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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김봉구 전 문경시장 4일 별세, 김태윤(KT 부장)씨 부친상, 황보중(변호사)씨 빙부상
▲김봉구(전 문경시장)씨 4일 별세, 김태윤(KT 부장)·태훈(신한은행 지점장)·미경(약사)·난경(약사)씨 부친상, 황보중(변호사)·정상혁(신한은행 부행장)씨 빙부상= 발인, 7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 장지, 대구 달성군 가창면 선영. (02-2258-5961)
2021.03.05
[부고] 최억만(전 경북도체육회 상임부회장)씨 별세
▲ 최억만(전 경북도체육회 상임부회장)씨 별세, 김삼선씨 남편상, 최성환·성희씨 부친상=발인, 5일 오전 10시 달서구 성서 계명대 동산병원 백합원 특1호. 장지, 칠곡군 현대공원 제1묘원. 053-258-4444, 010-4099-3433
2021.03.04
<부고>차이룡씨 28일 별세, 마창성(영남일보 동부지역본부 부장)씨 장인상
【부고】차이룡씨 28일 별세, 마창성(영남일보 동부지역본부 부장)씨 장인상 ▲차이룡씨 28일 별세, 병철(GS건설 부장)·원철(정식품 부장)씨 부친상, 마창성(영남일보 동부지역본부 부장)씨 장인상, 김희선(CJ프레쉬웨이 부장)씨 시부상=발인, 3월2일 오전 7시30분 포항시민장례식장 특6호실. 장지, 포항시립화장장. 054-253-4444.
2021.02.28
[부고] 김용수(전 영남일보 광고국 과장)씨 부친상
▲김용수씨(전 영남일보 광고국 과장) 부친상 = 발인, 27일 오전7시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205호. 장지, 경산시 남산면 상대리 선영. 010-3513-5442
2021.02.25
[부고]양만재(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씨 모친상
[부고] 양만재(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씨 모친상▲김해선씨 21일 별세, 양만재(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씨 모친상 = 발인 23일 오전 9시 포항의료원 장례식장 1호실. 장지, 경주시 강동면 대명공원묘원.
2021.02.22
[부고]정운홍씨(경북도민일보 기자) 부친상
▲정중모씨 20일 별세, 운홍(경북도민일보 기자)·미숙 부친상=발인, 22일 오전 7시 30분 안동병원 장례식장 9호. 장지, 안동시 풍천면 선영. 연락처 010-9373-5801
2021.02.20
[부고] 이호철(대구지법 부장판사)씨 부친상
▲이춘웅씨 18일 별세, 이호철(대구지법 부장판사)·인호·종호씨 부친상, 방현정씨 시부상=발인, 20일 오전 8시 달서구 S병원 장례식장 1분향실, 연락처 010-2521-9908
2021.02.18
백기완 선생 서울대병원 빈소에 각계 조문 행렬
15일 오전 타계 소식이 알려진 백기완(향년 89세)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에는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를 비롯해 시민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조문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이 날 오후 2시께부터 여야 인사들이 먼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를 찾았다. 유족이 조문을 받기 시작한 직후 빈소를 찾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는 기자 시절에 백 소장과 맺은 인연을 언급하며 "국회의원 시절에도 재벌개혁과 검찰개혁이 힘들 때마다 힘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박용진·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박 의원은 "백 선생님이 1992년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때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해 영광으로 기억된다"며 "휘날리는 머리카락으로 항상 저희 곁에 계실 줄 알았는데 씁쓸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를 포함해 장혜영·류호정·강은미 의원, 권수정 서울시의원 등 정의당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았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도 오후 3시 43분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 고문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운동 당시 백 소장을 처음 만나 민주수호청년협의회 등 민주화 운동을 함께한 과거를 회고했다. 김진애·최강욱·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들도 빈소를 방문했다. 최강욱 의원은 "앞서서 가셨으니 산자로서 고인의 뜻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원혜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년 백기완 선생이 민족통일을 위해 한 노력은 앞으로도 살아서 우리 통일을 앞당길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오후 4시 42분께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뒤 "이상주의자로 살다 가셨지"라는 짧은 말을 남겼고, 송영길 의원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잇따라 조용히 조문을 마치고 떠났다. 남인순 의원과 김상희 국회부의장은 함께 빈소를 방문했으며, 김 부의장은 "한 시대가 가는 것을 느낀다. 백기완 선생님 말씀과 정신은 모든 사람 가슴 속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오후 5시 37분께 취재진 앞에 서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언제나 길에서 만났던 분이다. 이 시대의 절망하는 사람들 앞에 언제나 함께하셨다"며 "선생님이 가신 길을 열심히 뒤따르겠다"고 말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1987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출범할 때 충남대 운동장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강연해주신 일이 생생하다"며 "노동자와 민중의 벗이 돼 사신 삶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농민, 세월호 가족 등 이렇게 민초들의 삶에 중심을 둔 분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며 "늘 광화문 광장에는 백기완 선생님의 자리가 놓여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사회계·종교계 인사들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조문 후 "평소 든든하게 생각했던 어르신이다. 한평생 일관되게 황야를 걸어오신 분이다"라며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하며 인사했다"고 말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 민중운동의 큰 어른이자 나에게 큰형님 같은 분이 가시니 정말 허전하고 아쉽다"고 말했다. 박종철기념사업회 관계자라고 밝힌 이모(55)씨도 "백 선생님이 초대 이사장님이셨다"며 "많은 사람이 자기가 선 자리에서 싸울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다"라고 밝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은 "통일을 보고 완전 민주화되는 걸 보시고 떠나게 하지 못한 이 후학들은 굉장히 죄스럽고 한스럽다"며 슬픔을 드러냈다. 김미숙 김용균 재단 대표는 "오늘 아침 부고 소식을 들었는데도 또다시 일어나실 줄 알았다"며 "큰 어른, 큰 별이 져 많이 아쉽다"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김종기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큰 버팀목이 돼주신 선생님께서 이렇게 가셔 비통하다"며 애도했다. 백 소장을 따라 민중운동에 함께한 인연을 추억하며 빈소를 찾는 시민들도 있었다. 서울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A(56)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빈소에 흰 국화를 두고 기도했다. A씨는 "1987년 대선에 출마하셨을 때 선거를 돕던 대학생이었다"며 "민주화 운동의 원로로 솔선수범하시며 마지막까지 고생하셨으니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공지영 작가도 빈소를 찾아 "대학 시절 선생님 집에 놀러 갔던 기억과 제 첫 차를 선생님 대선 후보 전용차로 드렸던 기억이 난다"며 "마음속으로 너무나 존경했던 분"이라고 밝혔다. 장례식장에 조화나 화환, 근조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장례위원회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조화를 받지 않는다. 선생님은 (생전) 조화를 보낼 값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부터도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날 빈소에 공지영 작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기석 성공회대학교 총장 등이 조화와 화환 등을 보냈지만 장례위원회는 모두 돌려보냈다. 연합뉴스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2021.02.15
김형영 시인, 시선집 내는 날 하늘로…시신은 기증
1970년대 초반 '칠십년대' 동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원로 시인 김형영이 1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문학과지성사가 전했다. 향년 77세. 이날은 고인이 과거에 썼던 시들을 투병 중 엄선해 엮은 시선집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햇살을'이 출간된 날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 '스테파노'인 고인은 시신을 기증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이 시선집에 부친 해설에서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태들을 가능한 한 가장 적은 언어와 속살거리는 음악으로 형상화"했다고 평했다. 1944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소설가 김동리로부터 소설을, 서정주, 박목월, 김수영 시인 등으로부터 시를 사사했다. 1966년 '문학춘추' 신인상과 1967년 문공부 신인예술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1970년부터 30여 년간 월간 '샘터'에서 일했다. 비슷한 시기에 문단에 나온 강은교, 윤후명, 정희성 등과 시 동인 '칠십년대'를 결성해 6집까지 동인지를 펴냈다. 이들은 2012년에 동인 활동을 재개했으나 이름은 '고래'로 바꿨다. 1973년 '침묵의 무늬'를 시작으로 '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를 친다', '홀로 울게 하소서', '화살시편' 등을 펴냈다.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육사시문학상, 구상문학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장순옥 씨와 아들 상명·상조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17일이지만 시신을 기증하므로 장지는 없다. 연합뉴스
'임을 위한 행진곡' 한국 진보운동 `큰 어른' 백기완 선생 영면…향년 89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입원 중 영면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왔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백 소장은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연합뉴스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15일 오전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있다. 연합뉴스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연합뉴스
최인훈 소설 '광장' 주인공 모델 현동화 전 재인도한인회장 별세
최인훈의 소설 '광장'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현동화 전 재인도한인회장이 12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주인도한국대사관과 유족에 따르면 현 전 회장은 이날 경기도 남양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84년부터 20년간 재인도한인회장을 지낸 고인은 2018년 신병 치료를 위해 귀국했으며 최근 폐렴 등 합병증을 겪어왔다. 193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현 전 회장은 인민군 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반공포로'가 됐다. 1950년 강원도 화천전투에서 미군의 폭격 와중에 부상했고 요양 중 국군에 귀순했다. 그는 휴전 협정 체결 후 남과 북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제3국행을 선택했다. 1954년 2월 동료 반공포로 88명과 함께 수송선 '아스토리아'호를 타고 첸나이(당시 마드라스)항을 통해 인도로 들어왔다. 이로 인해 그는 남과 북 어느 곳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인도행 타고르호에 오른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졌다. 현 전 회장은 인도를 거쳐 멕시코로 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학업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멕시코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을 받지 못했다. 그사이 동료들은 다른 중립국을 택해 흩어졌다. 결국 그는 반공포로 동료 3명과 함께 인도에 정착했다. 이들 동료 3명은 이미 세상을 뜬 상태다. 현 전 회장은 황무지를 개간해 양계장 사업을 시작했고 인모(人毛) 수출, 아프가니스탄 섬유공장 건설 등 여러 사업에서 성공을 거뒀다. 한국 누에알을 수입해 인도 카슈미르 등에 보급하기도 했고, 중동 건설붐이 일었을 때는 인도 노동자를 중동에 보내 일하도록 하기도 했다. 이후 재인도한인회장을 지내며 양국 민간 교류에도 힘썼다. '한국 기금'을 만들어 한국어 과정을 마친 인도 학생의 연수를 지원하기도 했다. 원했던 멕시코행은 좌절됐지만 인도에서 한인 1세대로 교민 사회의 기반을 다졌던 셈이다. 2017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인도 국빈방문 때 동포 만찬 간담회 자리에서 "1997년 뉴델리에서 당시 한인회장이었던 현동화 선생님을 만난 일이 있다"며 "소설 '광장'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며 현 전 회장과 얽힌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인사회 1세대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 가난을 딛고 인도의 대지에 뿌리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춘자 씨와 유진·민영 씨 등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발인은 14일이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연합뉴스
2021.02.12
[부고] 김종환(상주 교육장)씨 모친상
▲김종환씨(상주 교육장) 10일 모친상=발인 13일 오전7시 상주성모병원 장례식장. 장지, 상주시 중동면 죽암리 선영. 010-4375-4078
2021.02.11
군위군 기획감사실 서중건씨 부친상
△서경락씨 7일 별세, 중건(군위군청 기획감사실)씨 부친상=발인, 9일 오전 9시 군위군 군위읍 군위농협장례식장 특실. 장지, 안동시 풍산읍 안동추모공원. 010-5624-7582
2021.02.08
영화 '친구' 진숙 역 배우 김보경 사망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 속 단발머리 진숙으로 친숙한 배우 김보경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44세. 5일 연예계에 따르면 김보경은 최근 사망했으며 장례 절차를 마쳤다. 고인과 함께 활동한 배우 서유정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너무 황당하고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동료들도 친구들도 모르게 얼마나 외로웠을까"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연기하면서 당신을 알게 돼 영광이었다"며 "그곳에선 언니가 좋아하는 연기 많이 하고, 언니가 사랑하는 하나님 곁에서 사랑만 받고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도 "2년 전까지 연락하고 지냈지만 일부 매체의 보도처럼 암 투병 중인지는 전혀 몰랐다"면서 "신앙이 독실하고,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정말 충격적"이라고 애통해했다. 1977년 태어난 김보경은 드라마 '초대'(1999)를 시작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고, 영화 '친구'에서 밴드 레인보우의 보컬 진숙 역을 맡아 '연극이 끝난 후'를 부르는 장면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드라마 '하얀거탑'(2007)에서는 장준혁(김명민 분)을 짝사랑하는 병원 인근의 카페 사장 강희재 역으로,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2011)에서는 성준(유준상)의 옛 애인 경진 역을 맡았다. 고인은 이후에도 '청풍명월'(2003), '어린 신부'(2004), '여름이 가기 전에'(2007), '기담'(2007) 등의 영화와 '학교 4'(2001),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아모레미오'(2012), '사랑했나봐'(2013) 등의 드라마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연합뉴스영남일보 DB
2021.02.05
'민주화운동 원로' 강신석 목사 별세…향년 83세
군사독재정권에 맞서고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데 헌신한 강신석 목사가 5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1938년 8월 광주에서 태어난 강 목사는 1976년 광주 양림교회에서 열린 노회에서 유신 반대 성명서 낭독을 주도했다. 결국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년여간 옥살이를 하다 특별사면됐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인 1980년 5월 17일 예비검속으로 수배 명단에 포함됐지만, 서울로 상경해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독일 대사 등을 만나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문에 신군부에 붙잡혀 고초를 당하고 보안대로 끌려가 독방 신세를 지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 시절엔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해 100만명 서명 운동을 벌여 역사상 처음으로 100만명 서명을 받아내는 데 역할을 했다. 이러한 민심을 토대로 전두환 등 신군부 핵심 관계자들은 검찰 수사 끝에 법정에 섰다. 1984년 5월 12일에는 독일을 방문해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구체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이와 함께 광주 YMCA 중등교사회를 만들거나 전교조 활동을 지원하는 등 교육 민주화에도 최선을 다했다. 강 목사는 1994년 YMCA 이사장을 지냈고, 1998년 한빛고 이사장, 2003년 5·18기념재단 이사장, 2004년 조선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장례식장은 조선대병원장례식장 1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8일 민주사회장으로 진행되며 장지는 국립 5·18민주묘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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