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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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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소싸움
'과묵한 소도 성질부릴 때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행동이 느리고 온순해 보여도 화가 나면 무서워진다는 뜻이다. 이중섭의 그림 '싸우는 소'(1954년 작)는 있는 힘을 다해 맞서 싸우는 두 소의 격앙된 표정이 잘 표현돼 있다. 조선 태조실록에도 '태조가 함주(咸州)에 있을 때 큰 소가 서로 싸우는데, 여러 사람들이 이를 말렸으나 되지 않으므로 혹은 옷을 벗고 혹은 불을 태워서 소에게 던졌으나 그래도 저지되지 않았다'라고 전해진다. 소싸움은 황소 두 마리가 맞붙어 양보 없는 승부를 겨루는 시합이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법적으로 허용된 동물 격투기다.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 때 전쟁에서 이긴 뒤 마련된 축제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설 등 다양한 주장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명맥이 끊겼다가 1970년대 부활했다. 전용 경기장이 있는 경북 청도의 소싸움이 유명하다. 예로부터 청도에선 '정월 씨름, 팔월 소싸움'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됐다. 최근 청도 소싸움 경기에 100차례 출전 기록을 달성한 싸움소가 나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문화재청은 최근 소싸움이 무형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민속놀이로 소싸움이 갖는 의미와 역사를 짚어보는 것은 물론 소싸움을 둘러싼 동물 학대 논란 등도 살펴본다. 앞서 소싸움은 국가무형문화재 신규 종목 지정을 위한 조사 대상에 포함됐으나 반대 여론에 부딪혀 보류됐다. 주관적 견해이지만 대한민국 소싸움은 적어도 스페인 투우처럼 잔인하지는 않다. 소를 일부러 죽이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역사성도 충분한 만큼 국가무형문화재가 될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창호 논설위원
[논설위원의 직터뷰]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 '작은 거인의 꿈' 김홍일 센터장·이승혜 사무국장 "세상과 단절한 청년들에 친구처럼 다가가 잠재된 꿈 끌어내줘요"
"고독은 아름답다." 가슴을 후벼 파는 시어(詩語)다. 동서고금의 시인들은 그런 말로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하곤 했다. 그러나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절대 고독에 갇혔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나. '죽음보다 무서운 게 외로움'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오늘날 이런저런 이유에서 고독을 자처하고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다. 안타까운 것은 미래의 주역이자 버팀목인 청년들 가운데서 은둔형 외톨이가 늘고 있다는 현실이다.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청년 인구 가운데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2021년 기준 5%(50여만 명)에 이른다. 대구는 2만7천명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청년'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는 또 다른 '청년'이 있다. 지난해 설립된 대구시 승인 비영리 단체 '작은 거인의 꿈'을 이끌고 있는 김홍일 센터장과 이승혜 사무국장이다. 1999년생 동갑내기 대학생이다. '작은 거인의 꿈'은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진입을 위한 다양한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꾀한다. 영남권 첫 은둔형 외톨이 지원 단체다. 이들을 만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동지이자 연인으로 의기투합기대 부응 못하자 자책감·원망사회 나가고 싶어도 두려움 커주위 마음 아픈 친구들 돕기로오랜 기다림·얘기 들어주는 것 멘토와 신뢰 쌓이며 마음 열어은둔 풀고 봉사·취업…큰 보람 앱 소통창구로 체계적 지원 계획▶어쩌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빛이 나지 않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일을 하게 된 동기는.△김홍일="저 또한 또래 청년들과 다를 바 없었죠. 불과 수년 전까진 앞으로 뭘 해 먹고 살아야 할지 늘 고민이었어요. 그러던 중 군 입대를 했는데, 주위에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랐죠. 문득, 사회복지사 일을 하면 그런 친구들을 도울 수 있겠다고 여겼어요. 내친김에 공부를 시작했죠. 틈틈이 준비한 끝에 전역 해인 2021년 최종 자격증을 땄습니다. 사회에 나와 보니 은둔형 외톨이가 적지 않다는 걸 확인했죠. 다 제 또래 친구들이잖아요. 그들에게 다가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작은 거인의 꿈'은 그런 각오의 결과물입니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몰과 주위 후원을 통해 상담·봉사 활동 등 운영 경비를 마련하고 있어요." 김 센터장과 이 사무국장은 2년 전 대구에서 청년 활동을 하다 만났다. 두 사람은 MZ세대 말로 '남사친' '여사친'으로 지내다 지난해 은둔형 외톨이 지원 사업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지금은 동지(同志)이자 연인(戀人) 사이다. ▶'작은 거인의 꿈', 이름이 독특하군요.△이승혜="'작은 거인'은 꽃을 피우기 전엔 씨앗같이 작은 모습이지만 활짝 피면 누구보다 화려하고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이를 뜻합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그들의 잠재돼 있는 '꿈'을 끌어내 스스로 일어서게 해준다는 뜻에서…."▶은둔형 외톨이는 왜 마음의 문을 닫으려 하는지요.△김홍일="이유는 천차만별이죠. 어렵게 고백한 그들 얘기에 따르면 과거부터 누적돼 온 열등감과 열패감 때문이지요. 경쟁·체면 중시 사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은둔의 길로 들어선 거죠. 부모와의 오랜 갈등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고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쌓여 원망감으로 변한 경우죠. 어릴 적 학교 폭력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들 언젠가는 사회로 나가고 싶어 해요. 너무 오랫동안 은둔하다 보니 세상 밖 타인들의 시선이 두려울 뿐인 거죠." ▶사회적 편견이 적지 않습니다. '묻지마 범죄'도 은둔형 외톨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이승혜="은둔형 외톨이 가운데 조현병을 앓거나 지능지수가 현저히 낮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대인 기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마음이 좀 아프고 결핍돼 있지요. 결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닙니다. 일반인이 다소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성격 유형'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와의 상담 과정이 녹록지 않겠습니다.△김홍일="찾아가면 방문부터 걸어 잠가요. 마음의 빗장이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줍니다. 그때부턴 제가 심리상담사이기 전에 그들의 '친구'가 됩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친구를 그리워하는 존재'이거든요.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들은 온종일 애니메이션만 봐요. 반면 한국의 외톨이들은 SNS도 하고, 게임도 즐기는 등 스스로 사회 참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변화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죠. 이제 사회가 이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함께 부대끼고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은.△김홍일="멘토(상담사)와 멘티(외톨이) 사이에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합니다. 처음엔 대화를 거부합니다. '여기 왜 왔냐'는 반응이죠. 오랜 기다림 끝에서야 대화의 물꼬가 트입니다. 외톨이들은 설움에 북받친 듯 울기부터 해요. 속에 있는 말을 꺼내려는 시그널이죠. 멘토는 자상한 친구처럼 그저 얘기만을 들어줍니다. 누군가가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것, 그들에겐 낯선 일이지만 간절히 바랐던 일이기도 해요. 3개월가량 이 과정을 반복하면 대화가 무르익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들에게 미션을 주고 '스펙 쌓기'를 유도합니다. 각종 알바는 물론 저희 단체가 운영하는 봉사단·텃밭 농사 프로그램에도 참여시켜요. 저희가 케어한 이들 가운데 무려 7년을 은둔한 사람이 있었어요. 성실히 상담을 받고 봉사활동을 펼친 끝에 은둔을 풀었습니다. 최근엔 취업에 성공했다며 연락도 왔고요. 말로 표현 못 할 보람을 느꼈습니다."▶지역 사회의 관심과 대책은 어떻습니까.△이승혜="2022년 대구시에서 '사회적 고립 청년 지원 조례'가 제정됐어요. 근데 '고립'과 '은둔'은 분명히 달라요. 고립 청년은 사회적 연결 네트워크가 부족한 이를 일컫지만, 은둔 청년은 그게 완전 결핍돼 있는 사람이죠. 전자는 홀로 서 있을 순 있지만 후자는 그마저도 어려운 사람이에요. 대구 일부 기초지자체엔 '은둔 청년 지원 조례'가 있어요. 대구시도 관련 조례에 '은둔 청년'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민·관이 현황과 정보를 공유해 은둔 청년을 도울 수 있는 공공지원센터도 설립해야 하고요. 때마침 대구시가 은둔 청년 실태 조사를 진행 중이거든요. 오는 10월쯤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기사를 읽는 독자 가운데 은둔형 자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김홍일="은둔형 자녀를 둔 부모님 대부분이 수치스러워해요. 혹시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지 하는…. 백번 이해하고도 남죠. 하지만 외톨이 문제는 가정 안에선 결코 해결되기 어려워요. 우리 사회가 시스템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부모님의 경우 저희 센터에 있는 전문 상담 선생님(2명)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프라이버시는 철저히 보호되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주저하지 말고 SOS를 쳐 주세요." ▶'무거운' 질문만 했네요. 온종일 '외톨이' 일로 바빠 두 분이 데이트할 시간도 없지 싶은데.△김홍일·이승혜="왜 어려운 일에 매달리냐는 주위의 걱정 어린 말씀도 없지 않아요. 하지만 저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사명감 때문이죠. 말하고 보니 자화자찬이네요(웃음). 데이트가 뭐 별건가요.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뜻을 갖고 함께 미래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데이트 아니겠어요."▶향후 계획은.△김홍일·이승혜="'작은 거인의 꿈'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켜 좀 더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사업을 펼쳐보고 싶어요.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해 그들과의 지속적인 소통 창구로 키워 볼 생각입니다. 이밖에 외톨이들이 직접 자기 발로 '작은 거인의 꿈'을 찾아올 수 있도록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세상의 공익적 가치를 더하는 일에 매진하는 이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처럼 '아름다운 청년'을 만난 것 같다. 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작은 거인의 꿈' 김홍일 센터장과 이승혜 사무국장이 센터 팻말을 함께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우리 사회가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월요칼럼] 차기 경북대 총장이 될 자질
분수(分數). 분별력 있는 판단과 자기 본분에 맞는 처신을 뜻한다. '분수를 지킨다'는 것은 욕심과 무리수(無理手)를 두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도 있지 않은가. '분수를 넘어서면 낭패(狼狽)를 보게 된다'고. 총선 비례대표를 신청했다가 들통나 망신을 산 홍원화 경북대 총장이 그 예라 하겠다. 전언에 따르면 요즘 홍 총장은 시쳇말로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 하기야 무슨 염치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나. '돛단배'(경북대)를 버리고 '크루즈선'(국회)에 옮겨 타려 한 꼴이었으니. 분수를 지키지 못해 학교의 명예를 떨어뜨린 과오는 두고두고 세인의 입방아에 오를 것이다. 어쩌겠나 자업자득인 것을. 못내 안타까운 것은 총장의 한순간 과욕과 오판이 갈수록 더한 경북대 위상 저하에 기름을 부었다는 점이다. 이젠 공허한 얘기가 됐지만, 오래 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못갈 바엔 경북대 가는 게 낫다"라는 말이 있었다. 지방 국립대 가운데서 제일로 쳤다. 적어도 다른 '인 서울(In Seoul) 대학'은 굳이 기를 쓰고 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 '인 서울' 간판을 따지 않아도 인생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인 서울 블랙홀'이 생기기 전까진 그랬다. 작금 경북대의 처지는 어떤가. '인 서울 대학'을 가기 위한 경유지가 된 지 오래다. 전국 지역거점 국립대의 중도 이탈 학생(2020~2022년 2만5천여 명·국감 자료) 가운데 경북대생(3천400여 명)이 가장 많았던 적도 있다. 자퇴 사유는 대부분 '인 서울 도전을 위해서'였다. 과거 안중에도 없었던 서울지역 중하위권 대학보다도 존재감이 없는 신세가 됐다. 이젠 대구권 다른 사립대들도 경북대를 더 이상 넘어서야 할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 대학 학생들에게 경북대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뭔 소리냐"는 반응이다. 다른 대학이 부지런히 경쟁력을 제고하는 사이 경북대는 '수도권 블랙홀' 탓을 하며 안주했다.홍 총장의 조기사퇴 뜻에 따라 차기 경북대 총장 선거가 오는 6월25일 치러진다. 10여 명의 교수가 경쟁 중이다. 누가 적임자인지 아직 판단이 서질 않는다. 차기 경북대 총장이 될 자질은 무엇인가. 우선, 차기 총장은 '폴리페서(정치 성향의 교수)'가 아니어야 한다. 또다시 정치판을 기웃거릴 인물이 총장이 된다면 그 피해는 온전히 학생들 몫이다. 재학생을 지키는 일에 남다른 아이디어와 열정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인 서울 블랙홀은 불가항력'이라고 믿는 이는 자격 미달이다.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학생이 학교를 믿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당당히 '우리의 경쟁 상대는 SKY'라는 담대한 생각과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차기 총장은 다양한 지역사회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어쨌든 혁신이 불가피한 경북대다. 그만큼 고통이 따른다. 이를 감내하며 차기 총장은 혁신의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누가 되든 여하한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결코 폼 잴 자리가 아니다. 마침 지난주 경북대가 '글로컬대학'에 예비 지정됐다. 차기 총장은 8월 말 '최종 지정'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대학의 명줄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경북대엔 그런 리더십을 갖춘 총장이 필요하다. 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수면 이혼
옛 양반가에선 일심동체인 부부의 방도 안방(아내)과 사랑방(남편)으로 구분해 썼다. 야심한 밤 남편이 찾지 않으면 아내는 독수공방 신세를 면할 길이 없었다. 부부가 한 방에 있을 때도 거리를 둔 채 데면데면한 게 예사였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의 유교 문화가 낳은 풍경이다. 지금으로 치면 '쇼윈도(show window) 부부'가 많았을 법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에서 '부부 각방(各房)'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부부 갈등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순간 남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랜 각방은 소통의 단절을 불러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된다. 최악엔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 각방이 이혼 사유가 될까. 관련 판례는 혼인 관계가 파탄된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각방 별거가 오래되어 정상적 부부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되면 상대방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혼이 성립된다고 한다. 때론 불가피한 각방도 있다. 배우자의 심각한 '코골이'로 인한 경우다. 코골이만으론 이혼 사유가 안 되지만 각방으로 인해 결국 부부 관계가 악화될 경우엔 사유가 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에서 유행 중인 이른바 '수면 이혼(sleep divorce)'을 특집 기사로 다뤘다. 이는 정상적인 부부가 밤이 되면 각자 다른 침실에서 잠을 자는 것을 일컫는다. 배우자의 코골이·이갈기·잠꼬대 등 '수면 방해꾼'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미국인 부부의 35%가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따로 자는 것이 부부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법적 이혼까지 감수하는 각방은 곤란하지 않을까. 이창호 논설위원
[사설] 돌파구 안 보이는 지역 고용시장, 손 놓고 있어선 안 돼
올해 대구경북 인력 채용이 줄어들며 고용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올 1분기 대구와 경북지역 정규직 채용 공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4%, 15% 감소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중하위권이다. 채용 공고가 늘어난 곳은 충남(24%·1위)을 비롯해 전북·경남·세종·인천 5곳이다. 충남은 삼성 등 대기업이 입주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최근 채용이 늘어난 결과다. 반면, 우리 지역은 좁은 문의 대기업은 물론 그나마 들어갈 만한 강소기업 일자리도 부족한 실정이다. 채용 공고가 가장 많은 곳은 역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으로 전체의 77.9%에 이른다. 심각한 일자리 불균형이다. 임금 격차 또한 커 대구경북을 비롯한 지역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널린 수도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지역산업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이런 상황을 대구경북 기업들이 모를 리 없지만 현재로선 인력을 고용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경기 불황 때문이다. 지역의 어느 기업인들 지역 인재를 많이 뽑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작금 중동발(發) 전쟁 리스크도 우리 청년들에게 우울한 뉴스다. 국내 경제의 전방위적 침체가 우려되면서 지역 고용시장은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힘들 때일수록 대구경북 지자체는 일자리 창출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역 기업도 어려움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인재들이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주길 바란다. 아울러 정부의 고용 장려 지원책도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하게끔 실질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자유성] 독이 든 성배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다는 포도주잔을 '성배(聖杯)'라고 한다. 성배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수난이 임박했음을 뜻한다고 한다. '독이 든 성배'라는 말도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축구 감독직(職)을 '독이 든 성배'라고 부른다. 축구 감독이 얼핏 대단한 자리로 보여도 쓰디쓴 대가가 따른다는 얘기다. '파리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옷 안주머니에 늘 사표를 넣고 경기에 임하는 감독도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을 10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경질됐다. 이를 꼬집어 독일 월드컵 주최 측이 '독이 든 성배'라고 했다. 이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의 대명사로 통했다. 역대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중에선 거스 히딩크·파울루 벤투 등 성공한 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불명예 퇴진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2월 물러난 위르겐 클린스만은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됐다. 그저 사람 좋다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박항서 감독에 이어 베트남 축구를 이끈 필리프 트루시에 감독도 최근 짐을 쌌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인도네시아에 거듭 패한 뒤 다이렉트 경질됐다. 대한민국 여야 정당의 수장(首長)도 '독이 든 성배'로 부를 만하다. 선거 결과에 자신들의 정치적 명운이 걸렸기 때문이다. 총선을 눈앞에 둔 가운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심정일 게다. 오는 10일 밤 누가 독배를 들고, 누가 축배를 들지 지켜볼 일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사설] 글로컬 대학 선정 시동…대구권 지난해 전면 탈락 치욕 씻나
교육부 '글로컬대학 30' 프로젝트 2기 공모 접수가 지난주 마감된 가운데 대구 7·경북 12개 대학이 신청서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이 프로젝트는 비수도권 대학의 혁신 역량을 평가해 선정한 학교에 5년간 1천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교육부는 다음 달 예비지정 결과를, 7월 본지정 평가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전면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절치부심해 온 대구권 대학들의 재도전 결과가 어떻게 날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올해부턴 대학 공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합 모델' 신청이 가능해졌다. 경북에선 영남대·금오공대, 경일대·대구가톨릭대가 연합 신청을 했다. 문경대·호산대 등 4개 전문대도 연합 모델로 도전장을 냈다. 지난해 안동대·경북도립대, 부산대·부산교대 등이 아예 학교 통합을 앞세워 선정된 학습효과의 영향이리라. 반면 대구에선 연합 신청이 전무하다. 계명대·계명문화대만이 통합 신청을 한 가운데 나머지 5곳 모두 단독 신청이다. 이 같은 점이 향후 심사에서 어떻게 평가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어느 대학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은 경북대다. 지난해 예비지정조차 받지 못해 거점 국립대로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타 대학과의 통합 논의가 불발된 데다 총장 '비례대표' 파동을 겪고 있는 점은 적잖은 불안 요소다. 온전히 대학의 연구 역량만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처지다. 글로컬 대학을 신청한 대구경북지역 대학들은 각자 나름의 혁신 전략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 신청은 내용의 임팩트와 진정성을 어필하고, 연합 및 통합은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를 구체적으로 설파해야 할 것이다. 올핸 이 지역의 많은 대학이 선정의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자유성] 계란 투척
이란투석(以卵投石).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라는 뜻이다. 약자가 강자에 맞서는 행위를 은유하는 사자성어다. 실현 불가능한 일을 일컬을 때도 쓴다. 약자와 강자 사이 말고도 반대와 불만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정치인·스포츠 스타 등 셀럽을 향해서도 계란 투척이 벌어진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후 공항에서 한 시민이 던진 빨간색 페인트 계란에 정통으로 맞았다. IMF 환란을 자초했다는 이유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전국농민대회에서 갑자기 날아든 계란에 얼굴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한 남성으로부터 "BBK 사건 전모를 밝히라"는 소리를 들으며 계란을 맞았다. 비운의 정치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후보 시절 계란 봉변을 피하지 못했다. 전례에 비춰 정치인에게 '계란 세례'는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동정 여론 확산과 지지층 결집 등 반등의 계기가 될 수도 있어서다. 일종의 '수난(受難) 스펙'인 셈이다. 선거를 앞두고 "달걀 좀 맞으러 갈까"라는 말이 나도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노무현은 쿨했다. 계란을 맞고 난 뒤 "달걀을 맞아 일이 잘 풀리면 얼마든 맞겠다"며 "정치인들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나"라는 어록을 남겼다. 최근 미국프로야구(MLB) 개막 경기를 위해 입국한 LA다저스 선수단에게 20대 남성이 날계란을 던지는 일이 발생했다. 구단 측은 "다행히 맞지 않았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구단 측이 아량을 베풀었지만 이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계란이 몸에 맞은 경우는 물론 몸에 맞지 않은 경우에도 형법상 폭행죄로 처벌을 받는다. 계란 투척 자체가 정신적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손흥민의 리더십을 배워야 할 이들
마음이 쓰였었다. 이강인의 '하극상' 이후 손흥민이 몇 날 며칠 침묵한 걸 두고서다.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그도 사람인지라 괘씸한 마음이 들었을 게다. '내가 이러려고 주장을 했나'라는 자괴감도 없지 않았을 테고. 이 일로 온 나라가 들끓자 이강인은 손흥민을 찾아가 사과했다. 이강인의 사과는 마땅한 것이고, 정작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손흥민의 사과였다. "내 행동도 충분히 질타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앞으로 더 지혜롭게 팀원들을 통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새까만 후배가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준 배려심, 자기 잘못도 없지 않다는 겸손함. 손흥민표(標) 리더십의 전형(典型)이다. 손흥민의 리더십은 소속팀 토트넘에서도 한눈에 확인된다. 그는 결코 자신을 먼저 내세우지 않는다. 경기 최우수 선수에 오른 뒤엔 항상 동료에게 공을 돌린다. 부진하던 동료가 골을 넣으면 자기가 넣은 것보다 더 기뻐한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엔 벤치 멤버까지 일일이 보듬어 주는 세심함도 잊지 않는다. 이 모두가 '나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마인드다. 주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두말할 나위 없다. 위기 상황에서 팀을 구해내는 '클러치 플레이'는 손흥민표 리더십의 화룡점정이다. 이런 손흥민을 두고 현지 언론은 "뛰어난 공감 능력의 소유자"라며 "토트넘을 원팀으로 만드는 비결"이라고 했다. 그가 축구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칭송받는 이유다. 근데 얼마 전 선거판에 뜬금없이 '손흥민'이 소환됐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이 이재명 대표를 손흥민에 비유한 것.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계승됐다. 축구로 치면 차범근-황선홍-박지성-손흥민이다." 이 대표의 리더십을 손흥민과 동급으로 본다고? 정 최고위원, 말씀 잘하셨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그 누구보다도 리더십 논란을 일으킨 이가 누구인가. 다름 아닌 이 대표다. 민주당 공천 갈등이 '이재명 사당(私黨)'을 위한 예정된 수순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이를 추려낸 듯한 보복성 컷오프, 이 대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내편, 네편'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당의 건승은 언감생심이다. 이 대표의 손바닥 뒤집듯 말 바꾸는 행태도 리더십 부재의 한 단면이다. "이재명=손흥민"은 염치없는 언사(言辭)다. 비유할 사람을 비유해야지.리더십을 논한 김에 하나 더. 홍원화 경북대 총장의 총선 비례대표 신청 논란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문제가 불거지자 신청을 철회하고 총장직 임기 단축의 뜻도 나타냈지만 경북대 총장으로서의 리더십은 이미 산산조각 났다. 추락하는 경북대를 되살리려 동분서주해도 모자랄 판에 부적절한 처신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그에게 더 이상 기대할 바는 없다. 4년 전 홍 총장은 취임식에서 "학생들이 '찾아오고 싶은' 경북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해마다 자퇴생이 줄을 잇고 있다. '학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신뢰를 심어 주지 못한 탓이리라. 결과적으로 그에게 경북대는 '수험생이 오고 싶으면 오든지' 정도의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은 콩밭(국회의원)에 있었고, 총장직은 그 발판에 불과했다. 남세스럽기 짝이 없다. 학교 구성원은 물론, 믿고 자녀를 맡긴 학부모에게도 엎드려 사과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제1 야당 대표와 경북대 총장은 손흥민의 리더십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렌털 친구
이른바 '렌털(rental·대여)의 시대'다. '소유'보다는 '공유'에 더 가치를 두는 소비 패턴이 보편화된 것. 정수기·공기청정기·세탁기 등 생활 가전제품뿐만이 아니다. 이젠 사람까지 빌릴 수 있다. 렌털 문화의 성지로 통하는 일본에선 몇 년 전부터 '렌털 남여 친구 서비스'가 성업 중이다. 일정 금액을 내면 정해진 시간 동안 렌털 친구와 대화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하며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렌털 친구 리스트엔 얼굴과 나이·직업·특기 등이 소개돼 있어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마치 '인터넷 장터'를 보는 듯하다. 친구 역할 말고도 인생 선험자로서 조언을 해주는 '렌털 아저씨(아주머니)'도 있다. 정년 퇴직한 장년층이 젊은 회사원에게 조직생활의 요령이나 인생 설계 등을 들려주는 식이다. 일부 부적절한 렌털도 있지만 대부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렌털 친구 서비스는 개인주의 확산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고 싶지 않으려는 인간 심리의 산물이다. '나혼자 산다족(族)'의 급증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렌털 친구를 만나러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렌털친구를 만난 영상과 후기를 유튜브·SNS에 올려 주목을 받기도 한다. 한편으론 씁쓸하다. '머니 체인지스 에브리씽(Money Changes Everything)'이란 팝송 제목처럼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돈으로 사람의 마음까지도 살 수 있을까. 사람 렌털, 일견 쿨해 보이지만 결국 '군중 속 고독'만 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네이밍
기아자동차의 영문 로고인 'KIA'. 지금은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져 오해가 많이 사라졌지만, 네이밍(naming·이름 짓기) 초창기 때 미국 시장에선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KIA'가 미국에선 'Killed in Action'의 약자로 전쟁 중 사망한 군인, 즉 전사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왠지 찝찝한 마음에 한때 미국 소비자들(특히 참전 군인 가족)이 구입을 꺼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럼에도 기아차는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미국에서 자동차 브랜드 신뢰도 '베스트 10'에 올랐다. 현대자동차도 비슷한 곤욕을 치렀다. 영문 이름인 'HYUNDAI'. "휸다이?" "현다이?" 과거 한때 외국인에겐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이름이었다. 정작 문제는 단어 가운데 'DAI'였다. '죽다(die)'를 연상시켜 미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줬다. 독일 차 'BMW'는 비싼 차 값 때문에 'Broke My Wallet(지갑털이)'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네이밍은 제품과 기업의 운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당명은 정체성·방향성을 집약한 것으로 당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조국신당' 명칭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남에 따라 신당 측이 당명을 '조국혁신당'으로 결정했다. 이름 '조국(曺國)'이 아닌 일반명사 '조국(祖國)'을 넣는 것은 가능한 데 따른 것. 이렇든 저렇든 유권자 뇌리엔 조 전 장관의 당으로 각인될 게다. 당의 장기적 확장성은 둘째 문제다. 오로지 총선만을 겨냥한 당명인 셈이다. 한철 팬덤(fandom)에 기댄 사당(私黨)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사과(謝過)
사과(謝過)의 사전적 뜻은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용서를 구함'이다. 이처럼 사과는 잘못에 대한 '온전한' 시인(是認)에서 출발한다.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근데 '다만' '하지만' '의도치 않게' '불쾌했다면' '상처를 줬다면' 등의 사족(蛇足)을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같은 표현은 '사과할 뜻이 없지만, 상대가 하도 요구하니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내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정치인들의 사과 스타일이 주로 그렇다. 아마 그들은 '사과=정치적 데미지'라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정치인들의 사과 워딩에 '국민에게 죽을 죄를 졌다'는 말을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죄송하다' '책임을 지겠다'는 말도 드물다.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사과 같은 '유체이탈식' 사과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 짜증이 난다. "이유불문(理由不問), 내 잘못이오" 사과는 이 한마디면 족하다. 깔끔하지 않은가.온 나라를 달군 '탁구 게이트' 논란의 중심에 섰던 축구 국가대표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최근 영국 런던을 찾아 선배인 손흥민(토트넘)에게 직접 사과했다. 자신의 SNS에 사과문도 올렸다. "그날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 깊이 뉘우치고 있다."(잘못에 대한 뼈저린 반성) "앞으로 선배·동료에게 올바른 태도와 예의를 갖추겠다."(개전의 의지) 그의 사과 워딩은 표면적으론 '사과의 정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제 스스로의 다짐을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강인의 사과를 받은 주장 손흥민도 "나도 내 행동이 충분히 질타받을 수 있는 행동"이라고 사과했다. 역시 대인배(大人輩) 캡틴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외국인 축구 용병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가 과거 '포항제철 돌핀스'라는 간판을 걸고 활약한 적이 있었다. 1983년 슈퍼리그(지금의 K리그) 출범 때다. 당시 구단주인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축구 사랑은 각별했다. 그는 국내 프로축구 최초로 외국인 용병을 영입한 장본인이다. 프로축구 원년 우승을 위해서였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용병은 브라질인이었다. 당시 협력 관계에 있던 브라질 제철회사에 축구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요청한 것. 그리하여 포항 유니폼을 입게 된 이들은 세르지오와 호세였다. '축구 황제' 펠레의 나라에서 왔으니 박 회장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와 팬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하지만 낯설고 물설은 한국 땅에 적응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세르지오는 14경기, 호세는 5경기에 출장했지만 둘 다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결국 돌핀스는 5개 팀 가운데 4위에 그치며 브라질 용병을 돌려보내고 말았다. 최근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제시 린가드가 프로축구 K리그 FC서울에 입단했다. 그는 잉글랜드 축구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의 세계적 플레이어다. K리그의 수많은 전·현 외국인 축구 용병 가운데서 네임밸류로는 단연 톱이다. 그는 왜 세계 유수의 리그를 제쳐두고 K리그를 선택했을까. 개인 사업 확장 등 여러 설이 돌고 있지만 축구 선수로서의 절박감이 컸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된 부진으로 임대 이적을 거듭하다 클럽을 찾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는 "하루빨리 그라운드에 돌아와 뛰고 싶다. 한국에서 꿈을 이루겠다"고 했다. 부디 한국에 잘 적응해 오래도록 축구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길 바란다. 아울러 올 시즌 '대팍'에서 대구FC 스타 세징야와의 한판 대결도 기다려진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플랜 75
오는 7일 국내 개봉되는 일본 영화 한 편이 머릿속을 무겁게 한다. 제목은 '플랜 75'(하야카와 치에 감독). 인터넷 검색을 통해 미리 시놉시스를 살펴봤다. 충격적이다. 영화의 배경은 초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진 가까운 미래의 일본 사회다. 영화 속에서 일본 정부는 '플랜 75'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75세 이상의 국민이 죽음을 선택할 경우 정부가 준비금 10만엔을 비롯해 상담·장례 서비스까지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즉 '75세 안락사법'이다. 초고령화시대 노인복지 재정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사회 전반에 노인 혐오 분위기가 퍼지자 고령 인구 감소를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주인공인 독거 할머니 미치는 호텔 청소부로 일하다 해고를 당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살기가 어려운 처지다. 재취업에 실패해 결국 밥까지 굶게 된 그가 '플랜 75' 신청서를 쓰게 된다는 스토리다.이 영화는 사회의 열외(列外)가 돼 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죽음을 권하는 사회'가 결코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경고다.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존귀함보다 효율성을 더 중시하는 현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하지만 2022년 일본에서 개봉된 뒤 현지의 반응은 섬뜩하다. 일부 젊은 층 관객은 "플랜 75가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초고령화 문제에 대한 해법일 수도 있다"고 했다. '태어날 때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는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라는 영화 속 대사가 상념에 잠기게 한다. 이 영화가 일본만의 이야기일까. 역시 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둔 대한민국에도 가볍지 않게 다가오는 주제다. 국내 관객의 반응은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떠날 때를 안다는 것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것은 혜성 같은 플레이어의 등장과 활약만도 아니다. 정점에 있던 스타들의 아름다운 은퇴도 있어서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존경했다는 미국 프로야구(MLB)의 '레전드' 루 게릭(1903~1941). 1939년 여름 어느 날, 그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코끝 찡한 은퇴 선언을 한다. 그때 나이 36세, 훗날 '루게릭병'으로 불린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진단을 받고 나서다. 그는 "원치 않은 '중단'이지만 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행운아다. 후회스럽지 않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중들은 기립 박수로 쾌유를 기원했다. 은퇴 연설 2년 후 그는 세상과 작별했다. 선수 시절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그늘에 가렸지만 MLB 역사에선 루스보다 더 존경받은 그였다. 얘기한 김에 사례 하나 더. 대한민국 축구 팬으로서 한때 아쉬웠던 순간이 있었다. 2014년 박지성의 은퇴였다. 축구 선수로서는 아직 뛸만한 나이(33세)의 은퇴에 무척 섭섭했던 기억이 있다. 정작 그는 "조금의 후회도 없다. 팬들의 사랑에 힘입어 영광과 행복을 누렸다"며 팬들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미련 없이 떠날 때를 알았기 때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아는 게 중요하다.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용갑(국민의힘 상임고문)씨가 떠오른다. 자칭 '원조 보수'로서 입바른 소리를 잘했다. 그런 그가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정계 은퇴를 선언해 화제를 모았었다. "3선이면 국회의원에게 환갑이다. 박수칠 때 떠난다. 난 이제 자유인이다." 껄껄껄 웃으며 밝힌 은퇴의 변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가히 '은퇴의 정석'이라 할 만하다. 작금 우리 정치판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찾아보기가 드물다. 너도나도 '선수(選數) 쌓기'에 안달이다. '이 좋은 걸 왜 그만둬'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특권·특혜에 맛 들인 탓이리라. 입법 활동도, 지역구 관리도 그저 면피 수준으로만 하면 되고. 선수를 쌓을수록 타성에 빠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총선을 앞둔 일부 초선 의원의 용퇴도 이런 정치 문화에 염증을 느낀 탓도 있을 게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훈현 국수(國手)는 "남들이 아무리 좋다 해도 나한테 안 맞으면 그만이다. 안 맞는 옷 벗고 돌아오니 이제 살겠다"고 했다. 그의 눈에 비친 여의도는 비상식이 득세하는 세계였던 것이다.모든 다선 의원을 '노욕(老慾)의 화신'으로 폄훼할 뜻은 없다. 다선의 관록이 국사를 논하고 정부를 견제하는 데 효과적일 때가 많다. 지역구 발전에도 플러스가 될 수 있다. 다만 4선, 5선을 하고도 성에 차지 않는 듯 '묻지마 다선'을 기도하는 건 옳지 않다. 더욱이 국회에서 존재감도 없었고, 시쳇말로 '농땡이'까지 쳤다면 말이다. 제22대 총선이 6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아름다운 퇴장'을 기대하기엔 촉박한 시간이다. 다선 의원들은 공천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버틸 모양새다. 하지만 표심(票心)의 기본 속성은 '변화'임을 부인할 수 없다. 고인 물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 물러나는 게 대표팀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가장 좋은 결정이다." 박지성의 은퇴 변이다. 누가 봐도 용퇴가 필요한 정치인이 있다면 곱씹어 볼 만하다. 참, 김용갑 전 의원 말마따나 '3선이면 환갑'이라 했는데, '요즘 환갑은 청춘'이라며 항변할 수는 있겠다.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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