 이십 만점 돌파했어…. 하지만 난 언제나 네 판에, 십만 점 아래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한계이자 절망이었다. 난 항상 이 사실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녀석들의 동체시력은 형편없었고, 조이스틱 위에서 춤추는 손가락의 움직임 역시 둔탁했지만 비디오화면 속은 언제나 나보다 높은 스테이지에 보너스 게임까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부도 아니었고, 책상서랍 속에 가득 채워진 딱지도 아니었다. 그것은 부모님이 나의 손에 쥐어주는 이백 원, 그 이상의 돈 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마음까지 가난해진 난 어머니의 지갑 속에 든 돈을 훔치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의 도둑질은 또 다른 도둑질로 이어졌고, 결국 나의 비행은 발각되고 말았다. 그날 난 어머니에게 죽도록 맞았다. 하지만 다행이 죽진 않았다. 난 젖 먹던 힘을 다해, "나, 돈, 정말 돈이 필요했단 말이에요!"라고 소리친 뒤 펑펑 울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게임역사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만다. 블리자드가 개발한 SF전략게임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할 때까지. 물론 역사의 종말과 같은 그런 비극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어머니 사이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음은 여러분들께 세세히 들려주지 않아도 분명 알 수 있으리라. 우광훈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