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마초 문화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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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11  |  수정 2024-06-11 07:03  |  발행일 2024-06-11 제23면

지금으로 치면 '마초(macho·남성 우월주의)사회'인 조선시대 때도 남자가 유교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할 경우엔 가차 없이 벌을 받았다. 세조실록 8권에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선성군 이무생(李茂生)이 창기(倡妓)에 빠져 아내를 바깥으로 내쫓아 놓고선, 자기 아내가 제 발로 나가버려 교화(敎化)하기 어려웠다고 핑계를 댔다. 지극히 부당하니 성상의 재결을 청한다'고 하니, 명하여 이혼(離婚)하게 하고 이무생의 직(職)을 파면했다"라고 적혀 있다. 천하의 남존여비(男尊女卑) 시대였지만 조강지처를 버린 행위만큼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었다.

작금의 시대, 이 지구촌엔 가부장적 마초 문화가 여전히 득세하는 나라가 꽤 있다. 첫 번째로 꼽으라면 스페인이다. 지난해 여자 월드컵 결승전 시상식에서 발생한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장의 '강압 키스' 논란이 대표적 예다. 스페인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반(反)마초' 여론이 들끓자 그는 결국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까지도 '마초맨'임을 과시하는 러시아도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마초 국가다. 원래 마초는 나쁜 뜻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근육의 힘으로 가정과 국가를 보호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의 마초는 분명 일그러진 마초다. 최근 멕시코에서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탄생했다. 그러나 새 역사가 쓰인 지 하루도 안 돼 멕시코 현직 여성 시장이 피살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뿌리 깊은 마초의 나라임을 실감케 한다. "진정한 변화는 아직 멀었다"라는 비관론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이제 막 불기 시작한 여풍(女風)이 고질적 남성 우월주의를 타파해 나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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