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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드림 꿈꾸는 중남미엔 '韓 소프트파워'로 다가서라"
중남미지역은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먼 곳이지만 부존자원, 시장성장의 잠재력,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 등을 고려할 때 전략적 파트너로서 손색이 없는 지역이다. 다만 중남미지역의 독특한 국내외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진출전략은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중남미 국가들과 전략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한국은 최근 우방국들의 외교전략 추세에 발맞춰 인도태평양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중남미 등 역외지역에도 적용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그러나 중남미국가들은 인태지역 개념을 미·중 경쟁 구도 내에서 이해하고 있어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중남미의 현안, 중견국가와 관계강화미·중 간 무역전쟁이 진행된 지난 6년간 중국은 과거 '미국의 뒷마당'으로 통했던 중남미지역 대부분의 국가에서 제1교역국으로 부상하며 활발한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대중국 투자를 자국으로 복귀시키거나 우방국으로 이전하는 이른바 '리쇼어링' 및 '프렌드쇼어링' 정책을 펼쳤고, 멕시코가 가장 큰 수혜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안 모색이 시급한 실정이다. 중남미국가들은 글로벌경제의 쇠퇴로 인해 실질경제성장률 둔화, 인플레이션 고착화 형국을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택할 대외전략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이른바 '신 비동맹노선'이다. 즉 중남미 국가들의 중요 현안은 G2가 아닌 중견국가들과의 관계강화란 의미다. ◆중남미는 한국의 대안 시장중남미의 현안은 세계 10위권 경제인 중견 국가 한국의 생존전략과도 맞닿는 부분이다. 중남미지역은 인구 6억6천만명의 소비시장과 풍부한 광물 및 전략자원을 갖고 있다. 한국의 당면 과제인 수출시장 확대와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에 부합하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중남미지역 33개국은 각기 개발 수준의 격차가 크므로 차별화된 접근법이 요구된다.첫째, G20의 일원인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는 외교무대에서 한국과 많은 접촉을 갖는 것에 비해 통상협력수준이 매우 미약하다. 한국은 멕시코 및 브라질과 무역투자를 활발히 펼치고 있지만, 이들 중 어느 국가와도 FTA를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한국과의 FTA가 자국산업에 위협적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멕시코와의 양자 간 FTA의 대안으로 추진한 태평양동맹(PA) 준회원국 가입협상마저도 PA회원국인 멕시코-페루 간 정치분쟁으로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디지털·에너지·기후 시대전환기인구 6억6000만 중남미 33개국풍부한 광물·전략자원까지 보유韓 수출확대·안정적 공급망 확보중견국·OECD·ALBA·저개발국개발 격차 커 차별화된 접근 필요◆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에 통상역량 집중해야다른 한편으로 이들 국가는 한국의 자동차, 전자, 철강, 식량자원 등 모든 부문에서의 직접투자를 환영한다. 한국과의 자본-기술-자원-노동 협력에 대해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상반된 현실은 한국의 통상외교력이 현지의 통상정책과정에 깊이 침투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이들의 다극화 외교전략과 '자원개발-기술발전-고용창출'이란 국내 정책 간 핵심고리, 그리고 대외경제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해집단 간의 갈등구조를 소화해낼 만큼의 한국의 통상역량이 이들 국가에 집중될 수만 있다면 FTA와 같은 묵은 과제의 해결은 가능하다.◆OECD 가입국은 한국의 우군현재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중남미지역 국가는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4개국이며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가 가입 협상 중에 있다. OECD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념으로 무역, 금융, 노동, 환경, 기업 등 경제사회 모든 부문의 국제규범을 추구하는 클럽인 만큼 회원국 간 정책공유 및 공조가 수월한 편이다. 한국은 이 중 칠레, 페루, 콜롬비아, 코스타리카와 FTA를 운영하고 있고, 장차 역내 OECD 회원국은 파나마, 우루과이, 에콰도르, 도미니카공화국 등으로도 확대될 전망인 바, OECD 체제를 가치공유 및 인접국 진출 기반으로 삼는 다차원적인 중남미지역정책이 요구된다. 특히 한국의 GDP대비 무역비율이 80%였던 2021년에 멕시코는 84%, 코스타리카 71%, 칠레 64%였던 점을 상기한다면 이들 국가들은 글로벌 시대의 후퇴가 가져오는 위협에 대해 한국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성숙했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즉, 이들은 중남미지역에서 한국과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국가(like-minded countries)로서 전방위 국제협력을 추진하는 우군으로 간주해야 한다.◆볼리바르동맹 자원개발 주목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외에 카리브지역 도서국 6개국이 포함된 이른바 볼리바르동맹(ALBA) 10개국도 주목해야 한다. 2004년 반미동맹으로 시작한 ALBA는 총인구 7천만명에 석유 및 천연가스, 리튬, 니켈, 코발트 등 부존자원과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한국경제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국가군이다. 하지만 이들과의 외교관계는 파행이 지속되고 있다. ALBA그룹은 상기한 OECD회원국 그룹과 정반대의 경제사회질서를 갖는 만큼 한국기업들의 현지 영업활동도 극히 미미하다. 자원개발 수익처분이나 물류 및 거래선 조정, 시장가격 결정 등에서 국가의 개입이 과도해 이미 진출했던 한국기업들도 포기하고 떠나기 일쑤다. 다만, 기업활동의 난관은 외교적 노력으로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특히 이들 국가가 자원개발 기술 분야에서 전적으로 외국기업에 의존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기술전수를 포함한 협력모델이 주효할 수 있다. ◆중국을 대체할 국가로 떠오른 한국일부 카리브지역 관광도서국 등 고소득국가를 제외한 10여 개국은 저개발국으로 빈곤, 소득불평등, 자연재해, 실업, 범죄, 부패 등 만성적인 정치·경제·사회 문제로 해외난민을 유발해 미국의 이민억제 정책의 표적이 되곤 한다. 시장 구매력 역시 낮아 이들과의 경제협력은 장기구도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개발 경험을 현지 여건에 맞춰 적절히 전수하며 한국과 공유할 수 있는 경제사회질서가 형성될 때 비로소 우리 기업들의 활동영역은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중남미지역 국가들과의 경제협력방안을 △중견국 △OECD회원국 △ALBA회원국 △저개발국 네 가지 분류로 살펴봤다. 중남미지역에서 한국을 대변하는 키워드는 첨단기술과 콘텐츠산업이다. 많은 정책 입안자들은 한국과 같은 산업발전을 이루는 이른바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 더욱이 디지털전환, 에너지전환, 기후변화시대를 맞아 한국은 중국의 대안으로 위상이 높다. 우리 정부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제대로 활용함으로써 시대 전환기를 맞아 중남미지역을 진정한 전략적 파트너로 삼는 적극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글=김원호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명예교수 정리=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그래픽=장윤아기자 baneulha@yeongnam.com김원호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명예교수
2023.08.16
대구 미래 자양분 5개 분야 신기술 장착 '첨단 혁신 도시' 선도
한때 산업화의 기수로 통하던 대구의 경제 지표가 위기를 가리킨 지는 오래다. 한국경제를 수출주도형으로 만드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섬유산업은 신소재를 외면한 탓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대구 주력 업종이던 자동차부품업체들 역시 내연기관→전기차로 산업시류의 무게 중심이 옮겨갈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경영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대구경제가 왜소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구시는 신산업 선점과 첨단 신기술 장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7월 홍준표 대구시장 취임후 미래 신산업으로 점찍은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와 도심항공교통(UAM), 반도체, 로봇, 헬스케어 5개 분야가 그 중심에 있다. 수성알파시티 디지털 혁신 거점비수도권 최대 반도체 인력 양성로봇 전주기 지원 공공랩 조성전국 첫 자율주행 배송 서비스'K-헬스' AI 의료 생태계 구축ⓘ ABB 기반 8대 프로젝트 추진대구시는 수성알파시티를 지역 산업 디지털 혁신을 이뤄낼 거점으로 지목했다. 지난해 8월 대구시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수성 알파시티에서 국정과제인 디지털 경쟁력 제고 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식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구 공약인 '미래 디지털 데이터 산업 거점도시 조성'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수성알파시티를 비수도권 최고 디지털 혁신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이를 토대로 ABB분야와 관련해 2조2천억원 규모의 8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미 미래 디지털 혁신 중심 도시 대구(1조4천500억원), 영남권AI자율제조클러스터 조성(2천억원)과 센서반도체 핵심기술실증, 차세대 블록체인 산업 육성, 메타버스 융합산업 생태계 활성화 등 3개 사업(5천500억원) 추진이 확정됐다. 지난 5월 수성알파시티는 과기부의 '지역 디지털 혁신거점 조성지원 시범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AI기반 공정혁신 시뮬레이션 센터 구축(258억원)과 블록체인 기술혁신 지원센터 구축(38억원)을 통해 개발 환경 구축이 완료됐다.대구 미래산업 육성에 사용될 자금도 순조롭게 적립되고 있다. ABB성장펀드 1·2호와 ABB 디지털 제조혁신 벤처펀드 3호 조성을 통해 1천억원대 펀드 조성 목표의 절반 이상을 달성했다. 시는 총 4개의 펀드로 1천802억원을 조성할 방침이다. ② 비메모리반도체 생태계 조성대구시는 비메모리반도체 연구·생산 인프라를 조성해, 대구를 비수도권 최대 반도체 인력양성 거점으로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5년까지 전국 최초로 기업 공유형 반도체 파운드리 'D-팹'을 건립한다. 이 곳에는 기업전용 반도체 클린룸·공정장비가 갖춰진다. 첨단센서 국산화를 위한 기술사업화의 마중물 역할이 기대된다. 지난 5월엔 교육부가 주관한 '권역별 반도체공동연구소 공모사업'에서 경북대가 '반도체공동연구소'로 선정됐다. 화학물반도체 소재인 질화칼륨(gAN) 개발 및 전력반도체 특화교육을 운영한다. 통신·전력반도체 전문기업 3사는 반도체공동연구소에 380억원의 시설 투자를 하기로 했다. 통신 전력 증폭기 제조업체 'RFHIC', GaN 반도체 개발업체 'A-PRO세미콘', 광소자부품 전문 제조업체 'QSI'가 시설투자에 나서는 기업들이다. 자동차 반도체 기업 '텔레칩스(코스닥 상장사)'는 337억원을 투입해, 수성알파시티에 대구연구소를 짓는다. 텔레칩스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를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전문 개발하는 반도체 설계업체다. 지역 대학은 반도체 인력 양성에 주력한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내년에 삼성전자 계약학과를 신설, 공정 전문인력을 연간 30명 양성한다. 경북대도 반도체 분야 정원을 전국 최다 수준인 100명으로 증원한다. 영진전문대는 중소벤처기업부의 '반도체 중소기업 기술사관' 사업 주관대학에 선정돼 장비 전문인력 연간 60명을 육성한다. ③ 글로벌 로봇 허브도시 도약대구시는 이달 말로 예정된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재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좋은 결과가 기대되고 있다. 예타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2028년까지 총사업비 2천990억원이 투입된다. 대구테크노폴리스 일대(18만1천800㎡)에 로봇 사업화를 위한 전 주기 지원 공공랩(LAB)을 조성할 예정이다. 로봇 제품 개발·실증·인증을 포괄 지원하는 랩·가상환경·실환경 기반 구축사업이 진행된다.시는 이동식 협동로봇 규제자유특구 사업에는 298억원을 투자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우수특구로 지정돼 국비 인센티브로 25억원도 받았다. 이동식 협동로봇 규제자유특구 임시허가를 얻어 로봇산업도시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시는 급성장 중인 서비스 로봇 시장에 적극 대응하고 지역 로봇산업의 구조 전환 및 업종 고도화를 위해 서비스로봇 시장 선점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④ 지상~하늘 모빌리티 도시지난해 10월 대구시는 SK텔레콤 , 한화시스템, 한국공항공사, 티맵 모빌리티와 'UAM 시범사업 및 상용화 추진과 UAM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들 기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그랜드 챌린지 사업의 핵심멤버들이다. 미국 3대 헬리콥터 제조사 '벨 텍스트론'과 손을 맞잡고, 2030년까지 신공항 무인 물류 배달 서비스 제공 및 APT-70(대형화물드론) 역량을 시연하기로 했다.지상에선 전국 최초로 자율주행 서비스를 선보였다. 전국 17개 지자체 중 최대 규모 자율주행 유상 운송 시범 운행지구(국가산단 및 수성알파시티 일원 19.3㎢, 22.6㎞)를 운영 중이다. 지난 5월엔 전국에서 처음으로 자율주행 배송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대구테크노폴리스~국가산단 (총연장 28.2㎞)에 운행 중인 여객·물류 통합형 DRT서비스 '달구벌자율차'가 그 중심에 있다. ⑤ 첨단 의료헬스케어 산업 육성시는 차세대 의료시장 선점을 위해 의료분야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과기부의 'K-Health 국민의료 AI서비스 및 산업 생태계 구축 사업'을 통해 의료데이터 기반의 기업 맞춤형 기술 지원 등 AI 의료생태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빅데이터 기반 디지털 치과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초연결 치과산업 플랫폼' 개발도 추진 중이다. 2026년까지 123억원을 들여 치과산업 디지털화를 위한 플랫폼 구축, 핵심기술 개발 및 제품화, 제품 실증을 위한 실사용 환경 기반 사용성 평가 및 기술 도고화 등을 진행한다. 아울러 첨단의료 인프라 및 의료 전문 창업지원 공간도 마련됐다. 지난해 8월과 10월 첨단임상시험센터와 한국뇌연구원우뇌동을 각각 준공했다. 2025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메디밸리 창업지원센터도 구축한다. 이 센터에는 입주공간 30개실과 시제품제작실, 공용회의실, 제품촬영실 등이 들어선다. 지역 내 유망 스타트업의 발굴·성장·도약을 위해 별도 체계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그래픽=장수현기자 jsh10623@yeongnam.com
포스코, 그린철강 시대 주도 '수소환원제철소'에 달렸다
지구 온난화로 전 세계 기후 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로 제한해야 인류 생존의 마지막 위협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유엔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보고도 나왔다. '1.5℃' 기후목표 달성을 위해 탄소 중립을 선언·지지한 나라는 136개국(2021년 10월 기준)에 달한다.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매년 4.17%씩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 산업부문에서 효과적인 감축 전략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다. 제조업의 근간인 철은 없어선 안 될 필수자원인 동시에 지구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인 이중적 존재가 됐다.포스코는 '철의 딜레마' 해결을 위해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친환경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기술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지구온난화 세계기후 위기탄소중립 피할 수 없는 과제가루상태 철광석·수소 사용 쇳물 제조 '수소환원제철소'2030년까지 기술 검증 완료20조 투자해 건립할 계획 "최적부지는 포철 인접 바다""슬래그 등 매립땐 해양 오염"환경단체·주민들 크게 반발 큰 난관에 부딪힌 포스코측"지역사회와 정부 도움 절실"◆탄소국경세 도입철강산업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외부적으로는 지구온난화 위기 속에 시장과 고객의 저탄소 제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제철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한 새 기술 개발과 대규모 설비 투자가 요구된다. 수십 년간 지속해온 제철공법을 설비부터 기술, 원료에 이르기까지 저탄소체제로 대전환해야 한다.철강사의 '생존'이 탄소중립에 달린 것이다. 여기에다 유럽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세'가 도입된다.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가 강한 국가에 상품·서비스를 수출할 때 적용받는 무역관세다. 탄소국경세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연합(EU)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새로운 무역관세다. EU는 2023년부터 전기·시멘트·철강 등 탄소배출이 많은 품목에 시범 시행한 뒤,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유럽 철강제품 수출국 중 5위를 차지하는 한국이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포스코 하이렉스 수소환원제철수소환원제철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H₂)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석탄 등과 같은 화석연료는 철광석과 화학 반응 하면 이산화탄소(CO₂)가 발생하지만, 수소는 물이 발생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철강 제조과정에서 탄소배출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다.하이렉스(HyREX)는 포스코가 보유한 파이넥스(FINEX) 유동환원로 기술을 기반으로 가루 상태의 철광석과 수소를 사용해 쇳물을 제조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전통적인 제철공정에서 이 환원로의 역할은 용광로(고로)가 담당한다.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반응과 환원된 고체 철(Fe)을 녹이는 용융반응이 석탄에 의해 고로 내에서 동시에 이루어져 쇳물을 만든다.수소환원제철 공정은 환원반응과 용융반응이 고로가 아닌 '환원로'와 '전기로'라는 두 가지 설비에서 분리돼 일어난다. 환원로에서 철광석을 고온 가열된 수소와 접촉시켜 고체 철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게 직접환원철(DRI)이다. DRI를 전기로에 넣어서 녹이면 쇳물이 생산된다.세계적으로 100% 수소만 사용해 DRI를 생산하는 환원로는 상용화되지 않고 있다. 현재 기술로는 석탄 또는 천연가스 사용과정에서 발생한 수소를 일부 활용해 DRI 생산이 가능하다. 포스코 파이넥스 기술도 석탄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로 철광석의 환원에 약 25% 사용한다.포스코는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의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인 HyIS 2021(Hydrogen Iron & Steel Making 2021)을 연 자리에서 하이렉스 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2030년까지 하이렉스 기술 검증을 마치고 그린철강 시대를 주도한다는 계획이다.◆국가별 탄소중립 지원 현황은해외 정부는 탄소중립 전환을 자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경제성장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EU는 총예산 3천조원의 30%인 853조원을 그린딜 실행에 배정, 탄소 중립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최근 유럽연합 최고 의결기구인 유럽이사회(EC)는 프랑스와 독일의 철강 생산공정 탈탄소화를 지원하기 위해 20억유로 이상의 국가보조금을 승인했다. 프랑스 정부는 세계 최대 철강업체인 아르셀로미탈의 철강 생산공정 일부를 탈탄소화하는 프로젝트에 약 1조1천억원을 지원한다. 독일 정부도 유럽철강회사 티센크루프 스틸에 약 7천8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독일 정부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그린딜 실행을 위해서 약 73조원을 투입한다.탄소중립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지원금의 84%인 480조원을 투입해 '기술 패권국 유지와 에너지 안보'를 강화 중이다. 특히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6월 수소 관련 국가정책을 수립해 '국가 청정수소 전략 및 로드맵'을 발표했다. 수소 조달에 있어서도 반도체, 배터리와 같이 자국 내 공급망 강화를 지향하고 청정수소의 제조비용을 대폭 낮추는 게 골자다.이런 가운데 포스코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약 20조원을 투자해 수소환원제철소를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천문학적인 사업비가 든다. 매년 영업이익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할 포스코로서는 국가 차원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포스코 측은 "미국 등 선진국들은 탄소 중립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한국 등 신흥 철강 강국에 빼앗긴 산업주도권을 되찾고 자국 제조업 경쟁력 보호를 위해 전방위 지원을 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도 제조업의 근간인 철강산업 국제 경쟁력 확보와 탄소 중립 전환을 위해서 정책·제도적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2041년 부지 조성 완료… 지역민 도움 절실탄소중립에 나선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위해 새로운 땅이 필요하다. 포스코는 신규 부지로 포항제철소 내와 포항블루밸리산단을 검토했으나 집적화, 효율성 등 다양한 검토 결과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포항제철소의 인접 바다를 메워 공장을 짓는 계획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 여의도 절반인 135만㎡(41만평)이다.포스코는 부지 조성에 따른 인·허가를 내년 3월까지, 호안 축조를 2027년까지, 부지 조성은 2041년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수소환원제철 고로 포항 1기는 2031년, 광양은 2032년에 착공할 예정이다. 50년 전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을 뽑아낸 의미를 되새겨 포항에 수소환원제철 고로 1기를 먼저 짓겠다는 의지로 보인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포스코가 지난 7월 포항시에서 수소환원제철 용지조성사업과 관련한 합동설명회를 열었지만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주민들은 제철소에서 나온 슬래그 등을 해양에 매립하면 환경오염 등의 피해를 볼지 모르고, 사전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앞서 지난 6월 열린 첫 합동설명회도 주민 반발로 무산됐다.이와 관련 이상민 포스코 탄소중립글로벌협력TF팀장은 최근 언론 설명회를 통해 "정부와 지역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탄소중립은 한 기업, 한 산업계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인다. 생존의 문제이며 국가 경쟁력 붕괴로 직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포스코홀딩스 본사 이전을 놓고 2년간 시민과 갈등을 빚었던 포스코가 또다시 지역민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해를 구하느냐가 최대의 난제이자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 건설 예정 부지 조감도(위)와 하이렉스 기술 공정도. 〈포스코 제공〉
2023.08.14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대구경북 소멸보고서] 대구에 외국인이 늘고 있다
대구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0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1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에 따르면, 대구의 2021년 외국인 주민은 5만1천140명이다. 10년 전인 2011년(2만8천153명)보다 무려 81.7% 증가한 셈이다. 대구 외국인 증가는 서구 비산7동에 조성된 다문화촌 '비단마을'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서구청은 2015년부터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구 비산7동에 '안전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비단마을'은 화려한 염색공단, 다채로운 문화의 조화를 포함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구청 측은 "외국인 수나 국적 분포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대구 외국인 중 한국 국적 취득자는 4천 902명이다. 베트남 출신이 2천122명으로 가장 많다. 중국(한국계) 출신이 1천56명, 중국 출신이 788명, 캄보디아 출신이 260명으로 뒤를 이었다.30대가 전체의 45%(2천204명)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 눈길을 끈다. 40대는 1천168명(23.8%), 20대는 522명(10.6%)이었다. 한국 남성과의 결혼에 따른 귀화 등을 이유로 전체 한국 국적 취득자의 89.9%가 여성이지만, 지방소멸 시대 이민자와 외국인 주민들이 소멸을 막을 새로운 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높다. 이민자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높다. 법무부의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경북 지역의 경제활동인구는 5만5천700명, 비경제활동인구는 2만9천700명이었다. 경제활동참가율은 65.2%에 달했고, 고용률은 62.4%였다. 대구 전체 경제활동참가율(60.9)%, 고용률(59.1%) 보다 높다. 대구의 전체 외국인 중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3만6천956명이었는데, 이 중 외국인 근로자가 7천273명으로 가장 많았다. 달서구(1만6천352명)에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했다. 다음으로 달성군(1만225명), 북구(8천846명), 서구(4천574명) 등의 순이었다. 외국인 주민이 출산한 자녀는 9천 282명이었다. 2021년 기준 대구의 전체 다문화 가정 가구원은 총 3만3천881명으로 파악됐다. 대구에 꾸준히 외국인 주민과 다문화 가족들이 늘면서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과 다문화 가족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과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지원 등으로 구분된다. 외국인들이 대구에 적응하는 것을 돕는 '외국인 지원사업'의 경우 올해 8개 프로그램(국비 2억7천만원, 시비 5억5천만원)이 운영 중이다. 외국인 주민 상담 및 캠프 지원 사업, 외국인 사회통합프로그램 운영 지원, 지역 외국인지원 글로벌라운지 운영 등이 있다. 다문화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은 22개다. 예산은 46억5천만원(국비 20억 3천만원, 시비 17억원, 구군 10억2천만원) 규모다. 다문화 가족 정서안정 및 진로 취업 지원을 해주는 '다문화가족 자녀 사회포용 안전망 구축', 방문 한국어 교육·방문 부모교육 등 '다문화가족 방문교육' 등이 이뤄진다. 또 실직·질병·이혼 범죄피해 등으로 위기 상황에 처한 다문화가족에 긴급지원을 하는 '위기다문화가족 지원' 사업도 있다. 대구시는 또 올해 2억 6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달성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를 지원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및 사업주에 대한 고충 상담 및 갈등을 중재하는 상담사업, 의사소통 향상 및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한 한국어 교육 등이 진행 중이다. '대구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도 1억 원을 들여 국가별 장기자랑, 외국인노동자 한국어 말하기 대회 등 '외국인 노동자 한류문화 적응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외국인 증가 속에 대구의 다문화 수용성 개선은 첫 번째 과제로 꼽힌다. 여성가족부의 국민다문화수용성조사에서 2021년 영남권의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51.11점으로 충청·강원(55.54점) 등 다른 지역보다 낮았다. 다행히 생산 현장에서 차별 문제는 점차 해소되는 모양새다. 달성1차 산업단지의 한 공장에서 근무하는 스리랑카 출신 수단타(32) 씨는 "외국인으로서 소외감,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6년째 대구에서 살고 있는데 이제는 아주 익숙해졌다"며 "처음 일했던 회사에선 한국어 존댓말과 반말이 헷갈렸다는 이유로 좋지 않은 말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는 아주 친절하다.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이 기사는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와 지방시대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대구 서구 비산7동의 비단마을에는 여러 국적의 외국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마을에 게시된 여러 나라 인사말.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대구의 외국인 주민 현황 다문화가족을 위한 결혼이민자 자조 활동 모습.
2023.08.13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대구경북 소멸보고서] 윤석열 정부, 이민정책 선진화 추진
윤석열 정부는 지방소멸의 한 대책으로 '이민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이민청 설립으로 대표되는 '이민정책 선진화'가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라고 보고, 우수 인재 유치에 방점을 둔 정책 수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 정부 이민 정책을 이끌어가는 부처는 법무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5월 취임 일성으로 이민청 설립을 제시하며, 이민정책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었고, 2030년에는 3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부처별로 나뉘어 있는 현재의 외국인 정책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 현재 외국인 출입국과 비자에 대한 권한은 법무부, 외국인 취업 관련은 노동부, 다문화 가정은 여성가족부, 외국인 유학생은 교육부가 맡고 있다. 이민 정책과 관련해 각 부처가 따로 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이민청은 이민 및 출입국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이민청을 통해 10년 후 인구구조 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외국인 대거 유입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고려해 '국민이 공감하는 사회통합'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다. 한 장관은 지난 3월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3개국을 방문해 직접 출입국·이민 정책을 살피기도 했다. 윤 정부가 추진하려는 이민청과 같이 별도 조직이 있는 나라들로, 법무부는 이들 기관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이민청 설립 계획은 다소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부는 연초 업무보고에선 이민청 설치에 대한 계획을 올해 상반기에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올해 우수 외국인 인력 확보 정책은 이미 시작했다. 숙련기능인력(E-7-4 비자)을 지난해 2천 명에서 3만 5천 명으로 17배나 늘렸다. 농업, 제조업 등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고 있는 현장 인력 문제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반기에는 각 지역 또는 산업에서 적기에 인력 공급을 위해 '맞춤형 비자정책 시행'도 준비 중이다. 특히 뿌리산업, 농축어업, 비수도권 제조업체의 경우 고용인원의 30%까지 숙련기능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E-7-4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가족을 한국으로 초청해 오랜 기간 함께 거주할 수 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이 기사는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와 지방시대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대구경북 소멸보고서] 베트남과 '운명 공동체' 꿈꾸는 봉화군
경북도 최북단에 있는 봉화·영양·청송(일명 B·Y·C) 군민들의 평균 연령은 57.2세로 경북 평균보다 10살가량 많다. 청년들이 농촌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면서 마을 곳곳엔 노인들만 가득하다. 주변이 온통 산과 밭으로 둘러싸인 개발제한 구역이라 변변한 사업체나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지자체가 돌파구로 삼은 것은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을 적극 수용해 침체에 빠진 지역 경제 활성화를 노리고 있다. 봉화군은 베트남 사람들과 '운명 공동체'를 꿈꾼다. 단순한 이웃사촌을 넘어 국내 최초 '베트남 타운' 조성에 도전하고 있다.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있는 충효당(忠孝堂)은 국내 베트남 이민자들의 '성지'로 손꼽힌다. 봉화군이 베트남 타운 조성을 추진 중인 충효당 일대는 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중국의 책봉체제에서 벗어나 장기집권을 이룩한 베트남 리(LY) 왕조(1009~1225)의 국내 유적지이자, 한국에 1천200여 명이 분포한 화산 이 씨의 집성촌이다.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66호인 충효당은 오늘날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연결고리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 2018년 응 웬 부 뚜 주한베트남 대사가 한국에 흩어져 있는 베트남 선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충효당을 방문한 이후 수많은 베트남 특사들이 찾을 정도로 관계가 깊다. 충효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고택이다. 13세기 초 고려시대. 당시 베트남 리 왕조는 외척인 진수도((1194~1264·陳守度)의 역성 혁명으로 나라의 운명이 급속히 기울던 시기였다. 정변 이후 나라의 전권을 빼앗겨 숙청 위기에 몰린 이용상(6대 혜종의 마지막 왕자)은 바다를 건너 고려로 넘어와 화산 이씨라는 성을 하사받고 귀화했다. 고려에 정착한 이용상과 그 자손들은 외적의 침입에 맞서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13대손인 이장발(1574~1592)은 19세 나이로 왜구와 싸우다 문경새재에서 전사했다. 그 애국심을 기려 화산 이씨의 집성촌인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충효당이 세워졌다. 2018년 한국으로 귀화한 황선화 씨는 "베트남 왕자를 기리는 유적을 한국이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 매달 커뮤니티를 통해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라며 "연결고리가 있기에 베트남과 한국 간의 거리가 멀지 않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베트남 역사를 간직한 충효당을 중심으로 베트남 타운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충효당 주변은 슬레이트 지붕 형식의 오래된 주택과 창평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강줄기가 한데 어우러져 베트남 현지 마을을 연상케 한다. 또 화산 이씨 직계 종손 10여 명이 주변에 거주하는 등 베트남 인구 유입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도옥 루이엔 주한베트남공동체 대표는 "베트남 사람들 역시 열심히 자아를 실현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품고 한국에 온다"라며 " 충효당은 베트남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정체성을 찾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봉화군은 베트남 타운 조성을 민선 8기 공약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11만 8천여㎡ 규모 부지에 베트남 전통 마을과 리 왕조 유적지 재현 공간, 연수·숙박시설, 문화공연장 등을 조성해 충효당 일대를 관광 명소화하는 목적이다. 2027년까지 총 2천억 원을 투입해 인구 소멸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입장이다. 봉화군은 지난해 12월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국가정책사업화를 건의했으며, 올해 6월 봉화 베트남 마을 조성사업 용역에 돌입했다. 봉화군은 봉성면 창평리에 베트남 타운이 완공되면 소비 증대에 따른 관광 교류 활성화는 물론 베트남 이주민 증가로 시너지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현국 봉화군수는 "경북도 최북단인 봉화군이 지역의 자립을 위해선 관광 등 부가 사업 확장이 필요하다"라며 "정착 이주민들이 지역의 경제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라고 말했다. 봉화군이 베트남 사업에 뛰어든 건 베트남의 가능성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은 1억명 이상의 인구에 평균 연령이 32세로 '젊은' 국가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평균 연령 44.5세인 한국보다 12살이나 어리다. 베트남 출신 엄마와 함께 사는 다문화 가정도 상당한 편이다. 지난해 말 기준 경북의 다문화 가구(1만5천58가구) 중 베트남 출신 다문화 가구는 4천 768가구로 가장 많다. 경북의 일상 깊숙이 베트남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오는 2070년이 되면 한국의 인구 수는 3천 766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세계 최하위 수준의 합계출산율(2022년 기준 0.78명)을 기록한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수는 2020년 15%에서 2070년 46%로 치솟을 것이란 비관적인 관측도 나온다. 결국 한국의 인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외국인을 수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화산 이씨 종친회 이시창 사무국장은 "충효당 일대에서 터를 잡고 사는 주민들 대부분이 80대 이상 노인이다. 그 분들의 빈자리를 한 뿌리인자 친척인 베트남 이민자분들이 채워준다면 경북을 넘어 대한민국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이 기사는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와 지방시대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있는 충효당(忠孝堂)은 한 베트남 리(LY) 왕조(1009~1225)의 국내 유적지이자 국내 화산 이 씨의 집성촌이다. 오주석 기자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있는 충효당(忠孝堂) 모습. 오주석 기자지난 5월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캠프에서 도옥 루이엔(하얀 옷) 베트남공동체 대표와 참석자들이 봉화군 충효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봉화군 제공〉베트남 타운 조성이 추진되는 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일대. 봉화군 제공충효당(忠孝堂)이 위치한 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마을 주변에 빈 집이 곳곳에 방치돼 있다. 오주석 기자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대구경북 소멸보고서] '아시아의 작은 미국' 꿈꾸는 경북
경북도는 인구 소멸 위기가 불거진 지금, 지방 주도 외국인 정책 추진의 '골든타임'이라고 판단한다. 올해 1월 '외국인공동체과'를 신설하고 '외국인 공동체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외국인 유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 에 최종 선정되면서 외국인이 몰려드는 지자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에게 영주권 바로 아래 단계인 '거주 비자(F-2)'를 지급하는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 지역에 포함됨에 따라 '학사' 자격과 '한국어' 실력을 갖춘 젊은 외국인들이 경북을 찾기 시작했다. 인구 소멸 지역인 영주·영천·의성·고령 등 4개 시·군에 할당된 쿼터 290석은 접수를 시작한 지 7개월 만인 지난 5월 모두 채워졌다. 도지사의 추천을 받으면 거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거주 비자의 1회 체류 기간 상한은 5년. 연장이 가능하다. 비자 문제로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야 하는 불편함이 일정 부분 해소된 것이다. 도는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 대상 시·군을 올해 15곳으로 확대하고, 이공계 우수 유학생 유치를 위한 광역 비자 제도 구상에도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또한, 지역특화형 초청 장학생 제도(R-GKS)를 마련해 외국인들의 정착 및 취업을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내년에는 1천 명의 외국인 숙련 노동자와 유학생 우수 인재를 유치해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나갈 방침이다.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 녹아들 때 큰 장벽인 '언어' 및 '주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지원책도 꾸렸다. 경북형 한글학교와 비자센터를 구축하는 한편, 가족센터와 연계한 희망이음 사업을 통해 1인당 20만원씩 6개월간 주거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철우 도지사는 " 현재 한국은 다문화 국가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라며 "외국인들을 차별 없이 대우하고, 그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경북이 '아시아의 작은 미국'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이 기사는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와 지방시대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올해 초 지역특화형 비자 취득과 함께 경북 영주의 사업장에서 근무하게 된 외국인이 장비를 정비하고 있다.지난 3월 대구대학교에서 열린 '지역특화형 비자 취업 박람회'를 찾은 외국인유학생들이 지역특화형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대구경북 소멸보고서] 지방소멸 위기감에 주목받는 '외국인 이민'
인구소멸, 지방소멸 위기감이 커지면서 '이민 정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민청 설립으로 대표되는 이민정책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고, 대구경북도 외국인 유입정책에 적극적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은 갈수록 늘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이미 200만명을 넘었고, 2030년에는 3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경북 역시 가파른 증가세다. 지난 2021년 기준 대구의 외국인 주민은 5만1천140명으로, 10년 전인 2011년(2만8천153명)보다 81.7% 증가했다. 경북 역시 9만8천197명으로 10년전에 비해 93% 늘어났다. 특히 경북은 정부의 국내 체류 외국인에게 영주권 바로 아래 단계인 '거주 비자(F-2)'를 지급하는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 실력과 한국어 자격을 갖춘 젊은 외국인 유입이 활발해졌다. 4개 시·군에 할당된 쿼터 290석은 접수를 시작한 지 7개월 만인 지난 5월 채워졌다. 경북도는 특화형 비자사업 시·군을 15곳으로 확대하고, 초청 장학생 제도(R-GKS)를 마련해 외국인의 취업과 정착을 도울 작정이다. 이를 위해 '외국인 공동체과'를 신설했고, '외국인 공동체 TF(태스크포스)'도 운영하고 있다. 경북도의 목표는 '아시아의 작은 미국'이다. 외국인 공동체 조성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인력난을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봉화군은 아예 '베트남 타운'을 추진한다. 베트남 국내 유적지인 봉성면의 충효당 일대에 숙박시설, 문화공연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대구시 역시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지원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외국인 주민 상담, 사회통합프로그램, 외국인 글로벌라운지 운영 등을 통해 대구 적응을 돕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중심의 외국인 정책을 지방 주도로 전환할 때 한국의 인구 문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류형철 경북연구원 실장은 "인구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외국인의 지방 유입이 필수적"이라며 "지방이 외국인 이주 사무를 주도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이 기사는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와 지방시대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외국인지원사업 중 다문화청소년 대학생 멘토링 모습. 대구시 제공
[별 따라 이야기 따라 영양에 취하다 .4] 죽파리 자작나무 숲과 송하계곡
장파천을 거슬러 간다. 천은 영양군 수비면 송하리의 삼거리마을에서 두 갈래가 된다. 하나는 검마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해 죽파리를 적신다하여 죽파천이라 불린다. 또 하나는 오십봉과 백암산 서쪽 기슭에서 흘러든 물이 하나 되어 송하계곡을 만든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장파천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밤마다 강돌을 씻어놓고 잔다는 소문이 있다.'자작나무 숲' 면적 축구장 40개 크기고도 800m 훌쩍 넘어 전망데크 오르면빽빽하고 독특한 우듬지 장관 펼쳐져◆죽파리 자작나무 숲죽파리 마을회관을 지난다. 마을 이름은 원래 대두들이었다고 한다. 큰 언덕이라는 뜻이다. 마을을 개척한 이는 보부상들이었다. 울진과 영덕의 해산물을 지고 팔러 다니다 이곳에 정착했는데 큰 언덕에 대나무가 많아 죽파라 불렀다고 전한다. 지금 마을 고샅길의 이름은 하죽파다. 마을을 지나 한참을 달린다. 인가도 없고 이따금 작은 밭들만 스치는 9할이 산인 길, 산속에 줄곧 멈추어 있는 것만 같은 긴 길이다. 천을 향해 거대한 몸을 기울인 느티나무와 마주친다. 옆에는 작은 성황당이 있고 맞은편에 장파경로당이 자리한다. 이곳은 상죽파다. 자연부락의 이름은 장파(將坡)로 장파천과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르다. 조선 인조 16년인 1639년 김충엽(金忠葉)이라는 이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장군과 같이 기개와 정기가 높아지라고 붙인 이름이라 한다.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검마산 남쪽 기슭으로 든다. 이 산에 자작나무 숲이 있다.널찍한 임도 옆으로 죽파천 계곡물이 나란하다. 자작나무 숲까지는 약 4.7㎞, 멀고 깊다. 중간중간 조금 더 멀고 보다 깊게 우회하는 숲 산책로도 있다. 원시림과 같은 숲속에 짧게는 200m 정도, 길게는 600m가 넘는 산책로가 임도와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물박달나무, 단풍나무, 금강소나무 등 훤칠한 나무들이 울울창창하고 계류는 없는 듯 투명하다. 벤치에 앉아 물소리를 듣고, 쉼터에 기대 다리쉼하고, 포토존에 서서 씽긋 웃으며 힘듦 없이 멀리멀리 가다 보면 어느새 저 앞이 달처럼 환하다. 하얀 몸에 새겨진 검은 옹이들이 수천 개의 눈이 되어 일시에 나를 바라본다. 투명한 공기처럼 솟구친 하얀 나무들의 숲, 절도 있고 순결한 기립 앞에서 그만 먹먹해진다. 자작나무 숲이다.자작나무 숲은 아주 넓다. 전체 면적은 30.6㏊로 축구장 40개 크기라 한다. 숲은 1993년 솔잎혹파리 피해 지역에 12만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으면서 탄생했다. 자작나무는 강하다. 나무의 높이가 5m 이상이 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종자는 가볍고 날개가 있어 멀리 날아갈 수 있다. 내려앉은 자리에 햇볕만 가득하면 곧 발아해 숲을 만든다. 제 몸의 옹이들은 높이 자라기 위해 스스로 잔가지를 떨궈 낸 흉터다. 이제 서른. 30㎝ 크기의 묘목이 20m 높이로 자랐다. 숲속으로 아담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숲에는 '자작나무 숲길' 1.49㎞의 '1코스', 1.52㎞의 '2코스'가 있고 연접한 '전나무 숲길'과 임도가 있다. 길이 약간 헷갈리지만 상관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느리고 나태하게 걸으면서 조용히 그들의 존재를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고도 800m를 훌쩍 넘어서는 곳에는 전망 데크가 있다. 조망이 열리고, 산 사면을 빽빽하게 수놓은 자작나무 우듬지의 독특한 형상이 탄성으로 펼쳐진다. 자작나무는 '자작자작' 소리를 내면서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다. 수피는 겹을 이루고 있고 기름기가 많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다. 자작나무를 뜻하는 한자 '화(樺)'에는 빛날 '화(華)' 자가 들어간다. 촛불이 인간에게 오기 전 자작나무 껍질이 불꽃이었다. 결혼식 날 화촉(華燭)을 밝히는 것이 바로 자작나무에서 왔다. 가로로 얇게 벗겨지는 하얀 수피는 종이로 사용되었다. 자작나무 수피에 연애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자작나무가 가슴에 품은 말은 '기다림'이다. 수십 년을 키워 온 기다림이고, 온 산을 뒤덮은 기다림이다. 하얗게 낮과 밤을 지새우는 기다림이고, 가슴에 검은 옹이가 수없이 박히도록 인내하는 기다림이다. 무진장한 기다림이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숲은 먼 곳에 있다. 깊이 숨은 듯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가가면, 그는 아주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국가 지정 국유림 명품 숲이다. 2019년부터 관광자원화를 위해 산림청과 영양군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추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탐방안내소를 만들고 길을 정비하는 중이며 주차장에서 자작나무숲길 입구까지 전기차도 운영할 계획이다.손때 묻지 않은 청정자연 '송하계곡'수달·버들치 노닐고 다슬기가 지천얕고 강돌 동글해 물놀이에도 최고◆두메송하마을 송하계곡소나무가 많아 송하리라 이름 지어진 이 마을에는 '두메'라는 수식이 붙어 있다. 산으로 둘러싸여 고추를 4월 말에 심을 정도로 겨울이 길고,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커서 한여름 밤에도 서늘한 느낌이 드는 첩첩산중이라 두메송하마을이다. 굽이굽이 흐르는 장파천 물길 따라 논밭과 마을이 들어서 있고 좌우로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이어지는데, 송하리의 산천을 휘돌아 높고 낮게 끝없이 이어지는 주상절리 적벽 계곡을 송하계곡이라 한다. 송하계곡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청정 자연 그 자체다. 소나무와 각종 활엽수가 어우러진 울창한 숲에는 수리부엉이와 산양, 담비 등이 살고 달맞이꽃과 갈대밭이 군락을 이룬다. 시리도록 맑은 계곡물에는 수달이 살고 다슬기가 지천이며 버들치, 쉬리, 피라미 등 다양한 민물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물은 얕고 강돌은 동글동글해 물놀이하기에도 그만이다. 송하리 앞산은 매봉산이다. 그 뒤로 투구봉이 고개를 내민다. 송하교 건너 매봉산 등산로 입구에는 당숲이 있다. 졸참나무, 말채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속에 마을수호신을 모셔 두고 제사를 지내는 자그마한 당집이 자리한다. 당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졸참나무로 수령이 25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나무는 1995년에 보호수로 지정됐고 2021년에는 '영양 송하리 졸참나무와 당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대보름과 추석에 졸참나무에서 당산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빈다. 등산로를 따라 매봉산을 조금 오르면 소원을 다 들어준다는 '다들바위'가 있다. 사람의 얼굴을 닮아 '송하 자연미륵불'로도 불리고, 신이 빚은 석불이라 해서 '시니비즌 석불'이라고도 한다.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이 1865년에 영양으로 이사 왔을 때 이곳에서 49일간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여기저기 바위마다 부처의 얼굴이 보인다. 만인불을 보는 듯하다.송하리 장파천은 2011년 영양댐 건설예정지로 지정되면서, 댐 건설을 놓고 많은 일들을 겪었다. 결국 2016년에 댐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었고 멸종위기 생물들을 품고 있는 계곡과 마을은 수장을 면했다. 지금 두메송하마을에는 농산물판매장과 송하연가 펜션, 올레민박, 다들바위이야기 등의 숙소가 마련되어 있고 산채비빔밥과 도토리묵 등 다양한 향토음식도 만날 수 있다. 또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성한 장승테마공원, 옛 송하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해달뫼 문화예술체험장 등이 있다. 계절에 맞춰 고추 따고 장아찌 만들기, 금잔화와 도라지꽃·천일홍·삼색제비꽃·구절초 등으로 꽃차 만들기, 숲 해설가와 함께 산길을 걸으며 소원도 빌어보는 다들바위 체험, 자연 부산물을 이용하여 꽃·곤충·동물 등의 형상을 만들어 보는 목공예 체험, 천연 재료로 스카프와 손수건 염색하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참고=영양군. 두메송하마을 홈페이지. 한국지명유래집. 한국산림복지진흥원.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자작나무 숲에는 하얀색 수피가 인상적인 자작나무 12만 그루가 축구장 40개 크기 공간에 빽빽히 들어서 있다.장파천이 송하리의 산천을 돌며 만들어 낸 송하계곡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청정 자연 그 자체다.
2023.08.10
[박한우의 웹3.0과 밈코인] ><15> 소비자 교육으로 웹3 위험요인을 이해하고 대중화도 앞당기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이 바로 직전의 최고 가격을 언제 넘어설지는 요원해 보인다. 그렇지만, 블록체인 기반 웹3의 대중화는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여러 사례 가운데에서 최근에 가장 주목해야 할 사항으로 세일스포스의 웹3 프로그램이 있다. (https://www.salesforce.com/products/web3/overview/)세일스포스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고객관계관리(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를 수행하는 기업이다. 김영국, 김평호, 김지민 등이 2019년에 공저한 '세일즈포스, 디지털 혁신의 판을 뒤집다'를 읽어보자. 세일스포스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15만 고객사를 대상으로 저비용 신속한 정보기술(low costs, fast IT)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웹3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수년째 사라지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세계적 대기업도 웹3가 제조와 유통의 미래가 될 것임을 확신하지 못하기에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는 상황이다. 세일스포스가 일류 기업들을 위해 웹3 대전환으로 가기 위한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다. 고객사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웹3를 통한 영업혁신 플랫폼을 제안하고 웹3의 관점에서 고객의 데이터를 수집 및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일스포스가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웹3 교육콘텐츠는 고객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유용한 가이드북이다. 이번 호는 세일스포스의 웹3 교육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특히, 웹3를 매개로 전개되는 소비시대의 위험요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세일스포스의 웹3 소비자 교육은 크게 6개의 모듈(module)로 구성되어 있다. 각 모듈의 제목을 보면, 그 내용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되어있다.(https://trailhead.salesforce.com/ko/content/learn/trails/explore-web3)(1) 웹3: 인터넷의 미래. 이 모듈은 디지털 경제를 변화시키는 혁신적인 기반기술로서 웹3을 이해하고 웹3에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신뢰와 안전 이슈에 대한 맛보기 단계 (2)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의 개념, 작동원리, 역할, 목적 등을 살펴보기 (3) 디지털 지갑: 디지털 자산을 보관하고 지갑의 선택, 설정, 연결하기 (4)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분산된 자율 조직의 운영방식과 유형 및 교훈 (5) 스스로 통제하기(self-custody)와 디지털 소유권: 정보의 인터넷에서 가치의 인터넷으로 발전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상거래 유형과 디지털 지갑 활용법 (6) 디지털 지갑의 보안을 위한 최선의 관행: 디지털 지갑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당신의 자산을 이체하고 관리하기.소비자 관점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거래 안전성과 지갑 보안성이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것은 해킹이 가능하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뉴스가 가상자산 거래소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해킹이다. 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웹3를 향한 대중의 신뢰는 하락한다. 그런데, 해커가 개별 소비자의 지갑을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직접 해킹하지 않는 편이다. 사기꾼은 코드를 플레이(play)하지 않고 사람들의 심리를 악용해서 조종한다.당신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합법적 사이트와 동일하게 보이는 가짜 상황을 만들어서 디지털 지갑의 비밀번호(mnemonic)를 탈취한다. 소비자는 NFT 생성을 위해 스마트 계약에 접속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사기꾼이 당신이 스마트 계약의 상세한 과정을 보지 않는 것을 악용하여, 소비자 지갑에 있는 NFT를 탈취하는 것이다. 즉 '블라인드 서명'(blind signing)이 발생한다. 사회적 공학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링크를 주의하고 사이트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전체 스마트 계약 세부정보를 표시할 수 있는 '클리어 서명' 시스템을 통해 거래한다.궁극적으로 온라인 상태에서 해킹의 위협에 취약하다. 이 문제는 하드웨어 콜드(cold) 지갑을 사용하여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콜드 지갑은 여권과 유사하게 보안 칩을 사용하여 레이저 공격, 전자파 변조와 같은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 지갑에 설치된 앱과 디지털 자산 계정이 개별적으로 관리되어, 외부 공격을 통해 침입 된 손상이 격리되어 나머지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소비자는 지갑을 구입할 때 복구 기능의 포함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지갑에는 개인 정보가 저장되어 있으므로 지갑을 분실하거나 파손한 경우 온라인으로 복구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하드웨어 지갑의 단점은 구입비용, 물리적 손상, 환경설정의 어려움 등이다. 반대로 핫(hot) 지갑은 인터넷에 연결된 메타마스크와 트러스트월렛 등으로 거래가 편리하지만, 콜드 지갑보다 해킹 공격에 더 취약하다.(https://medium.com/coinmonks/the-best-cryptocurrency-hardware-wallets-of-2020-e28b1c124069)웹3의 잠재력은 엄청나지만 여전히 대중화를 위한 어려움도 많다. 인기 있는 블록체인의 높은 거래 수수료는 대규모 확장의 걸림돌이다. 대중이 암호화폐와 분산형 플랫폼 등에 익숙하기 위해서 능동적 학습도 필요하다. 웹3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부 정책은 규제와 진흥에서 주춤하고 있다. 그렇지만 웹3 기술은 거래의 투명화에서 창작자의 권리 보장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사회와 산업이 직면한 많은 도전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망한 길을 제공한다. 비관론이 있기는 하지만, 웹3 기술을 어떻게 성숙시키고 정부가 민간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채택하는지에 따라 미래의 많은 것이 좌우된다.세일스포스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웹3로의 방향 전환을 위한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혁신을 위해서는 가상자산을 둘러싼 크립토(crypto) 대(大)사기극의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 웹3 교육과정과 리터러시 함양을 통해서 NFT, 디지털 지갑, DAO, 디지털 소유권 등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개개인이 소비자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투자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하는 사기(scam) 코인 및 토큰을 제대로 탐색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디지털 자산을 매개로 한 거래정보가 고객에게 투명하게 공개되는 신뢰 시스템을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서 구축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남대 교수·사이버감성연구소 소장, nft-korea.eth>박한우 교수는?박한우 영남대 교수는 대구에서 초중고를 보내고 한국외국어대(학사), 서울대(석사), 미국뉴욕주립대(SUNY-Buffalo)(박사)를 졸업했다. 네덜란드 왕립아카데미(NIWI-KNAW)와 옥스퍼드인터넷연구원(OII) 등 글로벌 연구기관에서 근무했다. 영남대 부임 이후에 WCU웹보메트릭스사업단, 세계트리플헬릭스미래전략학회, 사이버감성연구소 등을 주도했다.물리적 경계 속에 한정되어 있던 인간관계와 시대이슈가 온라인을 통해서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기존 법칙에 도전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빅데이터 네트워크 방법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데이터 기반 주요 연구방법론인 과학계량학(scientometrics), 하이퍼링크분석(hyperlink network analysis), 웹계량학(webometrics), 대안계량학(altmetrics), 트리플헬릭스(triple helix) 등을 국내에 소개하고 선도해 왔다. 하이퍼링크 연결망은 INSNA(International Network for Social Network Analysis) Connections가 출판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 목록에 포함되기도 했다.SCImago-EPI Award, ASIST Social Media Award 등 국제 저명 학술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Quality & Quantity, Journal of Contemporary Eastern Asia 편집위원장(EIC)을 현재 맡고 있다. 최근에는 Scienceasset.com의 웹3 국제학술지 ROSA Journal의 초대 편집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사회연결망과 빅데이터를 통해서 데이터와 정보의 흐름 및 지식생산과 혁신체제 관련 이슈를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로서 SSCI급 저널에 100편 이상의 논문을 출판했고, 최근 2023년 5월에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nternational Communication Association)가 선정하는 석학회원(ICA Fellow)으로 뽑혔다.글로벌 연구성과에 못지않게, 이미 오래 전부터 수도권과 지방간 격차가 심해지면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는 등 국내외 이슈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창의적 지식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활용에 관한 중앙정부 및 지자체 자문위원으로서 이 분야에서 소외계층의 삶의 개선과 지역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빅데이터로 보는 우리 지역 세상을 탐구하자는 방향에서 '빅로컬 빅펄스(Big Local Big Pulse)' 랩을 운영하면서, 데이터 기반한 이슈탐지와 융합학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세일스포스 웹3 교육내용. 웹 캡쳐>세일스포스 웹3 교육내용. 판매중인 하드웨어 지갑들.박한우 영남대 교수
2023.08.08
[경산 뉴 파노라마 .4] 국내 묘목 생산 중심지
경산의 산업을 이야기할 때 종묘(種苗)를 빼놓을 수 없다. 경산은 묘목을 생산하는 국내 종묘산업의 메카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알맞은 기후 여건, 농업인들의 축적된 노하우, 행정력의 뒷받침 '세 바퀴'가 맞물려 전국 묘목 생산량의 70%를 책임지는 국내 최대 산지로 자리매김했다. 경산시는 종묘산업특구 활성화와 산업 고도화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심산이다. 무병묘와 포트묘 등 고품질 묘목 생산을 점차 늘려 부가가치를 높이고 국내 종묘산업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더욱 공고히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경산 뉴 파노라마' 4편에서는 경산 종묘산업에 대해 소개한다.◆100여 년 이어져 내려온 산업경산 종묘산업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한국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종묘사업을 벌인 것이 시발점이다. 이들은 경산에서 한국인 책임자들을 두고 상업적 종묘사업을 하며 접목 등 재배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이후 진량읍 보인리 출신인 조사현(1913~1976년)씨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상업적 육묘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일본인에게서 육묘기술을 배운 뒤 1930년대 독자적으로 묘목을 재배해 판매했다. 경산의 육묘산업은 차츰 번창해 1950년대에는 전국 유실수 생산을 독점할 정도였다. 묘목 생산에 알맞은 기후와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대규모 상업적 육묘산업이 이뤄지며 경산은 전국 최대 묘목 생산지로 발전했다. 특히 1968년 경북도 육묘장 설립은 경산이 전국 최대 묘목 생산단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1980년대에 접어들며 경산은 화훼, 조경수 등 다양한 품목을 개발해 전국 묘목시장을 휩쓸었다. 종묘산업도 보다 전문화되며 유실수 품목별로 묘목을 생산하는 전문 생산업체가 등장했고, 국외 신품종도 도입됐다. 사과의 경우에는 자근대목 포장을 통해 묘목을 생산하고, 포도는 전열 온상에서 발근·발아시켜 포장 이식하는 방법이 개발되기도 했다.1995년에는 석류, 대추, 감 등의 묘목을 일본에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나무를 가꾸는 기술을 알려준 준 국가에 역으로 고품질의 나무를 파는 기념비적인 일을 해낸 것이다. 10년 뒤인 2005년 8월에는 회원 372명으로 구성된 경산과수종묘연합회가 결성됐다.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대응하기 위해 묘목 생산자 단체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경산 종묘산업은 2007년 4월, 또 한번 전환점을 맞는다. 하양읍과 진량읍 일대(415㏊ 규모)가 경산종묘산업특구로 지정된 것이다. 이후 경산은 전국 최대의 종묘생산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전문·규모화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종묘산업특구 활성화를 위해 이듬해 7월에는 경산종묘클러스터사업단이 출범하고, 경산과수종묘연합회가 경산묘목영농조합법인으로 재출범했다.이어 경산시는 종묘산업특구를 경쟁력 있는 선진화 단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경산종묘기술개발센터(대지면적 1만6천947㎡)를 설립했다. 종묘기술개발센터는 우량묘목과 무병묘 생산 및 보급을 위한 기술 연구와 과수 유전자원 보전, 신품종 육성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우량묘목 보급을 위한 생산 기술 연구를 비롯해 경산지역에서 생산되는 묘목에 대한 주기적 바이러스 검사 및 우량묘목 생산 지원 등의 기능도 하고 있다. 경산에서 생산된 묘목의 원활한 유통을 위한 거점도 조성됐다. 2014년 11월 문을 연 경산종묘유통센터(대지면적 7천421㎡)다. 경산종묘유통센터는 연중 출하 시스템을 구축하고 우량종묘 자체 품질 보증제 실시 등으로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것은 물론 묘목의 유통 가격 안정화 등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종묘사업 시발점조사현씨 1930년대 독자적 재배·판매전국최대 육묘 생산단지로 자리매김하양·진량읍 일대 종묘산업특구 지정종묘기술개발센터·유통센터 문열어지형·토양·기후 알맞고 수자원 풍부3代 걸친 전문기술 축적도 강점으로경산시 종묘산업 경쟁력 강화에 박차 ◆전국 최고 품질의 묘목경산 묘목은 금호강 일대인 하양읍과 진량읍, 와촌면 등을 중심으로 생산된다. 이곳은 국내에서 묘목 생산에 가장 적합한 토양과 자연환경, 기후여건 등을 가진 지역으로 꼽힌다. 금호강 주변의 토양은 비옥한 퇴적 사질양토로 배수가 잘된다. 또 지형이 평탄해 파종, 관수, 굴취, 기계화 작업 등 각종 육묘작업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다. 경산은 금호강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저수지를 갖고 있어 수자원도 풍부한 편이다.경산의 분지지형 역시 묘목 키우기에 매우 유리하다. 연평균 기온은 13~15℃로 여름 기온이 높은 반면 겨울 기온은 경북 내륙지역보다 온화하다. 연평균 강수량은 850~1천㎜로 한국 평균보다 낮은 편이다. 반대로 일조량은 다른 지역보다 높아 묘목 성장에 도움을 준다. 경산은 겨울이 비교적 덜 추운 곳이라 묘목이 동해를 입지 않으며, 여름에는 태풍이나 장마 등으로 인한 자연재해도 거의 없는 편이다. 사통팔달 교통 인프라도 육묘산업 활성화에 한몫을 한다. 경산은 묘목은 물론 각종 물류 유통에 유리한 지역이다. 이 같은 기후여건과 자연환경에 더불어 종묘생산 기술까지 더해지면서 경산은 전국 최고 품질의 묘목 생산지로 각광받고 있다. 경산에서는 3대에 걸쳐 종묘산업을 이어나가는 가구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축적된 기술과 전문화된 지식을 갖춘 인적 자원이 풍부한 것은 다른 지역이 따라올 수 없는 경산만의 강점이다. 경산 종묘산업은 사과 묘목을 주종으로 각종 유실수를 비롯해 장미 묘목이 주류를 이룬다. 묘목 재배 농가는 680여 가구로 재배면적은 600㏊에 이른다. 이 가운데 과수가 400㏊, 장미 60㏊, 관상수 등이 140㏊다. 연간 묘목 생산량은 3천만주, 연간 생산액은 600억원 정도다. 경산묘목영농조합법인에 참여하는 농가 수만 540여 가구에 이를 정도로 묘목 생산자단체의 조직률도 높은 편이다.정희진 경산묘목영농조합법인 조합장은 "경산 금호강 주변은 사질양토에 일조량 많고 강수량이 적은 대신 저수지 등 수리시설이 잘 발달해 있어 묘목 생산의 최적지"라고 말했다.◆종묘산업의 미래를 이끈다2000년대 들어 경산 종묘산업은 더욱 체계화되며 발전하고 있다. 특히 경산은 우량 무병묘와 포트묘 등 새로운 묘목을 생산하며 국내 종묘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중이다. 무병묘와 포트묘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종묘산업 분야다. 무병묘란 총 17종에 해당하는 특정 바이러스와 바이로이드에 감염되지 않은 사과, 배, 포도, 복숭아, 감귤의 묘목을 말한다. 열처리, 생장점 배양 등을 통해 생산하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좀처럼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 또 15~20년의 재배기간 동안 과실의 생산량이 많고 품질도 우수하다.국립종자원은 2022년부터 과수무병묘목생산공급지원사업을 통해 무병묘목을 본격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5대 과종(사과·배·포도·복숭아·감귤) 묘목 유통량의 약 6.6%가 무병묘였다. 현재 경산은 전국 무병묘 생산의 6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작은 화분에 담겨 생산된 포트묘 역시 종묘산업의 미래 먹거리다. 포트묘는 심는 시기 조정이 가능하고, 어릴 때부터 직접 키우므로 가지를 원하는 방향으로 유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흙이 뿌리에 달려 있어 묘목이 죽을 확률이 적고, 이식을 하지 않으므로 뿌리 발근이 좋다. 포도와 사과 포트묘의 경우 경산이 전국 생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경산시는 종묘를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판단하고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수무병화관리기관과 조직배양연구실 운영은 물론 △종묘연구포장 운영 △종묘생산자 전문인력 육성 △경산묘목 홍보 행사 △종묘산업특구 우량묘목생산기반 구축 지원 △친환경 접목농자재 지원 △기계접목기 활용 스마트묘목 생산 시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박철호 경산시 농촌진흥과 종묘산업팀장은 "경산시는 우량하고 균일한 과수 묘목의 대량 생산과 무병묘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무병묘의 안정적 생산 및 공급으로 경산 묘목의 품질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글=김일우〈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경산시 하양읍에 위치한 경산종묘기술개발센터(위쪽)와 경산종묘유통센터. 두 기관은 경산종묘산업특구를 경쟁력 있는 선진화 단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각각 조성됐다.경산종묘기술개발센터 사과무병대목모수포장에서 다양한 품종의 사과 묘목이 자라고 있다. 종묘기술개발센터는 과수 신품종 육성과 무병묘의 안정적인 생산 등을 연구한다.경산종묘유통센터에는 경산 종묘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홍보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노벨문학상 산책]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오지 않는 구원자를 기다리며… 그래도 그들은 웃는다
1949년에 완성되었으나 1952년에 출판되고, 1953년에 파리에서 초연된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명 작가였던 사뮈엘 베케트를 하룻밤 사이에 유명 작가로 부상시켰으나 이 극이 쉽게 대중과 만난 것은 아니었다. 이 작품은 텅 빈 시골길 초라한 관목 옆에서 오지 않는 구원자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떠돌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여러모로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워 출판사, 연출가, 배우, 극장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아방가르드의 선두주자였던 로저 블랭이 연출뿐 아니라 포조 역을 맡기로 하면서 공연이 성사되고, 바빌론느 극장서 초연 후에는 비로소 폭발적인 대중의 반응과 접하게 된다. 이 작품은 바빌론느 극장에서만 400회 공연되었다.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 집필이 소설 쓰기의 고통을 잊기 위한 기분전환용이었다고 토로했지만 꼭 필요한 부분만 남겨놓고 제거해 버린 듯한 미니멀한 스타일과 주제의 심오함은 전 세계 연극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장소 모호인물들 대화 오가지만 오해 반복부조리한 상황·의사소통 한계 강조이해하기 어려운 삶 용기있게 직면현대인의 궁핍함 고양감 얻는 순간이 작품은 여러모로 획기적이다. 인물들이 직면한 문제는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어디에, 왜 있는지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베케트는 자신의 작품을 부조리극이라고 부른 적은 없지만 에슬린이 저서 '부조리극'(1961)을 발표한 이후 그렇게 분류되고 있다. 에슬린은 부조리란 용어를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서 가져온다. '부당한 이유를 가지고라도 설명할 수 있는 세계는 친근한 세계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환상과 이성의 빛을 빼앗긴 우주 속에서 인간은 이방인으로 느낀다. 이 망명지에는 구원이 없다…. 인간과 그의 삶, 배우와 그의 무대 사이의 단절, 이것이 바로 부조리의 감정이다.''고도를 기다리며'는 여러모로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늙은 방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왜 자신들이 이 쓸쓸한 시골길에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다. 이 불확실한 장소에서 그들은 영원한 이방인이다. 자신의 과거도 현재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은 자신의 삶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다.'고도를 기다리며'는 2막으로 구성되는데 시간과 공간 배경은 동일하게 저녁 무렵, 시골길이다. 저녁 무렵이 되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시골길에 있는 나무 곁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올지 안 올지도, 자신이 맞는 장소에서 기다리는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그들은 고도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으로 믿으며 나무 옆에서 기다린다. 부조리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극은 사실주의 극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과의 연결 고리를 차단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살고 있는 시점도 불분명하고 장소도 확실하지 않다. 텅 비어있는 길과 잎이 몇 개 달린 나무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은유가 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전기적 정보도 제한된다. 그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정보도 파편적이다. 시간이 경과해도 구원자는 오지 않지만, 인물들은 노쇠해간다. 1막에서 당당하던 포조는 2막에서는 눈이 먼 채 하인인 럭키에게 끌려다닌다. 1막에서는 장시간 장광설을 내뱉던 럭키는 벙어리가 된다. 1, 2막 모두 소년이 등장해서 고도가 오지 않는다고 전한다. 소년이 나가자마자 달이 뜨고 밤이 온다. 고도가 오지 않았음을 확인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자살을 할까 생각하지만 결국 자살에도 실패한다. 이 연극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함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한계를 강조한다. 둘은 서로의 말을 오해하기 일쑤다. 언어는 두 친구에게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기보다는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어주는 도구, 유희의 방편이 된다. 언어 희화화의 가장 극단적 사례는 럭키의 장광설이다. 럭키의 장광설에서는 철학적, 신학적 용어들이 변형되고 파편화되어 나열된다. 이는 언어가 진리를 전달하는 기능을 상실했음을 시사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느끼는 지루한 절망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극은 1막과 거의 유사한 내용을 2막에서 반복한다. 뿐만 아니라 2막의 끝에서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 즉 기다림은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막이 반복될 뿐 아니라 대사도 빈번하게 반복된다. 포조와 럭키의 등장 또한 반복되고, 소년의 등장 또한 그러하다. 1, 2막의 마지막에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전하는 소년은 동일인이다. 하지만 그는 블라디미르에게 그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블라디미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그의 존재를 위협한다. 반복이 때로는 위협이 된다.1969년 노벨상 위원회는 베케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면서 선정 취지를 "소설과 연극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그의 글 속에서 현대인의 궁핍함이 고양감을 획득하게 된다"라고 설명한다. 얼핏 보면 베케트의 작품이 고양감을 준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베케트는 대담록 '세 가지 대화'(1949)에서 미술에 대해 언급하면서 "표현할 것이 없으며, 표현의 도구도 없고, 표현의 근원도 없으며, 표현할 힘도, 욕망도 없으나, 표현의 의무만 있는 것의 표현"을 선호한다고 말한 바 있다.베케트는 전달 능력도 없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서 말할 거리도 없는 초라한 인간 세상에 대한 표현 의무를 완수한다. 인용문은 작가의 상황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의 인물들의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노벨상 위원회가 지적한 '고양감'이 배어 나온다. 구원자 고도가 오지 않더라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나무 곁을 떠나지 않으며 어떻게든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그들은 나름의 영웅성을 지닌다. 그들은 또한 삶이 아무리 이해 불가하고 부조리할지라도 매우 자주 웃음의 원천을 찾아낸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연금술사와 같다. 절망과 패배의 징후가 농후한 세상에서 그들이 웃음의 원천을 찾아낸다는 것은 부족한 인지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겉과 속의 다름을, 인간의 정체성의 균열을, 꿈과 현실의 차이를, 육체와 정신의 간극을 간파해내고 그것을 웃음으로 피어 올린다. 그런 점에서 베케트뿐 아니라 그의 인물들도 어두운 현실을 직면해내는 용감한 현대인이다.김소임 교수 (건국대 영어문화학과)공동기획: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김소임 교수는 건국대 영어문화학과에서 '영미 드라마' '미국의 이해' '영화이론의 이해' 등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에머리 대학교에서 '사뮈엘 베케트 연극의 공간 연구'로 박사학위로 받았으며 인문과학대학장, 현대 영미드라마 학회장, 동화와 번역 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베케트의 독특한 가치관과 연극적 구현뿐 아니라 현대 드라마 전반에 나타난 남녀 간의 갈등, 인종 갈등, 신화의 현대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대 연극뿐 아니라 고전 연극, 르네상스 연극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최근에는 영화와 페미니즘으로 연구의 폭을 넓혀 다수의 책의 기획과 편집에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베케트읽기' '아일랜드, 아일랜드'(이하 공저), '퓰리처 상을 통해 본 현대 미국 연극' '영화로 보는 미국 역사' '문화로 읽는 페미니즘' '우리 안의 나쁜 여자' '영화로 보는 영국 역사'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부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존 왕'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사무엘 베케트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Krapp's Last Tape, 베케트 그리고 아일랜드' 외 다수가 있다.김소임 교수 (건국대 영어문화학과)
2023.08.04
[주말&여행] 지금 가면 좋은 8월의 바다 4選…태양이 작열해도 '내 마음은 파랑 !'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바다를 보면, 선미에 서서, 한없이 뒤처진 채로, 항해를 하는 듯하다. 방파제는 내항의 바다를 주름살 하나 없이 펴놓았고 그 문진 같은 방파제 너머로 갯바위들은 새 떼처럼 앉았다. 도사리고 있는 바위들, 그것은 대범하고도 도도하고, 동시에 파도와 함께 다정하다. 파도와 바위, 모래와 사람들, 바다와 태양, 무엇보다도 태양!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기대는 시선이 된다. 경청이 되고 호흡이 되고. 급기야 갈증이 된다. 뛰어들지도 몰라! ◆강원 삼척 장호리…유리알처럼 맑고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보석상자'장호리 앞바다는 기암의 군락. 바위가 엇갈리며 물길을 여는 바다의 협곡이다. 알개암, 내독암, 미역너느바위, 독바위와 같은 화강암 괴석들이 오래되어 선명한 주름을 드러내고, 주름을 따라 움푹 파인 해식노치가 곳곳에서 까만 눈을 뜬다.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200여m 구간의 해안은 수심이 1m 미만이다. 연중 적절한 수온대를 형성해 다양한 어자원이 서식하고 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 바다는 유리알처럼 맑고 에메랄드처럼 빛난다. 녹주석 같은 해초들이 윤슬에 연마되어 바다는 그대로 보석상자다. 낮은 수역이 넓다 보니 예부터 창경바리로 살아가는 어부들이 있었고 여름이면 먼 데서 온 사람들이 투명 카누를 타고 스노클링을 즐긴다. 방파제가 껴안은 내항은 크고 깊고 잔잔하다. 하늘에는 소나무 울창한 남쪽 곶에서부터 출발한 케이블카가 어판장 위를 지나 내항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빨간 등대 위를 난다. 장호의 바다는 뛰어들고, 젖고, 만지고 싶은 곳이다. 바다의 윤슬에 몸을 내맡기고, 해초의 보드라운 살결에 뺨을 부비고, 바위의 절리를 손끝으로 쓸어보아도 좋다. 그저 가까이 마주 보아도 좋고, 하늘에서 내려다보아도 좋다. 무엇을 하든, 좋다. ◇ 여행 Tip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IC로 나가 동해대로를 타고 계속 북향한다. 강원 삼척에 들어선 후 약 13㎞ 정도 가다 신남교차로에서 장호항길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삼척 해상케이블카는 성인 왕복 1만원, 소인 완복 6천원이며 주변에 카페와 전망대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스노클링, 투명카누 등의 액티비티와 캠핑이 가능하다. ◆경북 울진 나곡리…데크 있는 송림·모래·자갈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해변 나곡3리 나실마을에 나곡해수욕장이 있다.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갯마을이지만, 데크가 있는 송림과 모래와 자갈이 어우러진 해변, 크고 작은 갯바위가 선 바다, 그리고 바다로 흘러드는 나곡천이 함께하는 평화로운 곳이다. 모래놀이 하는 아이, 스노클링을 하는 청년, 다이빙을 하는 소년, 낚시를 하는 남자,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누군가, 가만히 바다 멍을 하는 여자. 저마다 가장 좋은 바다를 갖지만 나로서는 나곡천의 끝자락에서 종아리를 담그고 서서 천이 바다가 되는 물살을 느껴보는 것이 가장 좋았다. 나곡1리는 석호마을이다.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를 촬영한 곳이다. 어린 병수와 영채가 걷던 호숫가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 바다에는 돌섬인 해망산이 있고 백로 떼가 날아든다는 백로암이 있다. 바닷가 남쪽 갯바위에는 전망 데크가 놓여있고 낚싯대 든 청년들의 조잘댐이 끝없다. ◇여행 Tip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IC로 나가 동해대로를 타고 간다. 죽변항 지나 북면 부구의 언덕을 넘으면 나곡1리 석호, 조금 더 가면 나곡3리 나실이다. 나곡해수욕장에는 샤워실, 식수대, 화장실, 식당, 무인카페 등 다양한 편의시설과 차박, 캠핑이 가능한 데크 등이 마련되어 있다. ◆경북 포항 하정리…일출을 본 사람은 언제나 그곳의 태양을 그리워한다 일출을 보기 위해 호미곶으로 달리던 사람들이 구룡포에서 마음을 바꿔 향하는 곳이 하정리라는 소문이 있다. 그리고 단 한번 하정리의 일출을 본 사람은 언제나 그곳의 태양을 그리워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소문도 있다. 하정리는 구룡포읍의 남쪽 해안을 따라 길게 자리 잡은 마을이다. 하정1리 임물마을은 하정리에서 모래사장이 가장 너르다. 모래사장의 가장자리에는 여름 물놀이객을 위한 평상구조물들이 줄지어 설치되어 있고 평상대여, 물놀이 용품 대여, 음식 배달 등의 글들이 길가에 가득하다. 하정2리 어촌계 공동작업장에는 해녀들의 고무 옷이 널려있다. 하정1리 당사포에는 모래밭에 꽃들이 피어있고 고흐의 노란 별들과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과 여러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과 활짝 피어난 꽃들이 고샅을 지키고 있다. ◇여행 Tip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IC로 나가 31번 국도를 타고 구룡포로 간다. 구룡포읍에 도착하기 직전 병포교차로에서 하정리, 감포 방향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좌측으로 처음 보이는 바닷가 마을이 하정3리 당사포다. 남쪽으로 하정2리, 하정1리가 이어진다. ◆울산 주전동…몽돌의 해변, 울산 12경 하나로 울산 사람들의 강추 1번지주전동은 바닷가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동네다. 남북으로 얼추 3㎞가 넘고 하리항, 큰불항, 주전항 등 항구가 3개나 된다. 주전항 북쪽에 몽돌해안이 있다. '울산 12경' 중의 하나로 울산 사람들이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이라 한다. 번다한 항구들을 거쳐 검은 몽돌의 해변에 들면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비워진다. 1.5㎞에 이르는 해안에 까만 몽돌이 가득, 새알같이 둥근 돌은 크기도 제각각이다. 주전의 몽돌은 용암이 천천히 식어서 된 안산암이다. 처음에는 주상절리와 같은 지형이었던 것이 바람과 파도에 깨지고 깎여 돌멩이가 되었다. 걸음마나 자글자글 이를 악무는 소리 들린다. 먼 데서 들려오는 차륵차륵 절도 있게 구르는 소리 위로 알록달록한 파라솔과 시원하게 몸을 드러낸 여인들, 젖은 채 돌아다니는 사내들의 모습이 환영으로 펼쳐진다. 파라솔의 색동 그늘에 몸을 묻은 연인들과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육신만이 가질 수 있는 기쁨이 있다. ◇여행 Tip경부고속도로 경주, 부산 방향으로 간다. 언양 분기점에서 16번 울산선을 타고 울산IC에서 내려 7번국도 북부순환도로를 타고 간다. 연암IC교차로에서 31번 국도 무룡로로 감포, 강동동 방향으로 가다 무룡나들목에서 오른쪽 주전동 방향으로 가면 된다. 해변에 아이들을 위한 무료 물놀이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바나나보트, 밴드왜건, 수상마차, 제트스키 등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장호리 앞바다는 기암의 군락, 바위가 엇갈리며 물길을 여는 바다의 협곡이다.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바다는 수심이 얕으며 유리알처럼 맑고 에메랄드처럼 빛난다.나곡3리 나실마을의 나곡해수욕장. 낮은 산과 송림, 모래사장과 갯바위, 바다와 나곡천이 어우러진 작고 아름다운 해변이다.일출을 보기 위해 호미곶으로 달리던 사람들이 구룡포에서 마음을 바꿔 향하는 곳이 하정리라는 소문이 있다. 하정1리 임물마을은 하정리에서 모래사장이 가장 너르다.주전 몽돌해안은 울산 12경 중 하나다. 1.5㎞에 이르는 해안에 새알처럼 둥글고 까만 몽돌이 가득 펼쳐져 있다.
"청정영양서 솔바람 마시며 계곡물 샤워·별빛 야행 즐겨요"
경북 영양군은 남이 장군의 얼이 깃든 선바위를 비롯해 역사적 가치를 지닌 수많은 명소와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곳이다. 그러나 관광지로서의 경쟁력과 인지도는 낮았다. 가장 큰 이유는 '육지 속의 섬'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접근성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가는 길'이 불편하니, '오는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영양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다. 코로나 사태로 청정하고 안전한 관광지를 찾으려는 수요가 늘면서 영양이 새삼 주목받았다. 여전히 숙지지 않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던 숨은 명소가 속속 드러나면서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영양군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영양엔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청정함이 살아있다.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최고의 웰빙 여행지라 할 만하다. 사람과 자연, 천혜의 환경에서 자란 제철 음식 등을 테마로 한 멋진 휴식과 힐링의 장소다. 이 같은 영양의 매력을 즐기려면 지금이 최적기다.영양은 하늘, 바람, 별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영양을 찾은 이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빛 공해가 없고, 굴뚝 산업이 없어 마실 수 있는 맑은 공기는 덤이다. 찾는 이들이 감탄을 자아내는 영양의 숨은 명소, 어떤 곳이 있을까.아늑한 주실마을 시인 조지훈 생가이문열의 광산문학관 찾아 문향 음미바닥이 보일 듯 투명한 '수하계곡'언덕 위 숲속 광장엔 새들의 합창밤엔 반딧불이 춤추고 별빛 수놓고…검마산 자작나무숲 거닐며 심신 힐링도◆문향(文鄕)인 영양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영양은 예부터 이름난 문인의 고향이었다. 시인 조지훈, 국민작가 이문열은 영양의 자랑이다. 조지훈 생가인 호은종택이 있는 일월면 주실마을은 4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온 아늑한 분위기로 관광객을 매료시킨다.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은 호은종택뿐 아니라 옥천종택과 같은 숱한 문화자원은 찾는 이의 발길을 절로 멈추게 한다.이문열의 고향인 석보면 두들마을은 석계 이시명 선생과 그 후손인 재령 이씨의 집성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문열 외에도 항일 시인인 이병각, 이병철이 이 마을 출신이다. 또 조선시대 양반가 음식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한 정부인 장씨의 자녀 교육과 덕행에 대한 이야기들도 전해내려 오는 곳이다.낙산 오씨가 400여 년을 살아온 감천마을(영양읍 감천리)에는 마을 한가운데 웅장한 44칸 기와집이 자리한다. 전통가옥의 예스러움과 함께 양반가의 과거 영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항일시인으로 알려진 오일도 또한 이곳 출신이다.문향의 고장인 영양을 체험하기 위해 안성맞춤인 곳은 단연 영양 산촌박물관(입암면 연당리)이다. 선조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실내·야외전시장이 있다. 이곳의 자연생태체험장은 저수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수생동식물과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는 자연관찰 코스가 있다. 투방집과 너와집 등 조선시대 산촌마을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체험 코스도 있다.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지훈문학관과 이문열의 광산문학관을 찾아 며칠 머물며 문학에 흠뻑 빠져볼 만하다. ◆숨은 명소 '수하계곡'과 '밤하늘공원'수하계곡(수비면 수하2리)은 '청정 영양'을 상징하는 명소다. 하천변을 따라 무성한 솔숲과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계곡물이 큰 특징이다. 꺽지, 수달이 살고 은어떼도 물길을 거슬러 올라온다. 이슬을 머금은 반딧불이의 영롱한 자태와 수많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별이 풍기는 아름다움 또한 빛난다.수하계곡은 태백산맥 남쪽의 일월산, 울렬산, 금강산 등에 둘러싸인 깊은 계곡의 땅이다. '물 깊은 마을'로 불리는 지푸내(深川)부터 오동나무 무성한 '오무마을'까지 20㎞의 물길이 장관을 이룬다.이끼 하나 없는 차디찬 계곡물의 가장 큰 특징은 투명함이다. 탁하지 않고 물속이 훤히 보인다. 하얀 화강암으로 이뤄진 크고 작은 소(沼)와 물살에 씻겨 반드러워진 돌들이 그 청정함을 한눈에 보여준다. 기암은 물 밖으로 불쑥 고개를 내밀고 반짝이는 모래톱과 부드러운 자갈밭은 가까운 뭍으로까지 이어진다. 천변의 벼랑 위에는 솔숲이 무성하다. 울창한 숲의 내음이 계곡 전체에 잔잔히 퍼져 있다. 숲 내음 마시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계곡 초입에는 생태숲과 생태공원이 자리한다. 언덕 위로 꽤 넓은 공간에 꾸며놓은 생태숲에는 수생식물 관찰장, 음지식물원, 반딧불이 광장, 숲속 광장, 하늘광장, 솔바람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반딧불이는 해가 진 후에야 볼 수 있지만, 여름 한낮의 산책 또한 놓치기엔 아깝다. 생기로운 수목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엔 새들의 지저귐이 멈추지 않는다.최근 이곳은 사계절 캠핑 명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영양군 청소년수련원 캠핑장은 총 34면으로 구성돼 있다. 오는 10일까지는 예약이 가득 찰 정도로 인기다. 이곳은 캠핑장 데크사이트 증설을 비롯해 샤워장·북카페 등 편의시설도 조성됐다. 30m 길이의 야외 수영장은 가족단위 피서객에게 안성맞춤이다.이곳 전체가 아시아 유일 '밤하늘보호공원'이다. 불빛이 자취를 감추면 나타나는 수하의 밤하늘은 은하수를 비롯해 천체의 아름다움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반딧불이가 수놓은 장관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영양의 명품 '자작나무 숲'1993년 조성된 자작나무 숲(수비면 죽파리 검마산)은 국유림 중 최고의 명품 숲이다. 축구장 40여 개에 달하는 총면적 30ha에 빽빽이 들어선 20m 크기의 자작나무 숲은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힐링 기회를 준다.자작나무 숲은 죽파리 장파경로당에서 입구까지 약 4.8㎞의 임도다. 도보로 1시간, 차량으로는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임도를 이용해 차량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약 1.6㎞ 정도이며 나머지 3.2㎞ 정도는 도보로 이동해야 해 부담이 적지 않다. 최근 영양군은 이곳에 도로 확장, 전기차 배치 등 관광객 편의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경북도와 영양군은 자작나무 숲을 국내 최고의 힐링 숲으로 가꾸기 위해 앞으로 자작나무 숲에 힐링센터, 체험원, 안내센터 등 편의시설 확충과 함께 등산 지도사 배치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전통문화체험은 '음식디미방'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석보면 두들마을)은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전국적인 명소다. 350년 전 음식을 맛보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이곳은 다도·서예·연날리기 등의 전통문화도 즐길 수 있다.전통문화체험관광지 10선에 2년 연속 선정된 이곳은 본격 운영에 들어간 2018년 이후 지난해까지 10만명이 넘는 유료 체험객이 다녀갔을 정도다. 전통음식체험공간·전통휴양공간·장계향문화체험교육공간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음식, 전통주 만들기와 함께 예절 교육 등도 가능하다.잘 알려진 것처럼 영양은 산나물의 고장이다. 일월산에서 자란 50여 종의 산나물은 연중 식탁에 오른다. 영양군 어디에서나 4계절 산나물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영양 산나물 조리의 비법은 음식디미방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운철기자 baeuc@yeongnam.com수하계곡 야외 수영장에서 가족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하며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피서객이 자작나무 숲길을 걸으며 사색의 시간을 갖고 있다.
[떠나요! 포항 전통시장 감성여행 .1] 죽도시장
포항은 동해안을 대표하는 관광 도시다. 바다와 강, 산과 계곡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형태의 관광이 가능하다. 명승지 투어부터 등산, 트레킹, 캠핑, 해수욕은 물론 동해를 무대로 박진감 넘치는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만큼 사계절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더욱이 포항 여행에는 재미를 더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먹을거리다. 동해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부터 과메기, 모리국수 등 특색있는 음식들이 여행객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보고 먹고 즐기는' 포항 여행의 삼박자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전통시장 투어를 빼놓을 수 없다. 전통시장은 단순히 상품을 매매하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의 터전이자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성을 지닌 명소인 셈이다. 영남일보는 오늘부터 '떠나요! 포항 전통시장 감성 여행' 시리즈를 6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매일 새벽 어시장 경매로 하루 열어이름 모를 해산물 지천으로 펼쳐져회·과메기·수제비 등 먹자골목까지농산물·전통시장 합쳐 거대한 규모안내도 숙지해도 구역 맴돌기 일쑤대낮처럼 환히 불 밝힌 새벽 5시, 땡그랑 땡그랑 종소리 울린다. 경매 시간을 알리는 경매사의 종소리다. 장대를 쥔 경매사와 숫자가 적힌 모자를 쓴 수십 명의 중도매인들이 마주 서더니 깍듯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나눈다. 그들 사이 바닥에는 문어들이 널브러져 있다. 곧장 경매사의 낮고 구성진 읊조림이 시작된다. 이를테면 '상품설명'일 터. 아무리 귀를 쫑긋해 봐도 경매사의 말은 귓바퀴만 스친다. 찰떡같이 알아들은 중도매인들의 옷깃이 들썩들썩, 깃으로 감춘 손들이 쥐락펴락 빨라진다. 순식간에 아! 하는 탄식이 들린다. 음, 하는 만족의 얼굴도 보인다. 흡사 매의 사냥이고 평원의 전투다. 죽도시장은 매일 새벽 수산물 경매로 하루를 연다. ◆바다가 하는 일, 사람이 하는 일죽도시장은 동빈내항 깊숙이 자리한다. 내항에 각종 생선과 해산물들이 부려지면 곧장 코앞의 위판장으로 옮겨진다. 죽도시장의 바다 것들이 유독 '물이 좋은' 이유다. 이맘때 경매의 꽃은 바로 문어다. 작게는 400g에서 큰 것은 20㎏에 이르는 대형문어까지 다양하다. 경매인들의 눈치작전은 치열하고 찰나의 순간에 기쁨과 아쉬움의 승패가 교차한다. 살이 통통하게 차오른 큰 문어들은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양이 적은 날에는 아무래도 값이 오르기 마련이다. "물에 든 건 알 수가 없거든. 바다가 하는 일을 어찌 알겠나. 오늘 잡았다고 내일 잡는다는 보장도 없고. 물속의 일은 알 수가 없어." 그러니 그저 오늘에 만족하고 내일을 기약한다. 경매가 끝난 위판장은 이제 좌판의 차지가 된다. 포항 연근해는 물론 전국 각지의 해산물이 착착 진열된다. 이름도 모르고 본 적도 없는 바다 것들이 지천이다. 전복은 소쿠리의 얼음 위에서 뒤집기를 시도하고 문어는 좌판을 탈출하려 용을 쓴다. 소라와 고둥은 탑처럼 쌓였다.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해산물을 보고 있으면 바다의 풍요로움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위판장은 좌판과 사람들로 가득해 떼꾼한 자리가 없다. 이 북적한 공간을 수레꾼은 숨도 쉬지 않고 "짐이야! 짐이야! 짐이야! 짐이야!"를 외치며 날쌔게 달리고 부릉부릉 얼음을 실은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좁은 통로를 누빈다. 인사가 오가고, 흥정이 오가고, 돈이 오가는 동안, 토막 내고, 채 썰고, 포 뜨고, 껍질을 벗기는 여인들의 손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보고, 사고, 먹고, 해산물에 대한 모든 것위판장 맞은편 포항수협 건물을 지나면 어시장에 닿는다. 대게, 홍게, 꽃게는 물론 독도새우, 꽃새우, 닭새우가 있고 참소라, 뿔소라, 나팔소라가 있다. 고등어, 갈치, 오징어, 문어, 낙지, 전복이 있고 가자미, 조기, 도루묵, 소라, 고둥, 멍게, 해삼, 가리비, 바지락 등 바다에서 나오는 모든 해산물이 펼쳐진다. 손질은 기본, 먹는 방법도 알려준다. 생물 문어는 물론 삶은 문어도 있고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 다리만 판매하기도 한다. 생선가게가 문을 열 때 얼음가게도 문을 연다. 어시장 매상이 오르면 얼음집 매상도 오른다. 운이 좋다면 개복치 해체 작업을 볼 수 있다. 개복치는 포항의 전통 별미다. 이제는 죽도시장에서도 개복치를 취급하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고 개복치를 해체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몸길이 2m가 넘는 개복치는 부위별로 해체해 삶아서 먹는다. 개복치 삶는 날 시식까지 한다면 최고다. 더 운이 좋다면 상어를 해체하는 작업도 볼 수 있다. 진귀한 풍경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절로 멈춰진다. 아직 깜깜한 어시장에 일찍 불을 밝힌 가게도 있다. 손님도 상인도 없는 어시장에서 몇몇 할매들이 회를 썬다. 살아있는 회는 서울 시장에서 취급하지만, 서울 시장에서 쓰는 막회는 전부 죽도시장에서 올라간단다. 손질되고 포장된 참가자미와 숭어, 물가자미 따위가 오전 6시20분 차를 타고 서울로 간다. 강남터미널에 도착하는 시간은 11시 반. 곧바로 퀵 서비스 오토바이가 점심을 준비하는 식당으로 달린다. 그사이 죽도시장 횟집들도 손님 맞을 준비를 끝냈다. 수협 위판장을 중심으로 한 횟집 골목에는 200여 개의 횟집이 밀집되어 있다. 회를 먹을까, 물회를 먹을까. 혼자라도 회를 먹을 수 있고 초장값만 더하면 밥과 매운탕까지 맛볼 수 있다. 회도 물회도 포기할 수 없다면 일단 회를 뜬 다음 물회 양념을 추가하면 된다.어시장 바깥쪽으로는 말린 생선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물가자미, 참가자미, 조기, 열기, 용가자미, 도루묵, 장어, 대구뽈, 민어, 미주구리 등 햇빛과 바닷바람을 맞은 것들이 짭조름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위판장과 휫집골목 사이에는 고래고기 골목이 있다. 고래고기는 부위별로 12가지 맛이 난다. 죽도시장의 고래고기 원조는 '원조할매고래'다. 1960년부터 가게를 열었으니 벌써 3대, 60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고래잡이는 불법이다. 이렇게 맛볼 수 있는 고래들은 모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물에 걸린 녀석들이다. 가끔 신문이나 방송에 '밍크고래가 걸렸다'며 몸값이 소개되곤 하는데 그들의 다음 행선지 중 하나가 이곳이다. 오가는 사람도 많고 특이한 광경에 사람들의 시선도 맹렬하다. ◆갈대 늪에서 동해안 최대 시장으로 죽도시장 하면 어시장, 회 타운, 건어물시장을 우선 떠올리지만 실제로 이 시장은 죽도시장, 죽도어시장, 죽도농산물시장 등 세 곳이 합쳐진 곳이다. 시장 면적이 약 15만㎢에 이르고 점포 수는 2천500개 정도 된다. 모두 25개 구역이 횟집골목, 건어물 아케이드, 식품 아케이드, 식자재 거리, 신선 닭, 젓갈 거리, 농산물 아케이드, 24시 대게 회 거리, 먹자골목, 과메기 거리, 수제비 골목 등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수산물에서부터 농산물, 청과물, 죽세공품, 한복, 수예, 이불, 주전부리 등 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거의 모든 품목을 만날 수 있는 너른 장터다. 사람들은 '여기에 없으면 아무 데도 없다'며 으쓱한다.죽도시장이 자리하고 있는 죽도동은 원래 섬이었다. 옛날 형산강 입구에는 대도, 상도, 해도, 송도, 죽도 등 5개의 섬이 있었는데 이 중 죽도는 늪지대로 갈대가 우거져 갈대섬이라고 불렸다. 죽도의 갈대밭에 하나둘 좌판이 모여 옹기종기 장터가 형성된 것이 1930년대부터다. 장터는 점점 덩치가 불어났고 6·25전쟁 직전에는 현재 죽도시장의 3분의 1 규모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으로 시장은 거의 불타버렸다. 전쟁이 끝나고 복구가 시작됐다. 1960년대에는 구획정리사업이 전개되었다. 1969년 포스코가 들어서면서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고, 1971년 11월 시장 허가를 받았다. 동빈내항이 동해안의 대표적인 항구로 포항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성장함에 따라 죽도시장은 경북 동해안과 강원도 일대의 농수산물이 집결하고 유통되는 요충지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시장 현대화에 많은 공을 들였고 2015년부터는 청정 해수 공급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이런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죽도시장의 역사는 100년 가까이 된다.지금도 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이고 포항을 찾는 관광객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광명소다. 특히 매 주말이나 명절 시즌 또는 포항에서 큰 축제가 열릴 때면 죽도시장을 둘러싼 길은 북새통이 된다. 시장 내외부에 크고 작은 주차장들이 있지만 북새통에 얽히고 싶지 않다면 조금 떨어진 오거리공영주차장이나 평화주차장 등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죽도시장은 거대하다. 주먹 꽉 쥐고 집중해서 안내도를 숙지하여도 두세 구역만 맴돌거나 주차장을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다. 죽도시장의 에너지는 압도적이다. 설렁설렁 한량으로 돌아다녀도 어느 사이 대퇴근에 열기가 솟는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포항시. 국내시장백과. 한국지명유래집. 공동기획 : 포항시포항 죽도어시장에서 상인들이 동해에서 갓 잡아올린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으로 횟집·먹자골목, 건어물·식품·농산물 아케이드, 젖갈·식자재·대게 회·과메기 거리 등으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포항 죽도시장 입구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죽도시장에는 어시장 외에도 각종 곡식과 채소, 과실, 특용작물을 취급하는 농산물시장이 있다.동해에서 잡은 해산물은 동빈내항을 통해 죽도어시장 위판장으로 옮겨진다.
2023.08.03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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