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의류부터 명품 가방까지... SNS타고 뜬 관문시장 '구제 골목'
"나한테 딱 어울리는 옷을 찾아내는 재미가 정말 쏠쏠해요. 헌옷이면 어때요? 오히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걸요."
지난 10일 오후 대구 남구 관문상가시장 내 이른바 '구제골목'. 청주에서 친구들과 함께 대구 여행을 온 조수연(여·23)씨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각자 고른 옷을 거울에 비춰보며 서로의 스타일을 제안해주고 있었다.
대구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 구제 쇼핑 여행을 위해서다.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관문시장 구제골목의 명성을 접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가격이 저렴해 부담이 없는 것은 물론 버려진 옷을 재활용한다는 차원에서 환경보호에도 기여한다는 뿌듯함이 있다"고 말했다. 함께 온 김지원(여·23), 김미정(여·23)씨 역시 "잘 찾아보면 나한테 어울리는 제품을 헐값에 건지는 재미가 크다"며 입을 모았다.
대구 남구 관문시장 구제골목. 이나영기자 2nayoung@yeongnam.com
대구 관문시장 구제골목이 세대를 초월한 쇼핑의 즐거움과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동시에 잡으며 대구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중고거래가 경제적 결핍에 의한 '차선책'이 아닌 MZ세대에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아이템이 되면서다.
관문시장 구제 매장마다 사시사철 계절별 옷부터 가방, 신발, 심지어는 가발과 안경, 액세서리, 애견 옷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고 있었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부터 고가의 명품까지 꼼꼼히 살피면 수십만원대를 호가하는 제품들도 중고물품이라는 이유로 헐값에 나와 있었다.
관문시장의 구제 열기는 비단 젊은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국규 규모로 큰 데다 상품질이 좋아 도매상들도 찾고 있었다.
10년째 구제상점을 운영 중인 50대 상인은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관광객과 노동자들도 많이 찾는다. 티셔츠나 잠옷은 3천원에서 5천원 선에서 판매하다 보니 가성비가 뛰어나 인기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복조리구제' 성보경 대표는 "대구 관문시장이 서울 동묘 다음으로 전국에서 큰 규모일 것"이라며 "반월당이나 동성로의 구제숍 사장님들도 한 번에 500~600장씩 떼어간다. 오래 장사를 하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찾아 오는 단골들이 생겼고, 이제는 단골들의 취향에 맞춰 추천해 주는 정도가 됐다"고 했다.
물건들은 주로 환경수거업체나 가정에서 가져오는 편이다. 단골이 된 손님들이 물건을 가져와 팔기도 한다.
관문시장 구제골목이 성장한 배경에는 상인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소비자들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직접 세탁해 깔끔한 상품을 선보이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2000년대 초반부터 구제골목을 지켜온 최영환(74) 관문상가시장상인회 이사(소영이네 대표)는 "요즘 소비자들은 깔끔한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옷과 신발을 직접 세탁하고, 가방은 수선해서 내놓는 것이 우리만의 철칙"이라며 "처음 시작할 때는 점포가 6개 남짓이었는데 20년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일대에만 600곳에 달하는 구제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가치소비'와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 인식 변화의 결과로 해석한다. 과거에는 중고의류가 '남이 입던 헌옷'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환경을 고려하는 '에코슈머'의 선택이자 합리적 소비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계명대 박해남 교수(사회학)는 "경제적 합리성과 환경을 고려한 선택이 더해져 레트로 소비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확장되고 있다. 레트로 열풍이 꺼지지 않고 이어지면서, 1990년대 스타일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도 한몫 한다. 이미지에 민감한 현 세대는 과거의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과거 대중문화가 담고 있던 활기차고 낙관적인 이미지를 패션으로 재현하며,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구 남구 관문상가시장 3지구 '소영이네' 내부 모습. 이나영기자 2nayoung@yeongnam.com
김지혜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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