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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프리터族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반부터였다. 장기간 이어진 극심한 불황에 고용시장도 유례없는 '빙하기'를 맞았다. 정규직 취업문은 그야말로 바늘구멍이었다. 그즈음부터 직장 없이 아르바이트로만 생계를 해결하는 일본 청년들이 급증했다. 그들은 '프리터족(族)'으로 불렸다. 자유를 뜻하는 영어 '프리(free)'와 노동자라는 뜻의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신조어다. 단지 아르바이트뿐만 아니라 계약사원, 파트타이머 등도 프리터족에 속한다. 근래 들어 일본 경제가 회복돼 고용시장이 좋아졌음에도 프리터족은 되레 증가 추세다.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게 그 이유다. 돈을 덜 벌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프리터족은 우리나라에서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파트타임 근로자(주 30시간 미만 근로) 수는 2019년 52만명에서 4년 만에 10만명 이상 늘었다. 특히 15~29세 청년 취업자 25%가 단기 아르바이트이며, 이 중 절반은 학업을 마친 상태였다. 이처럼 파트타임 근로가 확산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고용시장이 더욱 악화된 탓이다. 둘째는 청년들의 가치관이 돈보다 삶의 만족을 원하는 방향으로 변한 것이다.자발적 프리터족은 "한 번뿐인 인생 즐겁게 살자"는 '욜로(You Only Live Once)'족과 결이 비슷하다. 이런 삶의 방식은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미래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100세 시대의 고령기 빈곤과 고립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가자지구의 아실 가족
가자지구의 전쟁은 이제 여섯 달째 접어들었다. 식량은 전적으로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데 수송제한 때문에 반입이 거의 중단되었다가 지난 토요일 겨우 200t이 선박으로 운송되었다. 가자지구 북부 주민은 대부분 굶고 있다. 벌써 20여 명이 생명을 잃었다. 베이트라히아란 도시에 살고 있는 '아실'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아실, 남동생 등 4명으로 어떤 원조 식량도 받은 적이 없다. 살 수 있는 제일 싼 식량이 사료용 보릿가루이며 그것도 1파운드에 4.44달러로 올랐다. 이 가족은 '쿠베이자'라는 아욱 비슷한 구황식물의 잎을 삶아 그것으로 주린 배를 채운다. 먹을 것이 생기면 꼭 저녁에 먹는다. 배가 덜 고파야 잠이 오기 때문이다. 아실의 기록이다.2월28일 쿠베이자 한 솥. 2월29일 쿠베이자 한 솥. 3월1일 아버지가 장마당에서 쌀을 조금 구했다. 쌀죽에 버섯 통조림을 곁들였더니 꼭 닭고기 맛이다. 2일 쿠베이자 한 솥. 다섯 시간 헤맨 끝에 밀가루를 구해 피타 빵을 구워 먹었다. 예금은 푹푹 줄어들지만 이런 날은 축젯날이다. 3일 쿠베이자 한 솥. 4일 남동생이 무료급식소에 2시간 기다려 쌀죽 한 사발을 타왔다. 나는 비상식량인 대추야자 다섯 개를 먹고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타 마셨다. 전쟁 전 대학생 때 마시던 것. 5일 아버지와 남동생이 몇 시간 걸어서 숙모에게서 렌즈콩을 조금 얻어 왔다. 저녁에 그것과 아껴두었던 대추야자를 마지막으로 먹었다. 이제 장마당이나 무료급식소에 나갈 힘도 없다. 무료급식소에도 이제 음식이 없다. 6일 음식을 못 구해 차만 마셨다. 7일 무료급식소에서 당근 죽을 타와 나눠 먹었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박재일 칼럼] 부자들이 내는 의료보험
미국 등지의 교포들이 한국을 방문해 병원을 찾는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그만큼 흔해졌다. 이유는 의료보험 적용을 불문하고 기본적으로 병원비가 싸기 때문이다. 몇 달씩 묵으면서 친지도 만나고 성형이나 임플란트 같은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비행기 표가 빠진다는 소리도 있다. 중국 동포나 외국인 근로자는 취업하면 한국의 의료보험 혜택까지 받는다. 그들은 첨단 시설에 손재주 좋은 한국 의사들, 값싼 비용에 놀란다.미국의 경우 과중한 의료비 탓에 중산층이 파산한다는 게 사회적 문제가 됐다. 암 수술에 몇십만 달러, 억대의 치료비가 소요돼 파산 중산층이 연 50만 가구를 넘었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한국의 중산층도 의료비로 파산하는 경우가 OECD 기준으로 보면 그에 못지않다는 수치도 있지만, 총체적 경험으로 보면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눈부시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미국은 '오바마 케어'에도 불구하고, 의료비를 대략 사보험에 의존한다. 좋은 직장에 다니면 회사가 비싼 보험료를 대 주지만 막상 아프면 실직하고, 정작 필요한 그 순간에는 스스로 보험료를 내야 하니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돈을 아끼려고 보험을 들지 않은 상황에서 만일 중병에 걸린다면 수억 원의 병원비가 청구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빛을 발한다.언젠가 산책하다 대구은행 네거리에서 병원 수를 헤아려 봤는데 수십 개가 넘어 카운팅을 포기했다. 우린 대도시의 경우 웬만한 빌딩마다 병원이 없는 곳이 없다. 어떤 곳은 종합병원처럼 건물 전체가 의료화됐다. 응급실 뺑뺑이 논란도 있지만 밀집한 병원 탓에 다른 나라에 비해 병원 드나들기가 쉽다. 흔한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몇천 원을 내면 되고, 약국도 마찬가지다. 선진국 어딜 가도 이런 시스템은 잘 보지 못한다. 그 배경에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있다.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한국인은 부자들 덕에 의료비를 대폭 경감받는다. 매달 내는 건강보험료는 기본적으로 수입의 7.09%인데 이게 뒷문이 거의 열려 있다. 보통의 월급쟁이라면 회사 부담 절반을 제외하고 월 10만~30만원 정도에 그치지만 부자들은 다르다. 월 최대 보험료 상한선은 848만원, 그러니까 이 금액이 될 때까지는 7.09%를 뗀다. 월 1억2천만원을 버는 사람들이다. 연간 1억원 가까이 건강보험료를 납부한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그렇다고 보면 된다. 평등주의 요소가 강한 이 정책을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시작해 보수정권이 구축했다는 점은 한편 숙연하다. 아마 지금 이걸 도입한다면 나라가 완전 쑥대밭이 될 것이다. 부자들은 최상의 대우를 약속하는 보험회사로 달려갈 게다. 한국 의료보험의 저력을 생각하면 의사 수 늘리기로 정부와 의사집단이 팽팽히 대치하는 현 상황은 어쩌면 사소한 논쟁이다. 영화 기생충의 '부자들은 착하다'는 대사가 한때 회자됐다. 돈이 있으니 예의와 염치가 생기고 한편 착하다는 논리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착한 것을 떠나 좋은 제도, 좋은 복지는 우리가 앞뒤 생각 없이 떠들기만 하면 거저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도로와 고속철을 깔고, 기초연금에 복지관과 도서관을 운영하고, 교사와 군인 월급을 주는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부담이 있어야 가능하다. 어떤 철모르는 정치인들은 종종 그 돈이 마치 화수분처럼 쏟아지듯 '퍼주기'를 떠들어댄다. 인간 사회가 복지국가를 구현하길 원한다면, 그건 부자들에게 존경은 몰라도 존중해야 할 시대가 점점 다가온다는 뜻도 된다.논설실장논설실장
[하프타임] 공사비 증가와 아파트 매수
올해 대구 부동산 시장 경기는 작년만큼 힘겨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 풍경도 한쪽에선 할인분양이, 다른 쪽에선 입주나 신규 분양 등 각양각색의 모습이 상존하고 있다. 말 그대로 '혼돈의 시장'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만난 복수의 지역 부동산 관계자들은 "사실 자금 여력이 되는 수요자라면 현 상황이 아파트 매수 적기로 판단된다"며 "마피(마이너스피)나 할인해서 파는 단지의 경우 매수해야 하는 시점이다. 입주 아파트를 노려라"고 했다. 건설사·금융기관·시행사들은 어렵지만 매수자에게는 집 사기 좋은 시절이라는 것이 부연 설명으로 따라붙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사원가 상승'이다. 아파트 공급 원가 상승으로 앞으로는 현재의 마피나 할인분양 가격에 신규 아파트를 매입하기 어렵다는 것. 실제로 최근 입주하는 아파트는 3~4년 전 분양가의 사업장으로, 당시에는 공사비가 현재보다 크게 낮았다. 대구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원재잿값·인건비 등 공사비가 2021년 하반기에 비해 약 35% 상승했다. 그 여파로 전국적으로 정비사업 현장에서 공사비로 적잖이 갈등을 빚는 단지들이 증가하고 있다. 건설 원자재와 인건비 등이 오른 데다 중대재해처벌법 영향으로 안전요소가 부쩍 강화되면서 공사비가 크게 상승했다. 시공사들은 예전에 계약했던 공사비로는 도저히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며 공사 중단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대구에서도 이전에 평당 공사비 400만원대에 계약했던 사업장에서 공사비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요즘은 사정이 더 악화됐다. 공사비가 평당 600만원 중·후반대까지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앞으로는 신축 아파트에 대해 엄격한 층간소음 기준이 적용되고, 부실공사에 대한 관리 감독도 까다로워져 향후 공사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이는 공사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 신축 아파트 공사 원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땅값이 낮아질 가능성이 적고 인건비도 내릴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에 향후 신축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하에 입주 아파트나 분양권에 관심을 나타내는 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물론 공사비 상승은 실수요자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팍팍해지고 아파트값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이미 큰 폭의 상승 이후의 하락이다. 상당수 수요자들에게 아파트 가격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 게다가 대구는 고용 여건이 좋지 않아 매수력이 있는 수요도 제한적이다. 이에 더해 부동산 시장은 대출 금리와 정부 정책,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 변수들이 다양하다. 선택의 기로에 선 매수자들의 고민은 크다. 특히 이전 집값 급상승기에 이른바 '벼락 거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던 실수요자들은 좋은 매수 기회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한다. 또 한편으론 고금리 장기화 국면에서 대출 이자를 갚느라 삶의 질이 추락할까 봐 걱정하며 매수를 저울질하기도 한다. 어차피 매수 결정은 매수자의 몫이다.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한 형편이지만 그럴수록 신중하게 잘 판단할 필요가 있다.박주희 정경부 차장 박주희 정경부 차장
[자유성] 1억원
연봉 1억원은 직장인들에게 꿈인 동시에 성공을 상징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억대 연봉자는 112만3천여 명으로, 이때부터 억대 연봉자 100만명 시대가 열렸다. 그래서 억대 연봉이 주는 감흥이 예전보다 떨어진 건 맞다. 하지만 1억원 연봉을 꿈꾸지도 못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훨씬 더 많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장의 연봉이 대부분 1억원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1억원은 여전히 매우 큰돈이다. 1억원이란 거액을 연봉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출산했다고 지급하는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강릉의 '썬크루즈 호텔&리조트'는 올해부터 직원이 첫째를 출산할 때 5천만원, 둘째 출산 때도 5천만원 등 총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 12일 이 회사는 최근 2년 내 자녀를 출산한 직원 2명에게 각각 5천만원을 전달했다. 앞서 부영그룹은 2021년 이후 출산한 임직원 자녀 70명에게 1억원씩 총 70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부영그룹의 출산장려금 지급을 계기로 정부는 출산장려금을 받은 직원 및 기업의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에 들어갔다. 아이 둘을 낳으면 세금 부담을 줄여가면서 1억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72명, 특히 작년 4분기의 합계출산율은 0.65명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구소멸 국가가 됐다. 인구소멸의 위기감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장려금을 지원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1억원을 벌기 위해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아이를 낳는 게 더 빠른 시대에 사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진욱 논설위원
[월요칼럼] 손흥민의 리더십을 배워야 할 이들
마음이 쓰였었다. 이강인의 '하극상' 이후 손흥민이 몇 날 며칠 침묵한 걸 두고서다.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그도 사람인지라 괘씸한 마음이 들었을 게다. '내가 이러려고 주장을 했나'라는 자괴감도 없지 않았을 테고. 이 일로 온 나라가 들끓자 이강인은 손흥민을 찾아가 사과했다. 이강인의 사과는 마땅한 것이고, 정작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손흥민의 사과였다. "내 행동도 충분히 질타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앞으로 더 지혜롭게 팀원들을 통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새까만 후배가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준 배려심, 자기 잘못도 없지 않다는 겸손함. 손흥민표(標) 리더십의 전형(典型)이다. 손흥민의 리더십은 소속팀 토트넘에서도 한눈에 확인된다. 그는 결코 자신을 먼저 내세우지 않는다. 경기 최우수 선수에 오른 뒤엔 항상 동료에게 공을 돌린다. 부진하던 동료가 골을 넣으면 자기가 넣은 것보다 더 기뻐한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엔 벤치 멤버까지 일일이 보듬어 주는 세심함도 잊지 않는다. 이 모두가 '나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마인드다. 주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두말할 나위 없다. 위기 상황에서 팀을 구해내는 '클러치 플레이'는 손흥민표 리더십의 화룡점정이다. 이런 손흥민을 두고 현지 언론은 "뛰어난 공감 능력의 소유자"라며 "토트넘을 원팀으로 만드는 비결"이라고 했다. 그가 축구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칭송받는 이유다. 근데 얼마 전 선거판에 뜬금없이 '손흥민'이 소환됐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이 이재명 대표를 손흥민에 비유한 것.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계승됐다. 축구로 치면 차범근-황선홍-박지성-손흥민이다." 이 대표의 리더십을 손흥민과 동급으로 본다고? 정 최고위원, 말씀 잘하셨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그 누구보다도 리더십 논란을 일으킨 이가 누구인가. 다름 아닌 이 대표다. 민주당 공천 갈등이 '이재명 사당(私黨)'을 위한 예정된 수순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이를 추려낸 듯한 보복성 컷오프, 이 대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내편, 네편'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당의 건승은 언감생심이다. 이 대표의 손바닥 뒤집듯 말 바꾸는 행태도 리더십 부재의 한 단면이다. "이재명=손흥민"은 염치없는 언사(言辭)다. 비유할 사람을 비유해야지.리더십을 논한 김에 하나 더. 홍원화 경북대 총장의 총선 비례대표 신청 논란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문제가 불거지자 신청을 철회하고 총장직 임기 단축의 뜻도 나타냈지만 경북대 총장으로서의 리더십은 이미 산산조각 났다. 추락하는 경북대를 되살리려 동분서주해도 모자랄 판에 부적절한 처신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그에게 더 이상 기대할 바는 없다. 4년 전 홍 총장은 취임식에서 "학생들이 '찾아오고 싶은' 경북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해마다 자퇴생이 줄을 잇고 있다. '학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신뢰를 심어 주지 못한 탓이리라. 결과적으로 그에게 경북대는 '수험생이 오고 싶으면 오든지' 정도의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은 콩밭(국회의원)에 있었고, 총장직은 그 발판에 불과했다. 남세스럽기 짝이 없다. 학교 구성원은 물론, 믿고 자녀를 맡긴 학부모에게도 엎드려 사과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제1 야당 대표와 경북대 총장은 손흥민의 리더십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렌털 친구
이른바 '렌털(rental·대여)의 시대'다. '소유'보다는 '공유'에 더 가치를 두는 소비 패턴이 보편화된 것. 정수기·공기청정기·세탁기 등 생활 가전제품뿐만이 아니다. 이젠 사람까지 빌릴 수 있다. 렌털 문화의 성지로 통하는 일본에선 몇 년 전부터 '렌털 남여 친구 서비스'가 성업 중이다. 일정 금액을 내면 정해진 시간 동안 렌털 친구와 대화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하며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렌털 친구 리스트엔 얼굴과 나이·직업·특기 등이 소개돼 있어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마치 '인터넷 장터'를 보는 듯하다. 친구 역할 말고도 인생 선험자로서 조언을 해주는 '렌털 아저씨(아주머니)'도 있다. 정년 퇴직한 장년층이 젊은 회사원에게 조직생활의 요령이나 인생 설계 등을 들려주는 식이다. 일부 부적절한 렌털도 있지만 대부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렌털 친구 서비스는 개인주의 확산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고 싶지 않으려는 인간 심리의 산물이다. '나혼자 산다족(族)'의 급증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렌털 친구를 만나러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렌털친구를 만난 영상과 후기를 유튜브·SNS에 올려 주목을 받기도 한다. 한편으론 씁쓸하다. '머니 체인지스 에브리씽(Money Changes Everything)'이란 팝송 제목처럼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돈으로 사람의 마음까지도 살 수 있을까. 사람 렌털, 일견 쿨해 보이지만 결국 '군중 속 고독'만 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창호 논설위원
[미디어 핫 토픽] '줄질'을 아십니까
'줄질'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줄질'은 스마트워치인 시곗줄(스트랩)을 모으고 갈아 끼우는 것을 말한다. 체육관에서 덤벨 등으로 운동하는 것을 두고 '쇠질'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줄질은 시계의 얼굴, 즉 페이스와 떼놓을 수 없다. 페이스와 스트랩이 상호 보완이랄까, 페이스와 스트랩을 맞추는 방식이다. 페이스와 스트랩이 끝이 아니다. 베젤이라는 페이스의 테두리도 맞춘다.명품시계의 대명사인 롤렉스는 스마트워치 계에서도 인기다. 롤렉스의 상징인 왕관로고와 톱니모양의 베젤에 시곗줄이 스마트워치에서도 재현된다. 왕관로고가 있는 롤렉스의 모델명이 적힌 워치페이스는 웹서핑으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또 스마트워치 사용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다운로드 받으면 된다. 다음은 베젤링과 스트랩인데,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하면 된다. 롤렉스의 시곗줄은 오이스터·쥬빌레 등 이름이 붙은 브레이슬럿(팔찌) 형태가 있다. 이 중 페이스와 맞는 베젤링과 스트랩을 구매하면 스마트워치 기기 값을 포함해 30만원 안팎으로 롤렉스 모양의 스마트워치를 완성할 수 있다. 롤렉스는 예시일 뿐 모든 종류의 시계를 이런 식으로 모방할 수 있다. 이렇게 꾸며진 스마트워치는 질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사진에서 구분이 힘들 때도 있다.일반 손목시계의 수요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2023년 롤렉스는 전 세계에서 약 13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위는 까르띠에로 4조171억원, 3위 오메가는 3조6천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23년 3분기 애플워치는 3천500만대를, 갤럭시워치는 2천200만대를 출하했다. 두 제조사의 스마트워치를 3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매출은 각각 1조50억원과 66조원이 된다. 개당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오가는 명품시계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쉽지 않지만 인기를 가늠할 정도는 된다.명품시계와 스마트워치가 공생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명품브랜드 에르메스는 애플워치의 스트랩을 내놓기도 했다. 에르메스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가죽·패브릭·고무 소재의 스트랩 35종을 판매한다. 가격은 52만5천원에서 90만1천원이다.'시계 자랑질'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 있었다. 손목 위에 있는 시계가 자신의 값을 말해주는 양 값비싼 시계로 치장한 사람들. 줄질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도 많다. 5천원짜리 실리콘 스트랩이 있는 반면 52만원부터 시작하는 명품 스트랩. 다른 사람의 줄질을 보며 "내 스트랩이 네 스트랩보다 비싸고 좋아"라고 혼자 우월함을 느끼는 처량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박규완 칼럼] 왜 공적 권위를 희화화하나
장면1="꽃가마 태워서 해외도피 시켰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묘사는 대체로 팩트에 부합한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기어이 호주로 떠났다. 서슬 퍼렇던 출국금지 조치는 순식간에 무력화됐다. 수사 받는 피의자에 '호주 대사' 직함을 내려 해외로 내보낸다? 신박하다고 해야 하나, 오컬트하다고 해야 하나. 법치국가에선 보기 드문 기이한 장면이긴 하다. SNS엔 "수사외압 수사에 대한 또 다른 외압"이란 주석(註釋)이 달렸다. '법치'를 떠받들어온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그 시그니처를 뭉개는 형국이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의 추가 소환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총선 악재라는 걸 인식했을 텐데 왜 굳이 무리수를 뒀을까. 파장이 간단치 않다. 야당 반발은 예정된 수순. 민주당 의원들이 인천공항까지 가서 규탄 회견을 한 데 이어 당론으로 '이종섭 특검법'을 발의했다. 이재명 대표는 "국가권력을 이용한 범인 은닉"이라며 날을 세웠다. 대통령 신임장을 받지 않고 몰래 출국하는 모습도 저어했다. 망신살은 호주까지 뻗쳤다. 호주 공영언론 ABC는 '한국 대사 이종섭, 자국 비리 수사에도 호주 입국' 제하의 기사에서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 출국금지 해제 과정, 야권 반발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입국 반대 집회를 연 호주 교민들의 플래카드 문구가 계면쩍다. "이종섭씨, 호주는 1868년 이후 죄수 수송을 안 받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채 상병 사건과 무관치 않은 인물의 총선 후보 간택(簡擇)도 상식적이진 않다.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이 각각 국민의힘 단수공천을 받았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고발 사주' 의혹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의 검사장 승진을 거론하며 "일종의 '입막음' 같다"고 해석했다.장면2=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행정지도 제재의 나비효과인가. '김건희 특검'이라고 하던 방송사들이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앞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여사'를 빼고 '김건희 특검'으로 방송한 SBS에 대해 공정성 위반이라며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이 제공된 상황에서 패널, 앵커들이 '입조심 모드'로 돌입한 모양새다. '김건희 특검'은 이미 우리 국민에게 관용어로 굳어졌다. '김건희 여사 특검'보다 '김건희 특검'이라 말하는 게 훨씬 편하다. '여사'로 수식하지 않아도 대통령 부인이라는 걸 누구나 안다. 그런데 반드시 '여사'를 붙이라고? 코미디가 따로 없다. '입틀막'의 김건희 여사 버전? 좀스러운 제재는 공적 권위를 희화화할 뿐이다.스웨덴 예테보리대학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의 2024년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지수는 0.60점으로 179개국 중 47위였다. 자유민주주의지수는 법치, 견제와 균형, 시민의 자유 등이 주요 항목이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도 한국은 2022년 43위에서 지난해 47위로 내려앉았다.공적 권위는 사회 각 영역의 자율·분별을 통한 독자성과 창발성에서 고양된다. 워싱턴, 링컨, 루스벨트 대통령 시대의 미국 정부권력은 지금보다 보잘것없었다. 그럼에도 공적 권위는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 편'에도 예외 없이 법치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제재보다 자율에 방점을 찍은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가 감계(鑑戒)로 삼을 만하다.논설위원
[자유성] 맨스플레인
최근 영국 리버풀 인근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여성 프로골퍼가 겪은 황당한 사례가 동영상으로 퍼지면서 1천만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골프 강사이기도 한 이 여성은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스윙교습 영상을 녹화하던 중 뜻밖의 조언을 듣게 된다. 어떤 남성이 "스윙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나는 골프를 20년 동안 쳤다"며 스윙을 바꿔보라고 요구한 것이다. 다소 무례해 보이는 이런 조언이나 충고를 흔히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고 부른다.'남성(Man)'과 '설명하다(Explain)'의 합성어인 이 말은 2010년 뉴욕타임스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권위 있는 태도로 가르치듯 설명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또 여성들이 더 잘 알고 있거나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내용들까지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도 이에 속한다. 물론, 일부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남성에 국한해 일반화했기 때문에 또 다른 성차별 또는 성 대결이라는 비판도 있다. '우먼스플레인'이라는 상대적 합성어가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진심으로 도와주거나 알려주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양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은 다음의 언행이었으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자기 의견을 일방적으로 말하고 강요하는 것은 불편하고, 때에 따라서는 폭력적일 수도 있다. 맨스플레인이 남성 우월적 사고에서 비롯됐다고는 하나, 이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로 보는 게 합당하다. 좀 아는 척하면서 나대는 사람들은 강호에 고수가 많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장준영 논설위원
[영남타워] TK 갈라파고스 동조하는 여야
정치권은 하나 같이 대구·경북(TK)을 '보수의 심장'이라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뒤돌아서서는 '보수의 갈라파고스'라 비아냥거린다. 이번 4·10 총선을 보면 TK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갈라파고스화되는 것 같다. TK의 보수 색채는 갈수록 짙어지고, 진보진영의 정치적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 청년층 유권자 상당수는 이번 총선에 무관심하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현상에 기름을 부은 것이 야권이란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언제나 TK를 '험지'라 말하며, 지역주의 타파 1순위로 꼽는다. 하지만 "표 안 나오는 곳에 힘쓰지 않겠다"는 의지만 분명해 보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총선에도 TK에는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무게감 있는 야권 도전자가 없다.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필자는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한쪽으로 치우친 지역은 정치 상황에 따라 극심한 부침을 겪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각종 국비 사업과 기업 유치이다. TK의 경우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각종 사업에서 숨통을 트겠지만 반대 상황이면 어려움에 봉착한다. 정부·기업의 지원에 일관성이 없으면 지역 경제도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 공교롭게도 정치적 편식이 가장 심한 대구와 광주는 대한민국 광역시 중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전국 꼴찌를 두고 경쟁 중이다.야권은 TK가 진보의 무덤이라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진영의 노력 부족에 무게를 두고 싶다. 예로부터 '장인은 장비 탓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 선거를 봐도 알 수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TK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22.7%의 지지를 보냈다. 19대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도 21.75%란 적지 않은 지지를 보냈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 20대 총선에선 당시 대구 수성구갑에 출마했던 민주당 김부겸 후보는 62.3%란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대구 북구을에 출마한 진보성향의 홍의락 후보도 52.3%로 당선됐다.다시 말해 진보진영에 TK는 농사짓기 불가능한 돌밭이 아니라 땀 흘려 노력하면 기름진 농토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땅인 셈이다. 힘겹게 돌 치우고 농사짓기보다 손 쉬운 텃밭만 챙기겠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TK 25개 전체 선거구에 모두 후보를 내기도 벅찬 상황이다. 대구의 경우 진보정당 연대를 통해 11개 선거구에 후보를 냈다. 경북은 13개 중 10개 선거구에만 후보를 낸 상황이다. 오죽하면 '경산 12시 청년들'이란 지역 청년단체에서 민주당에 경산 지역 후보를 내달라며 성명서까지 냈을까.지난해 12월 대구를 방문한 당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역 국회의원을 '살찐 고양이'라며 비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전 대표의 주장을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민주당 등 진보진영도 함께 새겨들어야 한다고 본다. 진보진영은 지금이라도 지역에 젊고 패기 있는 청년 정치인을 발굴, 키워야 한다. 이들이 TK에서 진보진영 '적자(嫡子)'가 될 수 있도록 중앙당 차원의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한다. 또 TK와 인연이 있거나 본인 의지만 있다면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중량급 정치인도 지역 출마를 도와야 한다. 이런 노력을 했을 때 민주당 등 진보진영 정당이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진정한 의미의 전국정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호 서울 정치부장임호 서울 정치부장
[자유성] 키오스크
키오스크가 일반화된 시대다. 음식점이나 병원, 공항, 버스터미널 등 웬만한 곳은 대부분 무인 주문 시스템인 키오스크가 고객을 맞이한다. 키오스크를 사용할 줄 모르면 매우 불편한 시대를 살고 있다. 얼마 전 인천공항 가는 버스를 이용했었다. 모바일로 예약을 해서 승차권을 창구에서 구매하거나 현장에서 키오스크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버스가 출발했는데 플랫폼에 어르신 한 분이 버스를 타야 한다는 듯 뒤따라오면서 아쉬운 손짓을 했지만, 버스는 정시에 떠났다. 그 어르신이 버스를 잘못 보고 손짓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약 비행기를 타야 할 처지였다면 매우 곤란했을 것이다.예전에는 시외버스터미널에 버스회사 직원이 나와 승차권도 체크하고 버스 승차를 안내했었는데 요즘은 이런 직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비싼 인건비를 이유로 안내 직원이 사라지면서 종전에 누렸던 각종 서비스는 고객들이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결국, 시대 흐름에 뒤처진 어르신들만 살기 어려워졌다. 친척 중 한 분은 아직도 한글을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혼자 버스나 기차를 타고 다른 집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못 했다. 집 나서기가 두렵기 때문이었다.지금은 키오스크나 모바일이 어르신들을 문맹으로 만들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 등지에서는 어르신들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진땀을 빼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 노인대학이나 어르신 모임에 모바일 기기 사용법뿐 아니라 키오스크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가뜩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에 기본적인 생활마저 불편해 점점 사회에서 소외되는 디지털 문맹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배려해야 한다. 세상은 젊은 사람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동대구로에서] 대구 경제계 '합의추대' 프레임서 탈피를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요즘 대구상공회의소 차기 회장 선거 분위기가 그렇다. 회장을 선출하는 임시총회는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경제단체 수장이 누가 될지는 지역의 큰 관심사다. 대한상의 부회장도 겸하기 때문에 그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더욱이 경기불안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이른바 '다중 위기' 속에서 공존 해법을 찾을 새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2명이 회장 선거 출사표를 던졌지만 적극 나서지 않고 눈치만 본다.왜 그럴까. 일찌감치 '단일후보 합의추대'라는 프레임에 가둬놔서다. 경선을 하면 마치 난리가 날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해놓은 것. '경선'이란 말은 사실상 금기어(禁忌語)에 가깝다. 다른 지역 상의선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정 후보자 지지선언도 없다. 아마 지금도 2명 후보자를 대상으로 물밑 설득작업이 한창일 것이다. 그 원인을 찾으려면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0년 4월 제17대 회장 선거 때 채병하(전 대하통상 회장)·권성기(전 태왕그룹 회장) 후보가 상의회장 자리를 놓고 제대로 붙었다. 16대에 이어 리턴매치였다. 선거구도는 치열했다. 두 후보는 경선 때 자신에게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기업인을 상공의원으로 대거 가입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결국 사달이 났다. 기업인들이 패가 갈려 상대편을 힐난했다. 채 회장(16대 회장)이 또 수장에 올랐지만 반목과 갈등의 정도는 치유불능상태였다. 채 회장은 새 임기(3년)를 시작한 지 8개월만인 2000년 12월 말 자진 하차했다. 사업장 부도, 대구시와의 불화도 있지만 역시나 경선을 치르면서 불거진 기업인 간 갈등이 뼈아팠다. 이 일은 지금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이후부터 대구상의 회장 선거에선 오롯이 '단일후보 합의추대'만 허락됐다. 갈등이 잉태될 여지를 원천차단하고 조용히 선거를 치르는 게 '아름다운 전통'처럼 인식됐다. 이제 '묻지마 합의추대' 방식에 태클을 걸 때가 왔다.기업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당시 '정치적 부대낌'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섬유와 건설 등 전통업종도 지금은 많지 않다. 2차전지, 반도체, 디지털헬스케어, 로봇, UAM 등 신산업이 승승장구하면서 경제지형도가 바뀌었다. 고학력과 합리적 사고가 통하는 2세, 3세 경영인이 많아졌다. 제조업에는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시도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고금리, 공급망 불안 등 대내외적 악재 속에도 대구지역 투자는 늘고 있다. 민선 8기 출범 후 20개월 만에 대구 투자액 규모는 8조원을 넘어섰다. 이 기세가 꺾이지 않아야 한다. 대구 시민은 여전히 '경제적 허기'를 느낀다. 미래지향적인 마인드가 확보되면서도 생산적이고 행동하는 기업인들의 등장을 학수고대한다. 대구상의 회장이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새 경제리더를 제대로 뽑도록 선택의 장(場)이 열려야 한다. 정책 비전 제시는 당연히 해야 하고, 업종의 지역 대표성, 수출 및 연구개발 활성화 의지, 양질의 일자리 창출, 대구시와의 공조 의지 등 따져볼 게 많다. 하나같이 지역 기업인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부분이다. 합의추대만이 능사는 아니다. 바뀐 기업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탈만 내세우다 보면 미래는 없다. 경쟁 없는 조직은 도태되기 십상이다.최수경 정경부장최수경 기자
[자유성] 피 같은 수액
고로쇠나무·신나무·거제수나무 등의 수액(樹液) 채취가 한창일 때다. 이들 수액은 하나같이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뇨병·신경통 등 만성질환 뿐만 아니라 술독을 풀고 위장을 튼튼히 하는데도 효험이 있단다.이른 봄에 수액을 채취당하는 나무들은 얼리버드족(Early bird 族), 아니 얼리웜족이다. 이들은 땅이 풀리자마자 뿌리로 땅속의 물을 흡수하고 이 것을 목부의 도관을 통해 가지로 보낸다. 이 때 물의 흡수는 삼투압에 의한 이동이다. 겨울 동안 뿌리는 탄수화물을 비롯해 많은 영양소를 저장하고 있어서 농도가 매우 높다. 농도 차이로 땅속의 물을 빨아 들인다. 빨아들인 물은 어떻게 상승할까? 나무에 잎이 있을 때는 잎 표면에서 수분이 증발하는 힘을 원동력으로 하지만 이 때는 잎이 나오기 전이다. 수목생리학자들은 물이 상승하는 에너지를 수목 내부의 물에 녹아있는 이산화탄소에서 찾는다. 낮에 햇볕을 받아 나무의 체온이 올라가면 이산화탄소가 팽창, 압력이 높아 지면서 물을 상승시킨다는 것. 상승하는 물 속에는 겨우내 저장해 놓은 탄수화물과 질소·인·칼륨·마그네슘 등 나무의 생존에 필요한 무기물이 들어 있다. 나무는 새잎과 꽃을 만들기 위해 이 물질들을 몸 곳곳에 보낸다. 피와 같은 것이다."식물을 가리키며 '이게 몸에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듣는 식물은 얼마나 무섭고 기분 나쁘겠습니까?" 수 년 전 식물 관련 강좌를 들을 때 첫 번째 실습지인 달성공원에서 담당 교수가 한 말이다. 살아 있는 나무의 피부를 뚫고 호스를 박아 수액을 채취하는 촬영물을 볼 때 마다 되살아 나는 말이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자유성] 일자리 감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 문제는 국가 재앙 수준이다. 2022년 기준 국내 신혼부부(혼인신고 기준 5년 이내)는 103만2천쌍으로 전년도보다 6만9천쌍 감소했다. 생산 가능 인구(15~64세)는 6년 이내에 부산시 인구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저출산 고령화 영향으로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는 20대를 처음으로 앞섰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70대 이상 인구는 632만명, 20대 인구는 620만명으로 70대 이상 인구가 20대를 추월했다. 내년부터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화 사회도 예고된 상황이다. 총인구도 줄어드는 추세로 접어든 가운데, 아동복지법상 17세 미만 아동 인구는 10년간 4%나 줄었다. 모든 것이 출생아 감소 탓이다. 2015년까지 43만명대를 유지하던 연간 출생아 수는 2016년 40만명, 2017년 35만명, 2019년 30만명, 2022년 25만명, 지난해 23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사실상 아동 인구 감소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취업 문제와 직결된다. 민간연구소가 다양한 행정 통계를 바탕으로 출생아와 일자리를 분석한 결과 출생아가 연평균 1만명 감소할 경우 향후 10년간 일자리는 25만 개 이상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자리를 잃는 곳은 출산과 관련된 어린이집, 교습 학원, 유치원, 초등학교 등이다. 출생아 감소로 시작된 우리나라 인구 감소는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지방 소멸과 직결된다. 만점을 줘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저출산 해법을 하루빨리 찾아야 할 때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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