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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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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직터뷰] 음악인 부부 김남수·이선경씨 "비주류면 어때요? 늘 함께 해주는 시민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성악 독창 무대에서 성악가와 반주자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 아닐까.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는 훌륭한 반주가 뒷받침돼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주는 성악가의 노래를 더욱 빛나게 하는 윤활유와 같다고 한다. 그렇다고 반주자가 성악가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선 안 된다는 게 무대의 불문율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다. 대등한 파트너십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7시 '김남수 독창회'가 열린 대구 범어대성당 드망즈홀. 이선경(음악감독)씨가 혼을 다해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는 가운데 김남수 테너(명음클래식·대구가곡사랑모임 대표)가 가곡 '첫사랑'을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이씨는 연주 중 가끔씩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김씨를 바라봤다. 둘은 부부다. 부부는 공연 활동은 물론 대구에서 '가곡 대중화'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그들의 음악 인생이 꽤나 드라마틱했다고 한다. 최근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곡에 대한 얘기도 함께.성악가·반주자의 '가곡 대중화' "부를수록 선해지는 것이 가곡의 힘"일반 강좌 운영하며 대중 소통 열정 부부의 꿈은 가곡연구소와 아트센터 "대구 음악계 음대 중심 경향 아쉬워 열심히 하는 음악인 칭찬하는데 인색"남편은 한때 '클래식 한류 스타' 일본 유학시절 여러 콩쿠르서 수상 유명해지며 오페라 무대 주역 출연 "동일본 대지진 덮치며 모든 일 잃어 우리 부부 음악인생도 그때 달라졌죠"▶두 분 모두 이과생이었다가 음악으로 유턴했다는데….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김남수= "'범생이'였습니다. 부모님이 바라는 명문대생(연세대 화학공학과)도 됐고요. 국가기관이나 대기업 연구원이 꿈이었죠. 근데 공부한 만큼 성적이 안 나오는 거예요. 회의가 들더라고요. 그러던 중 '네가 하고 싶은 것 하는 게 최고'라는 동문 선배의 조언에 꽂혔습니다. 숨어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꿈틀거렸어요. 고교 때 중창단 열성 멤버였거든요. 고민고민하다 대구에 내려와 음대 진학을 준비했습니다. 세 곳의 음대에 합격했어요. 결국 전면 장학금이 주어진 대구가톨릭대 종교음악과를 선택했고요. 명문대 간판을 초개(草芥)처럼 버렸으니 당연히 집에선 난리났죠. 대노한 아버지는 '부자의 연을 끊자'고 하셨어요. 맨발에 속옷만 입은 채 쫓겨났습니다.(웃음) 그런 아버지가 대학 4학년 졸업 연주회 때 오셨어요. 그때 비로소 절 인정하신 거죠." △이선경= "대여섯 살 때인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를 기억해 집 부근 교회에 달려가 피아노 건반을 짚었죠. '절대음감'이랄까.(웃음) 초등 6학년 땐 성당 교중 미사에서 오르간 반주를 했어요.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죠. 그러나 부모님 생각은 달랐어요. 공부도 곧잘 했거든요. 결국 자연과학도(경북대 미생물학과)가 됐습니다. 근데 음악이 뇌리를 떠나지 않더라고요. 용기를 내 음대 강의를 두루 들었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내면이 폭발할 것 같은…. 결국 졸업 후 10년 만에 '사고'를 쳤죠. 대구가톨릭대 작곡과에 편입학했습니다. 비로소 제 정체성을 찾은 것이죠." 두 사람은 한 음악행사에서 솔리스트와 오르가니스트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한땐 '기러기 부부'였다. 남편 김씨가 2007년 일본으로 건너가 5년간 음악 공부와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김 선생님은 과거 일본에서 클래식판(版) '한류 스타'로 통했다고 들었습니다.△김남수= "일본과의 인연은 음대 4학년 때 도쿄 국제오페라페스티벌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시작됐지요. 제 노래와 연기에 감명받은 한 현지인이 일본 유학(도쿄예술대)을 돕겠다고 해주셨어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죠. 근데 황당한 사고가 났어요. 국제우편으로 보낸 입학 원서가 학교에 도착하지 않은 거예요. 망연자실했지요. 어쩔 수 없이 1년을 기다렸는데 이번엔 그 후원자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결국 선회한 곳이 히로시마 엘리자베스 음대 대학원이었어요. 현지 로터리클럽 장학생도 되고,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도 했죠. 특히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학생은 당시 개교 60년 이래 제가 처음이었어요. 학교의 영웅이 됐죠. 그 덕에 히로시마시 홍보대사도 하고, 라디오 방송도 진행했어요. 현지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돼 여러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죠. 나름 유명해지니 팬클럽도 생겼습니다. 사인회도 열었고요."▶쭉 일본에서 음악 인생을 펼쳐도 됐을 텐데 왜 돌아왔는지.△김남수= "호사다마(好事多魔), 옛말 틀린 게 없어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문이었어요. 모든 게 멈췄습니다. 제가 몸담은 매니지먼트사도 직격탄을 맞았지요. 거의 폐업 직전까지. 한순간에 일을 다 잃었어요. 짐을 쌀 수밖에 없었죠. 지진만 안 났어도…. 우리 부부가 일본에서 음악 인생을 펼쳐갈 계획도 다 세워놨는데 말입니다. 이 또한 운명이겠지요."▶부부가 새롭게 찾은 길이 '가곡'입니다. 왜 '가곡'입니까.△김남수= "가곡이 대중가요처럼 듣는 이들을 들뜨게 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가곡은 추억을 되살려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요. 사람의 심성을 선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어요.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시(詩)를 기반으로 하니까요. 그게 바로 가곡의 힘입니다. 가곡은 프로 성악가처럼 잘 부르지 않아도 돼요. 노래를 음미하고 즐긴다는 생각으로. 저희의 모토는 '가곡 대중화'입니다. 우선, '대구 시니어 뮤직 아카데미' 어르신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어요. 아울러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매주 가곡 교실(명음클래식)도 운영 중이에요. 가곡을 부르면 표정부터 달라져요. 수강생들이 처음엔 무표정합니다. 근데 부르면 부를수록 밝아져요. 신기할 정도로. 매월 한 차례 애호가들이 직접 가곡을 부르는 무대(대구가곡사랑모임 '세상을 바꾸는 노래')도 열고 있습니다. 무대에 서고 나면 인생의 활력이 생긴다고 입을 모아요."부부는 해마다 연말 아프고 힘든 이웃을 돕기 위한 음악회를 열어 왔다. 합창단(공무원연금공단 상록합창단·에네스 여성중창단)과 성가대(신서·성정하상 성당) 지휘도 맡고 있다. 일주일이 짧다. ▶다중(多衆)과 소통해야 하는 업(業)인데, 코로나 팬데믹 땐 많이 힘들었겠습니다. △이선경= "코로나가 창궐할 땐 가곡교실을 열 수 없었죠. 우린 입으로 하는 일이잖아요. 수입이 아예 없어졌죠. 이를 안타까워하는 수강생들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반면 소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들이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선생님 노래를 너무 하고 싶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가곡 애호가들의 이런 절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대구 음악계에서 이른바 '비주류'인데….△김남수·이선경= "저희 부부는 대구음악협회 회원은 아닙니다. 우리 콘셉트는 '시민을 위한 평생음악교육'이니까요. 이젠 저희도 어느 정도 '티켓 파워'를 갖게 됐어요. 시민들 곁으로 다가간 결과라고 생각해요. 음악계의 판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죠. 다만, 대구 음악계가 여전히 음악대학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은 아쉬워요. 자연히 라인 형성 등 보수·배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하는 음악인을 칭찬하는 데 인색해요. 또, 다른 지역의 실력 있는 성악가가 대구에서 공연을 해도 애써 무관심한 분위기도 그렇고. 대구 음악계가 발전하려면 '오픈 마인디드(open minded)'가 필요합니다."▶부부의 장래 꿈은 무엇인가요. △이선경= "저는 제 이름을 건 가곡연구소를 세우고 싶어요. '이선경 가곡연구소'(가칭). 거기서 가곡을 만들고, 가르치고, 연구도 하고 싶어요." △김남수= "저는 진짜 큰 꿈인데, '명음아트센터'(가칭)를 설립하고 싶어요. 프로·아마추어 관계없이 언제든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입니다. 365일 음악이 흐르는 공간,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부부는 공연 때마다 대중가요를 선보인다. 한 번은 나훈아의 '사랑'을 가곡 느낌이 나도록 편곡해 들려줬다. 반응은 대박이었다. 기자는 평소 '가곡은 품위 있는 것, 대중가요는 그렇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편견이었다. 부부의 얘기를 들으니 음악엔 경계가 없는 것 같다. 음악은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이기에. 글·사진=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김남수·이선경 부부가 대구 동구 신암4동 '명음클래식'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부는 가곡은 아름다운 시가 담겨져 있기에 부르면 부를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선해진다고 말했다.
[자유성] 유리 겔러
염력(念力)은 오로지 생각만으로 물체를 변형시키거나 들었다 놨다 하는 힘을 일컫는다. 일체의 물리적 에너지가 배제된 힘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물론 우리 영화에서도 단골 소재였다. 주인공이 염력으로 자동차·기차는 물론 건물도 들어 올리는 장면은 이제 눈에 익었다. 50대 이상이라면 '유리 겔러'를 기억할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인 그는 1970년대 초능력자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다. 1980년대엔 우리나라 TV에도 출연해 염력으로 숟가락·포크를 구부리는 걸 보여줬다. 그가 응시하면 고장 난 시계 침도 다시 움직였다. 시청자들은 넋 나간 듯 신기해했다. 그가 우리나라를 떠나면서 한 말이 화제가 됐었다. "한국인이 마음을 집중해 남북 통일을 염원하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준 이기도 했다.그러나 그의 초능력 퍼포먼스는 사기극이었다. 제임스 랜디(1928~2020)라는 마술사가 "겔러의 '숟가락 염력'은 형상기억합금을 이용한 거짓"이라고 폭로한 것. 이 일로 두 사람 사이에 소송이 붙었다. 법원은 랜디의 손을 들어줬다. 겔러는 결국 "내가 보여준 '초능력'은 모두 마술에서 사용되는 트릭"이라고 고백했다. 겔러는 몇 해 전 코로나 백신을 맞으며 숟가락을 구부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땐 푸틴에게 "초능력으로 전쟁을 막겠다"고 경고했다. 그런 그가 영국 생활을 접고 모국인 이스라엘로 돌아와 소박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올해로 76세. 인생 말년, 겔러의 기행(奇行)과 기언(奇言)이 멈춰질지 지켜볼 일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대구시 공무원 '설계경제성 검증' 건설VE 자격증 취득
현병철(56·사진) 대구시 도시건설본부 건설토목부장이 최근 'VE(Value Engineering)' 자격증을 취득했다. VE는 '가치공학'이란 뜻으로 제품 비용 절감과 가치 제고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불필요한 기능을 없애고 최상의 기능을 창출하는 일을 일컫는다. 2020년 심강륜 대구시 도시계획과 택지계획팀장 이후로 이 자격증을 따낸 대구시 현직 공무원은 현 부장을 포함해 4명뿐이다. 현 부장은 2년간의 '열공' 끝에 지난달 25일 한국VE연구원(국토교통부 인가기관)이 주관한 VE 자격증 시험 가운데 이른바 'CVP(Certified Value Engineering Professional·건설VE 전문가)'에 최종 합격했다. CVP는 전국에서 800여 명, 대구에선 7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설계의 경제성·적정성을 파악하는 일로, 고도의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이 요구되는 고난도 자격증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대구시를 비롯해 기초지자체·지방공기업 등이 발주한 총공사비 80억원 이상 설계에 대한 VE 업무에서 전문성과 신뢰성을 더욱 제고할 수 있게 됐다. 현병철 부장은 "VE는 도시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VE를 통해 대구시 건설사업의 효용가치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창호기자 leech@yeongnam.comclip20230712102523
[자유성] 맥주
"저게 무엇인고."(사대부 집 아씨 고애신·김태리 분) "맥주라 불리는 서양 술이오."(미 해병대 장교 유진 초이·이병헌 분) "자네(도공 황은산·김갑수 분)는 이 술맛을 봤는가."(고애신) "마셔봐야 배만 부르고 탁주만 못합죠."(황은산) "그럼 한 병만 나누세."(고애신) "싫습니다요. 한 사발도 아깝습니다."(황은산). 2018년 방송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은 말이다. 구한말 맥주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다. 맥주 맛을 알아버린 조선인의 모습을 그린 한 장면이다. 당시 맥주는 귀하디 귀한 술이었다. 조선 고종 임금 8년, 강화만(江華灣)에 진주한 미국 함대 콜로라도호에 조선 관리들이 승선했다. 정보를 캘 요량이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배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마시고 난 빈 맥주병을 들고서.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한국인이 이 땅에서 처음으로 맥주를 접한 순간이라는 기록이 전해진다.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에 관한 기록은 수메르인 유적에서 발견된 기원전 3000년의 점토판에 있다. 소맥을 원료로 하고 대맥으로 색깔을 낸 맥주로 관리들에게 삯을 줬다고 전해진다. 수메르인들은 맥주를 '신의 선물'로 여겼다. 상류층의 가양주(家釀酒·집에서 빚은 술)였던 맥주가 본격 상품으로 선보여진 것은 13세기 유럽에서였다. 맥주는 세계에서 물과 차에 이어 셋째로 즐겨 마시는 음료로 알려져 있다. 이달부터 편의점의 수입 맥주 묶음 가격이 올랐다. 1만1천원에서 1만2천원으로. 여름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혼맥(혼자 맥주)' '치맥(치킨과 맥주)'도 갈수록 부담스러워진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워커 부자 흉상을 함께 세우자
다시 호국보훈(護國報勳)을 생각한다. 가슴이 아렸다. 지난달 식료품을 훔쳤다가 붙잡힌 이가 6·25전쟁 유공자라는 뉴스를 접하고서였다. 그를 향한 한 편지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천수를 누리며 좋은 것만 보시고, 드셔야 할 분들이 구석진 그늘에서 외롭게 살고 계신다니…'.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돼도 별무소용인가. 전쟁 유공자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는 거다.비교하기는 뭣하지만 '베테랑(참전 용사)의 천국' 미국을 보자. 이 나라에서 전쟁 유공자는 각별한 존재다. 이들이 학교·관공서를 방문하거나 여객기·여객선에 오르면 방송을 통해 박수를 유도한다. 참전용사 장례식엔 유족은 물론 일반 시민도 구름처럼 모여 추모한다. 국가의 안전·자유를 지켜준 데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현이다. 한국의 국가보훈부 격인 미국 제대군인부 예산은 지난해 기준 340조원(한국은 5.9조원)이다. 베테랑의 여생(餘生)을 촘촘하고 완벽하게 케어한다. 무엇보다 "역시 미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구석이 있다. 숨은 전쟁영웅을 찾아 기막히게 스토리텔링화한다.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좋은 예다. 그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 선수(보스턴 레드삭스)였다. ML 마지막 4할 타자,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 버금가는 레전드다. 놀랍게도 그는 그라운드를 뛰다 6·25전쟁에 참전했다.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로. 야구를 하면서 조종은 또 언제 배웠는지.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투잡'이 가능했던 미 해군 예비역병으로 입대했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예비역 항공 사관후보생에 지원해 조종 훈련을 받았다. 북한군과 전투 중 죽을 고비도 넘겼다. LA 다저스 레전드인 돈 뉴컴(1926~2019)도 한반도 전쟁터에서 2년을 있었다. 미국 정부와 ML 사무국은 이들의 참전 스토리를 자국은 물론 전 세계에 알린다. '야구와 애국심의 만남'이라는 스토리로. 재향군인의날이나 용사의 기일(忌日)은 거의 축제다. 경기 전 추모와 재미를 엮은 이벤트를 열어 이들의 업적과 노고를 기린다. 과거 미국에서 6·25전쟁은 '잊힌 전쟁'이었다. 지금은 그 반대다. 스토리텔링의 힘이다.우리는 어떤가. 소홀하진 않은가. 현양(顯揚)해야 할 숨은 전쟁영웅이 적지 않다. 멀리 볼 것 없다. 대구에도 윌리엄스와 같은 야구선수 출신 6·25 참전용사가 있었다. 대구 상원고 야구부 선수였던 고(故) 이문조·석나홍·박상호 학도병이다. 1950년 6월18일 제5회 청룡기 야구 우승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일주일 뒤 6·25전쟁이 나자 야구 글러브 대신 소총을 들고 나섰다. 결국 낙동강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몇 해 전 이들을 기리는 시구 행사만이 기억날 뿐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현양해야 할 분들이다.칠곡군에 흉상이 건립되는 월턴 해리스 워커(1889~1950) 장군도 좋은 스토리텔링 대상이다. 장군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샘 워커(1925~2015)도 함께 말이다. 이 부자(父子)는 6·25 참전 영웅이다. 그러나 올해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국가보훈부 선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밴 플리트 부자와 윌리엄 쇼 부자는 포함).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렸던 낙동강 전선을 워커 장군이 지켜냈는데도 말이다. 이왕이면 워커 부자의 흉상을 함께 세우면 어떨까.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일타강사
조선시대 정조 임금 때 정학수(鄭學洙)라는 노비가 있었다. 지금의 국립대 격인 성균관에서 잡일을 하는 수복(守僕)이었다. 신분만 노비일 뿐 어느 양반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성균관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연은 기록에 없어 알 수 없지만 어깨 너머로 글을 배웠으리라. 타고난 공부 머리가 있었는지 실력이 일취월장해 결국 훈장에까지 올랐다. 그가 성균관 인근에 세운 서당엔 100여 명의 학생이 몰렸다. 탁월한 학식과 인품을 갖춘 그는 '정 선생'으로 불리며 추앙을 받았다고 한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고려 충렬왕 때 강경룡(康慶龍)이라는 유생이 있었다. 자기가 가르친 제자 10명이 모두 과거에 붙자 명성을 얻었다. 임금까지 감탄해 그를 칭찬하고 곡식까지 하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정학수와 강경룡은 지금으로 치면 '일타강사(1등 스타강사)'쯤 된다. 요즘 이 일타강사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공개해 향후 수능에서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하자 일타강사들이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다. 과도한 사교육 풍토 속에서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그들이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게 과연 온당하냐는 것이다. 반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일타강사는 법 테두리 안에서 그냥 영리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글쎄다. 선뜻 공감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외국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들까지 '억억' 소리 나는 연봉에 혹해 사교육 시장에 몰려드는 게 곱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국가적 손실이기 때문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어록
고금에 걸쳐 지도자들의 어록(語錄)은 국민 뇌리에 깊이 각인돼 왔다. 간명한 한 줄의 힘 때문이다. 공감과 위안을 주는 어록일수록 오래도록 회자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특유의 떠는 목소리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해방 이후 좌·우익 대립 속에서 국민의 단합을 호소한 정치적 레토릭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1969년 새해 휘호인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도 인상 깊다. 조국 근대화의 절박함을 설파한 한 줄 어록이다. 강렬한 걸로 치면 김영삼 대통령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가 일번 아닐까. 1979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하며 한 말이다. '모가지'라는 표현에서 읽히듯 비장함이 물씬 배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0년 내란 음모 재판 최후진술에서 "훗날 민주주의가 회복되겠지만 결코 정치 보복은 안 된다"고 했다. 이른바 'DJ 정신'으로 일컬어지는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다. 논란의 어록도 적지 않다. 전두환 대통령은 1995년 내란 혐의 재판에서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해 비난을 들었다. 발언 당시엔 히트쳤지만 훗날 도마 위에 오른 노태우 대통령의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도 잊히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명언인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도 퇴임후 따가운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최근 치러진 중국 대학 입학시험 문제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어록이 등장했다.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내용의 어록('남의 길을 막아도 더 멀리 갈 수 없다' '세상에 꽃이 하나뿐이라면 단조롭다')이다. 종신 집권을 꿈꾸는 시진핑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도를 넘은 듯하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올디스 벗 구디스
'클래식(classic)' 하면 흔히 서양 고전음악을 떠올린다. 이 말고도 '유행을 타지 않는 최고'라는 뜻도 있다. 스페인어로는 '클라시코(Clasico)'. '엘 클라시코'는 100년 넘게 펼쳐져 온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 대(對)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일컫는다. '영원한 세계 최고의 축구 경기'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클래식'이라는 말은 그래서 중후하고 정감이 간다. 대학 다닐 때였다. 털어놓기 부끄러운 고백이다. 급히 돈 쓸 일이 생겼다. 용돈은 이미 바닥난 처지. 부모님껜 염치불고다. 교재를 팔 수밖에 없었다. 대구시청 옆 헌책방을 처음으로 들른 계기는 그렇게 면구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가 필요해?" 책방 주인은 퉁명스러웠다. 그 말에 야코죽은 내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연하다. 그 뒤론 같은 이유로 헌책방을 들르지 않았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근데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게 있다. 그 헌책방의 '냄새'다. 뭐랄까. 마음이 편안해지는, 인간미 가득한 냄새라고나 할까. 그 묵은 종이 냄새 때문에라도 헌책방엔 '클래식' 별호(別號)를 붙여주고 싶다. 오래전 소설책을 사러 가끔씩 들렀던 대구 남문시장 인근 헌책방 골목. 그곳에서 70년 넘게 자리해 온 월계서점이 매물로 나왔다는 보도가 최근 있었다. 경영난 때문이다. 안타깝다, 헌책방 단골은 아니었지만. 사라져 가는 '클래식'에 대한 단상(斷想)이리라. 오래전 대구엔 헌책방이 많았다. 대구역 굴다리를 비롯해 남문시장·대구시청 주변에 옹기종기 자리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다. 몇 곳이 겨우겨우 간판만 달고 있다. 완전 소멸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다시 살릴 순 없을까. 요즘 뜨는 카페를 헌책방과 컬래버하면 어떨까. 국내에 이런 곳이 더러 있다고 한다.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 물론 주(主)는 헌책방, 부(副)는 카페여야 한다. '클래식'의 가치를 지켜야 하니까.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나서야 할 일이다. 요즘 출퇴근길 아파트 주차장에서 눈 호강을 한다. 한 진귀한 자동차를 마주해서다. '포니2'다. 1982년 출시됐으니 40년이 넘었다. 추억의 '대구 1'로 시작하는 번호판이 정겹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표(標) '클래식 카'다. 첫 국산차인 포니가 내년이면 탄생 50주년이다. 이를 앞두고 현대자동차가 최근 '포니 쿠페' 복원 모델을 선보였다. 이 차는 49년 전 포니와 함께 공개됐다가 꽃도 못 피운 비운의 차다. "과거를 정리하면서 다시 미래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복원하게 됐다." 현대차 회장의 말이다. 단순히 오래된 차가 아닌 미래세대에 전하는 유산으로 삼자는 뜻이다. '클래식'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나이를 먹으면서 옛날 노래가 좋아진다. 가사도, 멜로디도 '기승전결'이 있어서다. 시종 속삭이는 듯한 요즘 노래는 당최 와닿지 않는다. 집에서 유튜브를 통해 옛 대중가요를 자주 듣는다. 아내가 잔소리를 한다. "제발 옛날 노래 좀 듣지 마. 과거에 집착하는 것 같아. 갱년기 우울증 신호일 수도 있어." 영 틀린 말이 아니다. 고(古)·금(今)을 잘 구분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임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래도 옛것을 지켜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 않겠나. 누가 뭐라 해도 난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오래된 것이 좋아)'다. 가슴 후벼 파는 옛 가요가 내겐 '클래식'이다. 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장수한 관료
조선시대 효종 임금 때 윤경(尹絅·1567~1664)이라는 문신이 있었다. 단명(短命)의 그 시대에 97세까지 수(壽)를 누렸다. 명종 22년에 태어나 현종 5년까지, 그의 생애 모두 여섯 명의 임금이 재위했다. 1589년(선조 22) 22세 때 진사시에 붙었다. 여러 공직을 거친 끝에 무려 90세 나이엔 공조판서에 올랐다. 백수(白壽) 가까이 장수하고, 말년까지 관복(官福)을 누렸다니 가히 탄복할 만하다. 황희는 1449년인 87세까지 영의정을 지냈고, 개국공신인 권희는 1400년 83세 나이로 지금의 부총리격인 좌의정에 올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관료 중에선 국무총리를 지낸 이들이 장수했다. 현승종(향년 101세)·강영훈(〃 94세)·김종필 (〃 92세)·정원식(〃 91세) 전 총리를 꼽을 수 있다. 대구경북에선 김무연 전 경북도지사다. 1921년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영덕군수·대구시장·경북도지사를 지낸 뒤 2019년 99세로 별세했다.세계 외교가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100세를 맞았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땐 저술 작업에 몰두했으며, 얼마 전 포르투갈에서 열린 국제회의에도 참석했다. 초고령에도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는 게 놀랍기만 하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장수 비결은 꺼지지 않는 호기심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했다. 몇 해 전 일본에서도 '장수 비결은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설문 결과가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이 줄어든다고 한다. 잠자고 있는 우리 내면의 호기심을 다시 깨워볼 일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승격과 강등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 프로축구 빅리그가 흥미로운 것은 냉혹한 '승강제(昇降制)'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K리그에도 승강제가 있지만 유럽처럼 축구단의 '생과 사'를 좌우하는 수준은 아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경우 2부에서 1부로 승격하는 팀은 우리 돈 수천억 원의 수익을 올린다. 반면, 2부로 강등한 팀은 비슷한 액수만큼 손실을 보아야 한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EPL 하위 3개 구단은 아래인 챔피언십리그로 강등되고, 챔피언십리그 상위 3개 구단은 EPL로 승격된다.잉글랜드 프로축구에 '선덜랜드'라는 팀이 있다. 한국의 지동원 선수가 2011년부터 3년 가까이 몸담은 팀이기도 하다. 6년 전 챔피언십리그로 강등한 뒤 절치부심 1부 복귀를 노려왔지만 올해도 무산됐다는 뉴스가 최근 전해졌다. 넷플릭스 다큐 프로그램 '죽어도 선덜랜드'로 지구촌 축구 팬들에게 감동을 줬기에 아쉬움이 더하다. '죽어도 선덜랜드'는 그런 선덜랜드의 눈물겨운 1부 승격 도전기를 담고 있다. 반면, 남다른 승격의 감동을 전해준 팀도 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5부리그인 렉섬 AFC는 최근 15년 만에 4부리그로 승격했다. 이 팀 구단주가 영화 '데드풀'의 주인공 라이언 레이놀즈여서 더 화제다. 농반진반(弄半眞半)인데 우리 정치권에도 승강제를 도입해 보면 어떨까. 혈세로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도 정작 국회에선 '딴짓'을 하는 국회의원은 다음 선거판엔 얼씬도 못 하도록 말이다. 대신 유능하고 올바른 사고를 갖고 있는 정치 신인에겐 기회를 주자. 유권자인 국민에게 달렸다. 이창호 논설위원
[논설위원의 직터뷰] 영천 은해사 조실 법타 스님 "남북 불교 화합은 작은 통일…꽉 막힌 교류의 길 활짝 열리길"
"운부암 아래 물웅덩이에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허공에 걸쳐진 소나무에 쌓인 봄눈이 녹아떨어지며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수면에 와인잔 연주나 오르골 소리처럼 동그란 파문들을 탄주한다(이하 생략)" 영천 은해사 운부암(雲浮庵) 앞 연못에서 빚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어로 조탁한 엄원태 시인의 시 '파문'의 일부다. 열사흘 전, 그 운부암으로 들어갔다. 은해사 본전에서 산길 3.5㎞를 올라가니 고색창연한 절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라, 선원(禪院) 앞 연못 물에도 절집이 있는 게 아닌가. 물 위에 고스란히 비친 운부암, 영락없는 데칼코마니다. 눈을 떼지 못하다 돌계단을 오르고 나니 보화루가 있었다. 그 누각에서 노스님이 반갑게 손을 흔드셨다. 은해사 조실(祖室) 법타(法陀) 스님이다. '부처님 오신 날'(27일)을 앞두고 은해사 산중 최고 어른이자 불교계 1세대 통일운동가로 유명한 그를 만나 '스님으로 사는 법'과 세간사(世間事)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불교계 1세대 통일운동가"1989년 첫 방북 이후 100차례 다녀와 굶주린 주민들 위해 국수·빵공장 세워 YS땐 북풍 휘말려 모진 고문·수감도 친북 승려로 매도 당할때 가슴 아팠죠" 국민을 불행하게 하는 정치"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염치라곤 없어 라이벌이 아니라 적과 적이 싸우는 꼴 내년 국회의원선거 판단없이 찍지 말고 반드시 후보자 됨됨이·정책 잘 살펴야"▶스님은 '승려 될 팔자'를 안고 태어났다고 여기십니까. 출가 적 얘기가 궁금합니다. "놀라지 마세요. 내 생일이 음력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더 이상 설명 안 해도 되겠죠.(웃음) 코흘리개 때, 고향인 청주(충북) 집에 탁발승이 오곤 했어요. 그분들이 천수경을 독송하는 모습이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 없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첫 발심(發心)이었죠, 그때는 몰랐지만. 중학교 올라가기 전엔 도서관에서 살았어요. 반야심경을 읽고 외웠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중학생 땐 '미친 놈'처럼 절에 들러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냥 절이 당기더라고요. 내친김에 중학교 3학년 때 속리산 법주사 추담 스님을 찾아갔죠. '스님이 되고 싶다'고 졸랐어요. 스님께선 허허 웃으시더니 '중도 무식하면 안 된다'며 고교 졸업장을 받고 난 뒤 오라고 하셨죠. 3년이 왜 그렇게 길어요. 졸업식 마치자마자 졸업장을 추담 스님 앞에 떡하니 내놓았어요. 근데 스님 되겠다고 집 떠날 때, 아버지 말씀이 아직도 내 골수에 맺혀 있어요. '뭐가 그리 급하냐. 더 이상 집안 망신은 시키지 마라'고. '이왕 중으로 살려면 최선을 다해라' 그 뜻이었어요" 법타 스님은 1965년 세랍(世臘·스님의 세속 나이) 20세 때 추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년 뒤 법주사에서 추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계했다.▶쉬엄쉬엄하셔도 될 세랍(78세)인데, 해마다 동·하안거 참선 수행에 몰두하십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60년 가까운 승려 생활 가운데 20년은 책만 팠죠. 또 20여 년은 소임(조계종단 직책)을 살았어요. 근데 '승려로서 나 자신을 알아보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라는 상념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하화중생은 열심히 했다고 여기지만, 상구보리는 좀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이젠 승려로서 '내 인생'을 정리할 때가 아닌가 라는…. 그래서 '수행 삼매경'에 빠져 있답니다. 제 화두가 '이 뭣꼬' 아닙니까.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런 물음표이죠." 법타 스님은 그동안 서른 네 차례 안거 수행을 했다. 오는 음력 4월 보름~7월 보름 하안거를 앞두고 있다. 과거 사판승(事判僧) 때도 소임이 끝날 때마다 다음 소임 때까진 늘 선방(禪房)에 있었다. 스님은 "평생을 참선한 스님들도 계시는데, 그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오랜 세월 남북 불교 교류에 매진해 오셨지요. 우여곡절이 많았겠습니다."미국 유학 시절, 평화통일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에 불교인이 앞장서야겠다고 다짐했지요. 1989년 한국 국적의 승려로선 처음으로 북한엘 갔어요. 임수경보다 한 일주일 먼저 갔을 걸요. 지금까지 북한엔 모두 100차례가량 갔어요. 금강산만도 33차례. 그 산에 108차례만 가면 통일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남북 불교가 화합하고 교류하는 것은 한마디로 '작은 통일'입니다. 훗날 통일이 될 때 북한 불교의 부흥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요. 비록 분단이 됐지만 우리 불교는 본디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지요. 무엇보다 굶주린 북한 주민을 직접 보니 너무 심란했습니다. 밥이 곧 평화인데, 배 속이 든든해야죠. 사상만을 먹고는 배불리 살 수 없거든요. 북한 사리원에 '금강국수 공장'(1997년)을, 평양에 금강산빵공장(2006년)을 세운 것도 그런 생각에서죠. 국수공장에선 인천에서 남포로 보낸 밀가루로 하루 7천700명 분의 국수를 만들었어요. 근데 이명박 정부 때 금강산 관광객 피격·천안함 피폭 사건, 연평해전이 잇따라 터졌잖아요. 결국 5·24조치(2010년)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돼 지금은 그 공장이 어떻게 돼 있는지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죠. 요즘은 탈북민 정착을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분들 처지에선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빌 수 있으니까요." 평화통일불교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법타 스님은 지난해 남북 불교 교류의 발자취를 담은 '평불협 30년사'를 펴내 주목을 받았다. ▶북풍에 휘말려 애꿎은 옥살이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1994년 김영삼 정부 때죠. 느닷없는 신공안정국이 몰아쳤어요. 우리나라에 주사파가 5만명이 된다느니, 각계각층에 있다느니 말들이 많았지요. 내가 북한을 한 대여섯 번 다녀왔을 즈음이었죠. 당연히 타깃이 됐어요. '주사파'라는 색깔을 입히더라고요. 남영동 대공분실에 붙잡혀 갔습니다. 날짜도 안 잊혀요. 7월10일. '죽도록 맞는다'라는 말을 실감했죠. 잠도 재우지 않은 채. 나중에 들어보니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당한 방에 내가 있었더라고요. 결국 교도소에서 105일간 구금됐습니다. 사실, 통일운동 하면서 이런 핍박은 각오했어요. 근데 가슴이 아팠던 것은 주위에서 나를 '친북 승려'로 매도할 때였습니다. 감옥에서 스승이신 일타 스님의 편지를 받고는 펑펑 울었습니다. 스님 말씀이 '네 본분은 수행임을 잊어선 안 된다. 이제 국가가 너에게 수행의 기회를 줬다. 그곳을 국립 선방으로 여기고 나올 때까지 열심히 정진해라'는 것이었죠. 감방(監房)을 선방으로 여기며 '이 뭣꼬' 화두에 매진했습니다."▶작금 속세 정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여야가 진영논리에 갇혀 철천지수처럼 물고 뜯고 있습니다."국민이 있고 국가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정치인들이 일신의 이익과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있어요. 염치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여(與)와 야(野)'라는 게 선의의 라이벌이지, 결코 적의 관계가 아닙니다. 요새 정치인들 보면 완전히 적과 적이 마주해 싸우는 것 같아요. 도대체 우리 국민과 국가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국민을 위한다면 서로 진정성 있게 대화를 해야 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도 얘기했잖습니까. 혼이 없는 정치,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는 국민을 불행하게 한다고요. 부처님 말씀대로 여야가 물과 기름처럼 겉돌지 말고 물과 우유처럼 화합해 안심입명(安心立命)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정치는 국민만을 바라봐야 해요. 그래서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진짜 중요합니다. 국민도 선량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진짜 주권자임을 명심해야 해요. 답이 나왔죠? 투표를 잘 해야 합니다. 판단 없이 찍으면 안 되지요. 특히 말만 번지르르한 후보자는 괄호 밖입니다. 후보자의 됨됨이와 정책을 꼼꼼히 살펴야 하겠지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속세와 중생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은."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든 중생이 분수를 알고 지켰으면 해요. 세간사 모든 번뇌가 거기서 출발하거든요. 번뇌하는 이는 그 번뇌가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생각합시다. 가령, 속세에서 '데이트 폭력'이란 게 있잖아요. 내가 더 노력을 해 상대를 내 사람이 되도록 하든지, 그게 안 되면 깨끗이 포기해야지요. '저 사람은 나와 인연을 지을 수 없구나' 이렇게 생각해야지요.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하나만이 다는 아니거든요. 재력·명예도 다 일시적인 것이고…. 분수를 지키면 인생이 자유롭고 행복해집니다." 법타 스님은 인터뷰를 마치고 산문(山門)을 나서는 기자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기자도 우리 승려와 비슷하잖습니까, 사회의 목탁으로서. 작은 이익에 야합하지 말고 '정의의 예봉(銳鋒)'이 돼 주시오." 스님의 말씀을 곰곰이 곱씹으며 암자를 내려왔다. 글·사진=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법타 스님은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학·석사, 미국 클레이턴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0년엔 동국대에서 승려 최초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계종 총무부장·은해사 주지 등을 지냈다. 2017년부터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으로 있다. 2018년 대종사 법계를 품수한 데 이어 2021년 은해사 조실에 추대됐다.◆법타스님이 권하는 생활 속 명상법"명상법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지요. 밤에 '내가 오늘 무엇을 했나' 한 번 생각하고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가집시다. 또 아침에 일어난 뒤엔 5분이라도 앉아서 눈을 감은 채 '내 몸과 마음 덕택에 무사히 잤다'라고 말하면서 하루를 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종의 자기암시이지요. 그리고 아침 출근할 땐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한 번 생각한 뒤 '오늘 내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매일 실천하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신기할 정도로."법타 스님이 운부암 경내 석탑 옆에서 합장을 하고 있다. 스님은 "국민이 행복하려면 정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내년 국회의원 선거 땐 판단 없이 찍지 말고 반드시 후보자의 됨됨이를 살펴보자"고 말했다.
[자유성] 독순술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나온 지네딘 지단(프랑스)의 '박치기 퇴장'은 월드컵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이 사건이 상대 선수인 마르코 마테라치(이탈리아)의 막말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은 경기 직후 제기됐다.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너와 네 가족의 비참한 죽음을 기대한다"고 했다는 것. 이른바 '독순술(讀脣術·입술 모양으로 대화 내용을 판독하는 기술)' 전문가들의 판독 결과였다. 최근 마테라치가 17년 만에 입을 열었다. 그는 "지단이 내게 유니폼을 교환하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니, 나는 네 여동생이 더 좋아'라고 농담을 했다"고 밝혔다. 독순술 해독과는 차이가 있다. 2018년 남북 정상의 '도보다리 독대' 내용도 온갖 추측을 낳았다. 독순술을 의식해 후일 북측이 '김정은 입술' 엄호에 나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 날리면' 논란 때도 호사가들 사이에서 독순술을 쓰자니 말자니 시끄러웠다. 소리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발언을 명확하게 판독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통상 독순술은 청각장애인과 일반인의 의사소통에 쓰인다. 하지만 조사·형용사·부사 등이 섞여 있는 대화체를 정확히 해독하기는 힘들다는 게 구화(口話)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근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대관식을 기다리던 중 뭔가 구시렁거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한 독순술사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입 모양을 읽은 결과 '지겨워'라고 했다"고 밝혔다. 독순술 에피소드에서 교훈을 얻는다. 무릇 공인(公人)은 자나 깨나 말조심해야 함을. 우리 여야 정치인들이 각별히 새겨야 하지 않을까.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우리는 이민자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가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이민 역사는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을 빼놓곤 논할 수 없다. 서부개척시대 이민정책의 기초를 다진 장본인이어서다. 그가 쓴 '미국에 이주하려는 이들을 위한 안내'에 이런 내용이 있다. '유럽 명문가 출신임을 내세우는 이에겐 미국 이민을 권할 수 없다. 미국에선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신분이 뭐냐고 묻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같은 개방·실용적 이민정책은 오랜 세월 부동의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을 지켜온 원동력이 됐다. 프랭클린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워딩과 오버랩돼서다. "경북을 '아시아의 작은 미국'으로 만들겠다"고 한 다짐이다. 관련해 경북도가 추진 중인 '외국인 이민정책'은 작금 인구소멸 문제의 실효적 해법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가볍지 않은 자문(自問)이 머릿속을 맴돈다. '과연 우리는 이민자를 맞을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가'이다. #외국인에게 'K 로망'을 심어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원더풀 코리아"를 연발하는 외국인. 그 모습에 한국인은 감동받는다. 시쳇말로 '국뽕'에 젖기도 한다. #방송에서 유창한 한국말을 뽐낸 한 외국인이 있었다. 그 모습에 한국인은 호감을 보냈다. 그러던 중 그는 인종차별 논란에 비판조 얘기를 했다가 역풍을 맞고 사라졌다. 두 사례에서 보듯 외국인을 향한 우리 정서엔 이른바 '선택적 포용심'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하게 말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이랄까. 여기엔 인종·출신 국가에 대한 편견이 개입된다. 이는 '전가보도(傳家寶刀)'와 같은 단일민족론과 무관하지 않다. 역사적 소임(민족의식 고취)을 다했는데도 여전히 한국인 뇌리에 DNA처럼 스며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다문화 사회였다. 고려시대 땐 다양한 이민족 귀화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했다. 우리 이민정책이 이 같은 본질적 문제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제도적 인프라는 어떠한가. 캐나다·호주 등 이민 강국의 관련 정책은 구미부터 당긴다. 타깃은 고급 이민자. 거의 '모시다시피' 한다. 요건을 갖춘 이에겐 지체 없이 영주권을 내준다. 공공주택 입주 혜택을 주는 곳도 있다. 과연 한국이 이들 나라보다 메리트가 있는 곳일까. 회의적이다. 세계 1위의 양육비를 비롯해 과도한 사교육비, 불안정한 집값, 수도권 일극주의…. 한국행이 마뜩잖을 게 한둘이 아니다. 인프라가 비교열위이면 누가 오고 싶어 하겠나. 경북 이민정책도 우수 외국인 유치에 방점을 두지 않았나. 그들을 잠시 데려다 쓰고 돌려보내는 게 아니다. 여기서 꿈을 일구며 먼 훗날까지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이들이다. 이민자를 위한 제도적 환경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철우 도지사는 "외국인에게 따뜻하고 차별 없이 대우하겠다"고 말했다. 지당하다. 한국을 찾을 이민자를 피부색·모국(母國)의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대하는 자세다. 그들에게 개인의 행복과 한국의 발전을 위해 살아주길 바라되 그들의 '아이덴티티 (identity·정체성)'까지 잊어달라고 요구하지는 말자. 이른바 '다름의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차제에 공존과 상생을 위한 다문화 교육을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 학교는 물론 단체와 직장에서도. 범국민적 인식의 대전환이 선행되지 않고선 이민국가로의 길이 결코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이민정책,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하자.이창호 논설위원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봉투
촌지(寸志)는 말 그대로 '손가락 한 마디 되는 아주 작은 성의'를 일컫는다. 오래전 관공서·학교·언론계 등에서 촌지가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30년 전쯤이었을까. '방과 후 활동' 취재를 위해 대구 외곽지 한 초등학교에 들렀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내게 교장 선생님이 '하얀 봉투'를 건넸다. 극구 사양했지만, 그는 "진실로 작은 마음"이라며 내 외투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봉투 겉면엔 '거마비(車馬費·교통비)'라고 적혀 있었다. 돌아오는 길 버스 맨 뒷좌석에서 봉투를 열어 봤다. 1천원권 지폐 세 장이 들어 있었다. 얼추 당시 자장면 세 그릇 값이다. 사전적 의미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그야말로 '촌지'로 여겼다. 필자의 부끄러운 고백이다. 하지만 아버지뻘 되던 교장 선생님이 봉투에 넣어 준 그 '마음'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봉투'의 기원은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흙 봉투'로 알려져 있다. 제왕에게 전할 문서를 타인이 볼 수 없게끔 단단히 봉한 데서 생겨났다. 이처럼 봉투엔 '은폐(隱蔽)의 심리'가 깃들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돈은 함부로 남에게 보여줘선 안 된다'고 했다. 격려금으로 통하는 '금일봉(金一封)'은 봉투에 넣어 액수를 밝히지 않는 게 상례였다. 작금의 축의·부의금도 봉투에 숨겨서 주므로 즉석에선 액수가 노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봉투 하면 으레 돈이 연상되며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정국을 흔들고 있다. "고작 300만원" "밥값 수준"이라는 야권의 망발이 공분을 사기도 했다. '봉투'를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뿌린 책임을 피할 수 없으리라.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루틴
'배구여제' 김연경은 최근 한 행사에서 "멘털에 위기가 올 땐 '루틴(routine)'을 가져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루틴은 운동선수의 경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자신만의 특별한 습관이나 자기 주문을 일컫는다. 부정적인 징크스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프로야구 삼성에서 코치로 활약 중인 박한이의 현역 시절 루틴은 아직까지 회자된다. 상대 선수의 볼멘소리를 자아낸 그의 타격 전 루틴은 이랬다. 장갑을 고쳐 낀 뒤 땀 닦기, 헬멧을 벗어 다시 쓰면서 이마 밀어 올리기, 다시 헬멧을 고쳐 쓴 뒤 배트로 홈 플레이트 앞 선 긋기 등 순이었다. 하도 뭐라 해서 몇 동작을 빼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방망이가 침묵했다고 한다. 일본의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는 징크스 극복의 비결로 '행운'을 꼽고 있다. 단,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 그가 팀 승리를 위해 더그아웃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줍는 습관은 널리 알려져 있다. '타인이 버린 행운을 줍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대한민국 '축구 영웅' 손흥민은 그라운드에 들어설 때 항상 오른발로 사이드라인을 밟는 루틴을 갖고 있다. 또 상대 팀이 노란색 유니폼을 입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크레이지 모드'를 선보였다. 그런 그가 최근까지 EPL 득점왕 2년 차 징크스에 시달렸다. 얼마 전 부활을 알리는 EPL 100호골을 넣은 뒤 "솔직히 득점왕 압박이 컸다. 최고 레벨이 아니었음을 인정한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그의 고백처럼 때론 욕심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자신을 압박하는 징크스를 깨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창호 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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