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수 대구시 공항도시과장
억새가 무성한 방촌천변 뙈기밭에는 낡은 보릿짚 모자를 쓴 농부와 때묻은 수건을 질끈 동여맨 아낙이 가을걷이에 여념이 없다. 건너 마을로 향하는 누런 신작로에는 급한 전보를 전하러 우체부가 바쁘게 자전거 폐달을 밟고 있고, 저 멀리 새파란 하늘 아래 금호강은 느릿느릿 평온할 뿐이다. 여느 시골 가을 풍경과 다를바 없이 동촌비행장(K-2)이 생기기 전 동촌 지역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 곳에 흙을 다져 만든 활주로가 조성되고, 프로펠러 비행기가 먼지를 몰며 날아 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비행기에 대한 호기심도, 그 비행기들이 날아가는 미지의 공간들을 향한 동경도 잠시였을 것이다. 볏섬이 나오고, 사과·무·배추로 겨우 살림을 지탱해 주던 논밭들이 비행장으로 변했을 때 사람들 마음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90년 전 그렇게 우리 곁에 온 K-2는 점점 더 커져갔고, 비행기는 더 육중하고 빨라지면서 날카로운 엔진 소리는 동촌을 넘어 대구 곳곳으로 전하며 시민들의 고단함을 더했다.학창 시절 전투기가 교정 위를 날면 자연스레 창문을 닫았다. 교수님은 굉음이 잦아들 때까지 물끄러미 창밖을 쳐다봤다.
비행기가 보급되면서 우리는 뭍길·물길·하늘길로도 외부와 만나는 세상에 살게 됐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때 K-2는 소통, 연결과는 하등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 K-2 한켠에 자리한 민간공항은 국내와 일부 외국을 연결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K-2 이전과 장거리 항공기 취항은 대구 시민의 간절한 바람이 되었다. 쉼없는 노력으로 드디어 K-2를 대구 군위 소보면, 경북 의성 비안면 일대로 옮기는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게 됐다. 아직 이전 방식, 비용 문제 등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신공항이 이전되면 K-2 부지는 100여년만에 시민들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소음, 고도 제한, 개발제한구역 등으로 지역민들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던 K-2가 국토 동남권의 새로운 혁신의 상징으로 자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대구시는 K-2를 문화·관광·교육·산업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글로벌 도시로 조성할 계획이다. 6.98㎢(210만평) 부지를 6개 특화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엔 핵심 산업군을 배치해 AI·로봇 등 첨단 산업을 유치하는 내용이 담겼다.
새로운 K-2의 웅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잖다. 이중 가장 중요한 건 법과 제도 개선, 중앙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참여이다.
1970년대 K-2 인근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고도 제한과 함께 이중고를 겪게 했다. 향후 개발계획 또한 그 규제를 받게 돼 규제 개선이 절실하다. 가령 이미 훼손된 군사기지를 일반지역으로 바꾸는데는 각종 부담금이 부과된다. 적정 규모를 넘어서는 임대주택 확보 등은 K-2 개발에 큰 걸림돌이다. 기업 유치·투자 유도·각종 조세 감면·용적률 확대·외국교육기관 설립 등 특례를 담는 입법 조치도 꼭 필요하다.
아울러 K-2를 주거·산업이 어우러진 대한민국 모범 신도시로 조성하려면 법·제도 개선에 적극 응답하는 중앙정부의 의지와 태도가 있어야 한다. 중앙-지방정부 간 역할 조정, LH 등 공공기관 참여 등을 총괄하는 기구도 빨리 만들어져 신공항 건설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글로벌 미래도시 'New K-2'는 침체된 대구에 새 활력과 함께 국가 균형발전 및 신성장 남부경제권 조성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드넓은 대지가 인고의 시간 끝에 밝은 미래를 향해 첫 발을 힘차게 내딛는 날을 상상하면 마음이 설렌다.
노태수<대구시 공항도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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