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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 생각] 나이가 늘수록 더해지는 센스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일컬어 나잇값이라고 한다. 나이가 늘수록 그에게 기대하는 말과 행동의 수준은 다르다는 뜻일 것이다.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윗사람들을 어르신이라 부르며 오랜 삶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그들의 지혜를 구할 때가 많았다. 시대가 바뀌고 하루하루가 급변하는 오늘날 윗사람들의 지혜는 더 이상 귀담아들을 필요 없는 과거사로 치부되어 버리곤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우리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아온 어르신들에게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 그 지혜를 구할 필요가 있다. 나이가 늘수록 더해지는 센스는 존중받고 지켜야 할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도성현〈blog.naver.com/superdos〉
[단상지대] 걸림돌이 된 대한민국 성공의 원동력
올해 환갑을 전후한 1960년생들은 후진국에서 태어났지만, 자식들에게 선진국을 선물한 세대이다. 영화 '서울의 봄'의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하게 만든 세대이기도 하고, 젊은 시절 민주화에 직간접적으로 뛰어든 주역이기도 하다. 이들의 아버지들이 1960~70년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정부의 구호에 한마음 한뜻으로 호응한 세대라면, 이들은 아버지 세대가 일구었던 산업화의 열매를 직접 향유한 세대이다.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취업을 걱정하지 않았다. 고도성장기, 대기업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난리였다. 잔디밭에서 막걸리 먹던 대학캠퍼스의 낭만이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입학만 하면 4년 내내 학교를 대충 다니더라도 졸업 시즌이 되면 대부분 취업이 되었다. 취업해서는 결혼도 하고, 몇 년 저축하면 아파트도 장만할 수 있었다.이들은 아버지 세대의 욕망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버지 세대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열망으로 중진국으로의 발전을 성취했다면, 이들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더 잘살아 보자'는 자세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이루어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경험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지만 한국은 가장 짧은 기간에 선진국에 올라선 국가가 되었다. '잘살아 보자'라는 욕망은 오늘날까지 성공의 원동력이었고 한국인의 뼛속까지 스며들었다.그 욕망이 우리를 선진국으로 이끌었지만, 행복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아버지 세대도, 이들도 돈이 많은 것, 물질적으로 풍족한 것을 목표로 살았다. 연봉이 얼마인지, 아파트는 몇 평인지, 자신의 아들딸이 어떤 대학에 진학하는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남과 비교하며 물질적 성공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언제나 행복은 후순위에 놓았다.'잘살고 싶은' 욕망은 이들의 자식들인 1990년대 세대, MZ세대에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요즘 청춘남녀들은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으려 한다. 결혼하려면 아파트를 소유해야 하고 번듯한 직장을 다녀야 하며, 출산까지 하려면 자산과 소득이 얼마 이상이어야 한다는 등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한다. 사랑보다 조건을 먼저 따지는 게 대세가 되었다. 결혼과 출산은 고도의 스펙을 갖춘 특수계층의 전유물인 사치재(奢侈財)가 되어버렸다. 남들만큼 번듯한 생활수준을 갖추기 전까지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고, 남들만큼 자녀를 키울 자신이 없으면 출산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저출생 현상이 20년 이상 지속되었고, 역피라미드 인구구조가 앞으로 20년 이상 분명해졌다. 신문방송에는 '한국이 소멸한다' '지방이 소멸한다'는 경고가 매일 연이어 쏟아진다.1960년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겠다'라는 욕망이 2020년대에는 우리를 '한국 소멸'이라는 재앙으로 내몰고 있다. 외국 유명 교수는 "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달성했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 번째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다. 20세기 가장 가난했던 후진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한국의 미래를 망치는 부메랑이 되어버렸다.필자는 올해 갑진년을 한국인이 '잘살고 싶은' 욕망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한 해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욕망의 방향을 바꾸는 것도 좋고, 가지 않았던 행복의 추구도 좋은 것 같다. 물질적 성공을 넘어 개인 삶의 질 향상이나 개인 내면의 성숙으로까지 이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도 남과의 비교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과 자아실현 등 자기 내면으로부터 얻어지는 행복이면 더 좋지 않을까.이제상 행복한가족만들기 연구소 출산양육 萬人포럼 대표이제상 행복한가족만들기 연구소 출산양육 萬人포럼 대표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미국 의사의 오진율
의사들이 아마 가장 경계하는 것이 오진일 것이다. 오진을 했다면 그것이 가장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오진에 대한 체계적 통계도, 연구도, 정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이 부끄러움과 관련 있을 성싶다. 미국에선 한 해에 오진이 1천200만번 일어난다. 37만1천명이 오진으로 목숨을 잃고 42만4천명이 장애를 입는다. 집중치료실에 실려 온 환자나 사망자 중 1/4이 오진을 받았고, 오진 환자의 18%는 해를 입었거나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밝혀지지 않고 넘어간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그런데 질병에 따라 오진율은 크게 차이가 난다. 오진의 반은 15가지 질병에서 일어나고 또 그 40%는 5가지 질병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것이 뇌졸중, 패혈증, 폐렴, 심부정맥 혈전증, 폐암이다. 이 다섯 질병에서 오진율을 반만 낮춰도 15만명의 생명을 구하거나 장애를 막을 수 있다. 심장마비는 1.5%로 오진율이 낮지만 뇌졸중은 17.5%나 되고 폐암은 22.5%나 되니 폐암 진단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뇌졸중의 경우 두통과 어지럼증이 초기 증상인데 그것으로 뇌졸중을 진단해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냥 흔한 병으로 간과하기 쉽다. 오진율은 또 환자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여성이나 소수민족이 오진을 받을 확률이 백인남성보다 20~30% 더 높다. 오진은 업무가 과중하여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해결책으로 다른 의사의 소견을 듣거나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방법이 제기된다. 경제적으로 따질 때 제2의 소견을 듣거나 정밀검사를 하여 오진율을 내릴 수 있다면 더 든 돈의 몇 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경북대 명예교수·시인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아침을 열며] 열어주고 싶은 출판기념회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참 성실하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4년마다 한 번씩 책을 쓰고 출판기념회를 연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그 성실함이 대단하다. 평소 가깝거나 호감 있는 것도 아닌데 출판기념회 안내문자가 계속해서 오면 짜증이 난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 사람과의 관계인데 최소한의 예의마저 없어 보여 번호를 차단하게 된다. 부담스러운 출판기념회 홍수 속에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김춘진 사장의 출판기념회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치과의사 출신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낸 3선 의원 출신의 출판기념회라면 이 시점에서 대충 선거 출정식이 예상될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인사말에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식량은 무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국가별 식량안보 수준을 비교하는 세계 식량안보지수(GFSI, Global Food Security Index)에서 대한민국은 2022년 기준으로 비교 대상 113개 국가 중 39위인데, 매년 순위가 추락해 현재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이런 식량안보의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 대표 음식인 김치 등 K-푸드의 가치와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저탄소 ESG를 실천하는 식량·식품 종합 가공 콤비나트 조성을 위해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인상 깊다. 취임 몇 달 되지 않은 장관들도 출마를 위해 사표를 던지는데 불과 2달도 남지 않은 임기를 성실히 마치겠다는 책임감이 존경스럽다.지난 18일 삼성전자는 'AI폰'이라 불리는 갤럭시 S24 출시를 발표하였다. 통화 중 실시간 통역 기능 탑재 등 이제 '스마트폰 시대'를 넘어 'AI폰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휴대폰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베트남 하노이 인근 타이응우옌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인근 박닌 공장과 함께 연간 1억대 이상의 휴대폰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하여 삼성전기,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SDS 생산라인과 더불어 협력업체까지 베트남 곳곳에 공장을 세우고 이를 연결하는 하나의 단지를 만들어 베트남 전체 수출의 약 15.7%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25% 이상까지 차지하였으나, 베트남 자체의 경제 발전으로 그 비중이 다소 감소했다지만 실로 엄청나다. 베트남 국민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으로 삼성이 부동의 1위라고 한다. 베트남 전쟁 때 파병되어 자신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국가에 대한 인식을 기업이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다. 삼성 베트남 단지의 최주호 단지장을 비롯한 주재원들의 열정과 헌신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그들이야말로 묵묵히 국가 경제를 이끄는 애국자들이다. 750만 재외동포 최대 경제단체인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OKTA)는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경북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임직원 통합워크숍을 개최했다. 전 세계 67개국 146개 지회를 대표하여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참가한 열정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참석자들은 글로벌 경제를 하나로 묶는 한민족 네트워크의 형성과 모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결의하였다. 머나먼 타국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해외 주재원들과 기업인들의 스토리야말로 출판기념회를 열어주어야 마땅한데, 지금도 휴대폰에는 애국을 자기애와 구별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 안내문자가 오고 있다. 1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과 달리 아직도 4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가 돌아오는 4월에는 바뀌기를 기대한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경제와 세상] 2024 스트레스의 심리학
갑진년 새해는 밝았지만 우리 경제는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다.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철강과 조선 같은 제조업의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성장률은 2.2%로 전망되어 저성장의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금리 인하가 기대되지만 시기가 불확실하고, 고물가와 부동산 PF의 부실화, 과도한 가계부채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의 블랙홀이 될 4월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밖으로는 코로나 사태로 무너졌던 글로벌 공급망은 여전히 위기상황이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어 예멘 반군인 후티가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30%가 오가는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선박을 공격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가열되고 있다. 신냉전으로 불리는 미·중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수출의존도가 높은 중국 시장이 침체국면에 빠져 있고, 우리 기업에 신시장으로 부상했던 유럽과 러시아, 남미 시장도 보호무역주의와 경기침체로 탈출구를 막고 있다. 갈 길을 찾아 사방을 둘러봐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불확실성' 한 단어다. 이 시점에서 고물가와 고금리, 가계부채 누증은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불확실성의 가장 큰 요인이고, 경기 악화 여부는 불확실성의 끝판왕이다.여기에 세계경제에 파급력이 큰 미국과 인도, 러시아에서 선거가 올해 예정된 가운데,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폴리코노미(Policonomy)' 현상이 불확실성을 폭증시키고 있다. 합리성이 아닌 선심성 공약과 정책을 남발하여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는 행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 4월 총선을 앞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편향된 공약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인들의 끝없는 정쟁과 상식을 벗어난 언행, 극단적인 갈등상황은 경제적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과 주장을 섞어버리는 뉴스, 특정 정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언론 역시 불확실성과 스트레스를 높이는 데 크게 일조한다. 국제 시장조사기관 YouGov의 연구에 의하면, 조사대상자 40%가 정치를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고, 3분의 1은 정치가 피로감, 분노, 강박감을 유발한다는 데 동의한다. 불확실성은 개인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낳아, 확산되면 사회적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이는 사회적 우울증이 되어 대중의 정서적 위기로 확대된다. 뇌 과학자인 아힘 페터스에 의하면, 불확실성은 개인의 생존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미래에 나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재함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안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알 수 없음'일 때 우리는 불안한 상태에 빠져든다. 작년 12월 서강대 유현재 교수 연구팀이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정신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회적 이슈'는 묻지마 흉기난동(31.2%), 정치적 불안·불만(28.9%), 경제적 어려움(25.1%) 순으로 나타나 정치권의 관심을 모았다. 불확실성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불안, 초조, 긴장 등의 정서적인 스트레스와 함께 두통, 불면, 소화 장애 등의 신체적 증상을 호소한다. 하지만 다른 스트레스와 달리 정치·경제적 스트레스는 그 원인이 사회적인 통제 불능변수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는 최상의 해결책을 찾도록 절약 모드에서 학습 모드로 전환되어 평상시와 다른 창의성을 발휘하게 한다. 그러나 출구 없이 누적된 스트레스는 유독하고, 그 결과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 같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공감과 신뢰,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정보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필수적 전제 조건이다.권 업 객원논설위원권 업 객원논설위원
[광장에서] ESG, 본질은 지속가능성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국내외적으로 기업의 경영과 투자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다. ESG는 2004년에 유엔 글로벌 콤팩트(UN Global Compact)의 'Who Cares Wins' 보고서에서 투자대상 기업의 지속가능성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 제시되었고, 2006년에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에 반영되었다. 국내에서는 2020년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 회장이 보낸 CEO 서한에서 ESG가 투자의 키워드로 언급되면서 본격적으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래리 핑크 회장은 2012년부터 연례 CEO 서한을 발표하고 있는데, 2020년에는 "ESG 성과가 나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가 최근에는 ESG가 정치무기화가 되었다면서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과연 ESG는 지속 가능한가. 기업 본연의 목적은 결국 이윤 창출인데 ESG가 항상 수익성으로 연결된다는 보장도 없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제약들이 있다. 먼저 최근 기업들은 국내외적으로 경제 저성장 및 금융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재는 2000년대 초반과 달리 경제성장률이 매우 낮은 시대인데, 최근에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10년 내에 0%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게다가 최근 전 세계적인 경제불황으로 인해 EU, 미국 등 각국은 앞다퉈 자국의 산업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 정책을 추진하는 등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예컨대, EU는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을 제정, 친환경산업에 대한 규제 간소화 및 기술개발 지원을 통해 EU 역내 생산능력의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한편, ESG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는 환경, 즉 기후변화 대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업이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설투자 등 비용을 지출해야 하고, 이는 결국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재정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재무적인 리스크다. 기업, 투자자의 입장에서 재무적인 성과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ESG는 우선 순위에서 멀어지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난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블랙록(BlackRock)조차도 수익성의 압박에 직면해 상장지수펀드(ETF), 사모펀드시장 등 핵심 성장 영역으로 사업을 재편한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ESG를 위한 고려사항은 무엇인가. 첫째로, 여전히 기후위기가 심각한 가운데 E의 중요성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환경만 강조하는 것은 지양하고 기업의 성장, 수익성 등에 대한 균형적인 고려도 함께 필요할 것이다. 둘째로, 경기침체, 금융위기 등 불확실한 리스크가 있는 경우에는 수익성 등 재무적인 요소를 중요시하는 투자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합리적인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ESG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ESG라는 용어가 세상에 나온 지 2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개념이나 단기간의 트렌드로 끝나서는 안 된다. ESG는 결국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등을 계승·발전시킨 개념으로서,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그 본질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기 때문이다. ESG가 기업의 경영과 투자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이자 기업의 지속가능성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
[윤성은의 천일영화] 개미들의 호쾌한 반격, '덤머니'
금융문맹이라 할지라도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 소위 '개미'들은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덤머니'(감독 크레이그 질레스피)를 관람할 필요가 있다. '덤머니'는 코로나 기간 중 월 스트리트에서 개미들이 거대 기업을 상대로 똘똘 뭉쳐 저항했던 기념비적 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역설적으로 개인투자자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용어(dumb money)를 제목으로 달았다. 이는 개미보다는 '호구' 정도의 뉘앙스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게임스톱 사태는 절반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는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에서처럼 거대 기업에 다니는 고졸 직원들이 소주주들의 동의를 받아 기업의 운명을 바꿔 놓는 통쾌함까지는 없을지라도, 호구로 무시당하던 이들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올라오는 뭉클함이 대단하다. 금융 애널리스트이자 개인투자자인 '키스 길'(폴 다노)은 콘솔 비디오게임 체인점인 '게임스톱' 주식에 큰돈을 투자한다. 반대로 헤지펀드사들은 온라인 마켓이 대세가 된 지도 한참인 데다 코로나까지 겹치자 게임스톱 주가가 떨어질 거라며 공매도에 나선다. 길은 개인 방송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이들을 비판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을 설득하는데, 매일 자신의 자산을 다 공개하는 길의 미더운 태도와 확신에 대학생 커플, 게임스톱 점원, 간호사 등 많은 이들이 게임스톱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한다. 길의 영상이 인기를 얻고, 개인투자자들이 주가가 올라도 매도하지 않는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증권가도 이들을 주시하지만 게임스톱의 공매도를 주도해왔던 '멜빈 캐피털'의 '게이브 플롯킨'(세스 로건)은 계속 덤머니를 무시하다가 파산하고 만다. 길을 위시한 개인투자자들이 단합해 기업의 공매도에 맞선 이 사건은 결국 월 스트리트의 억만장자들이 구원 등판해 게임스톱의 주가를 폭락시키면서 일단락된다. 세계적 부호 몇 사람이 수많은 서민들의 희망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는 점도 황망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식거래 앱인 '로빈후드'가 개인투자자들만 게임스톱 매수를 정지시키는 초유의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관계자들 누구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개탄스럽다. 그러나 게임스톱 사태는 주식계의 프랑스혁명으로 불리며 기울어진 운동장의 실태 및 기관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반발심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공매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점검하게 하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얼마 전 개봉한 디즈니사의 100주년 기념 애니메이션, '위시'(감독 크리스 벅)도 절대 군주의 마법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봉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에 소수 기득권층의 오만함과 비윤리적 행위를 비판하는 작품들이 유독 많이 나오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게임스톱의 주가가 다시 폭락했다는 점을 들어 저항의 결과는 늘 실패라고 비관하는 이들도 있고, 기업 가치에 대한 정확하지 못한 정보가 서민들의 비극을 낳았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덤머니'는 기업들이 정당한 방법으로는 승리하지 못했고, 그들도 앞으로 개인투자자를 덤머니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러니 패배주의에 젖어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식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서사를 따라가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덤머니'를 보다 세세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공매도와 관련된 전문용어 몇 개 정도는 알고 보기를 권한다. 윤성은 영화평론가윤성은 영화평론가
[더 나은 세상] 오늘이 어떻게 끝날지 아직 모른다
코로나 때 취소된 항공권을 크레디트로 받았는데 2023년 말까지 예약하지 않으면 자동소멸이라 어쩌다 보니 12월31일 밤 9시에 온라인 예매를 시작했다. 몇 군데 노선을 찾아보다가 그랜드 캐니언이 떠올라 LA행 항공권을 예매하고 크레디트 번호를 넣었는데 안내받은 것과 달리 지불 진행이 안 되는 것 아닌가? 항공사로 전화하니 예상 대기시간 4시간 10분! 자정이 넘으면 크레디트는 소멸되니 안 될 일이라 10시30분쯤 채팅창으로 문의 시작. 그랜드 캐니언과 함께 멋진 새해 첫날을 맞으려던 계획과 달리 창밖은 새해 전야 불꽃놀이 소리가 요란한데, 인공지능 상담사는 도와줄 직원을 곧 보내겠다는 메시지만 무한반복. 결국 자정이 넘어 2024년이 시작되었고, 이렇게 어이없이 새해를 맞았다는 걸 믿을 수 없어 하던 나는 오기가 생겨 계속 기다렸다. 새벽 1시30분, 드디어 '사람' 상담사 M이 등장했으나 한 시간쯤 후 다른 부서로 이전해야 한다고. 당연히 바로 연결될 줄 알고 물론이지 했는데, 또 한 시간여를 기다린 후 두 번째 '사람' 상담사 P가 등장했을 땐 새벽 3시30분. P가 또 다른 부서로 이전하겠다고 했을 때, 두 번은 속지 않겠다 결심한 나는 이미 5시간을 기다렸고 새해 첫날부터 잠도 못 자고 있다고 강하게 따졌으나 (키보드를 세게 두드리며 타이핑), 결국 또 기다림.도대체 사람에게 속 시원히 물어보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세상이 되었나 한탄하며, 명상하며 배운 알아차림 연습도 하고 조금씩 졸기도 하던 중 어디선가 들리는 사람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아침 7시. 밤새 잊어버리고 있던 전화기에서 들리는 소리에 비몽사몽 간에 대뜸 "Are you a real person?"(진짜 사람 맞아?)이라고 했더니 테레사냐고 묻길래, 테레사는 아닌데 나 지금 9시간째 못 자고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공사에서 처리 못 하는 일이라는 직원과 목소리를 높이다 그녀는 사라지고, 이제 정말 화가 난 나는 기필코 컴플레인 접수를 하리라며 컴퓨터 앞으로 갔는데 그때 기적처럼 나타난 채팅창의 사람 상담사 M! 그녀는 첫 문장에서부터 뭔가 느낌이 달랐다.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순식간에 예매 완료, 그것도 프리미엄 클래스로. 이 밤이 이렇게 끝날 수도 있구나,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기쁨과 함께 너무 고맙다고 다정한 새해인사를 나누고, 정말 운이 좋은 새해 첫날이구나 감사하며 자러 갔다. 어제 한국의 가족이 보이스 피싱 피해를 당했다며 하루 종일 수습에 분주했다. 짧은 시간 통장의 돈도 인출해 갔다고 들어서 저녁 내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마음 졸였다. 멀리 떨어져 사는 나이 들어가는 부모에 대한 마음, 범죄에 대한 두려움 등 온갖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며 몇 시간을 보낸 후 평화로워진 새벽. 모든 조치를 다 취했고 다시 확인하니 은행 계좌의 잔고도 안전하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너무 무섭고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고 기쁘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이 밤이 이렇게도 마무리될 수 있구나 새삼 경이로웠다. 이렇게 우리는 당장 오늘 하루가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삶도 그렇다. 그러니 지금 끝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그 끝이 어떨지 모르니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을 기쁘게 살아가자고, 당신 옆에, 당신이 어떤 모습이어도 여전히 그 모습의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있다고 다정한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새해를 맞아.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시선과 창] AI와 인간의 할루시네이션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는 2024년을 앞두고 '인공지능(AI)이 사라질 것'이라 예견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정체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파급력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또 대중적인 탓에 굳이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조차 없어진다는 뜻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챗GPT를 필두로 한 생성 AI(Generative AI)에 대한 기업과 대중들의 관심은 신년에 들어서도 그칠 줄 모르고 있다.생성 AI(Generative AI)는 기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는 인공지능의 한 분야이다. 텍스트, 이미지, 음성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기에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모든 기술의 방향성은 인간 생활과 그 사회의 진보를 전제하고 있다지만,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굳게 믿던 '창의성'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성 AI는 다른 어떤 기술보다도 인간의 삶에 대해 근본적 변화를 불러올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생성 AI가 지닌 문제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윤리에 대한 논의도 필수적일 것이다.흔히 생성 AI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다. 우리말로 '환각'이라 번역되는 이 용어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식하거나 느끼는 현상'을 의미한다. 생성 AI는 세상에 없는 정보를 임의로 '창조'하고, 있는 사실처럼 꾸민다. 가령 챗GPT에 '세종대왕이 노트북을 던진 사건을 알려 달라' 요청하면, '신하의 일탈에 분노해서 노트북을 던졌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라 지어내는 식이다. 이러한 할루시네이션은 진위가 불분명한 정보를 유통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의 판단을 왜곡하고, 심지어는 사회 전체로 오개념과 오이해를 확산시킬 수 있다'며 말이다.하지만 '거짓말'이라는 개념은 인공지능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공지능은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패턴을 찾아 결과를 도출하는 도구일 뿐이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거짓말'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생성 AI가 가진 '고도의 창작 능력'을 증명하는 아주 강력한 지표다. 어쩌면 인공지능의 '거짓말'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우리의 '인공지능관(觀)'이다. 인간이 세운 도덕적 기준을 투영해 버린 것이다.사실 우리는 이미 많은 허구와 속임수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 우리의 도덕적 기준을 포함해서 말이다. 먼 옛날 길가메시의 일대기부터 플라톤의 이데아, 화폐 경제, 사회 계약에 기반한 국가와 제도, 온갖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사상과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그 위에 우리들의 문명을 건설해 왔다. 문학, 예술, 연극, 영화 등 인간의 문화 전반은 허구의 생성과 재생산을 통해 번성해 왔다. 그야말로 인류 역사는 허구적 서사로 가득 차 있다. 즉, 인류 문명은 그 자체로 '할루시네이션'이다.우리는 이러한 허구를 통해 현실을 살아내고, 때로는 비판하며,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한다. 생성 AI가 보여주는 허구적 요소들이 어째서 문제이기만 할까? 필자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단순한 기술적 발전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인공지능이 너무나 당연해지는 시대, 인간의 할루시네이션과 인공지능의 할루시네이션이 함께 만나 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미래를 꿈꿔 본다.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정성화의 자연과 환경] 환경과 건강 고려한 자동차 생활
집 주위에 알뜰 주유소가 생긴 후 차로 하나가 주유 차량들에 점령당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버스마저도 정류장을 활용하기 어려워, 하나 남은 차로에 정차하게 되고 승객이 도로에서 차를 타고 내려야 하는 위험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얼마라도 싼 주유소를 찾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멀리 가거나 오랜 시간 기다려 주유할 경우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알뜰 주유소는 인근 주유소에 비해 휘발유 ℓ당 약 20원 저렴하다. 휘발유 승용차는 연료통의 크기가 50~70ℓ이므로 최대로 주유해도 50ℓ 정도이고 결국, 싼 주유소를 찾아 주유해서 얻는 이득은 1천원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ℓ당 휘발유 가격 1천500원을 고려하면 1천원으로는 휘발유 0.67ℓ를 살 수 있고 시내 주행 연비를 고려하면 약 5~6㎞를 갈 수 있는데, 그 이상의 거리를 찾아가서 주유하면 싼 가격으로 얻는 이득은 전혀 없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외, 싼 기름을 넣겠다고 찾는 많은 차 때문에 줄 서서 기다리며 소모하는 시간과 연료, 이산화탄소를 포함해서 증가하는 배기가스 배출, 차로를 점유해서 야기하는 다양한 불편함 등의 손해와 불이익은 보이는 것보다 매우 크다. 따라서 무조건 싼 주유소를 찾기보다는 조금 더 현명한 주유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하주차장을 포함한 실내주차장에 머무르는 시간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우선, 경유와 휘발유 차 매연은 각각 1 및 2B군 발암물질일 정도로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는 건강에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동차의 공해 물질은 시동 후 약 30초 이내에 거의 다 나오므로, 차를 시동하는 주차장의 환경은 좋지 못하고 특히, 환기가 어려운 실내주차장의 공기 질은 많은 측면에서 나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실내공기질 관리 대상 건축물의 관리기준(2021. 8. 15)'에 따르면 실내주차장의 기준은 매우 낮다. 예를 들면 실내주차장의 미세먼지 허용기준은 200㎍/㎥ 이하로 도서관 같은 일반적인 다중 이용시설의 허용기준 100㎍/㎥에 비해 2배 높고, 의료기관 등 엄격히 관리되는 시설의 기준(75㎍/㎥) 대비 약 3배나 높다. 미세먼지 농도 200㎍/㎥는 우리가 매스컴에서 흔히 보는 '미세먼지 매우 나쁨'(151㎍/㎥ 이상)을 크게 초과하는 수준이므로 실내주차장에 머무르는 것은 미세먼지가 매우 나쁜 날 야외에서 지내는 것과 비슷한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실내주차장에서 오래 일하거나 머무를 경우에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 자동차 이용 시 경제, 환경, 건강을 위해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경북대 화학과 교수정성화 (경북대 화학과 교수)
[돌직구 핵직구] 정치에 올인하는 비정상적 사회
4·10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탈당과 창당, 합종연횡, 물갈이, 외부 인사 영입이 반복되고 있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현실이다. 모든 길이 정치로 통하는 듯 우후죽순 현직을 사퇴·출마하는 공직자들이 줄을 잇는다. 어제까지 공정한 척 표정 관리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야욕을 드러낸다. 법 질서 유지를 담당하던 판사와 검사와 경찰들, 국사를 책임지던 장관과 차관들, 대통령을 보좌하던 비서들, 언론인들까지. 헌법에 직업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니 크게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공정한 직업 윤리 의식을 믿고 있던 국민들은 허탈함을 느낀다. 그들이 대단한 애국심의 소유자도 아니고, 탁월한 정치 비전을 지닌 것도 아니다. 이종오 '후흑학'의 후안무치 교리를 따라 출세와 영달에 급급해 보인다. 스스로 인재 양성에 실패한 정당들은 외부 인사 영입에 나서지만 신선한 감동이 없다. 모두가 정치에 올인하는 시대에 국가 운영은 누가 하고, 국민의 삶은 누가 돌보는가? 이들을 먹여 살리는 국민 세금이 아까울 따름이다. 정치 축소의 정상화를 위해 세 가지 개혁을 부탁한다.첫째, 국회의원의 특권을 과감히 줄이자.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권력과 부를 누리는 출세의 자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180여 개에 달하는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작년 기준 도시근로자 1인당 월평균 소득은 335만원인데, 국회의원의 월 소득은 네 배를 넘는다. 각종 지원비와 혜택, 보좌진 지원까지 합하면 국회의원 1인당 연간 60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에 불체포와 면책 특권까지 누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원산인 그리스에서 '시민'은 공직을 명예로 봉사와 헌신을 다했다. 정치는 출세가 아닌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제시한 '신념'과 '책임' 의식을 지닌 사람의 장이 되어야 한다.둘째,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과감히 바꾸자. 지역당 한 명만 선출하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고 정당 공천을 받기 위해 권력자에게 줄을 서야 한다. 중대선거구제가 되면 제3·4당 혹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 양당 독점구조가 깨어지고 '완전 경쟁의 정치'를 만들 수 있다. 유능한 사람들이 정치에 진입할 수 있고, 대화와 타협의 민주 정치가 가능해진다.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아닌 '실력 있는 자가 살아남는 정치'로 바꿔야 한다.마지막으로 정당제도를 혁파해야 한다. 중앙당을 축소·폐지하고 원내 정당화로 가야 한다. 현재는 유럽식 원외 정당제도와 미국식 원내 정당제도를 혼합한 이중적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극심한 진영 간 대결구도를 양산하는 원외 정당을 축소하고, 국회 내에서 입법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정당 운영 경비, 선거 경비 보전제도도 폐지해야 한다. 2022년 정당 국고보조금이 1천420억원에 이른다. 대통령 선거 보전금이 1천억원이 넘고, 총선과 지방선거까지 합하면 수천억 원에 달한다. 정당과 선거에 왜 막대한 국민의 세금을 지원해야 하는지? 그들을 지지하는 후원자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중요한 정치과정(political process)이다. 하지만 정치 과잉으로 사회 발전의 장애물이 되어선 안 된다. 경제, 과학·기술, 문화·복지,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이 더 중요하다.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고 국민의 삶의 진보를 견인하는 분야이다. 정치는 이를 뒷받침할 뿐이다. 이번에 선택받은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런 시대적 과제를 실천하기를 기대해 본다. 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
[안도현의 그단새] '초간일기'를 읽는 겨울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를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초간정을 추천할 것이다. 초간정은 예천 용문 금곡천이 휘돌아 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선조 때 문인 권문해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일컬어지는 '대동운부군옥'을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권문해는 1534년 예천 용문면 죽림리에서 출생한 사람으로 스물세 살 때부터 퇴계 이황 밑에서 김성일, 류성룡 등과 함께 글을 배웠다. 1560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등에서 일을 하다가 1573년 마흔 살에 안동부사가 되었다. 그 이후 청주 목사, 공주 목사, 대구 부사를 거쳐 사간원과 승정원에서 업무를 맡아 일했다.권문해가 1580년 선조 13년부터 1591년 선조 24년까지 10년 동안 쓴 일기를 모아 묶은 책이 '초간일기'다. 한문에 눈이 어두운 나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나온 국역판을 읽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말라비틀어진 구절초 꽃대에도 하얗게 눈이 쌓이는 겨울, 옛사람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그 마음을 읽는 일은 꽤 설레면서도 삼삼한 데가 있다.1582년 2월 초간정을 짓기 시작하고 거기에 자주 가서 소일했다는 기록은 매우 생생하게 적혀있다. "정사의 터를 초간 도연의 가에 얻었다. 이웃에 사는 사람 30명을 빌려 술과 음식을 먹이고 터를 메워서 축대를 쌓았다." 봄이 되어 정자의 터를 닦는 일은 2월8일부터 여러 날 지속되었다. 2월12일에도 "용문사의 승려 및 용문동 주민들의 힘을 빌려 정사의 터를 닦았다"고 적었다. 2월19일에는 "초간정사로 가서 소나무 몇 그루를 심게 하였다"고 썼고, 2월24일에는 "초간정 동쪽 가 바위 아래 물이 떨어지는 곳이 있어 연못을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물은 어깨가 잠길 만큼 깊었다고 했다. 2월26일에는 괴목(느티나무)을 여러 그루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정자를 지으면서 원림을 조성하는 데 열성을 다하였다는 것이다. 건축물 주위에 나무를 심어 인공의 건축물이 자연과 어울리도록 배려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초간은 그해 6월에 부인 곽씨의 상을 당했다. 첫째 부인 현풍 곽씨의 장례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관혼상제의 질서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잘 보여준다. 6월21일 사망 후 염습부터 시작해서 10월13일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과정을 빠짐없이 적어 놓았다. 입관, 빈소 차림, 상복 짓기, 가묘 만들기, 제사, 나무를 베어 판을 떠서 관을 만드는 과정이 소상하게 적혀있으며, 석 달 후 9월20일에 산역(山役)이 시작된다. 상여를 만들고, 묘지에 들어갈 흙을 고르고, 횟가루를 뿌리고, 축대를 쌓고, 상여꾼 50여 명을 모으고, 장례를 치르기까지 또 보름이 넘게 걸린다. 장장 4개월 동안 장례가 이어졌던 것이다.'초간일기'를 읽는 내내 구체적이면서도 핍진한 문장에 마음이 끌렸다. "봄보리에 열매가 들지 못했다"거나 "오후에 비가 내려 호미로 땅을 파는 깊이만큼 땅속으로 배어들었다"는 문장이 그러하다. "서리가 눈처럼 내려 목화 싹이 다 시들었다"는 문장은 또 얼마나 아린가. 비록 번역문이지만 문장은 글쓴이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조선 중기까지 친가뿐만 아니라 외가의 제사를 모시는 '외손봉사'의 기록도 이채롭다. 권문해가 1589년 대구부사로 있을 때 10월에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정여립 등을 체포하라는 왕명이 내려왔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초간의 모습을 보면 그도 당파싸움의 한복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가 보다.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안도현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
[3040칼럼] 가능성이 품은 실패
롤러스케이트장에 가면 주로 어린이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잘 타는 아이들이 반, 엉거주춤 타거나 그러다 넘어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옆에서 보호자나 동행인이 넘어진 이들을 일으킨다. 손을 잡아주고 자세를 알려주고 지켜본다. 비록 음악에 맞춰 날쌔게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축된다 해도 엉덩방아를 찧거나 엉성한 자세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일은 부끄러운 일도 주목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넘어지며 배우는 그 과정을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 EBS 연말 특별 기획으로 제작된 '학교도감' 1부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나온다. 20년 후 나의 모습을 그려본 후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시청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다양한 직업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야근을 하거나 알바를 한다는 등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답변이 많았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조기축구회로 만족하고, 꿈은 과학자지만 계속 발명에 실패해서 평범한 직장인이 될 것 같으며, 미술은 돈이 안 돼서 직업으로 선택하기 힘들 것 같다는 답변은 공통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아이들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 않았다. 희망과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여 실패할 일도 실망할 일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전쟁이나 기후위기, 고물가 시대를 겪는 세대인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많이 나타났다. 대부분 학생이 어른이 되는 것에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으며 두드러지는 이유로 일이나 돈에 대한 걱정이 컸다. 기성세대로서 우리의 모습이 어린 세대에게 긍정적으로 비치지 않고 있으며 누구보다 불안한 미래를 체감하며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여러 감정이 오갔다. 어린이들의 꿈이나 현실을 낭만적으로 보자는 말이 아니다. 동심에 가둬두고 싶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내가 천진하게 꿈꿨던 것, 기대하고 상상했던 많은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약할수록 기민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의 처신에 속상할 뿐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에 대한 확신의 시간은 안타깝게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꼭 어린이들에게서만 체념과 좌절의 목소리를 우려할 것은 아니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년이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길 원하며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어른에게는 허용되고 어린이에게는 안 된다고 선 긋는 것은 오히려 어불성설이다. 일하는 시간이 고되지만 안전하고 윤리적인 노동 환경이라면, 개인의 여가나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충분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면 어린이가 꿈꾸는 미래도 그 토대 위에 그려질 것이다. 각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사람의 업적이나 성취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이르기까지 겪었을 수많은 어려움과 실패의 과정 또한 눈여겨본다면, 아직 주목할 만한 성과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꾸준히 정진하는 걸음과 실패에도 박수를 보내줄 수 있다면 무언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 큰 용기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실패에 지나치게 엄격하며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는 다양한 시도와 가능성을 제한할 뿐이다. 롤러장이나 스케이트장에 들어선 사람의 엉거주춤한 모양새처럼 시도하는 움직임이 더 많이 일어나면 좋겠다.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아닌 내겐 너무 뭉클한 모습이었으니까. 가능성은 실패를 품을 때 커진다.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이진우의 시대정신] '저출산'으로 나타난 시대정신
한국이 소멸한다. 지방이 소멸한다. 인구절벽으로 경제가 쇠퇴한다.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로 망할 것이다. 파멸과 멸망이라는 극단적 용어로 표현되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적 전망도 끔찍하고 놀랍지만, 이러한 경종에도 별로 놀라는 것 같지 않은 태연한 태도에 우리는 더욱 경악한다. 모든 국민이 친숙하게 사용하는 '저출산 고령사회'는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2006년 이후 17년 동안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80조원을 투입했음에도 합계출산율은 2006년 1.13명에서 2023년 0.72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러니 사람들은 저출산을 이제 어떤 해법도 통하지 않는 우리 시대의 운명처럼 받아들인다.도시화로 지방이 약화되겠지만 소멸을 말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한국의 인구가 줄어들겠지만 '한국의 소멸'이라는 종말론적 예언은 너무 과장 아닌가? 아니면 이러한 예측과 경고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과 무관심이 오히려 지나친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한국의 소멸을 경고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Ross Douthat)의 사고 실험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여전히 여성 1인당 1.5명의 자녀를 두는데, 한국은 2018년 여성 1인당 자녀 수가 1명 미만으로 떨어진 이후 합계출산율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2023년에는 여성 1인당 출생아 수가 0.72명에 불과하다.이렇게 출산율이 계속 하락하거나 유지되면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까? 한 세대를 구성하는 현재의 인원 200명이 다음 세대에는 70명으로 줄어들게 되며, 이러한 인구 감소는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현재 약 5천100만명의 한국 인구는 한 자릿수 수백만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은 정말 종말론적이다. 설령 출산율이 개선되어 2060년대 말까지 인구가 3천500만명 미만으로 급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추정치만으로도 한국 사회가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인구절벽은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이다.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의 칼럼은 한국이 선진국을 엄습한 인구 감소 문제의 놀라운 사례라는 말로 시작하여, 한국의 현재 추세는 "단순히 암울한 놀라움 그 이상이며 이는 우리에게 가능한 일에 대한 경고"라는 말로 끝맺는다. 한국은 현재 세계의 선진국을 지배하는 '시대 정신'을 극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우리가 저출산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려면, 21세기의 시대 정신이 저출산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통계학적 변화를 주로 계량적으로 설명하고 그 원인을 주로 물질주의적 시각에서 찾았다. 어느 지역이 먼저 소멸하는지 지도를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가 어떻게 수도권 인구집중을 초래하는지, 학령인구의 변화로 대학이 어떻게 변화할지 계량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거의 지배적이었다. 숫자와 지도만 보면 쇠퇴, 소멸, 몰락, 멸망과 같은 용어는 매우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종말론적 시나리오와 수사법은 우리가 저출산과 인구 감소의 문제에 대처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방송과 언론을 통해 오직 자극적으로만 묘사되는 이러한 진단은 오히려 저출산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그런데 저출산은 본래 사회 변동의 결과이자 징후이다.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이를 적게 낳거나 아예 낳지 않으려는 현상은 사회가 이미 변하였다는 징후이다. 사회가 변하였다는 것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와 이상이 변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렇게 저출산의 원인을 사람들의 가치관에서 찾는 방식을 '물질주의적 접근 방식'과 구별하여 '이상주의적 접근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예전에는 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결혼하면 당연히 애 낳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은 선택, 직업은 필수'라는 말이 인생 공식으로 굳어진 요즈음 '결혼했으니 애 낳아라!'는 말은 어불성설의 잠꼬대처럼 들린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3'에 따르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20·30대 여성은 30%대에 그쳤다. 남성의 경우도 40%대로 급감했다. "돈도 없는데 무슨 결혼이에요?"라는 말은 결혼을 꺼리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한다. 출산율 저하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자녀 양육비와 이에 수반되는 기회비용이다. 오늘날 MZ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직장을 잃거나 소득이 감소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실현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질주의적 지원을 통해 출산율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은 북유럽 국가처럼 관대한 사회복지를 통해 출산과 양육을 물질적으로 지원하면 저출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북유럽 국가의 출산율이 급락했다는 점은 인구 감소에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물질적 조건이 좋아졌음에도 출산율이 하락하는 원인으로 21세기의 시대 정신인 '개인주의'를 지목한다.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여전히 강한 우리나라는 개인주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개인을 사회와 정치의 궁극적인 요소로 간주하는 개인주의는 사실 21세기의 보편적인 가치이다.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사회는 모든 개인이 행복한 사회가 아닌가? 사회의 중심이 가족, 기업, 국가와 같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개인주의는 필연적이다.오늘날 젊은 세대의 개인들은 결혼과 출산 그리고 가족에 대해 기존 세대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결혼과 출산보다는 직업과 노동을 선택한다. 이러한 '노동 우선주의'가 지배하는 한, 결혼한 직장인을 위한 '워라밸' 정책만으로는 저출산을 해결하지 못한다. 결혼을 꺼리는 젊은 세대들에겐 일하면서도 가정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생존이 보장될 때 비로소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다른 가치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21세기의 시대 정신인 개인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모든 개인이 자신과 같은 다른 개인인 자신의 아이를 바랄 수 있도록.포스텍 명예교수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단상지대] 중년의 현자들
동네의 작은 한증막 구석에 누워서 벽을 보고 뒤돌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내 등 뒤로 아주머니들이 차례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아주머니들은 한동네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그중 한 아주머니가 모시떡을 들고 왔으니 다들 있다가 함께 먹자는 말을 꺼냈다.그러자 다른 아주머니가 모시 절편이냐고 물었다. 그분들은 모시 송편, 모시 절편, 모시 개떡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모시떡은 모시풀 잎을 재료로 하는데, 모시옷을 만들 때의 그 모시풀이라고 한다. 나는 누워서 '아…. 옷의 원료가 되는 풀로 떡을 만드는구나' 하며 듣고 있었다.그분들은 자신이 가진 모시에 대한 모든 상식을 풀기 시작했다. 모시떡은 쑥떡과 다르게 다 자란 모시를 데쳐 쓰기 때문에 맛이 진하다든가, 원래 모시는 식용이 아닌데 예전에 먹을 것이 없을 때 모시 개떡 같은 것을 만들어 먹으면서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분들은 모시떡을 만드는 자신의 방법을 얘기했는데 결과적으로 모시떡은 그냥 모시만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모시로 만드는 부각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나는 '아, 그렇구나' 하면서 듣고 있었다. 모시가 혈관에 좋다더라, 뼈건강에 좋다더라는 얘기를 하자 나는 솔깃해졌다. '떡을 사 먹을 일이 있으면 모시떡을 먹어야지….' 그러다가 누군가가 모시옷 얘기를 했다. 한산모시는 삼베보다 더 짜임새가 곱고 비단 같은 광택이 있어서 고급으로 쳤다는 것이다. 나는 그럼 모시랑 삼베는 어떤 차이가 있지? 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물을 뻔했다. 그 순간 누가 시댁이 안동인데 어르신들이 '대마'로 삼베인 안동포를 짰다고 했다. 그리고 모시나 삼베 짜기가 얼마나 고달픈 작업인지를 서로 얘기하면서 모시풀을 이로 째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이가 벌어지고 안 좋아지게 되는데 여기서 '이골이 난다'는 말이 나왔다고 하지 않냐고 했다.'아…. 이골이 난다는 말이 거기서 유래되었구나' 어떤 아주머니가 모시랑 삼베가 너무 비싸서 윤년에 수의를 미리 지으려고 해도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다가 모시랑 삼베만큼 시원하면서도 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인견' 얘기가 나왔다. 그러고는 또 인견에 대해서 각자 아는 이야기를 풀었다. 인견은 풍기 인견이 제일 좋다며, 동네 어디에 풍기 인견 이불을 파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산 이불이 시원하고 좋더라는 말을 했다. 나는 뒤돌아서 자는 듯했지만 내 귀는 거의 기지국 안테나처럼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모시떡을 먹기 위해 우르르 나갔을 때는 '나도 인견 이불 사고 싶은데, 이불집 상호라도 알려 주고 나가셔야지요'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가끔 5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일상과 건강, 살림, 인생의 꿀 정보들을 얻을 때가 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안전지향적인 삶을 추구했던 주부들은 과학적 증거가 없어도 알 수 있는 통찰력 같은 것이 있다.삶의 지혜를 가진 그 현자들은 주로 주말에는 등산복 차림으로 등에 붙는 배낭을 메고 다니는데, 그 배낭 안에는 떡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거의 100%다. 이은미 변호사이은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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