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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현대판 하마평
하마평은 말(馬)에서 내린 관리들이 업무를 보는 사이 하마비(下馬碑) 앞에 남은 마부끼리 잡담을 나눈 데서 유래됐다. 마부들의 쑥덕공론 속에 그들이 모시는 상전이나 주인의 인사이동, 승진 등에 관련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기 때문이다. 하마비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石碑)다. 조선 태종 재위 때인 1413년 종묘와 궐문 앞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표목(標木)을 세워놓은 것이 하마비의 효시다. 이후 지방관아와 성현고관의 출생지, 문묘에도 하마비가 세워졌다.조선시대 하마평이 마부들의 입방아였다면 오늘날의 하마평은 고도의 레토릭이자 정치행위다. 자천(自薦)으로 하마평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평소 친분 있는 기자나 언론사 간부를 동원하는 '셀프형'이다. 찔러보기, 간보기 하마평도 있고 사전 여론 검증을 위해 정보를 슬쩍 흘리는 방식도 있다. '박영선 국무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유력 검토설'이 딱 그렇다. 보도 4시간 뒤 대통령실은 공식 부인했지만 실제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다.기실 박영선 전 민주당 의원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끈끈한 사이다. 박 전 의원은 국회 법사위원 시절 검사 윤석열과 인연을 맺었고 양 전 원장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추천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친윤 인사 낙점으로 유턴하는 건 나쁜 시나리오다. 벌써 장제원 비서실장설이 무게감 있게 나돈다. 신임 총리, 비서실장 임명은 협치의 시금석이다. 야당과 대화 채널을 만들고 협의하는 건 어떤가. 박규완 논설위원
[이재윤 칼럼] Never the same again
먼 곳의 지인이 세례식 장면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세례(洗禮)'는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는 기독교 의식이다. 세례식장의 배경 현수막 글이 눈에 들어왔다. 'Never the same again.'#4년 전 '멸절'='우파 보수 세력은 멸절 위기에 처한 것 같았고, 좌파 진보 세력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석패가 아닌 참패로 변화를 위해 더 다행스러운 계기를 맞게 되었다. 신승이나 분패였으면 과거의 행태를 계속하면서 변화의 채찍을 가하지 못했을 터이다. 폭망한 게 어떤 면에서는 더 낫다. 시간은 충분하다. 오히려 잘 됐다.' 이번 총선 얘기가 아니다. 4년 전 21대 총선이 보수 참패로 끝난 뒤 한 언론인이 쓴 '한국 정치를 낙관하는 이유'란 글 일부이다. 그는 주로 우파 매체 필진이다. 참패를 낙관의 눈으로 바라본 건 특별하다. 분노를 꾹꾹 누른 절치부심의 기개가 느껴진다. 바닥을 보고야 얻게 되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터이다. 4년 전 백서를 쓰고도 필패 공식을 재연한 여당. Never the same again. '결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절규를 되뇌며 다시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수는 과거로부터 대체 얼마나 멀리 달음질쳐야 할까.#또 비대위?='목련 피는 봄'을 기약했던 한동훈의 봄은 오지 않았다. "결과에 대해 충분히 실망합시다"라는 그의 작별 인사는 또 다른 어법의 절규다. 어떤 불행도 당연한 건 없다. '절규'도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습관은 내가 만들지만, 습관도 나를 만든다. 벌써 몇 번째 비대위인가. '국민의힘' 당명이 탄생한 것도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다. 모태가 '비대위'여서일까. 윤석열 정부 출범 2년도 안 돼 4번째다. 한동훈 비대위가 해산한 지 한 주 만에 또 비대위 우산 아래 피신을 도모한다. 비대위의 반복은 무엇을 뜻하나. 그간의 '비상 대책'이 모두 헛수고였다는 방증이다.#진심(眞心)과 진심(盡心)=대통령의 총선 반성문은 안타까웠다. '반성'은 최소한의 구색을 갖춰야 한다. 선명하지도 구체적이지도 않고, '사후 조치'도 없는 반성은 진실하지 않다. 대리 사과도 아니고, 4시간 뒤 부랴부랴 '비공개회의'에서 대통령이 "죄송하다"는 표현을 썼다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대통령실 관계자'가 부연 설명한 건 황당하다. 다음 날 새벽 댓바람을 탄 뉴스는 더 당황스러웠다.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 설(說)은 여권을 멘붕 상태로 몰아넣었다.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국정운영, 왜 이럴까. '반성'의 수사(修辭)만 있고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 '비대위 반복'의 인과(因果)와도 상통한다. 사흘 전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했다는 홍준표 대구시장. '정치는 진심(眞心)과 진심(盡心)으로 하는 것'이란 평소 소신을 잘 전했을까.대통령의 진심은 앞으로 두 가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재명을 만나느냐, 총리·비서실장에 누구를 앉히느냐이다. 비대위를 반복하고 비상 대책을 아무리 되풀이해도 변화가 없는 반성은 거짓이다.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 이야기는 우화가 아니다. 늘 현실에 존재한다. '늑대다~'라고 절규해도 국민이 더는 반응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때 또 비대위에 몸을 의탁하려는가. Never the same again. 유승민의 말을 빌리자면 '불파불립(不破不立·깨뜨리지 않으면 세울 수 없다)'이다. 논설위원논설위원
[하프타임]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을 기대하며
지난 7일 대구마라톤에 참가하는 가족들을 대구도시철도 2호선 지하철역까지 자가용으로 태워준 적 있다. 기자 역시 대구마라톤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업무 탓에 달리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본격 교통통제 시작 직전이었기에 기자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고 곧바로 업무 준비에 나섰다. 그러다 마라톤 출발장소인 대구스타디움의 모습이 궁금해 TV를 켜보니 대회가 생방송 중이었다. TV화면 속 출발선에 혹여나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주의 깊게 살피던 중 마라톤 생중계는 항공촬영 장면으로 전환됐고 카메라는 대구미술관을 비추고 있었다. 방송은 대구미술관에 대해 '대구 근현대미술의 역사적 가치를 연구하고 재조명…'이라는 내용의 자막을 내보냈고, 대구미술관 동편에 자리한 대구간송미술관의 모습도 카메라 앵글에 잠시 포착됐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대구간송미술관과 관련한 일들이 뇌리를 스쳤다. 대구간송미술관의 개관이 올해 하반기로 연기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지난달 쓴 적 있기 때문이다. 해당 기사를 쓴 이유는 간단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의 개관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역 미술 애호가들과 시민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고 기자는 이러한 지역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려 했다. 또한 당초 대구간송미술관의 개관 시기인 5월로 오픈 일정을 맞추려면 시범 운영 등 다양한 준비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영남일보의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연기 보도가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시도 관련 보도자료를 냈다. 오는 9월 초 대구간송미술관이 문을 열 것이라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여타 문화사업의 지연 사례와 달리 대구간송미술관의 개관 연기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대구가 자랑하는 근현대미술의 전통에다 고전미술의 영역을 더해 지역 문화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혀줄 장소로 기대를 모으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구간송미술관이 예정된 개관 일정에 맞춰 무리하게 문을 여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또한 목적 지향적인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나라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야기한 부작용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더욱 더 그렇다. 취재 과정에서 대구간송미술관 측의 진정성도 느낄 수 있었다. 보통 특정 사업의 완료가 연기된다는 내용의 기사는 부정적인 내용으로 점철될 수 있는 것이지만, 대구간송미술관 관계자는 "꼼꼼한 준비를 위한 과정이다. 시민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라는 솔직담백한 답변으로 일관해 오히려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대구시가 발표한 개관 연기 이유에는 더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개관전 전시 유물들이 국보·보물급 유물인 데다 습기에 취약한 지류유물(紙類遺物)이 다수를 차지하는 관계로 철저한 사전점검에 나설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대구간송미술관에 대한 시민과 지역 미술계의 기대감이 크다. 대구미술관과 인접한 대구간송미술관이 문을 열 경우 대구는 근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시각예술 클러스터 조성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되기 때문이다. 내년 대구마라톤 TV생중계에서는 대구미술관과 더불어 대구간송미술관에 대한 소개 설명을 함께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임훈 문화부 차장임훈 문화부 차장
[박규완 칼럼] 통합의 길 '제3의 길'
좌파이면서도 우파 같은 정치인이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다. 41세에 노동당 대표를 맡은 뒤 44세 때 총리에 올랐다. 1997년 5월부터 10년간 재임한 두 번째 장수 총리다. 진보 정당의 블레어 총리는 좌파 도그마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시장경제와 일자리 중심 정책을 펼치며 복지국가 영국의 비효율을 개혁했다. 좌파의 사회적 형평성과 우파의 경제 효율 사이에서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진취적 '정치 DNA'에다 준수한 외모, 세련된 매너를 겸비한 블레어는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블레어 정부의 정책 브레인이 런던정치경제대 교수 앤서니 기든스다.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다 반대하며 '제3의 길'이란 새로운 사회발전 모델을 제시했다. 우파이면서 좌파 같은 정치인이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이다. 그가 주창한 혁신보수론엔 한국판 '제3의 길'의 정치철학이 녹아 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던 2015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어제의 새누리당이 경제성장과 자유시장경제에 치우친 정당이었다면 내일의 새누리당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기조와는 사뭇 결이 달랐다. 결국 배신자 낙인이 찍히면서 밀려났다. 여당의 아웃라이어 유 전 의원은 지금도 여전히 '따뜻하고 진취적인 보수'를 추구한다.김대중 정부는 '제3의 길'의 시험대였다.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에서 모진 핍박을 받았다. 중앙정보부 요원에 납치돼 현해탄 바다에 수장(水葬)될 뻔도 했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대통령이 된 후엔 통합에 방점을 찍었다. 개인적 은원(恩怨)만 따졌다면 박정희 기념관 건립 약속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은 김대중 어록의 백미다. 마치 '제3의 길'의 가치와 정체성을 응축한 경구 같다. 김대중은 진보 대통령이었지만 시장경제의 도도한 흐름을 존중했다. 시장경제의 물꼬를 틀어막은 문재인 정부와 달랐다. 내각 경제팀엔 보수 성향의 전문 관료를 주로 기용했다.4·10 총선 후 새로 생겨난 사자성어가 있다. '서파동빨'이다. 실제 총선 당선자 지도를 보면 서쪽은 파랗게 동쪽은 빨갛게 물들었다. 108대 192의 여소야대와 '서파동빨'의 정치지형. 윤석열 정부 앞에 놓인 '불편한 현실'이다. 이 난삽한 구도를 타개할 방책이 '제3의 길'이다. 물론 실천은 쉽지 않다. 국정기조 전환이 전제돼야 하는 까닭이다. 무분별한 감세 정책을 고수하거나 대통령 거부권을 반복하면 협치는 멀어진다. 팬덤 정치를 지양하고 '아스팔트 우파'와 단절하며 부자감세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리한 방송 장악을 중단하고 인사 청문회를 무력화하는 독선도 버려야 한다.신임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비서실장 임명이 협치와 통합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낙점 인물에 대통령의 메시지가 담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동관 비서실장'이라면 불통과 독선을 고수하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무엇보다 국정운영 철학을 바꿔야 한다. 정부의 정책 입안 때 진보의 가치를 살짝 녹여내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정책 스펙트럼을 넓히자는 뜻이다. 코드 인사는 접어두자. 이념의 경계를 허무는 실용 인사가 필요하다. 진영논리는 땅속에 묻는 게 낫겠다. 진영논리에 집착하면 국정 추동의 원심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제3의 길'도 국민통합의 길도 열리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앤서니 기든스의 저작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와 '제3의 길'의 일독을 권한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영남타워] 도로 영남당이 아니라 원래 영남당
최근 필자는 지역의 한 다선 의원과 전화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차기 원내대표 출마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고민의 이유는 간단하다. 윤재옥 원내대표가 대구 출신인데, 또 대구·경북(TK) 출신이 나서면 타 지역 의원들의 반발이 클 것이란 것이다. 언론도 자신에게 '도로 영남당'이란 꼬리표를 붙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필자는 "당을 위기에서 건져낼 능력과 자신이 있다면 출마하시라"고 했다.국민의힘과 그 전신이었던 수많은 보수정당의 태생은 TK였다. 국민의힘 등 보수 정당은 TK 지역구 25석을 기본으로 깔고 간다. 출발점이 '0'이 아닌, '25'라는 것이다. 보수정당은 총선과 대선 등 위기 때마다 TK를 찾아 '보수의 심장' '보수의 성지'란 극찬을 쏟아내며 한 표를 호소한다. 하지만 총선이나 대선에서 패배한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영남당 이미지가 문제라며 TK 손절(損切)을 시전한다. 그때마다 지역 의원들은 무슨 죄인이라도 된 듯 아무 말 못 하고 눈치만 봤다. 국민의힘은 22대 총선 참패 후 동일한 패턴을 반복했다. 영남당 이미지를 벗기 위해 차기 당 지도부는 수도권 의원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뒤돌아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당의 위기와 21대 총선에서도 TK 유권자들은 흔들림 없이 보수정당에 지지를 보냈다. TK가 없었다면 보수정당은 이미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TK는 보수정당을 향해 미련할 정도로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미워도 밀어줬고, 싫어하면서도 믿어줬다. 그랬는데 지금 와서 도로 영남당이란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 살려줬더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필자는 국민의힘의 가장 큰 문제는 영남이 아니라 수도권 정치인들이라고 단언한다. 지도부가 영남권으로 채워지면 당 이미지에 좋지 않고, 수도권 민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수도권 정치인들이 진작에 나섰으면 될 일이었다.수도권 전·현직 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은 왜 지역구 관리를 제대로 못해 놓고 이제 와서 영남을 탓하는 것일까. TK 등 영남권 의원들이 자신들을 추대해주길 기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 경쟁을 통한 권력 쟁취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TK 의원들을 살찐 고양이라고 했지만 필자가 보기엔 국민의힘 소속 수도권 정치인들이야말로, 게으르고 살찐 고양이 같다. 자신들의 무능력에 대한 반성 없이 잘되면 자기들 덕분이고, 잘못되면 영남 탓만 하는 것 같다. 국민의힘이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도로 영남당이 아니다. 국민이 인정할 정도의 뼈를 깎는 혁신이 절실하다. 그리고 4년, 8년 뒤를 내다보는 인재 육성에 지금부터라도 나서야 한다. 대통령에게도 눈치 그만 보고 직언할 수 있는 강직함을 겸비해야 한다.지금처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TK 민심도 보수정당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투표율에서 이런 위기감은 현실이 되고 있다. 대구는 최근 5차례 선거에서 17개 시·도 중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이번 22대 총선도 TK는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적지 않은 TK 민심이 보수정당에 실망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이런 실망이 분노로 이어지고, 표심으로 나타난다면 TK에서 국민의힘과 같은 보수정당이 설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임 호 서울 정치부장
[자유성] 상상하는 AI
인공지능(AI)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놀라운 신기술이 쏟아져 나온다. 이 같은 추세라면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똑똑한 AI가 나올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의 도래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I 특이점 시점이 2045년쯤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요즘 AI업계에선 향후 5년 안팎으로 예상한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새로운 AI 모델의 능력이 내년 말 정도엔 인간 지능을 초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머스크가 언급한 새 모델은 범용인공지능(AGI)이다.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는 여러 분야에 두루 쓰이는 AI로, '강(强)인공지능'이라고도 한다. 인간 지시에만 따르는 '약(弱)인공지능'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실제로 AGI는 인간 이상의 학습 및 추론 능력을 갖추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과 상호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배우지 않은 개념을 스스로 떠올리는 창의성과 상상력까지 갖추게 된다. 이는 AI가 어떤 이유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모르게 된다는 의미다.특이점을 넘어서는 AGI의 출현은 수많은 철학적 난제를 던진다. 무엇보다 기계가 자의식 혹은 자유의지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만약 이를 인정하게 되면 인간의 지위는 신(神)의 능력에 버금가는 AI의 발아래에 놓일 수도 있다. 이미 미국에선 AI를 신으로 모시는 신흥 종교가 생겼다. AI가 창조할 미래 모습이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허석윤 논설위원
[동대구로에서] 정치 후진국의 민낯을 봤다
지난 4·10총선에서 국민들은 정권심판론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비상식적인 정치관행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날 우려가 있어 걱정이 앞선다. '국민 선택은 옳다' '여소야대 정국엔 소통과 협치가 답이다'란 말만 부각할 때가 아니다.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다. 알면서도 안 했다. 정치 색깔론에 기반한 '기득권 영구 수호 망령'이 뼛속 깊이 자리한 탓이다. 방치했다가는 국민의 일반적 사고와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 이번 22대 총선 때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이 161석, 국민의힘이 90석을 확보했다. 격차가 71석이나 났다. 득표율을 보자. 민주당은 50.5%, 국민의힘은 45.1%다. 득표율은 5.4%포인트 차이인데 의석수는 1.8배나 차이 났다. 마냥 여당 참패로 보기엔 께름칙하다. 한 지역구에서 1명만 뽑는 승자독식형 '소선거구제'의 괴리다. 현 선거제도가 민의(民意)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선거 당선자 중엔 범죄인으로 의심받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에 연루돼 재판받는 피고인들이 대거 당선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불법 대출 혐의로 고발되거나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성적 담론으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인물도 6월이면 여의도 배지를 단다. 부끄러운 형국이다. 사회적 지탄이 쏟아져도 당최 물러섬을 모른다. 검증용 이슈 제기는 끝내 '색깔의 벽'을 넘지 못했다. 표 호소 방식에선 정치 후진국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야당은 시급한 민생고 해소·경제 살리기 공약은 뒷전이고 정권 탄핵부터 외쳤다. 보복심리가 짙게 깔려 있고 눈엔 살기(殺氣)가 서려 있다. 다중복합 경제위기 속에서 민생 문제는 선거 후에야 언급했다.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선고가 화근인 것 같다. 탄핵을 너무 쉽게 보는 정치 악습이 생겼다. 국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탄핵 언급은 조심해야 한다. 국가 불안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전직 대통령이 마치 선대본부장처럼 대놓고 선거판을 휘젓고 다닌 것도 볼썽사나웠다. 잊히고 싶다고 언급한 분의 행동이다. 존경받는 조용한 조언자로 남아주길 바랐지만 극단적 편 가르기 진영정치구도를 더 심화시켰다. 정치는 경제, 사회, 문화 정책의 기본 틀을 짜고, 질서를 바로잡는 중요한 영역이다. 특히 입법(의회)권력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현 정부의 불도저식 불통 행정과 이를 방관한 여당은 분명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탄핵·특검으로 겁박만 하면 국정 불안만 야기한다. 야당이 수용성 있는 해법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국민 뜻'이라며 의석의 수적 우세로 밀어붙이는 행위는 총선 표심을 곡해한 것이다. 여당도 진정성 있게 대화에 나서야 한다. 지금 정치판은 '시궁창 속'을 보는 것 같다. 빨리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소선거구제'를 고수하기보다 한 지역구에 2~3명이 당선될 수 있는 중선거구제로 바꾸는 것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거대 양당체제 공고화와 지역구도 고착화를 해소하는 길이다. 입만 열면 여야가 영·호남 화합을 외치지만 막상 선거 때는 상대 당 후보의 입성을 허락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미국 상원제처럼 도시 규모에 상관없이 우리도 전국 17개 시·도에서 2명씩 별도로 의원을 뽑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전문성 대신 범죄이력자 보호용으로 전락한 비례대표제를 대체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 리셋(Reset)이 시급하다.최수경 정경부장최수경 정경부장
[영남시론] 포항지진 정신적 피해, 일괄 배상 안 되나?
큰 지진을 한번 경험하게 되면 '쿵' 하는 소리나 작은 진동에도 놀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심할 경우 전문가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필자도 2017년 포항지진을 겪으면서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지진이 가져다주는 공포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최근 대만과 미국 뉴욕에서 각각 발생한 규모 7.4와 4.8의 지진은 아마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특히 22년 동안 한 번도 지진을 경험하지 않은 뉴욕시민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상당했을 것이다. 이들 지역 외에도 올 들어 일본 등 지구촌 곳곳에서 큰 지진이 잇따르면서 포항지진 역시 자연스레 소환되고 있다.포항지진은 지열발전사업을 하다 발생한 촉발지진으로 결론 났다. 시민들은 정신적 피해가 컸다며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포항지진 피해 소송인단 규모는 최종 집계 결과, 49만9천881명에 이른다. 지진 당시 포항시의 주민등록인구가 51만9천581명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시민의 96%가 참여한 셈이다. 소송비용이 1인당 3만원인 만큼 150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고, 배상액도 1심 판결 기준으로 1조~1조5천억원에 이른다. 따라서 포항지진 소송은 원고인단의 규모는 물론 참여변호사, 배상액 등 규모 면에서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집단소송으로 기록될 전망이다.포항지진 소송의 1심 판결은 지진 등 재해를 국가배상으로 처음 인정한 판결이었지만 지금으로선 향후 재판 결과를 단정 짓기 어렵다. 이 때문에 포항지진 소송의 2라운드인 항소심이 언제 시작돼 어떻게 마무리될지가 관심사로 떠오른다. 변호인단 측은 5년 정도 걸린 1심보다 항소심이 상대적으로 짧을 것으로 예측하면서 1년6개월은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법원까지 간다면 진짜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포항시와 정치권 등에서 주장하고 있는 정부의 일괄 배상안은 과연 실현 불가능한 것인지 강한 의문과 함께 궁금증이 커진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 중인 포항지진 수사 결과가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정부 주도로 진행된 조사결과와 이번 수사결과의 결이 같은 방향으로 나온다면 '정부 일괄배상'도 가능해진다.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2019년 3월 지진이 인근 지열발전소에 의해 촉발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감사원도 2020년 4월 포항지진에 앞서 전조 격으로 3.1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유발지진 여부 확인과 지진위험도 분석 등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국책사업을 하다 빚어진 인재(人災)라고 못 박았다.검찰 수사가 이처럼 정부 책임론(論)에 무게가 실린다면 포항시민들에 대한 정부의 공식 사과와 일괄배상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이럴 경우 정부의 포항지진 피해 위자료 소송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정치권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된다. 22대 국회 원(院) 구성이 마무리되면 '포항지진특별법'을 개정, 일괄 배상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검찰 수사결과가 소송을 끝내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2019년 11월 시작된 검찰 수사는 4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정부조사단과 감사원 감사 그리고 법원의 민사 재판(1심) 결과까지 나온 만큼 검찰의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가 요구된다. 49만명의 포항시민들이 이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장마창성 동부지역본부장
[자유성] 용인 이상식
4·10 총선 때 관심을 가졌던 것 중 하나는 경기도 용인갑 선거구 더불어민주당 이상식 후보의 당선 여부다. 4년 전 그는 대구 수성구을 선거구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적이 있다. 민주당의 험지 중에 험지인 대구에서 낙선한 인사가 용인으로 옮겨 당선됐으니 여러 정치적 해석이 나올 만하다.이 당선인이 2022년 3월 민주당 용인시장 후보 경선을 위해 대구를 떠나면서 자신의 SNS에 남긴 글은 대구를 바라보는 진보정치인의 현실적인 고뇌가 담겨 있어서 기억에 남았다. 다시 찾아서 보니 이렇게 적혀 있다. "아무리 큰 뜻을 품은 들 그 뜻을 펼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더 이상 불확실하고 불가능한 것들에 제 미래를 걸지 않기로 했습니다."대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는 것은 불확실하고 불가능한 것이어서, 대구를 떠나 자신의 미래를 열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는 대구를 떠나 용인에서 당선됐지만, 이번 총선에도 여전히 대구 그리고 경북에 남아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한 인사들이 있다. 이들에게도 대구와 경북에서의 당선은 불확실하고 불가능한 것이었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마한 것은 이번에는 달라질 것이란 기대 때문일 수도 있고, 지역주의를 극복해보려는 충정일 수도 있다. 이 당선인의 SNS에는 이런 말도 있다. "때가 되면(그때가 오기를 너무나 열망합니다) 다시 여러분 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용인갑 지역구 의원으로 뛰면서, 대구발전을 위한 법안 통과나 예산 편성을 도와준다면 사실상 대구로 다시 돌아온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김진욱 논설위원
[자유성] 수면 이혼
옛 양반가에선 일심동체인 부부의 방도 안방(아내)과 사랑방(남편)으로 구분해 썼다. 야심한 밤 남편이 찾지 않으면 아내는 독수공방 신세를 면할 길이 없었다. 부부가 한 방에 있을 때도 거리를 둔 채 데면데면한 게 예사였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의 유교 문화가 낳은 풍경이다. 지금으로 치면 '쇼윈도(show window) 부부'가 많았을 법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에서 '부부 각방(各房)'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부부 갈등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순간 남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랜 각방은 소통의 단절을 불러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된다. 최악엔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 각방이 이혼 사유가 될까. 관련 판례는 혼인 관계가 파탄된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각방 별거가 오래되어 정상적 부부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되면 상대방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혼이 성립된다고 한다. 때론 불가피한 각방도 있다. 배우자의 심각한 '코골이'로 인한 경우다. 코골이만으론 이혼 사유가 안 되지만 각방으로 인해 결국 부부 관계가 악화될 경우엔 사유가 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에서 유행 중인 이른바 '수면 이혼(sleep divorce)'을 특집 기사로 다뤘다. 이는 정상적인 부부가 밤이 되면 각자 다른 침실에서 잠을 자는 것을 일컫는다. 배우자의 코골이·이갈기·잠꼬대 등 '수면 방해꾼'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미국인 부부의 35%가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따로 자는 것이 부부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법적 이혼까지 감수하는 각방은 곤란하지 않을까. 이창호 논설위원
[하프타임] 화려한 교육 정책보다 중요한 것들
교육 관련 기사를 쓴 지 이제 두 달째가 됐다. 기자 생활이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교육 담당은 완전히 처음이어서 많이 낯설다. 교육 관련 자료에 나오는 전문용어도 어렵고, 숫자는 또 얼마나 많은지…. 내가 서툴러서 기사를 잘못 쓸까 봐 늘 전전긍긍이다. 밥솥 사용법이나 운전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나는 지금 자신이 없다. 맛있는 밥 짓는 법을 터득하려면 혹은 운전을 잘하게 되려면 시간이 걸리듯, 괜찮은 교육 기사를 쓰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교육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역량 측면에서는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기자가 지난 두 달 동안 교육 관련 기사를 쓰면서 직관적으로 느낀 것이 있다. 그 느낌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모순'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모순'의 뜻을 이렇게 정의한다.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 또는 두 가지의 판단, 사태 따위가 양립하지 못하고 서로 배척하는 상태.' 무언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어쩌면 '모순'은 '위선'과도 참 닮아있는 단어다.이 나라의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참 모순적인 것 같다. 최근 기자가 다룬 교육 관련 기사들을 보면 그러하다. 지난달 기자는 사교육 카르텔 관련 기사를 쓰며, 입시 불공정 문제에 대해 보도했다. 얼마 전에는 학교 폭력을 주제로 한 기사도 썼다. 오랜 시간 동안 교육계에서 사라지지 않고 진화를 거듭해온 것들이다.우리는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이런 것들을 배운다. 반칙하면 안 되고, 남의 것을 탐하면 벌 받고, 약한 친구를 괴롭히면 안 되고, 경쟁은 공정해야 하며, 법과 원칙은 지키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실제 교육 현장, 그리고 우리 사회와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우리가 배운 것과 반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교육계의 이슈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최근 한 지인이 기자에게 말했다. "학생들의 안전과 공정한 경쟁을 위한 문제 제기는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어른이 돼 마주하는 세상은 또 어떤가. 어른들의 그릇된 가치관과 욕망이 고쳐지지 않는 한 이 나라 교육의 어딘가는 늘 썩어 있을 것이다."그 지인은 지금 우리 주변, 네 주변을 보라고 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세상 안에 반칙과 꼼수, 부조리가 판을 치고 있지 않느냐고. 지인의 말이 맞았다. 교육계에서 마주한 불공정과 학교 폭력 등은 어른들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니 말이다. 이는 곧 단편적으로 교육계의 문제점들을 지적해 본들 한계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걸 깨닫고 각성을 하게 됐다. 이제 앞으로 내가 할 일들이 분명해졌다. 여태껏 수많은 기사를 썼지만, 기사로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 지적해 본들 한계가 있다. 기사만 쓰는 게 아니라, 나도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 업계의 평판 때문에, 혹은 겁이 나서 조심했던 부분들을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싸우기로 했다. 그게 기사와 현실 사이의 모순, 또 학생들의 현재와 미래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는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교육 당국에서 발표하는 정책들은 참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 정책이 시행되는 환경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때론 썩어 있다면 그것만큼 지독한 모순이 또 있을까. 노진실 사회부 차장노진실 사회부 차장
[박재일 칼럼] 이준석의 귀환
3년 전인가 신문사 로비에서 만난 이준석은 당당하면서도 지쳐 보였다. "당선될까요?" "글쎄요. 반반이라 봐요." 반반이면 50%인데 살짝 놀랐다. 30대 제1야당 대표가 출현할 수 있다는 데 내심 놀랐다. 대구에서 도와주면 된다고 했던 그의 말은 실현됐다. 당내 3, 4선 중진들이 모두 나가떨어졌다. 정치권에도 드디어 MZ식 새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걸까. 36세 야당 당수는 집권당 당수로 이어졌다.3년 뒤, 이준석은 경기도 화성을에 출현했다. 4번째 국회의원 도전이다. 서울 노원구에서만 3번 떨어졌다. 이번에도 모두 어렵다고 했다. 근데 인상 깊은 장면이 선거 막판에 나왔다. 이준석 모친이 유세차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기도 한 '어머니 김향자'는 이렇게 말했다. "준석이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날 때 아들 앞에서 내가 '힘들지' 하면 우리 아들이 무너지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아무 일 없는 듯 밥해주고…그리고 나와서 아파트 주차장에서 3시간을 울었다." 동영상을 보는 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난 '아들 이준석이'가 드디어 금배지를 달 것이라 예감했다. 인요한이 말했던가. 이준석은 부모 교육 잘 못 받았다고. 그 대목이 떠올랐다.홍콩 인근 심천에서 사업을 하는 중학교 동창 친구가 카톡 전화를 걸어왔다. 예의 한국 선거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이런저런 문답 끝에 동창이 대뜸 말한다. "난 이준석이가 이번에 꼭 됐으면 한다." 왜냐고 반문하니 "신세대가 정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무엇보다 이준석이가 양향자(삼성전자 출신)와 3시간 동안 나눈 반도체 대담에 매료됐다. 그 토론에는 정치는 없고 오로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치열함이 있다. 어느 정치인이 그런 지식을 현시점에서 보유하고 있는가." 내 친구는 성대 공대를 나온 공학도다.이준석을 싫어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그가 '싸가지 없다'고 한다. "건방지게, 싸가지 없이", 이는 한국 사회 특유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버릇이다. 노총각 이준석은 성접대 논란에 올가미가 씌워져 방출됐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과 각을 세운 행보가 결정적이라는 것이 정설일 게다. 이준석은 '환자(patient)'는 서울(용산)에 있다는 도발적 발언까지 했다.지난해 연말 이준석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조건을 달았지만 탈당의 불가피함을 예고했다. 결행 날짜를 12월27일로 못 박았다. 정치를 시작한 날이라나. 난 그의 실패를 예감했다. 전직 당 대표가 기껏 '천아용인' 소수파로 뛰쳐 나가봐야 허허벌판일 텐데…수모를 감수하고라도 본진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실리인데….한 달 전 서울 가는 길에 경부고속도로 동탄을 지나쳤다. 허허벌판이던 이곳 화성시 동탄 신도시는 삼성전자를 축으로 천지개벽 된 곳이다. 고속도로 지하구간마저 생겼다. 이준석이 출마했다니 궁금증에 검색했다. 상대는 기자 경력에 현대차 사장 출신 공영운(민주당), 삼성전자 공학도 한정민(국민의힘). 만만찮은 구도였다. 노원구에서 3번 떨어진 이준석에게 이런 넋두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일(선거운동)을 다 했어요." 그런 생각이 든다. 모든 걸 쏟아붓고도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됐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죽기보다 낙선이 더 싫다는 이준석의 당선, 아마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에게 보내는 헌사(獻辭)일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낭만적인가. 논설실장박재일 논설실장
[자유성] 조용한 퇴사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갈수록 낯설어지고 있다. 웬만하면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세대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자신의 능력치를 끌어올린 뒤,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를 찾아 떠나는 경우가 흔해졌다. 봉급생활자가 이직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가운데 연봉과 복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애사심과 충성심은 안정성과 연봉에서 나온다는 말이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불문율처럼 여겨진다.직장인 절반 이상이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를 떠날 마음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눈길을 끈다. 아직 퇴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면서 이른바 '조용한 퇴사'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다. 인크루트가 지난달 직장인 1천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용한 퇴사'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허리에 해당하는 8~10년차 직장인 57.4%를 비롯, 전체 응답자의 51.7%(매우 그렇다 12.7%, 대체로 그렇다 39%)가 '그런 상태'라고 답했다.특히 응답자의 65% 이상이 동료의 '조용한 퇴사'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 응원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나타나 주목을 받았다. 자신의 가치를 높인 다음, 현재보다 나은 대우를 받겠다는 의지와 노력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일련의 노력들이 선순환되면 개인과 회사의 긍정적 경쟁을 촉발시키면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에 대한 평판이 평생 따라다니는 만큼 옮길 때 옮기더라도 재직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장준영 논설위원
[월요칼럼] 선거는 다시 돌아온다
벚꽃엔딩. 필 땐 모른다. 지고 나면 밀려오는 처연함을. 몰락의 그림자 길게 드리운 아스팔트 바닥 위로 선혈처럼 꽃잎이 찍혀 있다. 여당의 충격적인, 하지만 예고된 패배다. 일련의 사태에 대한 국민정서를 정확하게 읽어 내지 못했고, 뒤늦게 알아차리고도 외면한 결과다. 대저 총선이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임에도 여당은 오히려 '야당 심판'을 외치는 기이함을 보였다. 집권당으로서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정치적 카운터파트를 악마화하며 범죄자로 몰아가는 데 올인했다. 자기편에는 관대한, 정권의 이상한 공정(公正)은 불신을 불렀고, 민생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데 대해선 분노가 일었다. 결국 중도층이 떠나갔다. 지난 몇 달을 복기해 보면 보수를 망친 주범으로 보수 논객과 언론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2월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고의적인 오독'은 치명적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경선 기간이라 상당수 여론조사가 보수 과표집 현상을 보였다. 이런 경우 중도층의 지지율을 살펴야 함에도 보수진영의 패널과 유튜버, 언론은 이를 무시하고 여당의 압승을 노래했다. 이로 인해 '용산'은 오만해졌으며 상식 밖의 조처들이 취해졌다. 중도층의 지지율만이라도 제대로 알리고 경고음을 울렸더라면 선거전략을 바꿀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지지층엔 결집을, 상대진영엔 투표 포기를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론조사에 나타난 중도층의 정권심판 구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고로 군주와 신하 간 역학관계가 한쪽으로 쏠리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먼저 신하의 입김이 강해 나라에 재앙을 초래하는 경우다. 제왕학의 명저 한비자(韓非子)에는 군주를 망하게 하는 '나쁜 신하'의 여덟 가지 수법, 즉 '팔간(八姦)'을 소개하고 있다. 뇌물로 부인·측근·친인척의 환심을 산 후 그들로 하여금 군주에게 청탁하도록 유도하는 것, 유창한 말재주로 군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강국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 화려한 궁전과 감상품에 마음을 뺏기도록 하는 것 등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묘한 기시감이 든다. 또 다른 유형은 '페르시안 메신저 증후군'이다. 이는 신하보다 군주의 입김이 센 경우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단지 패전 소식을 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전령들이 처형당했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그 누구도 나쁜 소식을 전하려 하지 않았다. 이런 군주 밑에서 누가 충성스러운 고언을 할 수 있겠나. 신하는 사실을 알리기보다 입을 아예 다물거나 군주가 들어 좋아할 말만 하게 된다. 지난해 엑스포 유치전에서 '29대 119'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기 직전까지도 '49대 51'로 추격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갔다 하니 고대 페르시아만의 얘기는 아닌 듯하다. 집권 2년도 안 된 윤석열 정부가 레임덕을 넘어 데드 덕의 위기에 몰린 데는 경청과 고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에 집착하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져든다. 남은 3년 누군가는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 하며 또 누군가는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해야 한다. 국정 쇄신이랍시고 특별할 것도 없다. 그저 여야 협치에 나서 정치를 복원하고 민생을 돌보면 된다. 지지자들도 달라져야 한다. 어떤 이는 나라 팔아먹어도 지지하겠다 한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이 소름 끼치는 맹목적 지지가 실은 보수를 망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에 앞서는 이념은 없다. 꽃은 다시 피고 선거는 또 한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변종현 경북본사 본부장변종현 경북본사 본부장
[미디어 핫 토픽] '플리츠' 주름의 아름다움
일본의 디자이너인 이세이 미야케는 1971년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 1973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쇼를 선보였다. 미야케는 1988년부터 의류의 주름을 연구했다. 옷감을 재단하고 옷의 형태를 잡아 재봉한 후 주름을 넣어 '가먼트 플리팅(garment pleating)'이라는 기술로 '플리츠(PLEATS)' 라인을 선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여성복 '플리츠 플리세'를, 남성복 라인으로 '옴므 플리세'도 내놓았다. 플리츠 라인은 가벼우면서도 실용적이다. 입는 이의 몸집에 따라 주름이 더 펴지거나 접혀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이 주름은 '구김'이 아니다. 종이를 안과 밖으로 반복해서 가로로 또는 세로로 접는 모양이다. 앞의 문장은 기자의 관찰대로 쓴 것이었는데, 찾아보니 실제로 미야케는 일본 전통 종이접기(origami)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곡선까지 만들어 내며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또 다른 면으로 넓어진다. 또 다른 면은 한쪽에서 바라봤을 때고 사실은 모든 게 한 면이다. 미야케의 디자인은 '한 장의 천(a piece of cloth)'이라는 콘셉트를 이어오고 있다.스티브 잡스의 외형적 특징이랄까,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와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검은 터틀넥.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이 플리츠 라인이다. 몇 해 전 여름에 유행해 많은 여성들이 '주름바지'를 입었다. 삼각형이 여러 개 짝을 지어 타일 모양을 만들어내는 그 가방, 바오바오(Baobao)도 미야케의 작품이다. 플리츠 형식으로 의류와 잡화를 생산하는 국내 브랜드도 많이 생겼다. 이렇게 미야케의 플리세는 말 그대로 '주름'의 골처럼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다.1991년생인 기자는 주름에 대한 기억이랄까, 생각이 많지 않다. 그 시절치곤 나름 늦둥이여서 그런지 부모님의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친구들 부모님의 주름보다 깊어 보였다. 그리고 지금 30대 중반에 가까워진 기자에게도 이마의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면서 이 주름이 벌써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부모님의 주름처럼 깊어질까, 생각한다. 미야케가 만든 옷의 주름에는 접힘과 펴짐 사이에 아름다움을 채워 넣었다. 옷 이야기 실컷 하다가 갑자기 부모님의 주름을 생각한다니, 주책인가 싶기도 하다.이제는 답을 주시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주름에는 무엇이 담겼고 무엇이 쌓이고 있을까. 낳아주셨을 때의 부모님의 나이를 지나고 곧 지날 기자의 주름에는 무엇이 담길까. 이 글을 쓰면서도 고민과 생각의 한 줄이 주름으로 새겨졌을까. 그저 시간이 풍화(風化)한 흔적이 아니길 바란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2022년 별세한 일본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뉴욕타임즈 캡처'옴므 플리세'의 가디건. 인터넷 캡처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의료개혁특위 "의료개혁 시기상 미룰 수 없는 과업…소통 통해 의견 좁힐 것"
경북대,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 '155명' 조정에 대구경북 타 대학 결정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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