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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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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음식 배달 古今
'조선의 양반네들이 음식 또는 물건을 사려 할 땐 종을 시켜 가게에 알린다. 그러면 가게 주인이 음식을 해오거나 물건을 들고 온다.' 구한말 조선에서 선교사로 있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가 쓴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에 나오는 얘기다. 서양인의 눈엔 신기하게 비쳤던 우리나라 '배달(配達) 문화'의 옛 풍경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유통문화는 예로부터 공급자가 수요자를 찾는 게 관례였다.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 후기 선비 황윤석이 쓴 '이재난고'엔 '과거를 치른 이튿날 친구들과 함께 점심 식사로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글이 적혀 있다. 그때가 1768년이니 255년 전 이미 한반도에 음식 배달 문화가 성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1970년대 나름 여유가 되는 집에선 병우유를 배달시켜 먹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로 대표된 새콤 달콤한 맛의 유산균 음료도 빼놓을 수 없다. 음식 배달은 전화기가 널리 보급된 1980년대 이후 뿌리를 내렸다. 일등 공신은 다름 아닌 자장면. 주문이 밀려 배달이 늦어지면 중국집 전화기가 불났다. 중국집 사장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네~지금 출발합니다." 오늘날엔 스마트폰 하나로 거의 모든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 치킨·족발·김밥·햄버거는 물론 한 끼 밥상, 뷔페 음식까지 깨알같이 배달해준다.국내 배달 음식의 아이콘인 치킨이 '3만원 시대'를 맞았다. 최근 한 치킨 업체가 품목별로 500원~3천원까지 값을 올리는 바람에 배달비를 포함해 모두 3만원을 내야 한다. 도미노 인상의 신호탄이다. '국민 간식'마저 시켜 먹기 버거운 시대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국회의원을 戰場에 보낸다고 한다면
'전쟁이 터지면 국회의원과 그 자식을 제일 먼저 입영시켜 최전선에 배치한다.' 북유럽 스웨덴의 국회의원 윤리강령 가운데 과거 한때 있었던 조항이다. 과하다 싶지만, 의원의 자질·책무는 범인(凡人)과는 달라야 함을 명시한 것이리라. 이 강령이 우리나라에 도입된다면 국회의원 나설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스웨덴 국회의원은 보기만 해도 짠하다. 고되고 고된 '극한직업'이어서다. 이곳에선 개인 정책 보좌관을 둘 수 없다. 의원 스스로 정책을 파야 한다. 법안 발의를 위한 자료 수집과 현장 조사는 당연히 의원 몫이다. 사무실 전화도 직접 받는다. 문서 인쇄·복사, 팩스 업무까지…. 거의 모든 일을 혼자서 해야 한다. '국민 휴가철'을 제외한 연중 10개월간은 회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임기 4년간 의원 한 명당 평균 100건이 넘는 법안을 발의한다. 해외 공무 출장 때도 이코노미석을 끊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비용을 돌려 받을 수 있다. 매일 우리 말로 '파김치'가 되는데도 변변한 특권 하나 없다. 출마를 단념하거나 중도에 그만두는 이가 나오는 이유다.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보자. 스웨덴과 정반대다. 국회의원이 되려고 안달이다. 되고 나면 제 발로 나오는 이가 없다. 금배지를 다는 순간, 종합선물세트 같은 특권·특혜가 주어져서다. 특권 중의 특권은 면책·불체포라는 '방패'다. 의원 한 명당 연간 세비가 억대다. 각종 부대 비용을 포함하면 의원실 한 곳에 투입되는 세금이 5억원은 족히 넘는다. 보좌 직원은 맥시멈 9명. 해외 국정감사 땐 비행기 비즈니스석에다 '황제급 의전'까지. 이 모든 걸 혈세로 대준다. 뭐 어쩌겠나. 국회법에 그렇게 돼 있다는데…. 여기가 스웨덴도 아니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데…. 골백번을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숨길 수 없다. 실망을 넘어선 분노를. 작금 우리 국회의원의 작태(作態)를 보고 있자니 말이다. 그 많은 특권·특혜를 누리고도 민생을 외면하는 '몰염치'에 혀가 내둘러진다. 바빠 죽겠다고 하는데 매일 노는 것 같다. 독설·막말을 내뱉지 않으면 '무능한 의원' 취급을 받는다. 회기 중 해외여행을 다녀 와도 사과 한마디 없다. 상대 당과 철천지수(徹天之讐)처럼 물고 뜯다가도 세비 인상 등 공동이익을 위해선 한마음이 된다. 안중에 유권자는 없고 공천권자만 있다. 그러고선 선거 땐 유권자에게 감언(甘言)을 쏟아낸다. 최근 국회 안팎에서 일고 있는 '특권·특혜 포기론'도 늘 그랬듯 용두사미가 되진 않을지 '기대 반 회의 반'이다.22대 국회의원 선거가 1년 하고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알고도 또 속아줘야 하나. 또 '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 이런 상념에 벌써부터 총선 기대감이 바닥이다. 특권을 누릴 대로 누린, 누가 봐도 매너리즘에 빠진 다선 의원부터 불출마 선언을 함이 어떤지. "박수 칠 때 떠난다." 과거 3선 김용갑 전 의원이 들려준 '은퇴의 변'을 곱씹어 보길. 총선 지망생도 새겨라. '백성의 걱정을 헤아리고, 벼슬을 이용해 착복하지 않고,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다.'(정약용 '목민심서')는 각오가 없인 노크할 생각조차 하지 말 것을.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 한편으론 우리 국민에게 달려 있다. 유권자 스스로 국회의원과 똑같은 무게의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엄정(嚴正)한 심판을 위한 엄중(嚴重)한 주인의식이다.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아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부국 스웨덴엔 4대 '보물'이 있다. 1970년대 테니스 스타 '비외른 보리', 명품 자동차 '볼보', 1920년대 세계적 여우(女優) '그레타 가르보' 그리고 전설의 4인조 부부 혼성 팝그룹 '아바(ABBA)'다. 이 중 스웨덴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건 단연코 아바다. 아바는 1970~80년대 세계에서 가장 눈부신 팝 역사를 쓴 그룹 가운데 하나다. 두 여성 보컬이 빚어내는 천상의 목소리는 전 세계 팬에게 귀 호강을 안겨줬다. 아바의 '글로벌 팬덤'은 비틀스 못지않았다. 한국도 예외 아니었다. 대표곡 '댄싱퀸' '안단테 안단테'를 흥얼거리거나 가사를 외우는 중고생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바는 단 한 번도 한국을 찾지 않았다. 지구촌에서 가장 충성적인 팬을 보유했는데도 말이다. 당시 한국은 세계 음반시장에서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아시아 음반 허브국이던 일본은 뻔질나게 찾았다. 기모노를 입고 '댄싱퀸'을 부르는 아바 사진이 일본 잡지에 실렸다. 한국 아바 팬을 두 번 울렸다. 아바는 한국 팬에게 애증(愛憎)의 팝스타였다. 아바는 부부 두 쌍이 모두 갈라선 뒤 1982년 해체됐다. 그 후 40년 만인 지난해 가상현실 공연이 열렸다. 디지털 아바타 무대였다. 70대 중후반이 된 그들이 다시 오프라인 무대에 서는 날이 올까. 그리된다면 초대박 히트 상품이다. 아바의 헌정 밴드인 '아바걸스'라는 그룹이 아바 결성 50주년을 기념해 다음 달 내한 공연을 갖는다. 아바표(標) 보컬과 무대 스타일을 똑같이 재현한다니 흥미롭다. 오리지널의 감흥을 따라갈 수 있겠냐마는. 이창호 논설위원
[논설위원의 직터뷰]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 "정장 입고도 늘 운동화…구미경제 부흥 위해 열심히 뛰어야죠"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지금이야 '관광 핫플'이지만 과거엔 그야말로 '깡촌' 중에 깡촌이었다. 그곳 한 촌가(村家)의 늙은 아버지는 식전 댓바람부터 지게를 지고 쇠꼴을 베러 갔다. 하루도 어김이 없었다. 새벽 이슬 가득 맺힌 쇠꼴을 한 짐 해 온 아버지 모습에 자식들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송구한 마음에서다. 그런 아버지를 유달리 안쓰러워한, 철든 자식이 있었다. 의외다. 8남매 가운데 막내아들이다. 소에게 먹일 저녁을 위한 오후 쇠꼴 베기는 온전히 그 아이 몫이었다. 소년은 다짐했다. "훗날 커서 엄마 아부지 호강시켜 주고, 이 집을 일으킬 사람은 나"라고. 그 의지를 놓지 않았던 소년은 어느덧 반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경북 구미 경제를 이끄는 수장이 됐다. 그 주인공은 제15대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인 윤재호(57) 주광정밀<주> 대표이사다. 주광정밀은 연매출 1천억원대를 찍고 있는 국내 '흑연전극 금형가공기술' 분야 강소 기업이다. 휴대폰·자동차 부품 등 흑연 제품 가공에서 남다른 기술력을 갖고 있다.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최근 구미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만났다. 패기 하나로 달려온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었다. 빈농 막내아들서 기부왕으로"어릴 때부터 기계 다루는 재주 남달라 당시 공고생 선망인 대우전자 입사도 배고픔 잘 알기에 창업 후 꾸준히 기부"발로 뛰는 현장형 상의회장"반도체 단지·방산클러스터 유치 전념 신공항 연계 고속도로·철도 확충 노력 구미와 경제공동체인 대구 도움 절실"▶빈농의 8남매 중 막내…'소년 윤재호'의 하루는 어땠나요."그 시절 모두가 어려웠지만, 저희 집은 형님 누나들 그리고 저, 입이 몇 개였겠습니까. 늦둥이 막내지만, 힘든 살림에 고생하는 부모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천성적으로 바지런했어요. 봄철 이맘땐, 학교 마치고 오면 책가방 던져 놓고 산에 가서 나물 캐느라 정신없었죠. 광주리에 나물을 가득 담아 오면 엄마가 '책 한 자라도 더 봐야지'라고 꾸중을 하셨을 정도였어요. 물론 속으론 막내아들이 기특했겠지요. 겨울방학 땐 산에 가서 나무하는 게 일과였죠. 그렇게라도 부모님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지요. 친구들과 논 기억이 별로 없어요. 하교 후 운동장에서 '오징어 가생' 놀이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고 들었습니다."아버지로부터 좋은 DNA를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가 평생 농사일을 하셨지만, 제 기억엔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 만드셨어요. 제가 코흘리개 시절 싱거미싱인지, 브라더미싱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낡은 재봉틀을 장난감 삼아 갖고 놀았어요. 그걸 일일이 분해하고 조립하는 데 푹 빠졌죠. 그러다 엄마한테 혼도 많이 났었죠.(웃음) 그런 취미를 갖다 보니 '기계'라는 녀석에 흥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손재주가 있다고 곧잘 칭찬해 줬어요. 사실 그땐 인문계가 뭔지, 실업계가 뭔지도 몰랐죠. 그저 손재주 좀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경북기계공고로 진학하게 됐습니다."▶'대구 유학' 시절 얘기가 궁금합니다."촌에서 올라온 학생들, 저뿐만 아니라 모두 고생했겠지요. 아버지가 부쳐 준 한 달 생활비로 방값·교통비 내고, 실습 기자재까지 사면 4천원가량 남을까 말까였지요. 아침은 언감생심, 점심도 굶을 때가 많았어요. 고육책을 썼지요. 교통비를 아껴 빵을 사 먹었습니다. 대구 달서구에 있던 경북기계공고에서 중구 남산동 자취 집까지 매일 걸어서 귀가했죠. 3시간가량 걷고 또 걷고….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습니다. '기능경기대회'라는 동기 부여가 있었으니까요. 밤늦게까지 학교 실습실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기능대회 학교 대표가 되면 저녁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어요. 라면을 끓이면 선배들이 건더기를 다 건져 먹었어요.(웃음) 남은 국물에 밥만 말아 먹어도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윤 회장은 고교 졸업반 때 대구기능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전국기능대회 출전권을 쥔 그는 결심을 한다. 그에겐 기능대회보다 빨리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키는 게 먼저였다. "전국대회는 후배에게 양보할 테니 취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담임교사를 졸랐다. 결국 당시 공고생 최고 선망의 직장인 대우전자에 입사했다. 당시 김우중 회장의 대우는 삼성·현대보다도 높게 쳤다. 윤 회장이 구미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부터다. 8년간의 대우전자 생활을 마감한 뒤 1994년 자본금 2천만원으로 주광정밀을 구미에 차렸다.▶월급쟁이에서 기업가로…특별한 '경영철학'은."한 회사의 대표가 되니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더라고요. 매일 어김없이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는 습관부터 길렀죠. '회사를 위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구상을 위해서죠. 나를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손자병법에 '이환위리(以患爲利)'라는 말이 있어요. 고난은 이겨내는 것이며, 기회로 삼는다는 뜻이죠.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제 회사 역시 몇 년 전부터 주력 물량 감소 등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긍정의 마음으로 이겨내는 수밖에요. 사업 다각화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기존 휴대폰·자동차 부품에 이어 반도체·항공기·수소연료전지 등 신산업 쪽으로 투자를 늘려나가는 중입니다. 곧 결실을 볼 것으로 기대합니다."▶'기부왕'으로도 소문이 나 있습니다."배고픔의 한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학창 시절의 기억 때문이지요. 여력이 있을 때 도움을 주자고 다짐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구미 소년소녀가장 20여 명을 해마다 돕고 있으며, 마이스터고 장학재단을 통해 형편이 딱한 기술영재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어요. 내친김에 2015년엔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에도 들었습니다. 모교인 경북기계공고엔 꾸준히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작년엔 경북기계공고 다목적공연장 설립 기금으로 20억원을 기부했습니다. 기부를 계속하다 보니 '기부는 내게 주어진 기회이자 기쁨'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상의회장으로서의 어깨도 무거울 텐데요."요즘 구미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는 게 느껴지죠? '반도체 특화단지'와 '방산혁신클러스터'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구미로 가져오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업을 따내고 기업 투자를 받기 위해선 무엇보다 'KTX 구미역 신설'이 선행돼야 합니다. 아울러 대구경북신공항 건설과 연계한 고속도로·철도망 확충도 중요합니다. 이는 구미의 힘만으론 만들 수 없습니다. 대구가 힘을 보태줘야 합니다. 저희 회사 부장급 이상 열 명 가운데 일곱이 대구에 주소를 두고 있어요. 이쯤 되면 대구와 구미는 이미 경제공동체입니다. 과거 구미에선 강아지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개 얘기가 나돌 정도로 경제가 번성했습니다. 그런 도시 부흥을 위해 국책사업 유치에 온 힘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훗날 어떤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솔직히 무슨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잖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무리수를 두게 되거든요. 누가 보든 안 보든 열심히 제 할 일을 해야지요. 저는 정장을 입고도 운동화를 신습니다. 젊은 친구들 말로 '덕후'급은 아니지만 집 신발장에 스무 켤레가량 놔두고 있지요.(웃음) '윤재호 저 친구, 열심히 발로 뛴 구미상의회장'이라고만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운동화 신고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다 구미상공회의소 사무실 곳곳에 나붙어 있는 플래카드 속 슬로건이 눈길을 끌었다. '산업 역군과 기업인이 애국자다.' 기업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일에 최우선 가치를 두겠다는 윤 회장의 취임 때 다짐이 변함없이 읽혔다.△1985년 경북기계공고 졸업 △2012년 기능한국인 제70호 선정 △2014년 구미시 최고장인 선정 △2014년 구미상공대상 수상 △2015년 금오공대 명예공학박사 △2016년 대한민국 명장 선정(컴퓨터응용가공)△2021년 2천만불 수출탑 수상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은 "인생에서 맞게 되는 고난은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무릇 기업가는 '긍정의 힘'을 믿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조규덕기자
[자유성] 안동소주
쓴 술의 대표주자인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1920년대 희석식이 첫 출시될 땐 35도였다. 30도 아래로 낮아진 것은 1970년대 이르러서다. 1990년엔 22~23도가 나왔다. 이젠 젊은 층 입맛에 맞춘 14도대까지 나온 마당이다. 감기다 싶으면 독한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먹으면 낫는다는 얘기가 과거 회자됐다. 독한 술기운에 체온이 높아지고 화끈거려 그런 말이 나돌았을 게다. 의학계에선 일시적 현상으로 본다. 결국 몸을 차게 한다고 한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엔 '술집에서 소주와 고추를 함께 팔았는데, 이를 먹고 목숨을 잃은 자가 적지 않았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조선 선조 때 정승 이양원은 소주에 귀한 얼음과 꿀을 섞어 마시거나 물에 희석해 마셨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판 '소주 칵테일'이라 하겠다. 그만큼 예로부터 소주가 독한 술로 인식돼 온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소주의 유래는 고려설이 유력하다. 페르시아에서 몽골로 전해진 증류술이 몽골의 일본 원정 때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특히 안동·개성·제주에서 소주가 인기를 끌었다. 이 세 곳은 고려를 침략한 몽골의 다음 타깃 일본 정벌을 위한 전진 병참기지였다. 그 가운데 안동에서 나온 안동소주는 대표적 명주(銘酒)로 쳤다. 이런 안동소주의 세계화를 위해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최근 TF를 구성해 대표상품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앞서 위스키의 본향인 스코틀랜드에서 안동소주 시음회를 열어 '일품(一品)'이라는 현지 평가를 받았다. 도수 45도 순곡 증류주인 '독한' 안동소주가 세계 애주가의 '잇템(인기 아이템)'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지도자의 음식 기호
고금(古今)의 국가 지도자들은 어떤 음식을 즐겼을까. 현군인 세종 임금은 고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매끼 고기반찬이 수라상에 없으면 수저를 들지 않았다. 식성이 그런데도 운동엔 취미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상왕 태종이 보위에 오른 아들 세종에게 "살 좀 빼시게"라고까지 잔소리를 했을까. 그는 당뇨 후유증으로 시력이 나빠져 평생을 고생했다. 반면 조선 최장수 왕인 영조는 채소를 베이스로 한 '탕평채'를 좋아했다. 미나리·청포묵 등을 섞은 음식이다. 자신이 이름을 붙였다. 치적인 '탕평책'을 상징한다고 해서. 역대 대통령의 입맛도 제각각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끓여준 북어 현미 떡국을 경무대 식단 가운데 최고로 꼽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최애 음식은 비름나물 요리였다. 없이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장관들에게도 권했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주지하듯 '칼국수 전도사'였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미향(味鄕) 전라도 출신답게 홍어 요리를 사랑했다. 검사 시절 직접 요리를 해서 먹었다는 현 윤석열 대통령은 소문난 김치찌개·된장찌개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는 음식에 토마토소스를 곁들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최근 이들 부부의 음식 주문을 놓고 미국인들 사이에서 이색 논란이 벌어졌다. 부부가 식당에서 나란히 같은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했기 때문이란다. 논란의 골자는 '부부·연인이 외식 때 상대와 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사실상 금기사항'이라는 것. 문화 차이라고 하지만 '대통령 식사 스타일'까지 입을 대는 미국인의 엉뚱하고 과도한 관심이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AI야, 기자들 짐 싸야 하니?
종종 가슴이 조여 왔다. 과거 사회부 기자 초년생 때다. 온종일 외근에도 이른바 '땟거리'조차 구하지 못해서다. '호랑이' 사회부장 얼굴부터 떠오른다. 편집국 복귀 길엔 이 심정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은…. 그때마다 철딱서니 없는 공상에 빠진다. '기사 자동판매기가 발명되면 얼마나 좋을까. 커피 뽑듯 기사가 뚝딱 나오는…', 옛적 종이신문 새해 특집판 속 '20년 후 달라질 대한민국'이라는 카툰에 실릴 법한…. 그 몽상이 마침내 현실이 되는 걸까.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인 '챗(CHAT)GPT'가 화제다. 최근 뒤늦게 '녀석'과 대면했다. '주문대로 글을 써준다는…. 옛날 그토록 찾던 그 기계?' 챗GPT와 처음 만난 순간의 솔직한 소회다. 자존심은 잠시 내려놓고. 챗GPT에 '땟거리'부터 구했다. "취재할 기삿거리가 없어. 좋은 아이템 있으면 알려줘." 수 초도 안 돼 나온 답변은 "물론입니다" 자신감이 넘쳤다. 곧이어 인공지능을 비롯해 스포츠, 인터넷·소셜 미디어, 예술·문화, 경제 등 5개 항목에 걸쳐 취재할 만한 내용을 소개했다. 내친김에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한 노하우도 물었다. 광범위한 지식·호기심을 비롯해 탁월한 글쓰기,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인간관계, 독립적 판단력과 직감, 신기술에 대한 이해 등 여섯 가지를 키워야 한다며 항목별로 이유를 붙여 답했다. 살짝 뜨끔해졌다. 선배 기자의 훈계처럼 와닿았다. 노트북을 닫았다. 마치 블랙홀 같아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경이로움'이다. 지구촌이 왜 챗GPT에 열광하는지 공감이 갔다. 어색한 문장이 없지는 않지만 인간 기자의 주문에 맞게 그럴듯한 글을 척척 써냈다. 전문가 사이에선 아직 보수적 의견이 만만찮다. 상식 수준의 정보를 적당히 엮어내는 기계일 뿐이라는 점, 잘못된 내용도 사실인 것처럼 제공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점, 결코 인간의 일 모두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점 등이다. AI가 인간 일자리를 줄여 대량 실업 사태를 부를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다. 나아가 '가짜 뉴스' 등 폐해를 막기 위한 규제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말의 경계심은 숨길 수 없다. 채팅창을 다시 열어 물었다. "챗GPT가 인간 기자를 짐 싸게 할 날이 오니?"라고. 대답이 센스있다. "AI 기자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글을 쓰지만, 판단·이해와 사실 검증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인간 기자가 사라질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장단점을 활용해 협업하길 바란다"고. 대답 가운데 '아직'에 주목한다. 언젠가는(AI 기술이 더 발달하면) 인간 기자가 사라질 날도 온다는 저의인가. AI 기자의 당면 바람은 '인간 기자와의 공존'인 듯하다. 이쯤 하면 AI 기자로 위협받게 될 일을 걱정만 할 때가 아니다. '녀석'과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게 옳다. 구한말 쇄국정책과 같은 시선으로도 볼 필요 없다. 우린 이미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과 AI가 '상충의 관계'로 여겨선 살아갈 수 없는 시대다. 훗날 종이신문에 '인간·AI 기자 컬래버 면(面)', 나아가 'AI 기자 전용 면'이 생길지 또 누가 알겠나. 인간 기자가 지금 AI라는 '도구'를 잘 연구하고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훗날 AI 기자가 인간 기자의 감정과 판단까지 넘보기 전에….이창호 논설위원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노익장
중국 후한 광무제 때 마원(馬援)이라는 개국 공신이 있었다. 한때 역모 사건이 터지자 나이 예순둘의 마원이 이를 소탕하겠다고 자청했다. 왕이 그가 연로(年老)하다는 이유로 말리자 마원은 보란 듯이 말에 뛰어올랐다. 그 진압 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이다. 늙어서 더욱 혈기가 넘친다는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현 대한민국 노익장의 아이콘은 '103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다. 그의 장수 비결은 '하던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한 방송에서 소개됐다. 정년 퇴임 후 지금까지도 저술·강연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가히 경탄할 만하다. 미국 역대 지도자 가운데 최고의 노익장을 뽐낸 이는 다름 아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다. 퇴임 이후 왕성한 봉사·평화 활동을 펼쳐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다. 올해 98세로 상수(上壽·100세)를 앞두고 있다. 그는 재임 시절 건강의 상징인 '조깅(jogging)'을 대한민국에 전파한 주인공이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방한한 이튿날 새벽 주한 미군들과 함께 달렸다. 그 광경이 언론에 소개된 이후 우리나라에 조깅 붐이 일었다. 카터의 퇴임 후 노익장도 젊은 시절 조깅으로 다진 근력이 한몫했다. 그는 저서 '나이 드는 것의 미덕'에서 행복하게 늙는 비결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 카터가 100세를 앞두고 호스피스 돌봄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피부암 흑색종으로 투병해 온 그는 최근 암세포가 간과 뇌로 전이됐다. 생의 마지막을 고향에서 가족과 보내겠다고 한다. '행복의 원천은 가족에 있다'라는 메시지를 던져 준 카터의 '마지막 노익장'을 응원한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밥심
'조선 백성은 대식가(大食家)다. 영국인의 평균 식사량을 크게 웃도는 것 같다. 대개 한 사람이 2~3인분 식사량을 족히 먹는다.' 영국의 여행작가 이사벨라 버드비숍(1831~1904)이 1890년대 조선을 둘러본 뒤 책에서 언급한 대목이다. 프랑스 선교사인 샤를르 달레(1829~1878)가 지은 '조선교회사'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조선 사람의 단점은 다름 아닌 폭식(暴食)이다. 밥을 먹을 때 말을 하는 법이 없다. 말을 하면 그만큼 덜 먹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당시 이방인의 호기심을 자극한 건 다름 아닌 '조선인의 대식 습관'이었다. 배불리 먹지 못한 빈곤의 한(恨)이 컸으리라. 하지만 그보단 엄청난 노동량이 요구되는 벼농사를 매일, 온종일 해야 했기에 매끼 밥 한 공기와 나물 반찬으론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른바 '먹방'이 작금 대세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대식 습관'이 낳은 콘텐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쌀 소비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청 보고가 최근 있었다. 지난해 1인당 하루 155g으로 30년 전 대비 절반 수준에 그쳤다. 그렇다고 식사량이 줄어든 건 아니다. 쌀이 육류에 식탁 주인공의 자리를 내준 것이다. '밥심으로 산다'는 게 옛말이 된 걸까. 우리네 인심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이른바 '밥 인사'가 애용되는 중이니까. "밥 드셨습니까"라고. "언제 밥 한 그릇 같이 합시다" "오늘은 제가 밥 쏘겠습니다"라는 말도 있다. 하나, 요즘 이 인사말이 월급쟁이 사이에선 부담스러워진다. 일부 식당 점심값이 1만원대로 올랐기에. 이창호 논설위원
비앤지평화상사, 사랑의 백미 기탁
(주)비앤지평화상사(대표 남상식)은 지난 10일 대구 남구 자원봉사센터(센터장 김봉기)를 찾아 설맞이 사랑의 백미 10kg짜리 417포를 기탁했다.평화상사 설 맞이 백미 기부
[부고] 김혜경(영남일보 고객지원국 사원)씨 모친상
△홍태연씨 29일 별세, 김우년·김명년·김수경·김혜경(영남일보 고객지원국 사원)씨 모친상, 도재성·이진택씨 장모상= 발인, 31일 오전 9시 의성 중부농협장례식장 2호실. 장지, 경북 의성군 천제공원. 010-9181-2369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 열려
대구 남구자원봉사센터(센터장 김봉기)는 지난 29일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아세아시멘트 직원 등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를 열었다.
[결혼] 김기홍(에이프로에스티 대표·전 영남일보 기자)씨 딸 미래양
△조병용·조경순씨 아들 주형군, 김기홍(에이프로에스티 대표·전 영남일보 기자)·허성자씨 딸 미래양=10월29일 오후 1시 대구 호텔라온제나 7층 컨벤션홀.
대구 남구자원봉사센터 농촌 일손돕기 활동 펼쳐
대구 남구자원봉사센터(센터장 김봉기)는 최근 다은차회봉사단(회장 현영숙) 등 6개 봉사단 30여명과 함께 청도군 매전면 금천리를 찾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를 위해 일손돕기 활동을 펼쳤다.남구자원봉사센터 농촌일손돕기
경북대병원, 추석맞이 사랑의 백미 기탁
경북대병원(병원장 김용림)은 7일 대구 남구 자원봉사센터(센터장 김봉기)를 찾아 추석맞이 사랑의 백미 10kg 짜리 40포를 기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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