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수면 이혼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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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6 07:01  |  수정 2024-04-16 06:59  |  발행일 2024-04-16 제23면

옛 양반가에선 일심동체인 부부의 방도 안방(아내)과 사랑방(남편)으로 구분해 썼다. 야심한 밤 남편이 찾지 않으면 아내는 독수공방 신세를 면할 길이 없었다. 부부가 한 방에 있을 때도 거리를 둔 채 데면데면한 게 예사였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의 유교 문화가 낳은 풍경이다. 지금으로 치면 '쇼윈도(show window) 부부'가 많았을 법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에서 '부부 각방(各房)'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부부 갈등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순간 남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랜 각방은 소통의 단절을 불러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된다. 최악엔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 각방이 이혼 사유가 될까. 관련 판례는 혼인 관계가 파탄된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각방 별거가 오래되어 정상적 부부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되면 상대방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혼이 성립된다고 한다. 때론 불가피한 각방도 있다. 배우자의 심각한 '코골이'로 인한 경우다. 코골이만으론 이혼 사유가 안 되지만 각방으로 인해 결국 부부 관계가 악화될 경우엔 사유가 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에서 유행 중인 이른바 '수면 이혼(sleep divorce)'을 특집 기사로 다뤘다. 이는 정상적인 부부가 밤이 되면 각자 다른 침실에서 잠을 자는 것을 일컫는다. 배우자의 코골이·이갈기·잠꼬대 등 '수면 방해꾼'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미국인 부부의 35%가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따로 자는 것이 부부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법적 이혼까지 감수하는 각방은 곤란하지 않을까.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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