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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서문시장 이전 개장 100년
대구 최대의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이 현재 위치에 터를 잡은 지 올해로 100년째다. 다음 달 1일 대대적 기념행사가 열린다. 대구읍성 북문 밖에 '대구장'으로 자리 잡은 작은 장터가 서문 밖으로 확대 이전하면서 서문시장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논산 강경시장, 평양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구읍성을 중심으로 북문시장과 남문시장, 동문시장이 개설됐으나 지금은 유명무실하거나 폐장됐다. 북문시장은 칠성시장에 합쳐졌다. '큰 장'으로 불린 서문시장은 서민의 애환(哀歡)이 서린 곳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전 '없는 게 없는' 만물 시장이었다. '설빔'을 비롯해 갖가지 옷과 신발 등 생필품을 이곳에 의존했다. 한때 포목 도매상이 밀집했고, 의류와 이불, 양말로 유명했다. 요즘은 보기 드문 상인과 손님 간 가격 흥정도 일상적 장면. 수백 년간 전통시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된 크고 작은 화재가 상인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서문시장이 요즘 '보수의 성지'로 불린다. 선거철, 특히 대선 때면 보수 후보들이 잇따라 이곳을 찾는 게 일상화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등 정치적 위기 때마다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이명박·윤석열·이준석 등 정치인들이 대선 때나 당 대표 선거 때 어김없이 발걸음을 했다. 영업에 방해된다며 반대하는 상인도 있지만 대체로 환영 일색이다. 이번 100주년 기념행사에는 윤석열 대통령 내외의 참석 여부가 관심사다. 시민을 위한 뮤지컬과 가요제 등 다양한 행사도 마련돼 있다. 박윤규 논설위원
[영남타워] 대표 정치인 없는 TK의 비애
'보수의 심장'이라는 TK(대구경북).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면 보수정당 후보들은 어김없이 지역을 찾는다. 아니, 간절함을 담아 애절하게 부탁한다. 지난해 대선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유세 기간 TK를 19차례나 찾았다. 경기도(24회)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방문한 것이다. 그때마다 지역민은 열렬히 환영했고, 표로 응답했다. 보수 정권의 대통령이 탄생하면 스스로 위기라 느낄 때마다 서문시장 등 TK를 찾아 보수 결집의 불쏘시개로 활용했다. 이런 패턴은 이젠 보수의 공식이 됐다. 이 때문일까. TK 민심은 보수 정권 창출의 핵심이자, 마지막 보루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총선이 다가오면 지역 국회의원들은 좌불안석이다. 언제나 물갈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TK는 공천만 받으면 어렵지 않게 당선될 수 있으니, 예선(공천)이 곧 본선(당선)이 된다. 자연스럽게 낙하산 공천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이번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서도 TK 지역 국회의원들은 김기현 당 대표를 위해 온몸을 불살랐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다. 의원 개개인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면서 보수의 심장이란 자부심을 가진 지역민 입장에서는 왠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을 뽑아주는 지역민보다는 공천을 쥔 대통령과 당 대표에게 더 목을 매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역 국회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늘 했던 부탁이 있다. "TK 의원끼리 자주 만나고, 소통해 달라"는 것이었다. 편협한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해 자주 소통하고, 필요하다면 한목소리를 내며 서로 돕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를 실천하는 TK 지역 의원은 보지 못했다. 21대 국회에 TK 지역구 의원은 25명.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27명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절대적 지휘를 갖고 있지만 3부 요인 중 하나인 국회의장을 배출한 것은 20년 전이다. TK 출신 마지막 국회의장은 16대 국회 전반기였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2000년 6월~2002년 5월)이 마지막이다. 11명의 국회의장이 탄생하는 동안 TK는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다. 필자는 최근 국민의힘 이준석 전 당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표로부터 뼈아프면서도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대구 출마설'이 지역을 대표할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구경북을 아무리 둘러봐도 향후 10년 내에 대통령 후보나 당 대표가 될만한 정치인이 없다고도 했다. 또 지역과 국가를 위한 어젠다를 내놓는 TK 정치인도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국민의힘에서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대중 정치인은 없다. 이 전 대표의 이야기를 본인 관점으로 치부하더라도 한편으론 틀린 말이 아니다. 다음 달 7일로 예정된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에 윤재옥(대구 달서구을) 의원과 김학용(경기 안성) 의원이 2파전을 벌리고 있다. 하지만 TK 의원들은 여전히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사분오열하고 있다. 정치권은 원내대표가 누가 되든 공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TK 결집력이 약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보수의 심장이라 자부하는 지역민은 TK 정치권이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에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 우리 스스로 인물을 키우지 못하면서 누구를 원망하겠냐는 넋두리를 하고 있다. 임 호 서울 정치부장 임 호 서울 정치부장
[박규완 칼럼] 여의도 덮친 '비토크라시'
2023년 봄의 여의도 풍광은 뜨악하고 살벌하다. 협치·협상·딜·밀당·조정 같은 정치언어는 사라졌다. 포연만 자욱하다. 국회가 입법 1번지? 차라리 정쟁의 현장이다. 의원들의 팻말 시위는 이제 뉴스거리가 아니다. 조선시대의 붕당과 구한말식 대결정치가 어른거린다. 여야가 서로 발목을 잡는 길항(拮抗)의 형세다. 상대 정당의 정책과 법안은 무조건 부정하고 반대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민주주의)'의 득세다. '비토크라시'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2013년 미국의 양당 정치를 비판하며 쓴 용어다. 길항 정국은 주요 법안의 '동맥경화 현상'을 유발한다. 취득세 중과세율 완화를 담은 지방세법 개정안, 양도세 중과 배제 1년 연장, 0세 아동 부모에게 월 70만원을 지급하는 아동수당법 개정안 등 민생법안이 줄줄이 국회에 묶여 있다. 정치의 민생 침탈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준칙 도입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 재량은 딱 시행령 개정까지다. 법을 고치는 건 민주당 협조 없인 불가능하다. 윤석열 정부가 하릴없이 정책 공수표를 남발하는 이유다. 취득세 중과 완화 방안도 정부 의도대로 완결될지 의문이다. 상대를 억압할 수단이나 완력이 없다면 '비토크라시'는 동력을 잃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 공히 꽤 괜찮은 무기를 장착했다. 민주당의 169석은 셀프 입법 추동력을 높이고 정부 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는 공수 겸용 무기다. 집권 여당은 대통령 거부권과 법사위원장 자리를 그 나름의 필살기로 치부한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힘의 균형이 외려 대치정국의 장기화를 예고한다. 새로운 입법 공식도 탄생했다. 민주당이 양곡관리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게 대표적이다. 이른바 '법사위 패싱'이다. 민주당이 '상왕 법사위'를 막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야당이 5분의 3 이상인 상임위가 9개인 만큼 민주당의 법사위 패싱은 앞으로도 심심찮게 선뵐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야당의 직회부에 집권 여당이 대통령 거부권으로 맞서는 무한대치 국면을 우려한다. "민주당은 입법 폭주를 하고 대통령은 야당에 손을 내미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이종훈 정치평론가), "여야가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한 정치만 한다. 상호 존중이라는 민주적 규범이 사라져 의회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김형준 명지대 교수). 우리는 협치가 사라진 '정치 실종의 시대'를 목도한다. 정치의 본산 여의도는 시나브로 의원들의 시위 공간으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30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압축 민주화'를 일궈낸 내공과 정치력은 어디 갔나 싶다. 내년 총선도 정국엔 악재다. 민생과 대승(大乘)보다 정치공학과 정략을 우선할 공산이 커서다.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부메랑이자 야누스 민주주의의 함정이다. 정의와 공정의 본질을 전파해 온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개정판을 출간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불편한 공존의 서사를 추적하기도 하며 민주주의의 속살을 헤집는다. 샌델은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왜 더 큰 상실감을 느끼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와 정치의 함수관계도 묘하다. 삼권분립이 정립되고 자유로운 정당 활동과 정치인의 페르소나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 실종이라니. 아이러니다. 아무래도 올핸 정치도 경제도 봄이 오지 않을 듯싶다.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동대구로에서] chatGPT와 단독기사
2006년 10월부터 공상과학소설(SF)을 접수, 온라인으로 발행해 온 월간 SF 잡지인 '클락스월드(Clarkesworld)'는 지난달 단편 접수를 중단했다. 신인작가 등이 자신의 창작물을 보내 돈을 받고 온라인 출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출판사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챗GPT와 같은 AI가 만든 표절 작품' 때문이다. AI가 소설까지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평소 한 달 10건가량이던 표절 의심 작품 수는 지난 1월 100건, 2월 500건으로 폭증했다. 표절이 의심되는 작품을 걸러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고, 저절로 개선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회사 측은 '접수 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클락스월드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아마도 신인 작가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자신만의 창작물이 표절작품 따위에 묻히고, 그 탓에 작가들의 창작 의욕이 꺾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지켜내는 것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AI가 손쉽게 만들어내는 결과물 사이에서는 작가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뉴스서비스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네이버 등 대형 포털은 '단독'으로 표현되는 '독창적인 기사'를 어떻게 대우하고 있을까. 지난 22일 오후 4시17분 영남일보 홈페이지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조만간 국민 앞에 설 것"이라는 제목의 단독기사가 실렸고, '네이버'에도 함께 올라갔다. 1년가량 별다른 소식이 없었던 박 전 대통령 뉴스여서인지 기사 조회 수도 폭발적이었다. 2시간가량 뒤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YTN 등 16개 매체가, 다음 날인 23일에는 SBS, 동아일보 등 14개 언론사가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나 혼자만 쓴다'는 비아냥을 받는 '단독기사'가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이 뒤이어 보도를 해야 할 정도의 기사였다. 그리고 이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 대부분은 '영남일보 보도'를 인용하는 형태로 '단독기사'에 대한 예의를 표시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취재가 힘들어서 인용하지 않고서는 보도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달랐다. 이렇게 많은 매체가 인용보도를 할 정도의 '단독기사'였지만, 관련 기사 메인 자리는 대형통신사 기사로 채웠다. 오리지널을 두고 인용한 기사에게 더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러자 회사 홈페이지 방문자와 기사 조회 수 증가 폭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네이버 탓에 재주는 영남일보가 부리고, 재미는 다른 회사가 본 꼴이 된 것이다. 네이버의 기준도 있겠지만, 그것이 개별 기사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회사 규모나 조회 수 등 다른 요인이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매체가 인용할 정도의 '단독기사'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오래 배치해야 더 많은 기자가 그런 기사를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릴 것이고, '어뷰징 기사'를 쓰는 사람도, 쓰라고 하는 사람도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클락스월드는 신인들이 작품을 내는 데 더 많은 장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 접수를 중단했다. 네이버를 포함해 뉴스서비스를 하는 포털사이트들이 어떤 결정을 할까.노인호 인터넷뉴스부장 노인호 인터넷뉴스부장
[자유성] 금 자판기
건물이나 거리 등 생활 주변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판기의 역사는 깜짝 놀랄 만큼 오래됐다. 요즘 같은 시스템의 자판기라고 하기엔 뭔가 애매하고 허접해서 논란의 여지도 있을 수 있으나 어쨌든 첫 자판기는 기원전 215년 고대 이집트 신전에서 성수를 판매하는 용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별다른 기록이 없을 정도로 잊혔던 자판기는 19세기 들어 우표나 껌·담배 판매용으로 다시 등장했고, 지금처럼 익숙한 형태로는 1935년 콜라 자판기가 선보이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최초 자판기는 출산율을 낮추려는 정부 정책의 하나로 1973년 도입된 피임기구 자판기였고, 1977년 서울지하철 1호선에 커피자판기가 설치되면서 보급이 본격화됐다. '자판기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는 회 자판기까지 등장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종류의 자판기가 고객을 만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다양하고 기발한 자판기가 속속 등장, 편리함을 제공하면서 호기심도 자극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편의점 이색사업으로 추진된 금 자판기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9월 GS리테일이 서울에 선보였던 금 자판기는 6개월 만에 20억원 정도의 판매고를 올리며 순항 중이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구매자의 90% 정도가 20~40대'라는 GS 측의 설명으로 미루어 호기심이 작동하면서 기념으로 간직하거나 소액투자 개념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으로 추측된다. 장준영 논설위원
[자유성] 싼 관람료의 역설
웬만한 중소도시에는 연극이나 영화, 공연을 즐길 기회가 적다. 극장 등 인프라가 부족하고 관객이 적은 탓에 좋은 작품을 가져오기 힘든 악순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소도시나 농촌 자치단체들은 궁여지책으로 직접 영화나 연극을 공공장소인 시민회관이나 예술회관 등지에서 시민들에게 제공한다.한때 서너 개의 극장이 있었던 경북 문경시에는 20여 년 전 모두 없어지고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멀리 큰 도시로 가는 불편을 겪었다. 다행히 몇 년 전 상업 영화관 한곳이 문을 열었으나 연극이나 발레, 오케스트라 공연 등은 여전히 남의 동네 일이었다. 문경시는 이러한 문화 갈증을 달래기 위해 문화예술회관에 개봉작이나 인기 연극과 공연작을 가져와 아주 싼값에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현재 문경시가 문화예술회관에서 상영하는 영화 관람료는 2천원, 연극이나 음악 공연은 3천원으로 관람료 부담은 거의 없는 셈이다. 낮은 입장료로 인기작은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매진될 정도여서 1인당 구매 한도를 정해 놓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진된 작품의 상영이나 공연이 막상 시작되면 빈자리가 곳곳에 있다. 관람료 부담이 적은 탓에 관람 기회를 포기하기도 쉽기 때문이다."선약을 잊고 예매했다" "갑작스럽게 중요한 일이 생겼다" 등 여러 이유를 들지만 관계자들의 분석은 '너무 부담 없는' 낮은 관람료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입장권이 한 장에 몇만원씩 한다면 본인이 못 오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서라도 자리를 채울 것이다. 뭐든지 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듯하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월요칼럼] 노후파산과 금융치료
늙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서러운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는 약간 감정의 결이 다른, 이런저런 서글픔이 깔려있다. 주름이 늘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은 데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단어도 자주 까먹는다. 세월은 갈수록 모자람과 단점을 부각하며 야속하게 흐른다.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는 가족이나 지인 그리고 이웃이 있으면 그나마 버틸 만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경제력이 전제돼야 성립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늙어간다는 것은 먼 옛날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고들 한다.가스비와 건보료에다 장바구니 물가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행되는 인상러시가 고만고만한 수준의 은퇴자들을 힘겹게 만들고 있다. '이런 노후는 상상도 못 했다'는 것이 이들의 하소연이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만큼 허튼소리로 여겨지지 않는다. 노후대책이란 단어가 지금은 솔깃하고 필요성도 충분히 공감된다. 인위적으로라도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 대부분의 50~60대 이상 장삼이사들에겐 사실상 '그림의 떡'이었다. 해야 하지만 할 수 없었고, 하기 싫었지만 해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삶을 쳇바퀴 돌 듯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녀양육이나 집 장만 등에 치여 먹고살기 바빴기에 그저 믿을 것이라고는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어떻게 되겠지' 정도였다.눈앞에 닥친 현실은 예상보다 빠듯하고 더러는 가혹하다. 7년 전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온 NHK 다큐 '노후파산'(2016년)이 느닷없이 소환되고 있는 것 역시 남의 일이 아니라는 현실인식이 깔린 탓일까.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 마주해야 할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 적당한 규모의 집이 있고 부지런하게 직장도 다니며 꼬박꼬박 연금도 넣었는데 어느새 노후파산의 길로 들어섰다는 경험담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물론 일을 안 해도 재산이 증가하는 부자는 예외다. 대체로 일을 안 하면 재산이 줄어드는 서민이나 일을 해도 재산이 감소하는 빈곤층이 해당된다. 게다가 병에 걸리거나 경제활동이 여의치 않으면 노후파산은 불가피해진다.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등 외부와의 교류는 시간이 흐를수록 뜸해지고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마음의 벽은 점점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무던히 애를 써도 희망보다 절망의 크기가 커지는 사람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거나 '행복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라는 식의 위로나 강요는 어떤 의미에서 폭력과 다름없다.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으니 다큐의 부제처럼 '장수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급변하는 사회적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주택연금 신청자가 크게 늘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국민연금을 조기수령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덜 절실한 사람들의 꼼수와 편법이 판을 치는 세상이긴 하지만, 정부의 '금융치료'가 필요해 보인다. 경제력으로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돈만 한 게 없다. 직접지원보다는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상당수 국민이 우려하는 삶의 질 하향평준화를 막으려면 국가가 나서서 적절한 보호장치를 가동해야 한다. 한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평균의 국민이 개인의 일탈이나 무능이 아닌 다른 이유로 황혼의 삶이 팍팍하고 고통스러워진다면 국가는 과연 책임이 없을까.장준영 논설위원장준영 논설위원
[박재일 칼럼] 팽창의 시대는 끝났다
지하철 2호선 대구은행역이 집 앞에 있다. 이용할 때마다 2호선은 정말 크고 웅장하게 잘 지었다고 느낀다. 엄청 큰 대리석 모양 기둥들이 줄지어 버티고 있다. 대구은행역만이 아니다. 범어역, 수성구청역도 마찬가지다. 지하 2~3개 층이지만, 실제로는 20m가량 아파트 7~8층 깊이다. 계단으로만 오르기는 힘에 부친다. 아마 이건 전쟁에 대비한 시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 나면 우리 동네 주민들은 지하철역으로 대피하면 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긴 평양도 폭격을 염두에 두고 지하 100m에 전철을 깔았다고 했던가.도시철도 관계자들을 만나 나의 이런 생각을 전하니 웃었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렸다고 했다. 2호선을 그렇게 크게 구축한 것은 20여 년 전 문희갑 시장 당시 2호선 지상, 그러니까 달구벌대로에 고가도로를 놓을 것을 대비해 지하교각을 미리 세우고, 깊숙이 전철을 놓았다고 했다. 도시 인구가 팽창하고 자동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던 시절, 미래를 대비한 구조물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고가도로는 없던 일이 됐다.달서구 두류정수장은 대구시 신청사 부지로 결정돼 있다. 뒤늦게 말이 많다. 4만5천 평 부지의 절반을 팔아 그 재원으로 청사를 짓자는 방안에 찬반이 엇갈린다. 두류정수장은 1970년대 만들어졌다. 대구시민의 수돗물을 책임지던 곳이다. 낙동강 문산정수장이 2009년 완공되면서 공급과잉 시설로 폐쇄돼 10여 년 방치돼 왔다.지하철의 웅장한 기둥, 두류정수장의 폐쇄는 미래 도시계획의 착오 탓이다. 핵심은 인구다. 당시에는 지금쯤 대구 인구가 236만 명이 아닌 450만명쯤 될 것으로 예측했다. 완전 빗나갔다. 국가정책도 인구통계 추이의 잘못된 예단에서 작금의 난맥상을 노출하는 것과 똑같다. 하긴 이해할 법하다. 대구는 1980년대 100만명 돌파를 자축했고, 인구는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불어나는 것으로 알았다. 도로와 지하철, 정수장은 무조건 넓히고 늘려야 한다고 믿었다.올 연초 홍준표 시장이 주관한 대구시 신년교례회에서 강은희 시교육감이 연단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교육감은 한숨부터 지었다. 올해 초등 1학년 입학 아동이 2만4천 명인데 10여 년 전에 비해 거의 반토막이 났다고 했다. 설상가상 지난해 태어난 아이들이 입학할 6년 뒤, 또다시 반토막이 난단다. 지난해 대구시 출생아는 불과 1만100명이다. 반토막의 반토막이 도래한다. 애를 안 낳는 나라 순으로 보면 한국은 세계 1등이다. 출산율 0.76의 대구는 그중에서도 1등을 다투는 도시다.대한민국은 팽창의 시대를 살았다. 압축성장의 신화다. 인구도 경제도, 도로와 지하철도, 학교도 쉼 없이 늘었다. 모두 열심히 달려왔다. 대신 우린 고밀도의 공간을 자초했다. 서울의 콩나물지하철이 상징이다. 오죽했으면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이 떠밀려 수백 명이 압사하는가. 이제 그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엄습함이 밀려온다. 어쩌면 대구와 같은 대도시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구상을 해야 할지 모른다. 50년 뒤 인구 150만명의 대구, 인구 3천만 대한민국은 통계 곡선이 됐다.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있다. 도로를 줄여 자전거, 산책길로 만들 그런 창의적 구상이 요구된다. 삶의 질을 향한 연착륙이다. 팽창의 대구가 아닌 '똑똑하고 여유로운, 스마트한 도시 대구'를 그려봐야 할 시대가 왔다. 팽창의 시대는 끝났다. 논설실장박재일 논설실장
[자유성] 나무의사들의 분통
지난 13일 국민의힘 김선교 국회의원 등 10명이 '산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했다. 골자는 관리소장이나 직원에게 아파트 정원수의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예방 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나무의사들의 반대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에는 이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 1천600여 건이 접수됐다. 반대의견이 우리나라의 나무의사 총수 1천154명을 넘어섰다. 나무의사뿐만 아니라 건강한 생활환경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참여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이 빗발치는 이유는 그것이 나무의사제도 시행의 목적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나무의사제도는 아파트 정원수를 비롯한 생활권 수목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입됐다. 나무에 벌레가 생기면 덮어놓고 살충제를 뿌리고, 병이 생기면 무슨 병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살균제를 대량 살포하는 주먹구구식 수목진료에서 벗어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진료를 하기 위한 제도다.이를 위해 엄격한 교육과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수목의 병과 충·비생물적인 피해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에게만 나무의사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많은 아기와 어린이·임신부·노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더 많은 사람을 폐손상증후군으로 고통받게 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듯, 아파트 정원수처럼 일상생활에 가까이 있는 나무에 무분별하게 농약을 살포하면 그 피해는 모두 입주민에게 돌아간다. 이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은 오는 29일까지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하길 기대한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하프타임] 우리는 왜 그렇게 여유로울까
한 국회 보좌진과의 점심 자리였다. 주제는 최근 국회 입법·예산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우리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특정 지역의 활동에 대한 칭찬이 주요 대화 주제였지만 이와 비교한 지역의 대응은 굉장히 아프게 다가왔다. 요약하자면 경북과 '자매결연'을 맺은 호남 지방의 한 지역에서는 예산 작업을 위해 매일같이 경북의 의원실을 찾으며 노력했고 관련 문서도 빈틈없이 잘 작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달리 경북의 한 자치단체는 비슷한 상황에서 메일로 자료만 한 번 보낸 뒤 무대응이었다고 했다. 마치 예산을 맡겨놓은 듯했다는 것과 이런 세태가 20년째 달라진 게 없다는 그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또한 대구경북신공항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대구경북은 (국회에서) 주력하는 게 공항 말고 없어?'라는 말에 솔직히 할 말이 없어졌다. 우리가 공항 외에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이 무엇이 있는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UAM, ABB 산업 등이 있지만 지역만의 차별화된 아이템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로봇, 물산업, 미래차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긴 했다. 하지만 소위 '앵커기업'이 이끄는 주력 산업은 대구경북에선 수십 년째 큰 변화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자체에서 입법을 통한 발전 노력이 없다는 것도 아쉽다. 경북도에서 산업 인력 및 지역 소멸 극복을 위해 지방이 발급하는 '광역 비자'를 내세우며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있기는 하지만 과거 행정통합과 같은 큰 변화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반면 전북과 강원도가 '특별자치도'로 지역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고 수도권에서 경기도가 분도를 추진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지역 발전을 위한 국회 차원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하지만 대구경북은 자체적으로 준비했던 행정통합이 무산된 이후 별다른 혁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정부 계획에 따라 대구경북은 메가시티로 광역 생활권을 구축하기로 했으나, 오히려 최근에는 대구와 경북이 서로 분리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든 부분에서 우리는 너무 여유롭다는 생각이다. 공항특별법도 제정되면 이후에 지역 발전을 위해 간절하게 지자체와 언론이 합심해 만들어 낼 '아이템'은 무엇이 될까? 무엇이 될진 모르겠지만 여유를 부리기보단 빨리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정재훈 서울본부기자정재훈 서울본부기자
[자유성] 부모 빚 대물림
경북 구미시에 거주하는 아동·청소년은 부모에게 ‘빛’이 아닌 ‘빚’을 물려받더라도 파산을 막을 수 있게 됐다. 친권자나 피상속인이 사망할 경우 아동·청소년이 한정승인·상속 포기 의사표시가 가능하도록 법률 서비스 지원 조례를 제정했기 때문이다. 구미시의회는 지난 16일 열린 제265회 임시회 본회의장에서 ‘아동·청소년 부모 빚 대물림 방지 지원 조례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신설 조례는 구미시에 거주하는 24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이 친권자나 피상속인 사망으로 발생하는 채무를 일방적으로 떠안는 억울함이 없도록 했다. 구미시장에게 상속채무 대상자 발굴과 권리보호 의무를 부여해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직접 지원이 가능하도록 명시했다. 아동·청소년 법률지원에 필요한 비용도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민법상 친권자·피상속인 사망으로 발생한 채무가 남겨진 것을 알게 된 3개월 이내에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미성년자 상속인이 채무를 떠안아야 한다. 구미시의 이번 조례안은 내달 중에 효력이 발생한다. 이날부터 빚 대물림으로 발생하는 미성년자 파산은 사실상 사라지는 셈이다. 대법원이 집계한 2016년부터 5년간 부모 빚 상속 등으로 파산을 신청한 미성년자가 80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미성년자 파산 신청은 매월 1명 이상 발생할 정도로 아동·청소년의 빚 대물림 문제는 사회적 문제였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부모의 채무를 상속받은 아동·청소년에게 ‘빚’ 대신 ‘빛’을 주는 구미시와 구미시의회에 박수를 보낸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박규완 칼럼] '몰빵'의 몰락
SVB와 JMS는 뜬금없고 낯선 철자였다. 하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언론이 워낙 이 단어를 도배해서다. 미국의 16위 은행 SVB와 사이비 종교 JMS(기독교복음선교회)는 애당초 함께 엮을 수 없는 화두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긴 하다. 둘 다 이니셜이라는 거. SVB는 실리콘밸리은행의 머리글자이고 JMS는 교주 정명석의 이니셜이다. JMS는 패러디 소재가 되기도 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 사당화를 빗대 'JM'S 민주당'이라는 글을 SNS에 올리자 민주당이 발끈했다. '몰빵'도 닮은꼴이다. JMS는 돈과 조직과 교리가 오직 정명석 1인에게 집중된다. 이를테면 권력의 몰빵이다. JMS 파산 원인은 투자의 몰빵이다. SVB는 고객이 맡긴 예금을 미국 국채나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증권 투자에 쏟아 부었다. 안정적으로 예대 마진을 챙길 수 있는 대출엔 소홀했다. 그러다 금리인상 폭탄을 맞았다. 미 Fed(연방준비제도)가 공격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서자 돈줄이 마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IT기업의 예금 인출이 이어졌고 SVB는 보유 국채를 헐값에 팔아야 했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국채값이 폭락한 까닭이다. 투자 손실은 뱅크런을 촉발했고 급기야 SVB는 폐쇄됐다. 분산 투자를 외면한 대가다. 우리 정치권에도 '몰빵'이 어른거린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선출직 최고위원을 싹쓸이한 데 이어 주요 당직도 독식했다. 공천의 실무 권한과 여론을 담당할 사무총장(이철규), 전략기획부총장(박성민), 조직부총장(배현진), 여의도연구원장(박수영)의 면면이 윤핵관이거나 초선 의원 연판장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이러고도 '연포탕(연대·포용·탕평)'? 아니 친윤 일색의 '용산탕'에 가깝다. 김기현 대표는 '당정일체'를 교조처럼 신봉하는 데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꺼이 90도 인사를 해댄다. 당정일체를 넘어 대통령 친위부대의 완성이다. 윤 대통령이 100% 그립을 쥘 수 있는 구도다. 이쯤 되면 내년 총선 공천의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검사 출신 50명으로 영남권 후보를 대거 물갈이한다는 소문이 낭설만은 아닐 것이다. 검사들이 입법부까지 장악하는 '검사 왕국'의 화룡점정이 현실화할지 궁금하다. 하지만 '친윤 몰빵'이 팬덤을 결집하는 효과는 있겠으나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대엔 독이다. 포트폴리오 원칙에도 위배된다. 리스크 관리의 함정은 어떡할 건가. 민주당은 '이재명 몰빵'이 입길에 오른다. 민주당이 처한 한계다. 120만명의 권리당원 중 '개딸'로 집약되는 팬덤은 30만명 남짓이다. '개딸'로만 총선 승리는 불가능하다. 중원으로의 세력 확장이 필수다. 하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병목현상을 유발한다. 대선 후보 지지율 1위 이재명의 '브랜드 가치' 또한 급락 위험을 내재한다. 브랜드 가치와 사법 리스크 간의 데드크로스가 발생하면 이 대표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당내에서 제기되는 '질서 있는 퇴진론'도 데드크로스에 대비한 포석이 아닐까 싶다. 적절한 시점에 이 대표가 사퇴하고 비대위 체제로 총선을 치른다? 나쁘지 않다. 다만 퇴진 시기가 관건이다. 강성 지지층의 비위만 맞추는 팬덤 정치는 극우와 극좌를 추동한다. 거대 양당의 푯대가 될 순 없다. 좌·우의 극지(極地)에 몰려 있는 광신자들은 차라리 무시하는 게 낫다. 왜 밀란 쿤데라가 "광신자 집단이 범죄적 정치체제를 만든다"고 경고했을까. 공당(公黨)이라면 중원으로 우군의 영토를 넓혀야 한다. 바로 포트폴리오 정치다. 리스크를 분산하려면 '몰빵'은 금물이다. SVB의 몰락, 정치권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진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자유성] TV 수신료 논란
TV 수신료 징수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KBS 수신료(월 2천500원)의 전기요금 통합 징수 방식에 대한 국민 여론 수렴에 나선 때문이다. 1994년 도입한 한전 위탁 징수제도가 시대에 맞지 않고, 시청자 선택권 및 수신료 납부 거부권 행사를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KBS는 징수 방식 변경이 공영방송에 대한 심각한 재정 압박을 가져와 공영제 존폐와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TV 수신료 논란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십 년간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엔 야당이 아니라 대통령실과 여당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이 예전과 다르다. 명분은 수신료 강제징수 방식과 KBS의 방만 경영이다. 영국의 BBC 수신료 2028년 폐지 방침, 프랑스 하원의 공영방송 수신료 폐지안 통과, 일본 공영방송 NHK의 수신료 인하 단행도 명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기저에는 KBS의 편향보도가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보수 쪽은 "진보 성향의 노조가 장악한 방송이 편파·왜곡 보도를 한다"고 주장한다. 정권이 방송사 통제를 위해 수신료 문제를 꺼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한편에선 KBS의 자업자득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최근 몇 차례 오보로 사과방송도 했다. 조국 사태를 비롯해 그동안의 보도가 과연 중립적이었는지, 편향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KBS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 성향에 따라 한쪽에 치우친 보도 행태를 보인다면 수신료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KBS는 수신료 반발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먼저다. 박윤규 논설위원
[영남타워] 이철우와 하정우
"영화배우 하정우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세계 최초로 서빙로봇을 개발해 미국·일본·한국에서 판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베어로보틱스(Bear Robotics)의 하정우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던진 말이다. 지난달 28일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이 열리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그를 불과 20여 일 만인 지난 21일 경북도청에서 다시 만났다. 여전히 사업가라기보단 대학생 같은 풋풋한 느낌. 1976년생인 그의 나이도 쉰을 앞두고 있지만,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단 변화를 즐기는 모습이라고 할까. 도전정신이 몸에 배어 있었다. 경북도·구미시 등과 AI(인공지능)서비스로봇 제조 글로벌 생태계 구축 관련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미국에서 바르셀로나로 날아온 하 대표의 첫인상은 서빙로봇 1만대를 생산해 1억달러(약 1천3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실리콘밸리 기업의 대표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날 비즈니스 미팅만 약속돼 있던 하 대표는 이후 일정을 모두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함께하며 MWC 참관 구미 기업 간담회에 이어 경북도 경제사절단 저녁 식사 자리도 같이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하 대표는 숙소가 바르셀로나 시내였음에도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차량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경북도 경제사절단 숙소(시제스)까지 버스를 함께 타고 이동했다. 수행비서나 동행 회사 직원도 없이. 이후에도 호텔 근처 식당에서 이어진 술자리는 물론 이 도지사의 시제스 해변 맨발 걷기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이며 우의까지 다지는 모습이었다. 서빙로봇으로만 불과 2년 만에 지구 38바퀴에 달하는 150만㎞의 총누적주행거리와 세계인구의 15%인 1억건의 배달 수를 기록한 기업의 대표 행보라기에는 믿기지 않았다. 밤이 늦어 시제스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택시가 없어 결국 하 대표는 이 도지사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 날 오전 자신의 호텔로 향했다.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버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하 대표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노래 요청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베어로보틱스가 왜 서빙로봇 세계 1위가 될 수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술에 취해 잠이 들면서도 주변의 건배 제의에 눈을 떠 잔을 다시 드는 그의 모습은 바로 옆자리를 지키던 이 도지사와 닮은꼴이었다. 안동소주 홍보 및 영국 시장 판매 루트 확보와 MWC 참관 및 관계자 만남을 통한 '경북 AI서비스로봇 제조 생태계 구축' 방안 마련 등을 위해 유럽 출장 기간 내내 동분서주했던 이철우와 CEO 같지 않은 하정우는 다른 듯하면서도 묘하게 닮았다. 순두부 식당 사장에서 서빙로봇 세계 최대 기업 대표가 된 하 대표와 국정원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거쳐 광역단체장이 된 이 도지사를 보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만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난 유럽 출장에서 가장 큰 수확이라면 이철우의 진면목과 CEO 같지 않은 CEO 하정우를 알게 된 것이다.임성수 경북본사 부장 임성수 경북본사 부장
[자유성] '전범 수배자'된 푸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해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ICC는 전쟁 범죄나 반인도 범죄 등을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 상설 기관이다. 이 같은 범죄 혐의가 입증될 경우 국가원수의 면책 특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국가원수급을 기준으로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은 푸틴이 세 번째다. 앞서 2009년 오마르 하산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 2011년에는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푸틴이 받고 있는 혐의는 우크라이나 아동들의 '러시아 불법 이주'다. 체포영장에는 최소 수백 명의 우크라이나 아동이 고아원과 아동보호시설에서 납치돼 (러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한 사실이 포함됐다. 러시아의 '아동 납치'는 우크라이나 아동을 러시아에 강제로 데려간 뒤 위탁 가정에 맡기고, 향후 러시아 국민으로 살도록 하는 게 목표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엔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현재까지 약 70만명 정도가 러시아로 이주한 것으로 추산한다. 수사를 총괄하는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아이들이 전쟁의 전리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범 행위 혐의에 대한 ICC의 강제수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쉽지 않다. 러시아가 2016년 ICC를 탈퇴한 상황이어서 협조할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범 행위를 방기할 순 없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이라는 푸틴의 조롱을 국제사회가 반드시 단죄해야 제2·3의 푸틴 출현을 방지할 수 있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 부장
기획
[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 사람 소리 가득했던 '전통시장' 역사 속으로…주상복합·아파트 '빌딩숲'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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