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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맛탱] '초보 식집사·식물 살인마'에게 필수 앱…키우는 환경에 맞는 알림 가능
코로나19로 인해 야외 활동이 줄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식물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을 표현하는 단어도 만들어졌다. 식물을 키우고 교감하는 것을 뜻하는 '반려식물', 식물을 키우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을 뜻하는 '식집사' 등이다. 그러나 식물을 키운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식물을 키워본 사람들은 공감한다. 이에 SNS상에는 '식물 살인마'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이러한 식물 살인마에게 도움을 주는 앱이 등장했다. 앱 '그루우(groo)'다. '이번 식물은 죽이지 마세요'라는 강렬한 문구로 소개하고 있는 앱은 지난해 2월 출시됐다. 앱을 실행시키면 이용자가 키우는 식물을 등록할 수 있다. 식물 등록 시 마지막으로 물을 준 날, 애칭, 사진 등을 입력한다. 다음으로는 키우는 환경을 고른다. 수경재배, 물에 젖은 토분, 야외, 플라스틱·유리·고화도 토분 등 어떤 화분에서 식물이 있는지를 선택한다. 이후 방, 거실, 욕실, 사무실 등을 식물이 있는 위치를 고른다. 또 식물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빛과 바람 등의 상황도 입력해야 한다. 식물이 빛을 밖에서 받는지, 조명을 통해서 받는지, 못 받는지, 창문은 식물과 5m 이내에 있는지, 없는지 등을 선택한다. 식물 등록이 끝나면 해당 앱의 장점을 드러난다. 키우는 식물과 환경을 바탕으로 알려주는 '가드닝 알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을 언제 줘야 하는지, 환기는 언제 시켜야 하는지 등 잘 알지 못하는 초보 식집사에게 날짜에 맞춰 알림을 해준다.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게 물을 주고 환기를 시켜줄 수 있다.'AI 식물진단' 기능도 유용하다. 식물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사진 2장만' 찍어 올리면 된다. AI가 증상을 파악해 원인을 알려준다. 다만, 1일 최대 5회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웠다.이외에도 다른 식집사들과의 소통도 가능하다. 커뮤니티인 '가드닝 질문' '이름이 궁금해요' '새 식물 자랑' 등을 통해 다른 이용자들과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식물 등록 후 환경에 맞게 물주기, 환기하기 등 알림을 받을 수 있다. 그루우 캡처'AI 식물진단'을 통해 식물 상태의 원인을 알 수 있다. 그루우 캡처커뮤니티 '이름이 궁금해요' '가드닝 질문' 등을 통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그루우 캡처
2023.03.30
[정문태의 제3의 눈] '세계 최악 대기오염 도시' 타이 치앙마이의 잔인한 3월이여!
잿빛 하늘, 누른 연기, 태양이 사라졌다. 숨이 컥컥 막히고 눈물이 주루룩. 속은 메슥거리고 등줄기엔 이내 땀이 축축.산길 난전에 자동차를 세우고 물과 고구마를 산 게 기껏 10분, 지옥을 오갔다. 치앙마이에서 꼬불꼬불 1천 고개를 돌아 버마와 국경을 맞댄 타이 최북단 매홍손이 눈에 차오를 즈음. 해마다 이맘때면 세계 최악 대기오염지수(AQI)를 기록해 온 치앙마이에서 스물두 해나 살아온 나는 제법 면역이 생긴 줄 알았더니 웬걸, 매홍손 연기 앞엔 맥도 못 췄다. 오죽했으면 40년 애연가인 내가 담배 한 모금을 빨고는 콜록콜록하며 불을 껐을까. 나흘 전 매홍손은 대기오염지수가 580까지 치솟았고, 초미세먼지(PM2.5)는 500마이크로그램(㎍/㎥)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간 대기질 가이드라인값을 100배나 웃돌았다. 이건 숫자에 아주 둔한 나마저 섬뜩함을 느낄만한 지수였다. "뇌졸중, 폐암, 호흡기질환 사망자의 1/3이 대기오염과 관련 있다."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를 굳이 꺼낼 것도 없이 한마디로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곳이란 뜻이다.3월 들어 타이 북부는 어디 할 것 없이 연기로 뒤덮였다. 우리 동네 치앙마이 상징인 서산(도이수텝)을 못 본 지도 꽤 오래다. 치앙마이는 한 달째 대기오염지수 250~300을 오르내리며 세계 최악을 달려왔다. 한국이나 유럽에선 100만 넘으면 난리 치는 바로 그 지수다. 숨 막힌 치앙마이 사람들은 하루 내 그 지수를 들여다보며 걱정과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초미세먼지는 혈류를 파고드는 흡연과 같은 위험성을 지녔다. 22㎍/㎥마다 어린이와 노약자를 포함한 모두가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다." 치앙마이의대 심장전문의 룽스릿 깐짜나와닛 말은 치앙마이 사람들이 저마다 하루 열 개비도 넘는 담배를 피우며 산다는 뜻이다. 룽스릿은 10㎍/㎥(연평균)이 오를 때마다 총인구에서 사망자 6%가 늘어나고 수명 1.03년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타이 정부의 대기오염 표준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120㎍/㎥이 한계치다. 300㎍/㎥은 위험 경보에다 비상사태가 떨어지는 지표다. 쉽게 말해 300㎍/㎥이란 건 시내 한복판에서 200~300m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고, 비행기가 끊기고, 눈물이 나고, 목이 따갑고 그리하여 학교가 문을 닫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쯤 되면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총리란 자가 한 번쯤은 나타나 결연한 표정을 짓고 돌아간다. 뭐, 비상사태를 선포한들 싸구려 마스크 좀 돌리고 바깥나들이 줄이라는 훈수 둔 것밖엔 달리 한 일도 없지만, 아무튼 해마다 그 300을 가볍게 넘나드는 치앙마이에서 내가 겪은 최악은 예닐곱 해 전 860이었다. "절망적"이란 건 그럴 때 쓰는 말이었다. 해마다 건기인 12월부터 슬슬 피어오른 연기는 이듬해 3~4월에 온 천지를 뒤덮는다. 사실은 북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오염지수가 좀 다를 뿐 동북부와 중부를 비롯한 타이 전역이 다 휩쓸려 든다. 30년쯤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연기 주범이라는 화전과 산불은 그때도 있었다. 다만 그 시절 화전이란 건 산악 소수민족이나 농민이 산자락에 텃밭을 부쳐 먹는 전통 농작이었다. 타고 남은 재가 칼슘을 보태 땅을 기름지게 하고 병충해를 막는 그 화전은 오히려 생태적으로 환경에 도움을 준다며 숱한 학자들이 북돋우기까지 했다. 으레 내가 먹을 만큼 땅을 일궈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화전민이 문제 된 적도 없고, 요즘처럼 치앙마이를 비롯한 타이 북부가 연기에 시달린 적도 없다. 그러던 게 한 15년 전부터 옥수수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같은 대규모 농산자본이 파고들면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바로 타이 사람들이 연기에 골병들기 시작한 출발지였다. 현실을 보자. 지난해 타이에서 생산한 옥수수가 520만t에 이른다. 그 520만t이란 건 오직 알갱이만 가리킨다. 옥수수 하나에 알갱이는 22%쯤 된다고 하니 2천만t 웃도는 몸통과 이파리가 해마다 연기로 변하는 셈이다. 그 옥수수를 최대 농산기업인 짤른 포카판(CP)을 비롯한 대형 업체들이 주로 짐승 먹잇감으로 사들였다. 옥수수·사탕수수 대규모 경작지15년 전부터 파고들며 골병 들어이파리 등 수천만t 이르는 부산물해마다 불에 태워져 재앙 되풀이타이 정부는 애꿎은 화전민 탓만이웃나라 라오스 등에 떠넘기기도그동안 환경 연구자들한테 뭇매를 맞아온 짤른 포카판이 내놓은 '2021 옥수수 개황보고서'란 게 있다. 얼핏 보면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앞세운 듯하다. "산간과 보호림 지역 식재를 장려하지 않고…, 2016년부터 토지 소유권이 없거나 정부 인증을 안 받은 지역에서 생산한 옥수수 구매를 중단했고…." 대충 이런 내용인데 정작 내세운 20여 개 관련 프로젝트의 기간과 그 결과에 대한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눈 가리고 아웅이란 뜻이다. 지난해 9천200만t을 생산한 사탕수수도 마찬가지다. 그 경작지가 경북도보다 1억평쯤 더 큰 58억평에 이른다. 2~6m에 이르는 대나무 같은 줄기에서 자당을 뽑고 나면 이파리부터 모조리 연기로 변한다. 모두 거대 농산자본들이 소농을 주무르며 벌어진 일이다. 이건 전통 화전민들한테 연기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정부가 내세운 화전 금지법이란 걸 보자. '경작지에 잡초를 태우는 이들은 2천~1만4천밧(7만6천~53만원) 벌금이나 1월~7년 형에 처한다.' 애초 연기 주범인 농산기업의 플랜테이션을 겨냥한 법이 아니다. 그러니 큰 고기는 다 빠져나가고 늘 잔챙이들만 잡아 가뒀다. 그게 전통 화전 농민이었다. 다른 말로 10년 넘게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기 사태를 정부가 다잡을 맘도 없다는 뜻이다. 여태 또렷한 정책도 대안도 내놓은 게 없다. 걸핏하면 이웃 나라 버마니 라오스니 캄보디아에서 연기가 날아온다고 떠넘겼을 뿐. 연기, 크로스 보더(cross border) 맞는 말이다. 그러면 버마를 비롯한 이웃 나라에 진출한 타이 농산자본이 날리는 연기는 누구 책임인가. 그네 나라 정부가 툭하면 둘러앉지만 세금만 축냈을 뿐 연기는 해마다 더 짙어지기만. 시민이 숨 쉴 자유도 마련해 주지 못하는 이런 걸 정부라고.화전만 문제도 아니다. 3월이면 온 천지가 달아오른다. 저절로 피어오르는 산불도 연기 주범 가운데 하나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기후 탓에 자연 발화 산불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들 한다. 3월 들어 국립공원야생동식물보전국은 번져나가는 산불 3천768개를 보고했다. 실제로 타이 북부 빠이, 매홍손, 매사리앙을 거쳐 치앙마이로 되돌아온 지난 사흘 여행길에 스무 개도 넘는 산불을 보았다. 한데, 단 한 군데도 소방 인력이나 진화 장비가 투입된 곳이 없었다. 정부 기능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방콕만 붙들고 앉은 채 북부 사람들은 불에 타 죽든 연기에 숨 막혀 죽든 눈도 깜빡 않는 정부의 정체가 드러났다. 하긴 어제오늘 일도 아니었지만. 그러니 오늘도 치앙마이와 북부 사람들은 날짜만 꼽는다. 비라도 내려야 이 지옥이 끝날 텐데 6월 장마철은 아직 너무 멀기만. 눈이 따갑고 눈물이 찔끔찔끔, 목은 칼칼하고 메케한 냄새는 허파를 들락거리고. 화요일 오전, 이 칼럼 마감이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도무지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 커피 잔만 늘어날 뿐,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치앙마이의 이 잔인한 3월을 어이할까나! 〈국제분쟁 전문기자·방콕특파원〉타이 북부 도시 치앙마이는 3월 들어 세계 최악의 대기오염 지표를 기록 중이다. 정문태 방콕특파원타이 최북단 매홍손의 산불 현장. 타이 정부는 산불 진압에 손을 놓았다. 정문태 방콕특파원
2023.03.29
"유례없는 對러 제재 상황, 韓 에너지 교역 유연성 발휘해야"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 협력은 한-러 수교 이후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많이 발전했다. 양국의 무역은 한국이 주로 러시아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수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 자원 수출국이고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양국은 상호 보완적인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지리적으로 가깝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수교 초기 양국의 경제협력 잠재력은 매우 크다고 인식됐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무역량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 성과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양국의 기대에 못 미쳤다. ◆러시아, 새로운 성장 기회러시아 시장은 문화와 제도적 이질성, 언어 장벽 등의 이유로 현지 진출이 쉽지 않다.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어려운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계속되고 있는 서방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 등 예상치 못했던 외부 충격과 러시아의 불안정한 환율 등 많은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아울러 지리적으로 가까운 극동지방보다 경제의 중심이자 인구가 많은 서부 러시아 지역으로 수출이 집중돼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높은 물류비용 때문에 유럽 및 중국 기업들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한 면이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북미, 유럽, 중국 그리고 동남아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출이 활발하지 않은 러시아 시장은 포화상태인 국내시장과 경쟁이 치열한 해외의 주요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과 성장 기회를 찾는 중소·중견 기업들이 진출하는 신흥시장이기도 했다.팬데믹 이은 우크라 전쟁 발발韓-러 경제 교류 급격한 변화양국 협력 성과 기대에 못미쳐생필품 등은 수출입 무역 가능◆러시아 수출 급감의 원인은그러나 무역과 투자는 1990년대 수교 초기 매우 높았던 양국의 기대와 양국이 가진 경제협력 잠재력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 기업이 러시아 진출을 늘리는 시점이었던 2014년에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사태로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제재가 시작됐다. 동시에 유가가 폭락하면서 무역량이 급감했다. 이후 양국이 기대가 컸던 에너지 분야 협력과 투자 계획도 타격을 받았다. 한·러 간의 교역이 회복되는 시점인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고, 이후 다시 교역이 회복세를 보였던 2022년 초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러시아 수출이 다시 감소했다. 이처럼 정치적 사건과 금융위기 등 반복되는 예측 불가능한 외부 요인 등의 어려움 때문에 양국의 경제교류는 수차례 영향을 받았다.무역량의 급격한 변화는 제재의 영향도 있지만 러시아 경제가 에너지 자원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탓에 유가의 영향을 받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2022년부터 내려진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제재는 유례없이 강력해 높은 유가에도 불구하고 대러시아 수출이 급감했다. 에너지 가격↑, 수입은 증가작년 14년 만에 첫 무역적자제재 위반하지 않는 한도 내韓 경제 상황 고려 대처 필요◆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대러시아 경제제재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제제재는 러시아의 금융, 군사, 에너지 부분에 집중해 이루어졌다. 크림반도 관련 제재로 인해 러시아 경제는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일정 부분 손실을 봤다. 핀란드 중앙은행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가 제재에 따른 결과로 2014~2018년 연간 0.2~0.7% 정도 GDP(국내총생산)가 감소했다. 다만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핵심 산업인 석유 가스의 생산과 수출이 꾸준히 늘면서 크림반도 관련 대러시아 제재는 러시아 경제에 제한적인 영향만을 미쳤다.반면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제재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관련 제재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해 러시아 경제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러시아 경제 제재는 시간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으며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의 생산과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례없이 강력한 대러시아 경제제재 때문에 러시아는 경제 체질을 일정 정도 바꿔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러시아 시장의 중요성이러한 제약과 어려움에도 러시아는 아직 한국의 2022년 21위의 수출 대상국이고, 대한국시장 13위의 수출국이다. 대폭 강화된 제재 등의 이유로 수출량이 크게 감소했지만, 대러시아 수출액은 유럽 핵심 국가의 하나인 영국과 비슷하며, 또 다른 유럽의 주력 시장인 프랑스·이탈리아보다 많다. 중동 대표적인 시장 중 하나이며,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국보다 많은 수준이다.2022년 한국은 14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적자 폭이 472억달러로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자원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자원 수입액이 급격히 증가, 수입이 대폭 늘어난 것이 큰 폭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한국의 국가별 수입액 순위를 살펴보면 1위부터 3위에는 중국, 미국,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 자원을 많이 수입하는 호주와 사우디가 각각 4위와 5위이다. 그리고 9위부터 14위에 해당하는 카타르,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연합국, 말레이시아, 러시아, 쿠웨이트는 석유, 가스, 석탄을 많이 수입하는 한국의 핵심 에너지 자원 협력국이다. 한국은 에너지 자원 수급의 해외 의존도가 매년 95% 안팎을 넘나들 정도로 매우 높아서 이들 국가와의 경제협력은 경제 안보를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대러 제재 피한 천연가스제재로 인한 무역 장벽이 커졌고 많은 품목이 수출 금지 대상이기 때문에 대러시아 수출에 타격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당분간 제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재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생활용품 등 많은 품목은 상호 무역이 가능하며, 수출입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 제재를 실행하는 각국은 자국의 경제 상황에 따라서 제재 강도를 조절하고 있다. EU의 경우 에너지 자원 중 가장 대체가 쉬운 러시아 석탄을 2022년 8월에 제일 먼저 금수조치했고, 이후 12월5일부터 원유의 부분 금수조치를 시행했다. 올해 2월부터는 석유 제품의 수입을 차례로 금지했다. 하지만 대체가 어려운 천연가스는 금수조치에 포함하지 않았다. ◆지난해 러시아의 대유럽 LNG 수출 사상 최대 기록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의 수입이 줄어들었지만, 이는 EU의 금수조치의 결과가 아니다. 러시아와 유럽 각국이 다양한 이유로 자체적으로 수출입을 중지한 결과이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대유럽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러시아는 유럽시장에서 2위의 LNG 수출국이다. 중국과 인도, 터키 등 제재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 자원 수입을 급격하게 늘렸다. 제재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UAE 등 중동 국가들도 러시아와의 교류를 늘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경제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다. 한국도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만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대처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글=성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 정리=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성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HK 연구교수
[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미학적 기준까지 자본 구조화…다양한 정체성 기반 연대 필요"
직장과 술집, 카페와 마켓, 공공기관과 문화센터, 학교 등 일상의 곳곳에서 우리는 도시와 연결된다. 도시를 에워싼 모든 물질과 움직임이 내 삶의 근거가 되거나 삶을 구성한다. 더욱이 '행성적 도시화(planetary urbanization)'로 명명되는 지구적 규모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삶은 모두의 삶이 되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 문화와 자본, 욕망이 응축된 도시는 모두 것들이 교차하고 해후한 결과들이다. 특히 도시는 정치적 상상과 이를 둘러싼 현실정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보들레르, 짐멜, 벤야민 같은 근대 초기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를 경험한 유럽의 지식인들이 근대도시의 일상을 자본주의적 근대성이란 알레고리로 풀이한 것도 도시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다. 하이데거가 '숲길(Holzwege)'에서 말한 '존재에서 분리된 존재자들의 경악'이란 깊은 통찰은 그 결과이기도 하다.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는 도시와 인간의 삶에 대해 질문한다. '우리가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가와 관련된다.' 질문은 삶의 형태와 공동체, 존재론적 가치와 미적 기준의 실체로서 도시를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곳인가'란 질문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 중 하나이다.도시=상상 둘러싼 정치 결정체이데올로기·자본·욕망 등 응축산업혁명이 초래한 비극 여전르페브르 "방안은 도시혁명뿐"보들레르는 최초로 근대도시 파리를 서정시의 주제로 삼았다. 우울과 알레고리의 시인 보들레르에게 파리는 상품과 자본으로 응축된 우울과 이상이 뒤섞인 이중 도시였다. 도시의 이면은 상품과 화려한 아케이드의 환영(幻影)으로 대체되며 죽음과 뒤섞인 파리의 환상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발터 벤야민은 '파리의 원풍경'에서 상품과 패션과 근대자본, 즉 금융에 가려진 매춘과 가난을 도시의 저승적 요소라 표현한다. '고리오 영감'에서 발자크는 '지옥과 매춘의 도시'라고 파리를 직격했으며, 에밀 졸라는 소설 '목로주점'에서 '알코올과 반윤리와 비극의 결정체'로 파리를 묘사했다. 한편 1852년 오스망은 파리 대개조를 통해 근대도시의 모형을 제시했다. 직선으로 뻗은 대도(大道), 상품으로 가득한 아케이드, 하수도와 관청과 금융건물을 중심으로 근대도시 파리를 구현했다. 그러나 이스트 엔드와 같은 노동자들의 주거 공간은 도시 건설을 이유로 정부에 수용되거나 파괴되었다.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제 도시는 집 대신에 도로가 중심이 된, 판매자이자 상품인 매춘부의 모습'이 되었다고 일갈한 것도 도시 개조와 관련된다. 보들레르의 감각적 알레고리, '악의 꽃'도 그렇게 탄생하였다.산업혁명 이후 도시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기술·경제, 자본·상품의 단단한 결합 심지어 감정과 미학적 기준조차 자본으로 구조화되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어쩌면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도시학자 르페브르의 말처럼 '도시혁명'뿐일지 모른다. 그는 산업혁명이 초래한 노동과 삶의 해체에 대한 '절규이자 요구'로서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그리고 도시이론가 메리필드는 기존의 도시관념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운 것, 뭔가 미래적이고, 생성 과정 중에 있는 도시를 포용'하는 도시혁명을 제안하며, 르페브르의 도시혁명을 새롭게 해석한다. 구체적으로 무력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전락한 시민권 대신 무한히 다양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일상생활 속 연합적 연대와 감정의 연대 구조와 같은 새로운 주체성을 강조한다. 특정한 내용이나 형태도 없이 도시에 내재하는 실천적 역동성을 도시혁명의 동력으로 보고, 도시 내부에서의 만남과 마주침을 주창한다. 그는 "도시가 보내는 표시는 모임의 신호"이며 "순수한 형태로서의 도시는 마주침, 모임, 동시성의 장소"라는 르페브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도시를 만남과 마주침의 장소로 규정한다. 박승희<대구경북학회장·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23.03.28
[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포구서 물물교환해 생계유지…5m 안팎 작은 배서 주거생활"
바다 위, 전통어선에서 생활하는 바자우(Bajau)족, 바다 집시들은 이제 소수만 남아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각 국가들은 뭍에 정착한 바자우족에게 영주권을 준다. 그러나 그냥 바다에서 선상생활을 하는 바자우족은 영해에 있다 하더라도 그 나라 영주권이 없다. 그러므로 뭍에 발을 내딛는 순간 불법 입국자가 된다.이미 오래전부터 말레이시아 사바주 산간마을 등에 정착한 '육지 바자우'와 여전히 바다 곁에 붙어사는 바다집시 바자우족은 '같으나 다르다'. 본 뿌리는 같되, 생활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했으나, 지금은 물물교환 등 생활을 위해 말레이시아어도 알아듣고 말도 한다.영주권 없어 뭍 내딛으면 불법바다에 없는 생필품 싣고 떠나레가타 레파 기간 몸·배 치장말레이시아서 '레파 퀸' 선정오랑 라우트(orang laut: 물의 민족)라고도 불리는 무국적 바자우족들은 이제 뭍사람들의 눈치까지 잘 살필 수 있어야 바다 위에서의 유랑생활이 그나마 무난해진다. 표해민(漂海民)답게 잡은 해물을 해안에 늘어선 상인들에게 넘기고 대신 받아 든 생필품을 챙기자마자, 단속 경찰의 사나운 눈길을 피해 서둘러 바다로 되돌아가야 하는 게 오늘날 바자우족들의 모습이다. 뭍이라는 곳은 셈포르나(SEMPORNA)로 말레이시아 사바주 동쪽 해안에 들어선 어촌이다. 인도네시아와 인접해 있고 어부들은 타위타위(TAWI TAWI)섬 등 필리핀과 같은 바다를 삶터로 여기며 살아간다. 말레이시아 바다로 흘러든 바자우들이 물물교환 등을 위해 발을 딛는 이곳은 셈포르나에서 가장 번잡하다는 포구 주변이다. 매일 이른 아침이면 바자우들은 레파에 싣고 온 말린 가오리, 해삼 등 다양한 건어물을 뭍에 올리고, 대신 자신들의 주식인 쌀과 녹말, 설탕과 커피 등 바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생필품을 레파에 싣고 서둘러 떠난다.바다를 유랑하는 표해민(漂海民)들에게 있어서 뭍은 그리 익숙지 않은 곳이다. 레파에 올라 바다로 나가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레파(Lepa)는 뭍에 정착하는 대신 여전히 이 바다 저 바다를 떠도는 바다 집시들에게 어구로서의 배이자 주거장소로서의 집이기도 하다.바다 위에서 마주친 전형적인 한 바자우의 배는 저래도 될까 싶은 정도로 작다. 선체 길이는 5m 안팎, 좌·우현 흘수(吃水)까지 낮아 파도가 치면 바닷물이 쉽게 배 안에 넘칠 듯하다. 지붕에는 그물 따위가 실려 있고, 곳곳에 알록달록 빨래가 걸려있다. 돛대가 보이지 않으니 오로지 상앗대와 근력만으로 배를 몰아갈 터인데, 뜨거운 햇볕과 더위 방지는 좌·우현을 막은 판자가 전부다. 밥 짓기 위한 화덕과 어느 만큼의 장작, 한밤중 조업을 위한 등불이며 얇은 이불 따위도 실려 있다.다른 사람의 눈으로는 추레하달 수밖에 없는 배가 화려하게 치장되는 시기도 있다. 바로 레가타 레파(Regatta lepa) 기간이다. 우리가 집 안팎을 치장하듯 이물과 고물을 전통무늬로 조각을 하거나, 선체에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색을 입히기도 한다. 다양한 천으로 꾸민 역삼각형 모양새의 태피스트리 돛을 걸어 갈무리를 하고 보란 듯이 배를 몰아 셈포르나 포구로 모여든다. 동족들끼리 배 모는 솜씨를 겨루는 축제니 셈포르나는 물론 주변 섬에 정착한 바자우족들도 크고 작은 레파를 직접 몰거나 도선을 이용해 축제장으로 찾아온다. 이날만큼은 제복들의 눈치 따위를 살피지 않는 대신 뭍에 오르면 생긴다는 '땅멀미'를 각오하고 나선 길이니 특히 여성들은 옷매무시나 얼굴에도 신경을 쓴 듯이 보인다.이렇게 레파고 몸이고 치장하느라 애쓰는 바자우들보다도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이 더욱 즐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 사바주 정부에서는 이리 별나고 화려한 모양새로 시선을 끄는 바자우 전통어선 레파를 관광자원이자 문화유산으로 여겼다. 해마다 아름답게 꾸민 배를 몇 척 선정해 소유자인 바자우족에게 상품으로 모터엔진과 상금까지 곁들여 주는 한편, 바자우 여성 중에서 '레파 퀸'을 선정해 왕관 대관(戴冠)은 물론, 상금까지 챙겨주면서 적극 장려해 오고 있는 것이다. 김상수<해양다큐멘터리 사진작가·전 월간 '우리바다' 편집장>바자우족 축제 레가타 레파가 열리는 날 아침 셈포르나 포구를 향해 오는 레파 행렬.
사람 소리 가득했던 '전통시장' 역사 속으로…주상복합·아파트 '빌딩숲' 된다
대구 전통시장이 사라지고 있다. 기분 나쁘지 않은 흥정 등 사람 사는 소리로 가득했던 전통시장이 아예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유는 대부분 '돈' 때문이다. 전통 시장이 있던 자리에는 회색빛 주상복합이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새로운 모습을 찾지 못해 아예 방치되고 있는 것도 있다. 대구 서구 비산동에 자리 잡고 있던 '만평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2021년 7월 전통시장 기능 상실의 사유로 전통시장 인정이 취소됐다. 전통시장 인정 취소를 이끌어낸 이들은 토지건물주들. 이들은 시장 기능을 잃었다며 99%가량이 전통시장 인정 취소를 요청, 비산7동 주민과 30년가량 함께한 만평시장은 사라졌다. 대구 서구 만평 지역 개발로 유입된 비산7동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온 시장인 만평시장은 1977년 1월 상설 시장으로 개장했다. 당시 만평시장의 매장 면적은 1천694㎡, 연면적 3천620㎡, 대지면적 3천762㎡ 규모로 6개 동, 76개 점포가 등록됐다. 지난 2001년 화재로 3개 동이 손실되면서 시장 기능을 점차 희미해져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근의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더 위축됐다. 만평시장을 따라 형성된 뒷골목 시장에서는 여전히 일부 가게들이 살아남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한 상인은 "만평시장은 인근 비산7동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면서 활성화가 이뤄졌던 시장이었다. 없어져서 아쉽지만, 세월의 흐름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더 아쉬운 점은 만평시장 부지가 사실상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 취소 당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시장 건물 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서구청 관계자는 "취소 당시 재건축·재개발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기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특별한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대구 동구 신암3동에 있는 '신암시장'도 자취를 감췄다. 시장이 형성된 지 42여 년 만에 사라진 것. 1973년 만들어진 신암시장은 인근에 신암아파트, 동양맨션, 우남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시장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토지면적은 1천775㎡, 매장면적 1천255㎡ 이었던 신암시장은 지역의 종합시장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인근 평화시장의 활성화와 인근 건물들의 노후화 등으로 상권의 침체가 이뤄지면서 점차 시장의 형태를 잃어갔고, 지난 2021년 4월 도시계획시설 변경 결정이 이뤄졌다. 해당 부지에는 민간분양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경북지역에서는 지난해 포항 장량시장과 장성종합시장이 사라졌다. 이곳은 각각 1987년, 1986년 만들어졌다가 지난 2022년 시장 재개발로 사라졌다. 이곳은 '장성동재개발사업' 구역으로 묶여 아파트 단지로 개발될 예정이다. 그렇게 최근 3년 동안 대구경북에서는 동국철물시장, 보성황실시장 등 6개의 전통시장이 세월이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직 남아있지만,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곳도 있다. 과거 대구의 대표 시장이었던 대구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남문시장'의 경우 형태가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구청에 따르면, 남문시장은 지난 2021년 9월 시장정비사업에 포함됐다. 당시 토지 소유주들, 상인 등으로 구성된 남문시장 정비사업 추진위원회가 토지소유자 동의율 75%를 받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구청 관계자는 "남문시장 자리에 주상복합이 들어설 예정"이라면서 "시장정비사업이 이뤄지기 위해선 사업 계획 승인, 조합 설립 인가, 교통영향 평가, 사업 준공 등 4단계로 진행된다. 현재 2~3단계의 중간이라고 보면 된다. 앞으로의 과정은 추진위원회의 상황에 따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937년 개설된 남문시장의 역사는 인근의 '염매시장'과 관련이 깊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당시 일본인들을 위한 동문시장(현 염매시장)에서 신탄(薪炭)이 거래됐다. 이후 시장 질서의 확립, 도로 정리 등의 이유로 현재 남문시장 부근에 신탄시장을 신설하게 되면서 남문시장의 초기 모습이 형성됐다. 남문시장의 활성화는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뤄진다. 전쟁으로 인해 대구에 모여든 피란민들이 생필품을 남문시장에서 내다 팔기 시작한 것. 이에 남문시장은 피란민의 생계와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남문시장의 규모는 약 2만6천102㎡으로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76년대 현대식 상가가 들어서면서 정비돼 남문시장 1~5지구 모습을 갖추게 되면서 '대구 5대 시장'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남문시장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동성로의 활성화와 인근 대형마트가 들어선 게 주된 이유였다. 남문시장 인근에서 근무 중인 A씨는 "남문시장 바로 건너편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니 시장이 활성화가 어려웠다. 고객들이 쾌적하고 친절하고 주차공간 넓은 대형마트로 이동하는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남문시장 인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박준상(32)씨는 "어린 시절 느꼈던 남문시장은 엄청 넓었다. 닭, 염소 등을 팔아 시골 냄새가 났던 기억이 향수로 남아있다. 또 남문시장 앞 신발가게에서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신발을 팔았던 것도 기억에 선명하다"면서 "남문시장의 모습이 변화할 수도 있다고 하니 추억의 공간이 줄어드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아쉽다"고 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참고자료=대구역사문화대전 ※'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은 대구경북의 사라지거나 희미해져 가는 생활·문화 등을 기록하는 코너입니다. 처음 전해드린 한양가든, 이번에 소식을 전하는 전통시장 관련한 추억과 사진이 있으신 독자분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보도 예정인 가창창작스튜디오·대구시영아파트·동성아트홀과 관련한 특별한 기억과 추억이 있으신 분들의 연락도 기다립니다. 독자여러분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사라라져 가는 삶의 기억들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연락은 이메일(yooni@yeongnam.com)로 주시면 됩니다.지난 7일 만평시장. 사라진 시장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사라지기 전 만평시장 모습.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지난 6일 신암시장의 부지. 시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사라지기 전 신암시장 모습.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지난 6일 남문시장 모습.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지난 2015년 남문시장 모습. 영남일보 DB
2023.03.25
[폰맛탱] 이리저리 뛰는 '앙증 맞은 악당'…간단한 조작으로도 스릴 만끽
경쟁이 치열한 액션 캐쥬얼 장르에 도전장을 내민 게임이 있다. 이블스튜디오의 '캐치캐치'다. 좀비·유령과 묘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 게임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잡아라 잡아라'는 이름과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좀비와 유령은 동글동글한 앙증맞은 악당처럼 느껴진다. 이블스튜디오라는 제작사 이름과도 잘 어울린다. 캐치캐치는 유저의 캐릭터보다 작거나 같은 몬스터를 잡는 게임이다. 반대로 유저보다 큰 몬스터는 피해야 한다. 조작은 간단하다. 캐릭터는 자동으로 움직이는데, 앞뒤 방향을 바꾸고 또 점프로 이동할 수도 있다. 액션 캐쥬얼의 특징은 바로 직관성과 단순한 조작성인데, 자칫 그 특징이 지겨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캐치캐치는 직관성과 단순함에 '나보다 큰 캐릭터를 피해야한다'는 긴장감을 준다. 유저가 피해야 할, 나보다 큰 캐릭터는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우고 유저를 잡기 위해 달려온다. 다행히 속도는 유저보다 느리니 따돌리고 유저보다 작은 몬스터를 잡으면 된다. 강자를 피해 마냥 도망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저보다 작거나 같은 크기의 몬스터를 잡다보면 '성장'한다. 유저를 쫓아다니던 몬스터와 같은 크기가 된다면 그 몬스터를 이제는 유저가 잡는 것이다. 이렇게 캐치캐치는 한 판 한 판에서 성장해 나보다 '강했던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는 성취감을 준다. 캐치캐치의 또 다른 재미는 보석이다. 빨간 보석 소울스톤은 플레이 도중 얻거나 맵을 클리어하면 얻을 수 있다. 실패해도 얻을 수 있지만, 일부러 실패해 몇 개 더 얻는 것보다 그냥 클리어해서 빠르게 진행하길 추천한다. 이 소울스톤은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는 데 쓰인다. 레벨을 올리면 캐릭터의 이동속도가 증가하고 순간적으로 캐릭터를 강하게 만드는 '각성상태' 지속시간이 늘어난다.보라색 보석 젬스톤은 스킨을 사거나 스킬을 배우는 데 사용한다. 광고를 시청하거나 현금으로 구매해 얻을 수 있다. 젬스톤을 얻어 캐릭터 스킨을 바꿀 수 있는데, 스킨은 플레이나 난이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유저의 스킨을 바꾸면 몬스터도 그 모양으로 바뀐다. 왜 몬스터도 함께 바뀌는 것일까. 캐치캐치는 유저와 몬스터의 크기가 '무기'인데, 모양이 다르면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어 몬스터의 모양도 함께 바뀐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이블스튜디오 김은성 대표는 "처음 컨셉을 잡았을 땐 캐릭터가 좀 더 '무섭게' 생겼었다. 개발과 피드백을 반복하며 지금의 형태로 동글동글하고 나름 귀여운 형태를 갖췄다"고 말했다. 실제로 캐릭터에서 직선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악당이 아니라 악동이다. 어린이들도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정도의 스푸키(spooky, 귀신이 나올 것 같은)함을 주제로 한다. 12단계의 스테이지에 12개의 맵이 있다. 맵 12개를 깨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다. "3스테이지까지 진행했다"는 기자의 말에 김 대표는 "앞으로는 많이 힘들 것"이라고 건투를 빌었다. 이어 "4스테이지부터는 어려워진다"며 "도전하고 성취하는 재미를 느끼도록 설계했다"고 전했다.액션 캐쥬얼 장르에 익숙하지 않다면 기자처럼 3스테이지까지도 고생깨나 할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체험기를 작성할 수 있을 정도로만 플레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 아깝다"며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어느샌가 승부욕에 불타 레벨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이블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액션 캐쥬얼 게임 '캐치캐치' 플레이 모습. 기자는 '젬스톤'을 모아 유령 스킨을 구매해 적용했다. 캐치캐치 아이콘
2023.03.23
[경북,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1] 원자력 부흥 역사의 중심에 선 경북
▶연재를 시작하며= 다시 원자력 시대다. 탄소중립 실현과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최적의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특히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세계 각국은 원자력 산업 육성에 공을 들이는 상황이다. 한국도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친(親)원전 정책으로 돌아섰다. 원자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내 최대 원자력 집적지인 경북도 소형모듈 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SMR)와 원자력수소 생산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갖고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영남일보는 앞으로 10회에 걸쳐 경북 원자력 산업의 현황과 미래를 짚어본다.경북은 국내 원자력 산업의 중심이다. 현재 가동 중인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절반가량이 자리 잡고 있고, 원자력발전소(원전)를 설계하는 한국전력기술,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을 운영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 원전 전주기 인프라를 갖춘 국내 유일의 지자체다. 더욱이 경주와 울진에 SMR 국가산업단지(국가산단)와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인프라 집적화로 인한 시너지 효과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경북,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1편에서는 부흥의 첫발을 내디딘 경북의 원자력 산업에 대해 다룬다.경북도 올해 원자력산업 부흥 원년원자력 르네상스선포식 열기 넘쳐내달 국제원자력 에너지 산업전도경주 SMR·울진 원자력 수소 산단원전산업 재도약 시너지 효과 기대◆원자력 산업의 메카를 꿈꾸다"원자력은 곧 인류애라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지난 16일 오후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3층 C홀에서 열린 '경북 원자력 르네상스 선포식'에서 장인순(83)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이 발언하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우리는 가장 짧은 시간에 세계 원자력 발전 최강국이 됐다"며 잠시 감회에 젖은 뒤 "전 인류가 에너지 문제, 기후변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원전을 활용해야 한다"고 원자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장 전 소장은 국내 원자력 기술 개발 1세대로 '한국 원자력의 아버지'라 불린다.국내 원자력 역사의 산증인인 그가 팔순이 넘는 나이로 인해 흐린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이야기했지만 울림은 컸다. 경북도가 개최한 이날 선포식에는 장 전 소장뿐만 아니라 이철우 경북도지사,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박상형 한국수력원자력<주> 경영부사장, 김성암 한국전력기술<주> 사장,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등 원자력 관련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 이영경 동국대 총장, 김봉갑 위덕대 총장, 전호광 한전KPS 부사장, 강홍규 두산에너빌리티 상무, 조래언 포스코건설 상무, 김진걸 GS건설 상무도 자리하는 등 학계와 재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또 원자력 발전을 이끌어갈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 학생과 지역 원자력 관련 학과 대학생들이 참가해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특히 선포식 하루 전날 경주와 울진이 각각 SMR 국가산단과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으로 최종 선정되면서 행사장 분위기는 더욱 고무됐다. 이철우 도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작년 우리나라 무역 수지 적자가 472억달러였는데 주로 에너지 분야에서 손실이 많이 났다. 원전을 두고 화석연료인 석탄, 가스, 석유를 수입하다가 그렇게 됐다"며 원자력 활용의 당위성을 직접적으로 피력했다. 그는 이어 "원자력 설계·건설·운영·폐기물 처리 등 모든 시설을 다 갖추고 있는 곳이 경북"이라며 "SMR와 원자력수소는 지속 가능한 미래 산업으로 SMR·원자력수소 국가산단은 후손이 먹고 살 수 있는 자원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의 인사말에는 경북도를 원자력 산업의 메카로 발돋움시키려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선포식에 참석한 김규성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전략기획국장은 "원자력 재도약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열심히 뛰어서 경북이 원전 르네상스의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주는 SMR, 울진은 원자력수소 생산국토교통부는 지난 15일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전국 15곳에 4㏊(1천200여만 평) 규모의 국가산단을 만든다는 방안이다. 경북지역에는 경주와 울진에 각각 SMR 국가산단과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이 들어선다.경주 SMR 국가산단은 150만㎡(약 46만평) 규모로 조성된다. 예산만 3천966억원을 투입할 전망이다. 경주 SMR 국가산단은 앞으로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함께 SMR 산업 육성을 담당하게 된다. SMR 제조는 물론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키워 경북이 명실상부한 원자력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게 할 핵심 시설이다. 경북도는 경주 SMR 국가산단 안에 SMR 혁신제조기술지원센터 설립을 추진 중에 있다. 원전 관련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문무대왕과학연구소에는 글로벌 원자력 공동캠퍼스를 만들어 전문 인력 양성체계를 갖춘다. 경북도는 이외에도 중수로 해체기술원, 방사성폐기물 분석센터, 국립 탄소 중립 에너지 미래관 건립 등 계획도 세웠다.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에는 미래 에너지라 불리는 청정 수소를 대량 생산·실증하기 위한 연구개발 기반이 구축된다. 경북도는 울진에 수소 생산·저장·운송·활용 기업들을 집적화해 강원~경북~울산을 잇는 동해안 수소경제벨트의 선도 거점으로 키울 심산이다. 경북도는 이를 위해 울진에 원자력수소 생산·실증단지, 경북 원자력방재타운 등을 만든다.경주시와 울진군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협의를 거쳐 최대한 빨리 사업시행자를 선정하고, 올해 안에 타당성 조사 용역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국가산단 조성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 신청도 예정돼 있다. 또 경북도는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을 통해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이르면 2025년쯤 두 국가산단 조성 사업이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올해는 원자력 산업 부흥의 원년경북은 국내 원자력 산업의 중심지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25기의 원자력발전소 가운데 12기(경주 5기·울진 7기)가 경북에 있다. 12기 원전 설비용량은 총 11.4GW에 이른다. 이는 국내 전체 원전 설비용량(24.6GW)의 46.2%를 차지한다. 원자력 관련 공공기관도 몰려있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전KPS 원자력정비기술센터가 모두 경주에 위치한다.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에서는 원자력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고 있다. 원전의 설계와 운영, 방폐물 처리까지 원전 전주기 인프라를 갖춘 국내 유일한 지역이 바로 경북이다.원자력의 미래를 이끌 인재 양성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원전현장인력양성원을 비롯해 울진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와 포항에 있는 포스텍 원자력전문대학원이 전문 인력 육성을 담당한다. 앞으로 글로벌 원자력 공동캠퍼스가 설립되고, SMR·수소원자력 국가산단이 조성되면 관련 인력 양성과 수급은 보다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앞서 경북도는 올해를 원자력 산업 부흥의 원년으로 삼았다. 1월31일 원자력 르네상스 정책 비전을 선언, 산업·연구개발·협력 등 3개 분야에 12개 전략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경주 SMR 국가산단과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원자력 관련 공기업·연구기관·지역 대학·기업들과 국가산업단지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국가산업단지 유치 정부 공동건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노력은 국가산단 유치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경북도는 앞으로도 원자력 산업이 지역을 넘어 국가적 성장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핵심 가치다. 이를 위해 국가산단 조기 조성은 물론 원자력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SMR를 비롯한 차세대 원자력 연구개발 등 주요 정책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 다음 달 24~26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는 원자력 관련 국내 최대 규모 행사인 '2023년 국제 원자력 에너지 산업전'이 열린다. 또 원자력 월드 콘퍼런스, 한국 원자력학회 추계학술대회, 경북 SMR 산업육성 포럼, 경북 원자력수소 포럼 등도 잇따라 연다.글=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지난 16일 경주 하이코(HICO)에서 경북도가 개최한 '원자력 르네상스 선포식' 참가자들이 국내 원자력 산업을 경북이 선도할 것을 다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선포식에는 이철우 도지사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원자력 유관기관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이철우(왼쪽) 경북도지사와 손병복 울진군수가 경주 SMR 국가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한 설명을 듣고 있다.
[명품 트레킹 코스 '영덕 블루로드'] 걸으며 즐기는 푸른 비경…동해가 내어준 4색 힐링로드
우리나라 7번 국도를 축으로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 전망대까지 도보로 이어지는 동해안 688㎞의 해파랑길 중심에 '영덕 블루로드'가 있다. 총길이 65㎞의 영덕 블루로드는 쪽빛 파도의 길(D코스), 빛과 바람의 길(A코스), 푸른 대게의 길(B코스), 목은 사색의 길(C코스)의 네 가지 주제 코스로 되어 있다. 각 코스는 해안도로와 마을 길, 숲길 등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탐방객에게 개방되고 있다. 쉬지 않고 걸으면 약 22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지만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과는 다른 묘미가 있는 길이다. ◆D코스 : 쪽빛 파도의 길 (15㎞ 약 5시간)대게공원~삼사해상산책로 바다 정취 가득영덕군 남쪽에서 출발하는 쪽빛 파도의 길은 대게 공원을 출발해 장사와 남호해수욕장, 삼사해상공원을 거쳐 강구 터미널까지 총 15㎞의 탐방로로 5시간 정도 걸린다. 블루로드 초입의 남정면 부경리의 대게 공원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높이 15m, 너비 36m의 웅장한 모습으로 새롭게 만든 대게 누리 형상이 탐방객을 반긴다. 이곳을 출발해 30분 정도 걸으면 바다 위에 세워진 문산호와 울창한 해송 숲의 장사해수욕장이 나온다. 모래밭의 길이가 길다고 장사(長沙)라고 부르는 장사해수욕장은 6·25전쟁 당시 800여 명의 학도병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유인작전인 장사상륙작전이 강행된 곳이다.7번 국도변에 잘 다듬어진 나무데크 길로 걷다 보면 아름답고 소박한 해변 어촌인 구계항으로 들어선다. 작은 남호해수욕장을 지나면 바다와 같은 파란색의 교각과 흰색의 다리 상부로 세워진 '삼사 해상산책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상산책로 바닥 곳곳에는 투명 창을 설치해 발아래 짙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A코스 : 빛과 바람의 길 (17.5㎞ 약 6시간)풍력발전단지·해맞이공원 등 볼거리 풍성총길이 17.5㎞인 A구간의 걷기 출발점은 강구 버스터미널에서 시작된다. 약 200곳의 영덕대게 상가들이 밀집한 강구항부터 창포 풍력발전단지와 해맞이공원까지 대략 6시간이 걸린다.강구항의 대게 거리를 출발해 강구교회 쪽 길로 항을 뒤로하며 고불봉 방향 쪽 마을 초입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약간 급경사의 오름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오름길 중간에 만들어 놓은 정자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몸을 돌려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북적이는 강구마을과 건너편 삼사 공원이 눈안에 들어온다. 팻말 따라 오름길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한두 사람이 어깨를 마주하고 걸을 정도의 소나무 숲길이 1시간 정도 이어진다. 내륙과 해안을 연결하는 금진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지나면서 고불봉까지 쉼 없이 오름과 내림을 거듭한다. 경사도가 낮고 이정표도 잘 갖춰져 소나무 숲 오솔길을 따라 걷기에는 딱 좋다. 235m 높이의 고불봉에서 풍력발전단지 길 따라 산에서 내려오면 약 5㎞의 임도 구간이 나온다. 곧이어 풍력발전단지에 접어들면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독특한 모습의 해맞이 캠핑장과 대소산 봉수대를 만나게 된다. 24기의 대형 풍력기가 돌아가는 풍력발전단지에는 영덕의 에너지, 문화, 역사, 스포츠가 종합예술단지처럼 함께 어우러져 있다. 크고 작은 정원, 전투기 전시장과 축구장, 해맞이 오토 캠핑장 등이 있다. ◆B코스 : 푸른 대게의 길 (15㎞ 약 5시간)해안길 최다 구간…축산항 절경 한눈에B코스는 블루로드 전 구간 중 가장 많은 바닷길이 있어 '환상의 바닷길'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로 불린다. 가장 인기 높은 구간이기도 하다. 창포 해맞이 공원에서 출발해 바다를 옆에 끼고 석리 마을을 거쳐 축산 대게 원조 마을과 죽도산에 이르는 15㎞ 구간이다. 약 5시간이 걸린다.출발해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포구 마을인 대탄리에 들어서면 남근 장승, 코주부 바위 등 각양각색의 바위가 보이고 짧은 거리의 도로를 걸으면 오보마을이 있다. 오보에서 해안 도로 길을 걸으면 돌미역이 유명한 노물항 포구가 자리한다. 노물에서 석리 가는 길은 해안초소가 많고 도로 길과 해안 길을 번갈아 걷기에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진다. 도로 길에서 외진 길을 굽어 내려가면 석리 마을 입구의 마을 정자와 아담한 해수 풀장이 도보객을 반긴다. 석리를 뒤로 하고 계속 걸으면 다시 해안가로 향하는 철 계단과 조금 거친 야생의 바윗돌 길이 마주친다.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기에 아마도 B코스 가운데 가장 어려운 구간일 것이다.경정해수욕장을 지나 해초와 바다 냄새를 벗 삼아 바다 위에 드러난 주상절리를 보면서 해안도로를 걷다 보면 영덕대게 원조 마을임을 알리는 푯돌과 해안가 소박한 마을을 지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축산항까지의 4㎞는 '초병의 길'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해안초소에서 초병(군인)이 밤마다 해안 경계 근무를 서기 때문이다. 바다와 거의 붙어 있는 숲길이 끝나고 해안가 모랫길이 시작되면 저 멀리 축산항과 죽도산 꼭대기의 등대가 보인다. 현수교를 거쳐 계단으로 된 전망데크길을 걸어 꼭대기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 풍광이 펼쳐지면서 하얀색으로 치장한 등대 전망대가 반긴다. ◆C코스 : 목은 사색의 길 (17.5㎞ 약 6시간)짙은 녹음 벗삼아 걷는 문화생태 탐방로역사와 사색의 길인 C코스는 총 길이 17.5㎞로 숲길과 산길을 통해 나무를 벗 삼아 차분하게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출발점은 당산목과 남씨 발상지 비석이며 임도를 따라 대소산 봉수대를 향한다. 봉수대에서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사진리 마을과 사진 구름다리를 거쳐 한참 수풀길을 걸으면 목은 이색 산책로로 향하게 된다. 산책로는 나지막한 해송이 그림같이 둘러져 있고 정상 부근에 서면 너른 영해평야가 눈에 꽉 찬다.200여 년 된 고가옥들이 즐비해 국가 민속문화재로 등재된 괴시리 전통마을에는 목은 이색 기념관이 있다. 목은 이색 선생은 고려말 재상이자 사상가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괴시 전통마을을 벗어나면 왼쪽으로 영해 로터리와 송천이 보이고 곧이어 잘 가꿔진 대진리 해안마을에 다다른다. 이어 대진해수욕장과 길이 183m의 고래불대교, 대교 아래로 흐르는 송천을 경계로 덕천해수욕장과 송림공원이 이어진다. 송림으로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송림공원을 지나면 고래불해수욕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장장 20리에 달하는 고래불해수욕장은 해안마을 6곳을 아우르는 영덕의 대표 해수욕장이다. 1시간 정도 걸어야 백사장을 완주할 수 있다. 블루로드 C코스는 길이 품고 있던 생명과 문화, 역사가 하나로 어우러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라고 할 수 있다. 남두백기자 dbnam@yeongnam.comB코스 구간의 노물리 해안마을을 지나면 잘 정리된 나무데크길과 야생의 바윗돌길이 해안을 따라 연이어진다. 〈영남일보 DB〉
[논설위원의 직터뷰]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 "정장 입고도 늘 운동화…구미경제 부흥 위해 열심히 뛰어야죠"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지금이야 '관광 핫플'이지만 과거엔 그야말로 '깡촌' 중에 깡촌이었다. 그곳 한 촌가(村家)의 늙은 아버지는 식전 댓바람부터 지게를 지고 쇠꼴을 베러 갔다. 하루도 어김이 없었다. 새벽 이슬 가득 맺힌 쇠꼴을 한 짐 해 온 아버지 모습에 자식들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송구한 마음에서다. 그런 아버지를 유달리 안쓰러워한, 철든 자식이 있었다. 의외다. 8남매 가운데 막내아들이다. 소에게 먹일 저녁을 위한 오후 쇠꼴 베기는 온전히 그 아이 몫이었다. 소년은 다짐했다. "훗날 커서 엄마 아부지 호강시켜 주고, 이 집을 일으킬 사람은 나"라고. 그 의지를 놓지 않았던 소년은 어느덧 반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경북 구미 경제를 이끄는 수장이 됐다. 그 주인공은 제15대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인 윤재호(57) 주광정밀<주> 대표이사다. 주광정밀은 연매출 1천억원대를 찍고 있는 국내 '흑연전극 금형가공기술' 분야 강소 기업이다. 휴대폰·자동차 부품 등 흑연 제품 가공에서 남다른 기술력을 갖고 있다.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최근 구미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만났다. 패기 하나로 달려온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었다. 빈농 막내아들서 기부왕으로"어릴 때부터 기계 다루는 재주 남달라 당시 공고생 선망인 대우전자 입사도 배고픔 잘 알기에 창업 후 꾸준히 기부"발로 뛰는 현장형 상의회장"반도체 단지·방산클러스터 유치 전념 신공항 연계 고속도로·철도 확충 노력 구미와 경제공동체인 대구 도움 절실"▶빈농의 8남매 중 막내…'소년 윤재호'의 하루는 어땠나요."그 시절 모두가 어려웠지만, 저희 집은 형님 누나들 그리고 저, 입이 몇 개였겠습니까. 늦둥이 막내지만, 힘든 살림에 고생하는 부모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천성적으로 바지런했어요. 봄철 이맘땐, 학교 마치고 오면 책가방 던져 놓고 산에 가서 나물 캐느라 정신없었죠. 광주리에 나물을 가득 담아 오면 엄마가 '책 한 자라도 더 봐야지'라고 꾸중을 하셨을 정도였어요. 물론 속으론 막내아들이 기특했겠지요. 겨울방학 땐 산에 가서 나무하는 게 일과였죠. 그렇게라도 부모님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지요. 친구들과 논 기억이 별로 없어요. 하교 후 운동장에서 '오징어 가생' 놀이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고 들었습니다."아버지로부터 좋은 DNA를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가 평생 농사일을 하셨지만, 제 기억엔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 만드셨어요. 제가 코흘리개 시절 싱거미싱인지, 브라더미싱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낡은 재봉틀을 장난감 삼아 갖고 놀았어요. 그걸 일일이 분해하고 조립하는 데 푹 빠졌죠. 그러다 엄마한테 혼도 많이 났었죠.(웃음) 그런 취미를 갖다 보니 '기계'라는 녀석에 흥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손재주가 있다고 곧잘 칭찬해 줬어요. 사실 그땐 인문계가 뭔지, 실업계가 뭔지도 몰랐죠. 그저 손재주 좀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경북기계공고로 진학하게 됐습니다."▶'대구 유학' 시절 얘기가 궁금합니다."촌에서 올라온 학생들, 저뿐만 아니라 모두 고생했겠지요. 아버지가 부쳐 준 한 달 생활비로 방값·교통비 내고, 실습 기자재까지 사면 4천원가량 남을까 말까였지요. 아침은 언감생심, 점심도 굶을 때가 많았어요. 고육책을 썼지요. 교통비를 아껴 빵을 사 먹었습니다. 대구 달서구에 있던 경북기계공고에서 중구 남산동 자취 집까지 매일 걸어서 귀가했죠. 3시간가량 걷고 또 걷고….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습니다. '기능경기대회'라는 동기 부여가 있었으니까요. 밤늦게까지 학교 실습실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기능대회 학교 대표가 되면 저녁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어요. 라면을 끓이면 선배들이 건더기를 다 건져 먹었어요.(웃음) 남은 국물에 밥만 말아 먹어도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윤 회장은 고교 졸업반 때 대구기능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전국기능대회 출전권을 쥔 그는 결심을 한다. 그에겐 기능대회보다 빨리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키는 게 먼저였다. "전국대회는 후배에게 양보할 테니 취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담임교사를 졸랐다. 결국 당시 공고생 최고 선망의 직장인 대우전자에 입사했다. 당시 김우중 회장의 대우는 삼성·현대보다도 높게 쳤다. 윤 회장이 구미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부터다. 8년간의 대우전자 생활을 마감한 뒤 1994년 자본금 2천만원으로 주광정밀을 구미에 차렸다.▶월급쟁이에서 기업가로…특별한 '경영철학'은."한 회사의 대표가 되니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더라고요. 매일 어김없이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는 습관부터 길렀죠. '회사를 위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구상을 위해서죠. 나를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손자병법에 '이환위리(以患爲利)'라는 말이 있어요. 고난은 이겨내는 것이며, 기회로 삼는다는 뜻이죠.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제 회사 역시 몇 년 전부터 주력 물량 감소 등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긍정의 마음으로 이겨내는 수밖에요. 사업 다각화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기존 휴대폰·자동차 부품에 이어 반도체·항공기·수소연료전지 등 신산업 쪽으로 투자를 늘려나가는 중입니다. 곧 결실을 볼 것으로 기대합니다."▶'기부왕'으로도 소문이 나 있습니다."배고픔의 한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학창 시절의 기억 때문이지요. 여력이 있을 때 도움을 주자고 다짐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구미 소년소녀가장 20여 명을 해마다 돕고 있으며, 마이스터고 장학재단을 통해 형편이 딱한 기술영재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어요. 내친김에 2015년엔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에도 들었습니다. 모교인 경북기계공고엔 꾸준히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작년엔 경북기계공고 다목적공연장 설립 기금으로 20억원을 기부했습니다. 기부를 계속하다 보니 '기부는 내게 주어진 기회이자 기쁨'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상의회장으로서의 어깨도 무거울 텐데요."요즘 구미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는 게 느껴지죠? '반도체 특화단지'와 '방산혁신클러스터'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구미로 가져오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업을 따내고 기업 투자를 받기 위해선 무엇보다 'KTX 구미역 신설'이 선행돼야 합니다. 아울러 대구경북신공항 건설과 연계한 고속도로·철도망 확충도 중요합니다. 이는 구미의 힘만으론 만들 수 없습니다. 대구가 힘을 보태줘야 합니다. 저희 회사 부장급 이상 열 명 가운데 일곱이 대구에 주소를 두고 있어요. 이쯤 되면 대구와 구미는 이미 경제공동체입니다. 과거 구미에선 강아지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개 얘기가 나돌 정도로 경제가 번성했습니다. 그런 도시 부흥을 위해 국책사업 유치에 온 힘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훗날 어떤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솔직히 무슨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잖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무리수를 두게 되거든요. 누가 보든 안 보든 열심히 제 할 일을 해야지요. 저는 정장을 입고도 운동화를 신습니다. 젊은 친구들 말로 '덕후'급은 아니지만 집 신발장에 스무 켤레가량 놔두고 있지요.(웃음) '윤재호 저 친구, 열심히 발로 뛴 구미상의회장'이라고만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운동화 신고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다 구미상공회의소 사무실 곳곳에 나붙어 있는 플래카드 속 슬로건이 눈길을 끌었다. '산업 역군과 기업인이 애국자다.' 기업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일에 최우선 가치를 두겠다는 윤 회장의 취임 때 다짐이 변함없이 읽혔다.△1985년 경북기계공고 졸업 △2012년 기능한국인 제70호 선정 △2014년 구미시 최고장인 선정 △2014년 구미상공대상 수상 △2015년 금오공대 명예공학박사 △2016년 대한민국 명장 선정(컴퓨터응용가공)△2021년 2천만불 수출탑 수상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은 "인생에서 맞게 되는 고난은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무릇 기업가는 '긍정의 힘'을 믿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조규덕기자
2023.03.22
김천혁신도시 '2차 공공기관 이전 유치' 발빠른 대응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다 무산된 2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은 미완의 경북 김천혁신도시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김천혁신도시는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기술,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12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2015년 완공됐으나, 생산성이 높은 클러스터용지 분양률과 공공기관 직원들의 가족동반 이주율이 저조한 등 균형발전을 주도할 혁신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가족 동반 이주율 등 저조, 균형발전 거점 역할 제대로 못해市·경북도, 1차 이전 기관과 시너지 30곳 우선 유치 대상 선정도로·교통·에너지산업 발전 수혜 경북 전역으로 확장 전략◆늦어진 2차 공공기관 이전경북도와 김천시는 2018년 2월, 문재인 정부의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위한 '혁신도시 시즌2' 정책과 그해 9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회 연설(122개 공공기관 추가 이전에 대해 당·정이 협의할 것)을 계기로 각각 '공공기관 유치 TF단'을 구성하고, 전문기관에 연구 용역을 의뢰하는 등 유치전에 돌입했다. 곧 실행될 듯한 2차 공공기관 이전이었지만 2020년 9월, 정세균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공공기관 1차 이전 성과에 대한 확증이 서야 2차 이전 실행이 가능하다"고 밝히는 등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후 2021년 10월에는 김부겸 국무총리가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우리 정부가 준비를 잘해야 다음 정부에서 차질 없이 신속히 진행할 수 있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혁신도시 시즌2'는 종지부를 찍었다.◆발 빠르게 움직이는 경북도와 김천시 2차 공공기관 이전이 올해 중으로 실행될 전망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정부는 6월 중으로 이전 대상기관과 입지원칙 등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기존 혁신도시로의 이전을 원칙으로 해 올 하반기에 청사 임차기관을 이전할 방침이다. 앞서 김천시가 김천혁신도시 내의 유휴 용지와 비어있는 사무실을 파악해 보고한 사실 등에 미뤄볼 때 수도권에서 빌린 건물을 청사로 사용하는 공공기관부터 옮겨올 것으로 보인다.경북도와 김천시는 균형발전특별법을 토대로 2차 이전 대상 공공기관을 220여 곳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임차청사를 사용하는 공공기관으로서 김천혁신도시의 산업기반과 연계된 기관 △김천혁신도시 기존 공공기관의 기능 및 지역 전략산업과 연계된 기관 등 30여 곳을 우선 유치 대상으로 선정했다.도와 시는 한국도로공사와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김천혁신도시의 도로·교통 부문 공공기관 기능과의 시너지효과를 고려해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임차청사·155명)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420명) 등 10개 기관을 유치하기로 했다. 물류 부문에선 우체국물류지원단(1천604명)과 한국우편사업진흥원(505명)을 유치해 도로·철도·항공을 아우르는 스마트 종합물류 거점도시로 육성할 계획이다.에너지 부문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임대청사·168명)과 한국원자력안전재단(임대청사·66명)을 유치 대상으로 정했다. 김천혁신도시 한국전력기술과 경주의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포항의 2차전지·수소에너지 클러스터 등과 연계하기 위한 것이다. 법률·농업 부문의 정부법무공단(임대청사·125명)과 농업정책보험금융원(임대청사·73명), 한국국방연구원(493명), 한국산업기술진흥원(398명)도 유치 대상에 포함했다.또 도로·교통 부문의 항공안전기술원(임대청사·109명), 코레일 관광개발(1천4명)·네트웍스(1천916명)·로지스(임대청사·839명)·유통(507명) 등 코레일 계열 공기업과 한국도로공사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6천317명) 등도 유치 대상에 두고 있다.에너지 부문의 한국에너지정보재단(42명)·한국에너지재단(51명)·한국석유관리원(462명)·한국원자력의학원(1천384명)·한국지역난방공사(2천201명)와 법률·농업 부문의 한국지식재산보호원(117명)·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임대청사·103명)·식품안전정보원(임대청사·117명), 물류 부문의 중소기업유통센터(299명)와 우체국시설관리단(2천709명) 등의 기관도 유치 대상이다.김충섭 김천시장은 "2차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수혜 범위를 혁신도시 인근 지역을 포함, 경북도 전역으로 보고 있다"며 "2차전지 분야에 집중하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을 유치하면 포항 배터리 규제자유특구와 경북 도내의 배터리 관련 기업, 해상풍력발전사업을 하고 있는 김천혁신도시 한국전력기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2차 이전에서 성공하려면2019년 김천시가 발주한 연구용역(김천혁신도시 활성화 방안)을 수행한 경북미래컨소시엄은 '김천혁신도시의 국가균형발전 목표 달성에 대한 평가'에서 "김천혁신도시는 1차 공공기관 이전 효과가 미비해 소기의 목적(균형 발전)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김천혁신도시는 구조적으로 공공기관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여의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우선 혁신도시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할 핵심적 사업이 취약하다. 한국도로공사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이전했으나, 이들 기관의 핵심 R&D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은 수도권에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등 정부 기관 3곳이 있지만, 집중화된 광주·전남 나주혁신도시(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나 전북 전주·완주혁신도시(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식품연구원, 한국농수산대 등)에 비해 확장성이 떨어진다.김천시 관계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을 비롯한 공무원 조직 7개 기관과 대한법률구조공단 등 공익적 성격의 2개 기관은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며 "실제로 혁신도시 산업생태계를 구축할 공공기관은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기술, 한국교통안전공단 세 곳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천혁신도시는 국토교통부의 '혁신도시 성과평가'(2020년 8월)에서 전국 혁신도시 가운데 최하위로 평가됐다. 2차 공공기관 이전에서 김천지역의 산업발전 효과를 고려한 공공기관 안배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제1차 공공기관 이전은 국토균형발전을 통해 지방 붕괴를 막자는 의미 있는 조치였다. 그러나 공공기관 이전 10년이 되었지만 도시의 발전을 단언하기가 쉽지 않다. 주말이면 직원들을 태우고 수도권으로 향하는 버스 행렬이 이어지고 두 집 내지는 세 집 살림을 하는 직원도 흔히 볼 수 있다.김천혁신단지에 직장을 둔 한 직원은 "공공기관의 경제적 파급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관건은 공공기관을 통해 민간부문이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 구축에 있다"며 "2차 이전에서는 공공기관의 성격, 유형, 경제적 파급력 등을 충분히 고려한 적정한 배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렇다면 2차 이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천시의 한 인사는 "국토의 중심에 자리한 지정학적 이점과 최고 수준의 교통망을 접목해 김천만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을 주도할 기반을 다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1차 공공기관 이전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천혁신도시 전경. 김충섭(왼쪽 넷째) 김천시장이 지난 1월 열린 '전국혁신도시지구협의회'에서 2차 이전 공공기관을 기존 혁신도시에 배치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천시 제공〉
[노벨문학상 산책] 오에 겐자부로 '만엔 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1935~)는 1994년 일본문학사상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열살이 되던 해에 패전을 맞이한 오에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접한 민주주의 교육을 통해 '주권재민'과 '전쟁 포기'의 약속이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는 기본 모럴이 되었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전후 민주주의자'로 규정하고 평화헌법에 역행하는 움직임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해온 오에인 만큼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일왕이 수여하는 문화훈장과 공로상을 거부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이러한 오에의 정치적 자세는 노년기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헌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한 모임, 핵무기와 핵 폐기, 반원자력발전소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도쿄대 불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부터 작품활동을 해온 오에는 '만년양식집(晩年樣式集)'(2013)을 마지막으로 현재 소설 집필은 중단한한 상태다. 초기에는 점령된 일본의 상황과 전후 청년들의 내면을 보이지 않는 벽에 감금된 상태로 보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무기력한 청년상을 주로 그려냈다.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난 장남과 피폭지 히로시마와 미군기지 섬 오키나와 취재는 오에 문학에 커다란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그의 문학의 근간에는 국가주의와 천황제 문제, 핵 문제, 히로시마와 오키나와, 장남과의 공생문제, 미래사회의 환경문제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장남의 출생 이후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서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지만, 그의 작품은 언제나 현실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있고, 현대사회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문제로 연결되어 인간 회복과 인류구원의 비전을 제시한다. 패전 이후 혼란한 日 근현대사 함축…폭력으로 점철된 역사 속 처절한 갈등미쓰사부로·다카시 형제 중심으로 다양한 지옥 그리며 구원의 가능성 질문'만엔 원년의 풋볼(万延元年のフットボ一ル)'(1967)은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에서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시코쿠의 숲속 골짜기마을'은 오에의 고향이 모델이 되고 있고, 단절과 고립의 공간이었던 초기작과 달리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는 100년간의 일본 근현대사를 담은 역사적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이후 독특한 지형적 구조와 함께 일왕 중심의 신화체계를 상대화시키는 독자적인 신화공간으로 형상화되는 등 윌리엄 포크너의 가상의 공간 요크나파토파 카운티와 같이 오에문학의 주요 토포스로 기능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지향하며 고향으로 돌아온 네도코로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의 이야기는 만엔 원년의 농민봉기를 주도한 증조부 동생의 봉기 후의 삶을 둘러싸고 그 진상을 밝히는 형태로 전개된다. 다카시는 증조부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봉기의 주동자였던 동생을 살해한 것으로, 미쓰사부로는 증조부가 그의 동생이 고치현으로 도망치도록 도와주었고, 도쿄로 간 증조부의 동생은 개명하여 메이지 신정부의 고관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사람의 기억은 둘째 형 S의 죽음에 관해서도 어긋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큰형은 자발적으로 입대해 전사했고, 예과연습생에 지원한 S형은 전쟁이 끝난 후 귀환하지만, 패전 직후의 혼란 속에 발생한 조선인부락 습격 사건에 휘말려 죽고 만다. 다카시는 이런 S형에 대해 습격을 주도하다가 죽은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고, 미쓰사부로는 조선인부락 습격에 동참한 무법자들이 조선인을 죽이자,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체구도 작고 가장 약한 S형이 희생양이 된 것이라 믿고 있다. 이와 같이 상반되는 기억을 둘러싸고 전개된 두 사람의 논쟁 과정을 통해 소환되는 것은 네도코로 집안의 100년의 역사 속에 죽어간 자들, 즉 100년 전 농민봉기의 지도자였던 증조부 형제, 일본제국의 아시아 침탈기에 만주에서 정체 모를 일을 하다가 죽은 아버지,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필리핀에서 전사한 맏형, 패전 직후 조선인부락을 습격하다가 죽은 S형, 자살한 여동생, 광기에 사로잡혀 죽은 어머니다. 그리고 다카시가 증조부의 동생과 S형에 자기동일화함으로써 증조부의 동생-S형-다카시로 연결되는 네도코로 집안의 계보는 1860년(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1945년(태평양전쟁)-1960년(60년 안보투쟁)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을 새기고 있다. 이 100년의 역사는 '폭력적인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역사 속에 죽어간 자들은 물론 안보조약개정 반대투쟁 현장에서 진압하는 경관대가 아닌 시위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귀향한 후에는 조선인이 경영하는 슈퍼마켓 약탈을 주도하고 약탈의 책임을 지듯 자살해 버린 다카시의 삶 또한 폭력 그 자체이다. 그리고 초등학생 무리가 던진 돌멩이에 맞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미쓰사부로, 머리에 혹을 달고 태어나 절개수술을 받아야 했던 신생아, 그런 아기를 출산한 충격으로 고통받는 나쓰코, 안보투쟁 현장에서 머리를 다친 후 경증의 정신이상을 앓다가 결국 기괴한 형태의 자살을 해버린 친구와 같이 비폭력·반폭력적인 인간도 "폭력적인 것"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폭력을 행사하는 입장이건 당하는 입장이건 저마다 폭력으로 인해 "내부의 지옥을 견디고 있는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오에는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에게 각각 반폭력적이고 비행동적이며 방관자적인 인물(사회에 용인되는 인물)과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형 인간(사회에서 배제되는 인물)이라는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이 골짜기마을에서 갈등하고 충돌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인간사회의 양상을 노정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상반되는 두 성향을 함께 지닌 한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카시의 경우 폭력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기처벌의 욕구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그가 폭력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동생과의 근친상간과 그런 여동생을 자살로 몰고 간 죄의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죄, 즉 숨겨왔던 '진실'을 폭로한 후 다카시가 선택한 길은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처벌하는 것이었다. 증조부 동생의 봉기 후의 삶에 대한 전모가 드러나는 것은 네도코로 집안의 100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다. 증조부의 동생은 봉기 후 동지들을 저버리고 혼자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곳간 지하에서 유폐생활을 해왔고, 일생 전향하지 않고 메이지 초기의 두 번째 폭동을 성공시킨 후에도 20년 넘는 유폐생활 끝에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다카시는 증조부의 동생이 에도막부의 과도한 세금과 부역에 저항하여 일으킨 농민봉기를 지도한 것처럼, 마을의 경제적 지배자인 '슈퍼마켓 천황'에 맞서 '상상력의 폭동'을 일으켰고, 슈퍼마켓 약탈에 대한 책임을 지듯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다카시에 대해 미쓰사부로는 '진실'을 외치고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관철한 다카시는 자신의 '지옥'을 극복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증조부의 동생과 다카시에 대한 자신의 '판결'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모든 사태를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관조하기만 해왔던 자신이 이제 '재심'을 받을 차례라 생각한다. '재심'의 판결은 네도코로 집안의 살아남은 혈족으로서 미쓰사부로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소설이 발표된 1967년은 일본의 원호가 메이지로 개원한 지 100년을 맞이하는 1968년, 즉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인 근대화에 성공한 메이지유신을 기념하기 위한 '메이지 백년제' 준비로 술렁이던 시기다. 과거의 찬란했던 제국의 영광에 열광하던 1967년, 오에는 네도코로 혈족의 100년의 역사를 통해 독자의 시선을 부(負)의 역사로 향하게 하고, 그러한 역사를 살아가는 현대 일본인의 구원의 가능성을 독자 스스로 모색하도록 하고 있다. 현대 일본인의 구원의 가능성은 그들이 폭력으로 점철된 그들의 근대사와 어떤 식으로 마주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소명선 교수 (제주대 일어일문학과) 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소명선 교수는? 부산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일본 규슈대학 대학원에서 오에 겐자부로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일본근현대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한 일본현대문학을 연구의 중심축으로 하면서 오키나와문학과 재일조선인문학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재일조선인 관련 외교문서와 일본문학 속의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오에 겐자부로론: '신화형성'의 문학세계와 역사인식', 역서로는 '일본 근현대 여성문학선집 5 노가미 야에코', 공저로는 '해방 이후 재일한인 외교문서 해제집' '재일조선인 마이너리티 미디어 해제 및 기사명 색인' '재일조선인 미디어와 전후 문화담론'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1950년대의 일본열도가 본 한국전쟁' '오에 겐자부로의 '치료탑'과 '치료탑 혹성론' '현월 문학의 토포스에 관한 연구' '사키야마 다미론-동아시아 여성서사를 연결하는 문학적 상상력' '오키나와문학 속의 일본군 위안부 표상에 관해' 등이 있다.소명선 교수 (제주대 일어일문학과)
2023.03.17
[정문태의 제3의 눈] 한일관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1965년 굴욕 되풀이할 건가, 시민사회 응원 힘입을 건가
지난주 외신판이 또 '윤석열'로 떠들썩했다. 이젠 좀 조용했으면 좋으련만!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외신판에 '윤석열'만 떴다 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김건희'에 '장모'에 '주술'에 '바이든'에 '언론 탄압'에 종류도 참 가지가지.한데, 이번엔 좀 다르다. 남우세스럽다며 넘길 일이 아니다. 그 질이 매우 파괴적이고 반역사적이다. 윤석열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걸린 문제다. '윤, 한일관계 개선 위해 강제 동원 방안 중요'(에이피), '한국, 일본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비비시), '한국, 일본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안 발표'(프랑스24), '한국, 제2차 대전 강제 동원 피해자들 반발에 직면'(도이치 웰레), '한일 분쟁 종식 위해 한국 기업이 지불'(자까르따 포스트)….지난 6일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 동원 배상 해법을 내놓자마자 온 세상 언론이 국제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하나 같이 놀라운 속내를 그 제목으로 뽑아 올렸다. 현대사에서 전범국 대신 그 피해국이 배상한 일이 없었으니 희한할 수밖에.오늘은 대법원판결을 뒤집은 윤석열 정부의 셀프 배상, 그 역사를 따져봐야겠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대일선전포고를 했으나 불행하게도 1951년 전후 처리를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승전국으로 초대받지 못했다. 여기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지점이고 대일 굴욕외교로 들어서게 된 갈림길이었다. 대한민국은 1951년 일본과 따로 피해 배상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1952년 제1차 한일회담을 열었다. 이어 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박정희가 밀실 야합으로 한일협정을 밀어붙였다. 낌새챈 시민사회가 1964년부터 한일국교정상화반대투쟁에 나서자 계엄령을 선포한 박정희는 1965년 제7차 회담에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외치며 기어이 한일협정을 맺었다. 그게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었다. 애초 그 얼치기 '조약'과 '협정'은 정치적 합법성과 돈줄이 필요했던 박정희의 조급증이 담긴 매국 외교였다.바로 그 '조약'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한일관계의 걸림돌이 되었다. 제2조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영문판 조약서의 'already null and void'를 한국은 '이미 무효'로 해석했다. 한일병합을 비롯한 모든 조약이 원천 무효란 뜻이다. 일본은 '이제 무효'로 해석해 효력 상실을 1945년 8월15일 한국 독립일로 잡았다. 일본은 침략과 식민통치를 이전 조약들에 따른 합법이라 우긴 꼴이다. 조약에서 서로 해석을 달리한다는 건 합의가 안 됐다는 뜻이다. 조약 체결 원칙은 상호 합의다. 합의 없는 조약은 국제법이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마저 자백받지 못한 이 대목에서 박정희는 이미 일본에 혼을 팔아넘겼다.두 나라 관계를 다룬 '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의 합의가 없었으니 재산과 청구권을 다룬 '협정'이란 게 제대로 될 리가. '협정' 제2조는 두 나라 국가와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을 포함해 국민 간의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못 박았다. 이게 일본이 대한민국에 3억달러를 주고(제1조) 발을 뺀 결과다. 놀라지 마시라! 이 협정문은 일본이 왜 한국에 돈을 주는지조차 안 밝혔다. 동네 아이들 장난만도 못한 이따위를 국가 간 '협정'이라 불러왔다. 이걸 대한민국은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이라 여겼고, 일본은 '독립축하금'이니 '경제협력자금'이니 따위로 불러왔다. '조약'에 침략과 식민지배란 역사를 집어넣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니 청구권을 다룬 '협정'에 청구권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규정마저 없다. 오늘 강제 동원 배상 문제의 뿌리가 바로 여기다.박정희 정권 체결한 한일조약해석 달리하면 합의가 안된 것국제법상으로도 인정 못 받아58년간 양국관계 걸림돌 작용미래지향 열쇠는 한국이 쥐어정부가 역사 바로잡겠다 하면올곧은 국민이 거들고 나설 것국제사회도 식민지 피해자 편박정희는 이 야합을 통해 마치 일본에 배상금을 받아낸 것처럼 선전하면서 국가와 개인의 청구권 소멸을 일본한테 선물로 갖다 바쳤다. 58년이 지난 오늘까지 박정희의 1965년 한일협정 원죄를 따지는 까닭이다. 그로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갈팡질팡했다. 1990년대엔 국가의 청구권만 소멸되었다고 우기더니 2000년대엔 1970년대의 보상 입법으로 개인 청구권도 소멸되었다고 뒤집었다. 그 혼란을 2018년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강제 동원 피해자 보상 판결로 잠재웠다. 그게 다다. 그 판결을 따르면 된다. 독립국 대한민국 대법원판결을 일본과 협상하고 말고 할 일도 없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 행정, 사법으로 삼권분립을 못 박았고 따라서 행정부의 우두머리인 대통령은 사법부를 간섭할 수 없다.근데 3월6일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이랍시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국내 재단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윤석열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며 난데없이 철 지난 박정희 유령을 불러냈다. 대통령이 미래지향적 같은 뜬구름 잡는 말로 대법원판결을 뒤집을 권한이 없다. 짝사랑치고는 가히 파괴적이다. 상대는 침략과 식민지배마저 합법이라 우겨온 일본이다. 참, 결단 같은 근엄한 단어는 굴욕적 행위 앞에 붙이는 말이 아니다. 흔히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역사교육과 사죄를 좋은 본보기로 입에 올린다. 실제로 배상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독일은 전후 전승국들과 폴란드 같은 피해국에 국가 배상을 하고도 2000년 정부와 기업이 100억마르크(6조원) 기금으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을 설립해 전시 노예노동과 강제노동 피해자 개인 배상을 했다. 일본에 견줘 독일의 도덕적 우위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국가란 개념엔 애초 그런 게 없고 둘 다 똑같은 전범국일 뿐이다. 다만 독일이 정상국가로 불리게 된 배경을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의 강제 노동자 개인 배상은 피해국 정부와 시민 그리고 국제사회 연대의 거센 압박 결과였다. 독일이 느닷없이 자선사업가로 나선 게 아니었다. 말하자면 독일은 일본에 견줘 상대가 만만찮았다는 뜻이다. 이게 처음부터 애걸복걸 매달리며 굴욕적인 꼴을 보인 대한민국 정부라는 상대를 지닌 일본과 차이였다. 윤석열 정부가 공부해야 할 대목이다. 한일관계는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면 된다. 늦은 출발로 여기면 그만이다. 악마적 '한일 기본조약'부터 손봐야 한다.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1965년 '조약' 때 따로 체결한 '분쟁해결에 관한 교환공문'이란 게 있다. 그 문서는 분쟁 해결법으로 외교 경로를 통한 직접교섭과 양국 합의에 따른 조정을 명시했다. 현실적으로 '조약' 개정은 힘들더라도 제2조 '이미 무효'의 시점을 바로 잡는 '해석의정서' 체결은 정부 하기에 달렸다. 우리는 지난 58년 동안 온갖 굴욕을 잘 견뎌왔다. 두려워할 까닭도 없다. 장담컨대 정부가 역사를 바로잡겠다면 시민이 거들고 나선다. 우리한텐 건강한 시민사회가 있다. 1965년과 지금 대한민국은 다르다. 반식민, 반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흐름도 피해자 쪽이다. 일본을 독일처럼 정상국가로 만들 수 있는 열쇠를 우리가 쥐고 있다. 일본이 제 발로 역사의 무대에 오를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으므로. 침략과 식민지배의 합법성을 우기는 일본의 신줏단지인 이 해석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한일관계는 영원히 풀 수 없다. 오늘 강제 동원 문제도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올곧은 역사를 외치는 시민을 계엄령으로 짓밟고 선전했던 그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란 게 오늘 우리가 보는 일본이다. 그 박정희의 혼을 대물림한 윤석열 정부가 2023년 떠들어대는 미래의 일본도 곡두일 뿐이다. 역사가 그 증인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대통령 윤석열이 뭘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지? 대통령이란 건 아무 말이나 해도 될 만큼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역사관 없는 대통령,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방콕특파원〉1965년 박정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와 한일협정 반대를 외치는 시민사회를 짓밟았다. 그 한일협정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한일관계의 걸림돌이 되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03.15
[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다양한 도시인프라 갖춘 대구…도심 폐허는 미래도시 자양분"
도시는 일찍이 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움을 지향했던 국가 주도의 개혁의 시대를 거쳐 여전히 미래를 좇아 달려가기를 강요받고 있다. 도시발전의 허상을 좇아 개발의 칼날을 주저하지 않았기에 도시민 개인의 기억은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다. 도시의 장소성은 개인이 장소에서 가지는 경험과 기억을 통하여 형성된다. 도시 삶의 기억이 저장된 공간에서 시간성과 함께 장소성으로 되살아난다. 도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도시별로 경주하고 있으며, 도시 이미지로서 단일한 이미지로 표현하기보다 도시의 다양성을 표출하기 위한 하이브리드한 정책들이 펼쳐지고 있다. 하이브리드 도시를 지향함에 있어 선제적 조건이 도시가 지녀온 시간과 공간의 다양한 장소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전통의 역사성 위에 근대, 산업사회를 거쳐 현대도시를 사는 우리의 도시, 대구는 얼마나 다양한 장소를 품고 있는가?대구의 도시형성과정을 살펴보면, 1907년 대구 군수 박중양에 의해 강제철거되기까지 전통도시로서의 대구는 경상도 중앙의 지리적·전략적 요충지인 경상감영 주둔지로서 정치·행정의 도시, 관리와 상인 중심도시였으며 대구읍성을 중심으로 감영의 관리들과 서문시장 및 약령시 등의 상인도시로서 읍성을 중심으로 서문으로는 성주, 고령, 현풍을 동문으로는 영천, 팔공산 그리고 남문으로는 경산, 각북을 연결하는 교통과 교류의 거점 역할을 담당했던 도시이다. 읍성 철폐·대구역 건설 이후전통도시 위에 근대도시 성장차별화된 이중결합 구조 형성기존 공간에 새 장소 만들어야근대도시로서의 대구는 1894년의 동학운동과 청일전쟁이 몰고 온 일본군의 달성토성 주둔과 함께 1904년 한일의정서에 따른 이사청이 설립되고, 경부선 철도 건설이 시작되면서 건설관계자 및 농민의 도시 유입으로 급격한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1907년 대구읍성 철거를 기폭제로 일본인에 의해 대구역과 북성로에 신흥상권이 형성되었으며, 서문시장과 읍성 남측에 조선인이 상권을 이루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1899년 4만4천801명에서 1912년 13만9천615명으로 급속도로 증가하게 된다. 읍성 철폐와 대구역 건설은 전통도시에서 근대도시로의 대전환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도시화에 따른 인구증가는 새로운 지도층을 형성하게 된다. 새로운 문물과 신문화가 받아들여지면서 근대도시로서 교역과 변화, 혁신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새로운 지도층으로서 외부에서 유입된 서상돈(경북 김천), 김광제(충남 보령), 친일파 박중양(경기 양주) 등의 정치지도층만이 아닌 종교, 예술, 문화인의 외부유입은 문화적 역량의 척도가 된다. 근대도시 대구는 타 지역 사람의 이주를 수용함으로써 타협과 변화를 통해 물류와 교류의 거점으로서 영남 최대의 내륙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대구는 읍성이 철폐되고 인접하여 대구역이 건설되면서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근대도시계획이 도심에 실현되면서 기존의 전통도시구조 위에 근대도시가 계획되는 특징을 가진다. 신작로인 십자대로가 개설되면서 1909년 경상감영에 이사청, 대구경찰서, 대구공소원, 대구우편국, 은행 등의 주요 시설이 도심에 건설됨으로써 다른 도시들과는 차별화된 이종결합의 특이한 도시구조가 형성된다. 1900년 이전의 관리·교역중심도시 위에 근대철도와 근대도시가로가 형성되었으며, 이후 전쟁기에도 유일하게 도시 원형을 보존하였고, 1980년대까지 근대산업을 이끈 산업도시로 성장하였다.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현재에 있어 대구는 역사성과 시간성의 축적에 따른 다양한 도시공간의 장소성을 지닌 하이브리드한 도시 인프라를 갖춘 유일한 도시라 할 수 있다. 대구는 전통과 근대의 이종교합과 함께 근대도시 형성과정에서 하이브리드로 태동된 도시였으며, 산업도시로의 성장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이종교합과 함께 새로운 도시장소성을 만들어왔던 도시이다. 미래의 대구 도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새로운 도시혁명을 이룰 수 있는 대구의 정체성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한 때이다. 도시혁명은 기억을 없애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존재의 바탕 위에 이종교배에 따른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라져가는 대구 도심의 폐허는 미래의 대구 도시를 만들기 위한 자양분이라 할 수 있다. 도현학<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2023.03.14
[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고등교육 재정 늘려 지역 혁신…시민들에 국제화·사회화 교육"
현재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독일, 이스라엘, 일본 등 4개 국가들은 대학을 혁신체계의 중심에 두고 있다. 사람의 뇌와 같은 기능을 하는 로봇 뇌(뉴로 컴퓨터), 암 정복, 치매극복, 장애극복, 인간 생명연장, 바이오(생체) 장기 복제, 개인 맞춤형 의약 개발,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AI), 데이터 사이언스, 양자 컴퓨터, 신재생에너지 연구, 디지털 인문학 연구 등을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하면서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대학을 중요한 지역혁신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도시 간의 관계가 밀접해져 시민들에게 예전과는 다른 국제화와 사회화 교육을 지역대학이 맡도록 한 것이다. 미국대학이 세계 일류의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은 불과 50년 남짓하다. 100년 전만 해도 미국대학 졸업장으로는 유럽의 대학원에 입학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미국이 1·2차 세계대전과 냉전체제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실용적인 과학연구의 승리이기도 하다. 공과대학 가운데 세계 1위인 MIT, 미국 내 랭킹 5위 안에 드는 예일대와 컬럼비아대의 경쟁력 원천은 인문, 사회, 예술 등 기본에 충실한 교육이다. 컬럼비아대는 지역사회 공헌을 위해 학교 인근 뉴욕 할렘가에 21세기형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불과 개교 20여 년 만에 미국 내에서 가장 혁신적인 공과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는 매사추세츠주 올린공대는 미래대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獨, 첨단연구·융합교육 강화이스라엘은 고등교육위 주목독립기관 운영 정책 안정성↑日 교토대 자유학풍 전통 눈길대학교육 시스템에 대한 독일의 자부심은 30여 년 전 처참하게 무너졌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유수 대학들이 미국은 물론 영국, 아시아권 대학에 추격을 허용해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는 독일 대학 부흥을 위해 고등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20년이 넘는 장기 프로젝트에 착수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독일은 10여 개 엘리트대학을 통해 미국을 제치고 4차 산업을 선도한다는 야심 찬 구상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최고의 역사를 가진 하이델베르크대, 독일 공대 중 정상급인 뮌헨공대, 전통을 자랑하는 튀빙겐대 등은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첨단연구와 융합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지역 기업에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고 고급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지역대학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과 비슷한 정서를 가진 바이에른주가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며 교육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것은 인상적이다.이스라엘은 세계 제1의 창업국가로 불린다.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창업교육과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국가차원에서 전국민 창업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명문 히브리대, 최고의 공대인 테크니온공대, 국제화된 텔아비브대 등의 창업시스템과 4차 산업 첨단연구는 세계 정상급을 자랑한다. 첨단연구를 창업으로 연결해 세계적 플랫폼 기업에 매각하는 시스템은 이스라엘이 앞으로도 자주권이 강한 나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이스라엘은 고등교육 정책을 혼란한 정치로부터 분리해 안정적 정책 유지가 가능하도록 고등교육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고등교육위원회는 위원 3분의 2 이상이 대학교수 출신이고, 이들은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 고등교육(대학)정책을 책임지고 있다. 고등교육정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6년 단위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 3대 기초과학연구소의 하나인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는 첨단과학 연구를 선도할 수 있도록 완벽한 연구·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다.일본은 우리나라보다 10년 정도 앞서서 사회현상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현재 일본대학의 움직임은 중요하다. 도쿄대와 쌍벽을 이루는 교토대의 자유학풍 전통과 문·이과 균형 교육 및 융합연구는 우리나라 대학에 던지는 메시지가 가볍지 않다. 또 사립명문인 리츠메이칸대의 국제화 전략 및 지역사회와의 협력 강화 현장은 우리나라 대학이 나아갈 미래이기도 하다. 일본은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대학이 지역의 평생교육 및 재교육을 담당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대학 장기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박종문 영남일보 부국장
기획
[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 사람 소리 가득했던 '전통시장' 역사 속으로…주상복합·아파트 '빌딩숲' 된다
[대구경북에도 이런 기업이] 실시간 영상 분석 최적 솔루션 제공 '우경정보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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