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대구의 시간’을 빼앗지 않기를

  • 윤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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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12 06:00  |  수정 2025-11-11 17:24  |  발행일 2025-11-11
울산역복합환승센터 포기
‘잃어버린 10년’에 허탈
대구 개발사업 지지부진
오랜 희망고문에 지쳐가
지역과 약속 ‘사회적 책무’


윤정혜 경제팀장

윤정혜 경제팀장

될 것처럼 기대를 안겨놓고 끝도 없이 기다리게만 하는 행위는 고문이나 다름없다. 상대는 그 작은 희망에 매달리느라 자신에게 올 수 있는 다른 기회마저 놓치게 되는 법이다. 이것이 희망고문이다. 이 단어가 일상 생활 속에 파고들며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주인공 대사로 언급되면서로 기억한다. 사람과 사람 간 관계성에 주로 쓰이던 희망고문이라는 용어를 최근 취재 과정에서 접했다.


"롯데가 그동안 시민들에게 희망고문을 오래한 탓인지, 아주 강한 수준의 이행담보를 담은 합의각서인 것 같습니다."


2023년 대구시와 롯데쇼핑이 수성구 대흥동 일대 지어지는 복합쇼핑몰(타임빌라스 수성)을 두고 대구시 고위직 공무원이 꺼낸 말이다.


그래. 희망고문이었다. 롯데쇼핑이 수성알파시티에 복합쇼핑몰을 개점하겠다는 개발 구상은 대구시민에겐 오랜된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희망고문이다. 2026년 6월 준공을 약속한 시점이 이제 반년 남짓 남았지만, 건물 공정률은 20%에 그친다. 약속한 시일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남은 이유로 속단하기에 이르다는 시선도 있겠지만, 건물 뼈대 조차 볼 수 없는 오늘의 현실에서 준공도 개점도 미뤄지지 않을지 우린 또 우려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대구에 보여왔던 행보가 그랬다. 시작은 2014년으로 거슬러간다. 개발부지를 매입한 뒤 연면적 37만㎡ 규모의 대형복합쇼핑몰을 건립하겠다고 밝힌 롯데의 구상은 2019년께 사업계획을 돌연 축소해 연면적 23만㎡ 규모로 2022년 개점으로 수정했다. 이후에도 국내외 경기악화와 코로나19로 개점시기를 2025년으로 연기했으나 이 마저도 지지부진했다. 보다 못한 당시 홍준표 대구시장은 부지 환수와 세금 철퇴와 같은 강력한 행정제재 카드까지 내놓으며 압박하자 '2026년 6월 준공과 9월 개점'을 명시한 합의각서를 하게 됐다.


건물 준공과 개점 시한을 못박고, 일정 유예기간 후까지 개점이 미뤄지면 사업 지연에 대한 보상금을 부과하는 강력한 이행조치가 담겨있다. 시민들은 '이번에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겠냐'하는 기대를 걸었다. 대구시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정작 업계에서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건설·유통업계 관계자 누구도 내년 개점이 가능할 것이라 확신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롯데가 현실적인 일정표를 다시 제시하고, 시민에게 상황을 솔직히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안한 시그널은 또 있다. 지난달 롯데는 2015년부터 진행해 온 '울산역 복합환승센터' 개발사업을 공정률 10%에서 결국 포기했다. 오프라인 유통시장 침체와 건설경기 악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울산에 남은 건 '잃어버린 10년'이었을 것이다.


롯데몰 개점을 기다리며 꿈과 희망을 안고 주변 지역에 투자한 이들도 있다. 개점만 바라보며 대출 이자를 갚는데 허덕이지만 아직 꿈을 꺾진 않았다. 대구시도 지역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로 롯데복합쇼핑몰의 신속한 건립에 인허가 등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롯데의 비전을 믿고 기다려온 시간, 시민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랐다. 불확실한 계획을 "곧 된다"는 말로 포장하는 것은 시민의 시간을 인질로 삼는 행위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사업성을 담보하고 투자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 지역 사회와 약속은 단순한 사업계획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무라는 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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