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양 외과의사가 바라본 일본 풍경]일본에서 배운다
과거 일본은 우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부족한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에도(지금의 도쿄) 말기 일본은 미국 통상 압박을 받자 말자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방향을 잡았다. 서양에 사절단을 파견한 후 일본은 독일을 모델로 삼았다. 유럽에서 독일이 기존의 강국을 따라잡기 위해서 노력한 것을 일본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럽의 30년 종교 전쟁 후 신성 로마 제국은 해체되고, 프랑스, 영국이 유럽의 강자로서 군림하는 동안 독일은 수백 개 제후국으로 나누어져 존재가 미미했다. 드디어 1871년 비스마르크 체제하에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을 이루었다. 이미 제국주의에 편승한 영국, 프랑스를 따라잡기 위해 프로이센은 사회제도를 정비하면서 추격에 나섰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는 아주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대부분은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교육, 군대등 눈에 보이는 큰 제도를 정비한다. 독일 역시 정비된 군대의 힘으로 프랑스를 굴복시키고 존재감은 높아졌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답보 상태라서 고민을 하던 중에 1896년 한 명의 외교관 제안을 받아들인다. Hermann Muthesius(헤르만 무테지우스)는 건축을 전공한 외교관이었다. 그는 중산층의 생활이 향상되고 취향이 좀 더 세련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고 보았다. 국가 간 경제, 외교의 장은 소리 없는 전쟁터인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지금도 무시당할 제안인데 정부는 이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를 영국에 7년간 외교관으로 파견한다. 무테지우스는 7년간 영국 중산층들의 삶을 분석했다. 흔히 영국문화를 얘기하면 파티, 경마 등 호화로운 귀족적인 영국인의 삶을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정원을 가꾸고 꽃을 만지고 차를 마시고 대화하는 일상생활에서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중산층의 이런 소박한 문화수준이 높아져야 국가가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귀국해서 보고서를 올린다. 내용은 영국인 가정이 어떤 음식재료를 사용하고, 손님이 오면 어떻게 대접하고, 차는 무엇을 마시는지, 정원은 어떻게 꾸미는지 개인적인 취향까지 기록했다. 이런 기록을 기반으로 사람들 삶의 스타일을 제시하고 1907년 독일 공작 연맹을 창설했으며 이는 이후 유명한 바우하우스의 뿌리가 된다. 이 부분은 독일이 이후 강대국이 되는 여러가지 조건 중 한가지라고 평가되는 부분이다. 아주 짤막하게 기록해 두었지만 나에게는 감동적이었다. 여론 조사를 보면 한국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아주 낮다. 무언가 잔뜩 화가 나 있는 표정들이고 감정도 그렇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여기까지 사회를 발전시켰으면 우리나라가 좀 더 성숙한 선진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GDP가 세계 몇 위인 것도 중요하지만 더 소중한 가치가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삶의 작은 부분에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제까지의 삶의 속도보다 방향성에 대해서 생각했으면 좋겠다. 너무 거창한 것에 열 올리고 힘빼지 말자. 자기 맡은 일 열심히 하자. 서로 웃고 인사를 잘하자. 우리 동네가 깨끗한지 질서는 있는지 보살피자. 남의 실수를 여유롭게 받아들이자. 이런 기본은 일본이 아직도 앞서 있다.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무테지우스가 생각한 중산층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일본인들의 생활을 관찰하고자 한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