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영남타워] 전선문화관에 대한 우려는 기우다
일부 문화계에서 대구 중구 향촌동에 조성 중인 '한국전선문화관'(이하 전선문화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걱정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웃한 향촌문화관과의 차별성이 있느냐이다. 둘째는 콘텐츠의 지속성 여부다. 전선문화관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일부의 우려는 단언컨대 기우다. 그럼, 하나하나 따져보자먼저 '향촌문화관의 차별성이 있느냐'의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향촌문화관과 전선문화관은 정체성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향촌문화관은 6·25 전쟁 피란시절 문화예술인들이 머물며 교류했던 향촌동 일원의 모습을 재현한 곳이다. 한마디로 생활상 중심이다. 하지만 전선문화관은 생활상이 아닌 작품 중심이다. 전쟁 당시 문화예술인들은 포연에 휩싸인 전장 속으로 종군하며 시대의 참상을 기록했다. 더러는 전란의 심연 가까이에서 전쟁의 참화를 몸소 받아들이며 펜을 들었다. 문학은 물론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 장르 불문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지금 명징한 기록으로 남았다. 전선문화라는 독특한 장르로 대한민국 문화사에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던 당시의 작품을 집대성하고 재조명해 콘텐츠화하는 곳이 바로 전선문화관이다.일부에서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소재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 지속성이 있느냐'이다. 이 역시 기우일 뿐이다. 1950년에서 1953년 사이, 3년여간 문화예술인들이 발표한 작품은 무궁무진하다. 문예잡지 '전선문학' '전선시첩'은 기본이다. 당시 출간된 출판물들이 거대한 산맥을 이룬다. 전상렬의 '피리소리', 유치환의 '보병과 더부러', 김동리의 '귀환장정', 박양균의 '두고 온 지표' 등 이미 대구문학관에서 수집해 소장하고 있는 작품집만 수십 권이다. 향후 대구문학관과 협업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신문매체에 발표한 작품도 무한하다. 전쟁 당시 하루도 휴간하지 않고 발행된 영남일보에는 그들의 작품이 셀 수 없을 만큼 실려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스크랩한 작품만 수백 건이 넘는다. 영남일보뿐만 아니다. 전쟁이 소강기에 들어가면서 휴간했다 다시 지면을 발행한 전국의 신문에도 상당수의 작품이 남아있다. 대부분 대구 피란문화예술인이 보낸 작품들이다. 전선문화관이 들어서 당시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발굴한다면 무한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실제 대구시는 전선문화관을 통해 구상, 박두진, 박목월, 유치환 등 유명 작가들의 미발굴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장도 마련한다.뿐만 아니다. 전쟁기에 대구에서 창간된 청소년잡지 학원도 전선문화의 한 축이다. 청소년 잡지지만 피란문화예술인들이 대거 필진으로 참여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학술적인 자료도 방대하다. 그동안 전선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한 논문이 상당하다. 논문자료를 근거로 학술의 장을 연다면 이 역시 무한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문학에 그치지 않는다.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 장르를 불문한 작품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이러한 작품들이 전선문화관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대구는 무한한 자산을 갖게 된다. 이 시대의 작가들이 선배 세대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해 또 다른 작품이 나온다면 금상첨화다.매번 강조하지만 전선문화는 '대구만의 독특한 콘텐츠'다. 서울에도 없는 우리 지역에만 있는 자산이다. 그 자산이 전선문화관을 통해 빛을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적하고 우려하기보다는 응원해야 할 때다. 백승운 문화부장백승운 문화부장
[자유성] 일대일로
시진핑 주석은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된 직후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듬해 그가 중화민족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야심 차게 내놓은 카드가 현대판 실크로드로 불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다. 한무제 때 중동 및 로마와 교역했던 고대 실크로드를 복원·확장해 '대국굴기'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2049년까지 중국과 중앙아시아·유럽을 5개 노선(내륙 3개, 해상 2개)으로 연결하는 거대 경제·무역벨트를 완성하는 게 목표다. 현재 일대일로 참여·관계국은 150여 곳이다. 양적으로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주요 참여국 중에 선진국이 별로 없는 데다 독재 국가도 상당수여서 미래가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다.일대일로는 중국이 참여국에 도로·철도를 깔고 항만과 공항을 짓는 인프라 투자가 핵심이다. 중국이 벌이는 글로벌 사업의 현재 성적표는 어떨까. 중국은 무역흑자의 40%를 일대일로에서 벌어들인다고 한다. 꽤 짭짤한 수입이지만 문제는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현지 사업이 줄줄이 중단되면서 스리랑카를 비롯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는 나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대일로의 위기는 불량채권 급증뿐만 아니다. 미국 주도하의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구상이 더 큰 위협 요인이다. 중국은 다음 달에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탄생 10주년 이벤트를 거창하게 열 계획이다. 이 행사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참석해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진다고 한다. 일대일로가 세계 1·2위 독재자들을 연결하는 공식 통로도 되는 셈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취재수첩] '다시 뛰겠습니다'
경북 예천군은 지난여름 기록적인 폭우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는 등 정치권에서는 앞다퉈 수해 현장을 다녀가는가 하면 일손돕기에도 동참했다.예천에는 지난 6월26일부터 7월18일까지 23일 중 4일을 제외하고 비가 내렸다. 특히 7월14일부터 이틀 동안 연 강수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00㎜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졌다.집중 폭우가 쏟아지면서 예천 일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고, 인명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온 힘을 다한 이웃들의 따뜻한 사연도 전해졌다.하지만 폭우로 17명의 소중한 인명이 피해를 보았다. 이 가운데 실종자 2명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어 가족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수해로 인한 총피해액은 1천75억원으로 집계됐다. 주택과 농경지·농작물·농기계 등 사유 시설 248억원, 도로·하천·상하수도 등 공공시설 827억원이 손해를 입었다.예천군은 이달 초 안전한 예천을 만들기 위해 자연재난 피해복구지원단을 꾸렸다. 피해 발생 두 달여 만이다. 항구 복구에는 총 2천68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예천은 국비 1천686억원을 지원받아 장·단기 복구계획을 마련해 항구 복구에 돌입했다.수해 이후 예천군의 모든 행정은 수해 복구에 초점이 맞춰졌다. 군의 역점사업들도 대부분 미뤄졌다. 하지만 이젠 잠시 멈췄던 각종 역점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야 한다.현재 가장 시급한 사업은 대한육상연맹 교육훈련센터 건립이다. 사업비 195억원이 투입돼 추진되고 있는 이 사업은 내년 말 완공되면 예천이 명실상부한 육상 중심도시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이와 함께 원도심 경기 활성화를 이끌 예천한우특화센터도 다음 달 착공한다. 안전한 산후조리와 신생아 돌봄을 위해 공공산후조리원도 사업비 95억원을 들여 설계에 들어갔다.앞서 예천군은 올 상반기 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 준공과 패밀리파크 개장에 이어 읍내 원도심에 4층 규모의 아이사랑안심케어센터를 열어 부모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올해 김학동호(號)가 숨 가쁘게 달려오며 각종 성과를 냈지만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폭우로 모든 일상이 잠시 멈춰 섰다. 폭우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소중한 예천군민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안전 예천'을 위한 예천군의 도전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장석원기자〈경북본사〉장석원기자〈경북본사〉
[박규완 칼럼] 엉뚱한 데서 샌다
부동산과 국가부채. 이게 뭘까. 문재인 정부의 2대 실정(失政)을 웅변하는 키워드다. 문 정부 5년간 아파트 가격이 두 배 올랐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 나랏빚도 엄청 늘었다. 2017년 660조원이었던 국가부채는 2021년 말 1천69조원으로 불어났다. 순증액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351조원보다 많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36%에서 49.7%로 높아졌다. 방만 재정운용의 후과다. 5년 새 공무원 인건비만 연간 9조원 늘었다니…. 윤석열 정부는 결이 다르다. 건전재정 전환에 방점을 찍었다. 2024년도 정부 예산안 총지출 증가율을 2005년 이후 최저인 2.8%로 결정했다. 재정준칙 도입도 서두른다. 관리재정수지 기준으로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한다. 이른바 '3% 룰'이다. 문 정부가 2020년 입안했던 재정준칙보다 단순하고 빡세다. OECD 38개국 중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윤 정부가 빛의 속도로 늘어나던 나랏빚에 제동을 건 셈이니 상찬할 만하다. 한데 엉뚱한 데서 샌다. 멀쩡한 민방위복 교체가 일례다. 왜 바꿨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청록색이 더 세련돼 보여서? 민방위복은 재난상황에 입는 옷이다. 숲속이나 바다, 어두운 데서도 눈에 잘 띄는 노란색이 청록색보다 더 적합하다.행정안전부는 기존 민방위복이 방수 및 난연 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댔는데 색깔을 바꾸지 않고도 새 제품의 기능을 개선해 나가면 될 일 아닌가. 민방위 복제 개편을 위한 회의가 14번이나 열렸는데도 회의록이 없다? 석연찮다. 괜히 교체 배경의 궁금증을 자극한다.돈이 새는 곳이 이뿐이랴. 대통령실 용산 이전비용은 기하급수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이전을 밀어붙일 때 "이전비용이 496억원"이라며 "다른 문제는 없다"고 흔쾌히 말했다. 그런데 웬걸. 496억원은 이제 왜소해 보인다. 대통령실과 국방부에 밀려난 합참 이전에 투입되는 예산만 수천억 원에 이른다. "합참 이전 비용을 2천억~3천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합참이 국방부에 제시한 이전비용은 2천393억원이다. 합참은 2026년까지 과천 남태령으로 옮겨간다. 영빈관 같은 난제도 불거졌다. 뜨끔한 여론에 신축 계획을 철회했지만 청와대로 돌아가지 않을 요량이라면 영빈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신축비용 878억원은 언젠가 집행돼야 할 예산이다. 용산 대통령실 사이버안전관리시스템 구축과 통합검색센터 신설에 들어간 비용이 74억원이다. 윤 대통령이 5년 내내 한남동 관저에서 출퇴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통통제와 경찰인력 동원 등 기회비용이 만만찮아서다. 용산 대통령 관저 신축이 불가피하단 의미다. 새 관저 건축엔 또 얼마를 써야 할까. 정부가 비영리재단법인 '청와대 재단'을 신설할 모양이다. 청와대 관리 및 운영, 공간 활용사업, 문화재 보존연구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재단 설립 비용으로 330억원을 책정했다. 청와대 리모델링에도 2년간 176억원이 투입된다. 대통령실을 이전하지 않았다면 대부분 절감할 수 있는 예산들이다. 굳이 어공(어쩌다 공무원), 늘공(늘 공무원)을 따진다면 대통령은 임시직 어공이다. 5년 기한의 임시직이 백년대계 국가 중대사를 독단으로 결정한다? 국민은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용산 대통령실과 관련한 추가 비용이 불어날수록 졸속 이전이란 비난이 커질 수밖에 없다.논설위원논설위원
[동대구로에서] K-직장인 김대호가 보여준 창의력
김대호 아나운서의 자족하는 일상이 화제다. 14년 차 직장인의 날것 같은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처음 그를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을 때 뭔가 과한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 중고 다마스를 직접 튜닝한 캠핑카와 비좁은 주택 옥상에서 힘겹게(?) 자행되는 '혼술'을 보면서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40대 솔로 직장인의 '발악'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방송을 같이 보던 남편이 혀를 찼다. 하지만 우리 둘 다 홀린 듯 마지막까지 그의 일상을 시청했다. 압권은 서울 종로구 인왕산 자락, 노후화된 단독주택 마당에 설치한 유아용 풀장에서 홀로 첨벙첨벙 물놀이를 하는 장면. 푸른색 호스를 주방 수도에 연결해 풀장에 물을 채우고, 동남아 어느 풀빌라처럼 색색깔의 과일과 술을 물 위에 둥둥 띄웠다. 다음 순간, 김대호는 어린애처럼 풍덩 뛰어들었고, 물속에서 차가운 캔맥주를 들이켰다. 나는 그가 진심으로 행복해 보여 감탄했다. 알고 보니 풀장은 단돈 몇 만원. 마음먹은 대로 사는 것은 약간의 발품을 파는 노력만 들이면 가능했고, 또 저렴했다. 그를 보며 '창의력'에 대해 생각해봤다. 김대호의 저런 놀이야말로 창의력이 아닐까. 환경 탓하며 하고 싶은 일을 보류하지 않는 것, 오늘 하고 싶은 일을 오늘 하며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창의적인 행위로 여겨졌다. 국민 예능인으로 등극한 전현무를 바짝 긴장시킨다는 호평만큼 그가 요즘 대세로 떠오른 데는 그 창의력이 한몫을 했다. 손재주와 특유의 부지런함은 둘째다.한 AI 과학자는 얼마 전 라디오에 출연해 "학부모들이 아이의 창의력을 학습과 연결시켜 안타깝다. 창의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질문하는 근저에는 대부분 자녀를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키우겠다는 목적의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창의력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하면 행복한지 정확하게 알고 그걸 실천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창의력"이라며 일갈했다.과학자의 말마따나 김대호는 "나는 나를 굉장히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집에서 살면 좋은지 어떤 차를 타면 좋은지 잘 알기 때문에 후회 없이 선택하면서 살아왔다"고 말했다.요즘 대구 수성구 엄마들의 오픈 채팅방에는 괜찮은 영어유치원을 수소문하는 엄마들이 적잖다. 대부분 영어교육의 품질과 가격대를 묻는데, 한발 더 나아가 창의력까지 따지기도 한다. 어떤 사교육이든 앞에 '창의'가 붙으면 인기는 물론, 가격이 드높다. 유아기부터 사교육 받다가 내 아이가 자칫 창의력이 부족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엿볼 수 있다. 김대호의 창의력과 학부모들이 믿는 창의력은 분명 괴리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단언할 수 있는 건 창의력까지 장착(?)한 사교육과 공교육을 무리 없이 수행한 학생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꿈이 없다"고 호소한다는 것. 아직 어려서, 준비가 덜 된 만큼 당연한 고백일 수 있겠지만, 간과해선 안 될 신호다. 내 아이를 진정 기쁨을 느낄 줄 아는 행복한 어른으로 키우고 싶다면 말이다. 이효설 사회부 차장이효설 사회부 차장
[자유성] 경북해녀협회
바다 속에 산소 공급장치 없이 맨몸으로 들어가 해조류나 조개를 캐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을 해녀(海女)라 부른다. 잠녀(潛女)·잠수(潛嫂)라고도 한다. 고령화 등으로 해녀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최근에는 젊은 남성들이 이 일에 뛰어들면서 해남(海男)들도 탄생하고 있다. 통상 해녀의 고장으로 제주를 떠올리지만 포항 등지의 경북 동해안에도 적지 않은 육지 해녀들이 활동하고 있다.경북도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으로 경북에 등록된 해녀는 1천370명으로, 제주(3천437명)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해녀 수는 근년 들어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18년의 1천585명에 비해 215명이 줄었다. 고령 또는 질병으로 인해 현직에서 은퇴하는 자연감소가 대부분이다. 71세 이상 고령자가 734명으로 전체의 54%를 차지한다. 50세 이하는 38명에 불과하다. 고령화가 심각하지만 '해녀의 길'을 걷겠다고 도전하는 젊은 인력도 드물다. 현존하는 해녀들은 어쩌면 '마지막 세대'가 될지 모른다. 세대 간 직업 전수 단절로 전통의 해녀문화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이 같은 시기에 최근 '경북도 해녀협회'가 창립기념식을 갖고 공식 출범, 주목받고 있다. 포항·경주·영덕의 해녀 100여 명이 모여 결성한 경북해녀협회는 제주와 다른 문화를 가진 경북 해녀들의 교류와 지원, 해녀문화의 보전이 목적이다. 해녀협회는 해녀학교를 운영하고 가족단위 관광객을 대상으로 미역말리기, 해양생태교실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 산업화를 꾀하고 있다. 해녀문화의 전승보전과 활성화를 위해 경북도를 비롯, 동해안 지자체의 다각적인 지원이 뒤따라야겠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 부장
[자유성] 줄서기 문화
점심때 회사 인근 맛집에 긴 대기 줄이 선 경우 발길을 돌릴 때가 있다. 밥 한 끼가 뭔 대수라고, 굳이 식당에서까지 차례를 기다릴 필요가 있냐라는 알량한 자존심이다. 한국인은 혼자서는 잘 기다리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러 타인과 함께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엔 익숙하지 않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트라우마 탓일 수도 있다. 과거 예약문화가 드물었던 시절, 긴 대기 줄엔 으레 불청객인 '새치기족'이 있었다. 시비가 붙어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줄 서면 손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진 것도 그 때문이리라.섬나라 영국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깡패' 같은 짓도 많이 했지만, 국민 저변엔 '줄 서는 문화'가 뿌리 내려 칭송을 받았다. 영국인의 줄 서기 습관은 각별하다. 영국인이 혼자 길거리에 서 있으면 금세 행렬이 생긴다는 얘기도 있다. 인기 스포츠인 프로축구·크리켓·테니스 대회에 줄을 서서 입장하는 요령을 담은 안내 책자까지 나와 있다. 지난해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 대기 줄은 최장 16㎞에 이르렀다. 추모객은 불과 몇 분간의 참배를 위해 길게는 하루 이상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이른바 '웨이팅(waiting) 맛집'이 인기다. 유튜브 먹방과 SNS 영향이다. 웨이팅 시간·인원은 해당 식당의 퀄리티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그래서 웨이팅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다. 웨이팅 맛집에 사람이 몰리자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엔 '바람잡이 대기 줄 알바 모집 공고'도 등장했다. 손님이 많은 것처럼 홍보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대행 전성시대'라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이창호 논설위원
[박재일 칼럼] 대구 근세 100년 최대 사건은
포럼 발제자로 나온 대구정책연구원의 오동욱 박사가 참석자에게 물었다. "20세기 근세 100년간 대구에서 벌어진, 역사적으로 가장 임팩트(영향력)한 사건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나는 박정희와 대구 달구벌대로, 이런 것을 떠올렸다. 그는 의외였다. 1905년 대구역(驛) 개통을 꼽았다. 대구는 정확히 1601년부터 경상도 수도(감영)였지만, 19세기 말까지 인구 5만명의 군소도시에 불과했다. 중국과 만주로 진격할 배후기지란 일제의 노림수가 있었겠지만, 경부선 부설과 대구역의 등장으로 대구는 내륙 거점도시로 비약적 발전을 한다. 대구읍성을 허문 북성로는 화려한 거리로 변신했고, 인구는 상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요즘 우리가 종종 그리워하는 서울-대구-평양의 한반도 3대 도시 구도가 마련됐다. 열차는 당시로써는 최첨단 신기술이었다. 대구역 100년 임팩트는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는 분석이다.어릴 적 동대구역이 막 들어선 지금의 동대구로를 버스를 타고 가다 처음 마주쳤다. 동대구역 규모를 놓고 정부는 극동 최대라고 자랑했다. 10차로 대로는 압도적이었다. 이후 첫 서울 나들이의 휘황찬란 종로 네온 거리나, 뉴욕 맨해튼을 대면한 경이로움도 그랬다. 앞서 대구역은 아담했다. 10·1항쟁 사진 속 그 건물은 백화점 몰에 사라졌지만 한동안 대구의 출입구요 광장이었다. 근대사를 관통해 온 대구역은 동대구역에 그 자리를 내어줬다.역(驛)은 도로, 교량과 함께 사회간접자본( SOC·Social Overhead Capital)으로 불린다. 로마 가도가 로마 제국을 구축했듯 인간 문명발달사를 좌우해 왔다. 20세기 초, 조선의 SOC혁명이 철도였다면 21세기의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 에어포트(Airport)일 게다. 항공은 여전히 과학기술 최전선의 산물이다. 이제는 드론, 무인기까지 가세하면서 그 영역을 무한 확장한다. 영화 제5원소처럼 미래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가득할 게 틀림없다.대구는 오래전부터 신공항을 갈망했다. K2 군(軍)기지를 벗어난 독자적 민간공항을 원했다. 영천 금호들판이 한때 거론됐다. 그러다 K1의 김해공항 대체를 꿈꾸던 부산과 영남권 신공항에 올인했다. 대구는 밀양을, 부산은 가덕도를 밀어붙이다 무산됐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권에서다. 우여곡절 끝에 가덕도와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이 각각 통과됐다. 양 지역은 각자의 길로 가게 됐다. 경쟁구도다.공항의 성패는 접근성이 1순위다. 도심에서 가까울수록 좋다. 택시를 타고 100달러(13만원) 이하여야 한다. 그건 50㎞ 이내다. 60~70㎞ 이격의 군위·의성은 그래서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다. 군위의 대구편입으로 신공항 명칭은 '대구국제공항'이 된다. 논란을 없앴다. 다른 유리한 점도 있다. 현 대구국제공항은 코로나 직전까지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김해공항의 10분의 1도 안 되던 이용객을 40% 수준(450만명)으로 끌어올렸다. 국제노선 확보는 공항 위치 이상으로 중요하다. 신공항 건설에서 물리적 이점도 있다. 바다 위에 활주로가 걸쳐진 가덕도는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의 진단대로 '자연적 입지'는 아니다. 대구공항 활주로가 먼저 선보일 수 있다. 공항을 건설한 뒤 K2부지를 후속 개발하는 '기부 대 양여방식'은 이런 점에서 전화위복이다. 어쩌면 신공항은 '미래 대구 100년'의 가장 임팩트한 사건이 될지 모른다. 희망을 가져볼까 한다.논설실장논설실장
[자유성] 일회용컵 보증금제
어떤 정책이든지 현장의 반발이 크면 제대로 시행하기 어렵다. 상당한 당위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 효용성이 낮거나 설익었거나 불편함이 커질 경우 벽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특히 성과보다 피로감이 커지면 설득력도 떨어지게 된다. 2025년 전국적으로 의무시행이 예고됐던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틀이 변경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제주와 세종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와 업주 대부분은 여전히 불만을 표시하고 있어 세부 추진방향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전국 가맹점 수가 100개 이상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커피전문점·베이커리·패스트푸드 매장 3만8천개소가 적용대상이다. 고객들은 음료를 구입할 때 자원순환보증금 300원을 지불하고 컵을 반납하면 이를 돌려받는다. 300원은 주요 프랜차이즈의 텀블러 할인혜택 금액 등이 고려됐다. 순환경제 및 탄소 중립 이행을 위해 이 제도를 준비 중인 환경부는 당초 지난해 6월 시행하려다 중소상공인들의 반발로 6개월 유예하기도 했다.현재 환경부는 시범지역 현장의견 및 운영성과 등에 대한 모니터링과 함께, 지자체 여건에 맞게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만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추진방향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보증금제 적용 매장에서 사용되는 컵은 연간 23억개에 이른다는 것이 환경부의 추산일 정도로 일회용컵 소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소비자와 중소상공인의 거부감·피로감을 최소화해서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 장준영 논설위원
[월요칼럼] 책상 위의 노란버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미지의 세계를 넘나들거나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도 거뜬히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만족의 최고봉이 되기도 하고 희망 또는 목표를 향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울러 창의성 발현과 함께, 도전적이며 진취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보탬이 되는 등 그리고 싶은 그림이 개인적인 사안이라면 합당하고 유효하다. 하지만 공적일 경우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상대가 있고 부작용이나 후폭풍이 예상된다면 절대 무모해선 안 된다. 특히 정치나 행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최근 일명 '노란버스법' 때문에 전국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난리가 났다.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을 할 경우 노란버스(어린이통학버스)만 이용하도록 하는 지침이 내려진 이후 일정을 전격 취소하거나 연기를 고민하는 학교가 속출하면서 혼란이 빚어진 것이다. 지난해 10월 법제처는 도로교통법 등과 관련된 제주교육청의 법령 해석 요청에 '교육과정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비상시적인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어린이의 이동은 어린이의 통학 등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경찰청은 이를 근거로 지난 7월 '체험활동 관련 도로교통법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공문을 교육부에 보냈고 교육부가 이를 시·도교육청에 그대로 전달하면서 '노란버스 대란'이 야기됐다.각 부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다고 강변할 수 있으나 행정서비스의 최종 소비자들이 당장 수용하기 힘든 내용이라면 의미와 가치가 급감한다. 법은 모든 사람이 잘 지키게끔 해야 취지나 목적에 부합하기 마련이다. 학교현장이 '멘붕'에 빠지기 전에 어느 부처라도 예견되는 후폭풍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 사달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활동을 앞두고 어린 마음에 한껏 들떠있다가 취소라는 날벼락을 맞은 아이들의 상황이 안쓰럽다. 비난과 원망이 들끓자, 결국 국토교통부는 지난 22일부터 현장체험용 전세버스운행이 가능토록 '자동차 규칙'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럽다.논란이 뜨거웠고 파장이 컸던 이유는 꽤 현실적이고 피해는 구체적이었다. 우선,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노란버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린이용 통학버스로 등록된 차량은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 이동수요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껏 거의 전세버스를 활용했기 때문에 이동수단에 대한 고민은 필요 없었다. 게다가 통상 수개월 전에 차량을 예약하고 시행업체와 계약을 맺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취소결정에 따른 위약금은 물론, 인력과 장비 등 관련 업체의 선행 투자 피해액 등을 합치면 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전세버스업계의 불만도 컸다. 어린이용 통학버스 규정에 맞게 버스를 개조하려면 노란색 도색을 비롯, 전체 좌석 교체와 하차 확인 시스템 설치 등 대당 수백만 원을 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비정기적인 수요를 바라보고 어린이용 좌석으로 교체하자니 관광 등 다른 용도로 쓰기도 어렵다. 관계자들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질타하는 이유다. 현실을 도외시한 채 책상에서만 행정이 진행된 탓에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부처끼리 협조를 구하든, 협업을 하든 부작용이나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친절한 행정'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장준영 논설위원장준영 논설위원
[자유성] 날씨와 축제
가을장마라고 할 정도로 연일 비가 내린다. 가을장마는 8월 말에서 10월 사이 중국 북동쪽으로 올라간 장마전선이 시베리아 고기압과 부딪쳐 한반도로 내려오면서 비를 동반하는 기상 현상으로 분석한다. 가을장마는 한창 수확을 앞두고 익어가는 농작물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농민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라며 싫어하는 비다.행사나 축제는 '날씨가 반 부조'라는 말처럼 날씨가 크게 성패를 좌우한다. 가을에 열리는 축제 가운데 유난히 비와 인연이 많은 행사가 9월 중순 무렵 경북 문경에서 열리는 오미자 축제다. 오미자 수확 철이 이맘때여서 다른 시기를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문경오미자축제는 거의 매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치러졌다.문경 오미자를 산업화하고 축제를 기획하는 등 농업기술센터 공무원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하다 퇴직한 지인이 오미자 축제가 열리기 전인 지난 주말 전화가 왔다. 이야기 끝에 축제 기간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 소식을 전하자 "내 이름에 비우(雨) 자가 있어 계속 비가 내렸는데 퇴직해도 축제가 비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보네"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만큼 오미자 축제 시기에는 비가 내린 적이 많았다.다행히 올해는 비가 내렸지만 축제 속의 축제로 '송어 축제'를 곁들여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어 빗속에 열린 오미자 축제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비가 너무 많아 내려 축제장 하천에 관상용으로 방류했던 무지개송어는 불어난 물에 모두 떠내려갔다는 후문이지만 문경의 특산물로 오미자와 송어를 함께 알린 효과를 거두었다. 새로운 시도가 비로 주춤하던 행사 분위기를 다소나마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미디어 핫 토픽] 무인시스템의 명과 암
무인점포를 즐겨 찾는다. 24시간 운영돼 이용 시간에 제약이 없고 영업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 편리한 곳이라 느꼈다. 얼마 안 가 생각을 접었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무인점포가 편리하단 말은 일부 젊은 세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몇몇 프랜차이즈에서만 도입됐던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가 무인점포 증가에 발맞춰 곳곳 설치되는 추세다. 키오스크는 제품을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불편한 진실도 존재한다. 지난해 2월 개정된 키오스크 한국산업표준 '무인정보 단말기 접근성 지침'에 따르면 키오스크는 노인, 장애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취약층에 대한 배려는 아직 부족한 모양새다. "이거 왜 이래!" 어느 무인카페에 방문하니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키오스크 앞에 몇 분을 서 있던 어르신이 주문을 포기하고 발을 뗐다. 기계를 확인하니 진땀을 빼다 나간 어르신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이용 방법이 표시돼 있었지만 죄다 영어에 메뉴판의 글씨 크기는 너무 작았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모두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보통 노인들의 사정이 그렇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20년 65세 이상 1만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키오스크를 이용한 사람 중 주문에 어려움을 느낀 비율은 64.2%나 됐다. 장애인에게도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온다. 무인점포 내 키오스크는 대부분 음성인식 기능이 없어 시각장애인은 기계의 위치부터 찾기 힘들다. 어렵게 찾았다 한들 음성 안내나 점자가 제공되지 않아 주문이 쉽지 않다. 지체장애인 또한 자력으로 무인점포를 이용하는 것에 무리가 있어 보였다.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팔을 뻗었을 때 닿을 수 있는 최대 높이는 122㎝라고 한다. 하지만 다수의 키오스크가 160cm 조금 안 되는 기자의 키와 높이가 비슷했다. 키오스크를 활용한 무인영업은 옷가게, 스포츠 시설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이용도가 삶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시대다. 키오스크 도입이 늘어나는 만큼 디지털 취약층을 위한 제도도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GettyImages-jv12294490 게티이미지뱅크
[박규완 칼럼] '전랑 정부'는 없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입이 부쩍 거칠어졌다. 지난 대선 때의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를 두곤 "이 사건은 국민주권 찬탈 시도이자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는 쿠데타 기도로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반역죄"라고 했다. 전 정부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해선 "직원들이 속이는데 주인이 모르고 있었다면 바지 사장이고, 알았다면 주범"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서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을 강조하던 때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한덕수 국무총리도 발언 수위가 높아졌다. 대정부 질문이 열린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장. "최근 영국 과학지에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이하라도 안전하지 않다는 보도가 나왔다"(안호영 민주당 의원). "과학지에 났다고 다 확정된 사실인가. 미신적·주술적 몰지성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한 총리). "우리 수산업자를 보호하는 최선의 길은 일본이 방류하지 않도록 하는 것"(안 의원). "아니다. 가짜뉴스를 퍼뜨리지 않는 것이다"(한 총리). 미신적? '손바닥 王자'가 더 미신 아닌가."1+1을 100이라고 하는 세력들과 싸울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투적 자세를 주문하자 여당 의원과 국무위원들이 '전투 모드'로 변환했다. 대야 전투력을 공천에 반영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어떤 국무위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유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야구장 왔느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전사(戰士) 기질이 개각에도 투영된 모양이다. "이번 개각을 보면 제일 잘 싸우는 사람만 그냥 골랐던 것 같다"(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이념전쟁의 돌격대원들"(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정제되지 않은 과거 발언도 소환됐다. "초대 악마 노무현" "문재인 모가지 따는 날" "전두환의 12·12는 나라 구하려던 것" "촛불은 반역". 어록(?)만 보면 영락없는 '아스팔트 우파'다. 군은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다. '국방장관 신원식'은 문제가 없을까.전투적 여당과 내각이 자기진영의 환호는 이끌어낼 수 있겠다. 하지만 합리적 중도층은 등을 돌릴 개연성이 크다. 정국 냉각은 필연이다. 일련의 정치 현안들이 노정되면서 여야의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더 공고해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과 병원 후송, 검찰의 이 대표 영장 청구, 민주당의 한덕수 총리 해임 결의안 제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21일엔 이 대표 체포 동의안과 한 총리 해임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여의도 사상 초유다.전랑외교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공세적 외교를 지향하는 시진핑 체제 중국의 외교 방식을 일컫는다. 전랑(戰狼)은 늑대 전사라는 뜻이다. 전투력을 고양하는 윤석열 정부도 '전랑'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전랑외교를 펼친 중국은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고, 전랑외교의 선봉장 친강 전 외교부장은 행방이 묘연하다. 전랑 내각, 전랑 여당으론 협치를 구현할 수 없다. 총선 전략으로도 유리할 게 없다. 현생 인류는 '호모 비오랑스(Homo Violence)'다. 폭력적 본능이 잠재해 있다는 의미다. 굳이 전투력을 부추길 이유가 있을까.초능력자 드라마 '무빙'의 인기가 일본과 동남아까지 휩쓸고 있다. 여느 명작처럼 '무빙'에도 명대사가 나온다. "사람의 진짜 능력은 공감이야". '전투 모드'의 윤 정부는 국민 공감을 얻어낼 능력이 있는가. 어쩌면 우리의 초능력은 아주 평범한 데 있는지 모른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영남타워] 극단의 정치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공직자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는 평가를 전했다. 이 보고서에는 국회를 믿는 국민은 15%에 불과한 반면 불신하는 국민은 무려 81%에 달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모든 국가기관 가운데 국회가 국민 신뢰 최하위를 기록한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윤 원내대표는 "여야가 추구하는 방향이 매우 다르지만, 힘을 합쳐 협치를 이루자"고 말했다. 필자도 이 같은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의 묘미라는 협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국회에서 잔뼈가 굵은 한 보좌관은 "국회는 단 한 번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운 적이 많았다"라면서도 "문제는 불통"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다선 의원들은 과거 국회는 치열하게 다투면서도 언제든 여야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소통했다고 말을 자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협치의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국회는 살벌하다. 야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0일 넘게 명분 없는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와중에 검찰은 이재명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국회는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있다. 이에 이 대표는 "체포안 가결은 정치검찰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사실상 자당 의원들에게 부결을 요청했다. 민주당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과 국무총리의 해임건의안이 같은 날 표결에 부쳐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됐다. 야당 대표의 검찰수사와 구속영장 청구, 단식, 표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내심 민주당의 위기를 반기고 있다. 혼란이 장기화되면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유리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기대한 대로 민주당이 혼돈의 카오스에 빠지면 유리할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민주당보다 낮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대통령 지지율은 45% 이상,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보다 높거나, 최소한 오차범위 내 근소한 차이로 추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악의 상황인 민주당은 오히려 진보진영의 결속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유지된다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넘어 거대 여당이 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극단의 정치가 국민을 중도 없는 양면의 칼날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은 답답하다. 국제적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여야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국회는 끝없는 갈등만 계속하고 있다. 지금의 정치는 실종을 넘어 정치 사망·복원 불능 상태로 가고 있다. 이 대표 단식이 여야 소통에 따라 풀리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극단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여야는 남의 불행에 기뻐하는 마이너스의 경쟁이 아닌, 협치를 통해 누가 누가 더 잘하는지 겨루는 플러스의 경쟁을 펼쳐야 할 것이다.임 호 서울 정치부장
[자유성] 너무 성긴 주민소환법
며칠전 상주발전시민단체연대가 '상주시장 주민소환투표청구인 서명부 철회 요청서'라는 서식을 만들어 주민들을 상대로 홍보에 나섰다. 상주시민연대는 행복상주만들기 범시민연대가 추진하는 상주시장 주민소환을 반대하는 단체다. 상주시민연대는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거나, 잘못된 설명을 듣고 주민소환투표 청구 서명을 한 사람이 많아 그 서명을 취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이 서식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행복연대가 시민들에게 서명의 목적을 '시청 신축 반대를 위한 서명'으로 속이거나 노인들을 대신해 서명을 하는 사례가 많다"고 주장했다. 또 식당이나 미용실 등지에 서명지를 맡겨 놓고 고객들에게 서명을 부탁해달라는 사례까지 있었다고 덧붙였다. 주민소환을 추진하고 있는 행복연대 역시 불만이 많다. 그들은 "상주시가 이장과 통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서명을 방해하고 있다"며 좌시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양 단체는 각각 이런 내용을 상주경찰서와 상주시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거나 민원으로 접수시켰다. 그러나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는 이런 행동을 제한하는 내용이 없어 고발이 성립되는 지는 의문이다. 이 때문에 주민소환법이 아닌 직권남용이나 명예훼손 혐의까지 동원해 고발하지만 효력은 미지수다. 우리나라의 공직선거법은 촘촘히 짜여진 어망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이 공직선거법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마다 불공정 선거가 끊이지 않는다. 하물며 엉성하기 짝이 없는 주민소환법이 어떻게 공정한 민의 표출을 보장할지 의문이 든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기획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 대구경북 소멸보고서] 혁신도시 공공기관 금융거래마저 '수도권 블랙홀'
[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 시즌2] 공공의료의 한 축이었던 '대구적십자병원'…누적 적자에 폐원
많이 본 뉴스
오늘의운세
[오늘의 운세] 9월 30일 ( 음 8월 16일 )(오늘의 띠별 운세) (생년월일 운세)
영남생생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