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여론에 맞서지 말라
이재명 대통령의 반면교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재임 내내 여론을 거스르며 국민에 맞섰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부터 그랬다. 윤 부부의 '그로테스크한 신념'이 졸속 이전을 추동했다. 그러나 결말은 실각. 무속과 풍수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행안부 경찰국 부활, 강제징용 배상안 역시 반대 여론을 뭉개고 밀어붙였다. 김건희 여사 특검, 채 해병 특검은 국민 60% 이상이 찬성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막았다. 인사도 '마이 웨이'였다. 극우와 검찰이 중용됐다. 공안검사 출신 인권위원장, 극우 여전사 방송통신위원장이 웬 말인가. 산림(山林)은 조선시대 민간에서 학문적 권위와 세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참여한 인물을 말한다. 산림은 사림(士林)의 여론인 청의(淸議)를 공론화해 붕당정치를 이끌어갔다. 즉 산림의 권력은 사림의 여론에서 나왔다. 정치주도 세력이 여론을 형성했다. 지금은 다르다. 시시각각 밑바닥 세론(世論)이 중계되고, 수백 개의 여론조사기관이 변화무쌍한 민심을 밀착 탐지한다. 미디어의 다양화, 진일보한 민주주의가 여론정치를 펼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이재명 정부는 명색이 국민주권정부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의 주권의지가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작금 일련의 인사 맥락은 민심과 엇나갔다. 강선우 여가부 장관 후보자 발탁은 '코드 인사'로 비쳤고, 최동석 인사혁신처장과 강준욱 전 국민통합비서관 기용을 보면 '잡탕 인사' 같다. 강선우 파동은 극적이다. 이 대통령의 첫 번째 패착이 될 뻔했다. 내로남불의 '주홍글씨'로 남을 뻔했다. 자진 사퇴는 반전의 수(手)다. 악화일로 민심을 달랬고, 정권 초반 국정동력 상실을 막았다. 여론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은 것도 득(得)이다. "임명 반대 여론이 찬성의 2배가 되자 충성심이 사무쳐 눈에서 꿀 떨어지던 강선우를 가차 없이 내던져 버렸다"(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막무가내 강선우를 감쌌던 민주당 김병기 원내지도부는 반성해야 한다. 강선우를 옹호하며 '갑질 자정운동'을 벌인 건 코미디였다. 대통령의 도방 노릇만 해대면 여당 자격이 없다. "국민 수용성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 김상욱 의원의 말을 곱씹어야 한다. 대통령이 여론을 거스르지 않으려면 소통해야 한다. 국민과의 소통은 물론이고 대통령실 참모, 각료, 야당, 여당, 언론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소통의 군주 세종은 신하들에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지적하라. 백성들이 어디가 아픈지,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말하라"고 집요하게 물었다. 한글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를 설득했고, 대신들이 토지세 개편에 반대하자 토론과 설득을 통해 관철했다. 재위 32년 동안 1천898회의 경연(經筵)을 열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의 토론식 국무회의는 평가할 만하다. 이재명 정부 1기 내각 인선이 마무리된 후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대통령님 눈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인사 기준이 엄정하다는 자찬이리라. 한데 우리 국민들 눈도 꽤 높은 편이다. 콕 집어 표절 이진숙, 갑질 강선우 후보자의 퇴출을 명령했다. 인사뿐이랴. 엇길로 빠지는 정책에도 기탄없이 경고음을 울릴 것이다. 현대시민은 고등교육으로 업그레이드하고, SNS로 정보를 습득하는 포노 사피언스(Phono Sapiens)다. 게다가 상식적이다. 그러니 여론에 맞서지 말라. 논설위원 尹, 재임 내내 국민에 맞서 용산 졸속이전 결말은 실각 여론정치 펼 생태계 조성돼 강선우 사퇴, 李 반전의 수 소통해야 국민 눈높이 충족 박규완기자 wan@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