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창간 76주년 사람과 지역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x
이창호 기자
전체기사
[월요칼럼] 쓴소리 판을 깔아라
'소통(疏通)'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조직의 리더를 평가할 때 1번으로 꼽힌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리더는 항상 귀를 열어 놓아야 한다. 듣기에 고울 리 없지만 아랫사람의 '직언(直言)'을 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직언을 많이 하는 부하를 둔 리더가 복 받은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조선 세종 임금 때 정승을 지낸 경산 하양 출신의 허조(許稠) 대감이 있었다. 간도 컸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임금과 입씨름을 했다. 세종도 사람인지라 잘못된 결정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니되옵니다"라고 직언했다. 실록에는 세종이 그런 허조를 때론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올곧고 청렴한 인품을 알고 있기에 국가중대사는 늘 그와 논의했다. 또 성종 임금은 신하들에게 붓과 먹을 쥐어주며 "왕의 잘못을 꼬집는 데 써달라. 먹이 빨리 닳으면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강력한 왕권국가의 조정에서도 강직(剛直)과 겸허(謙虛)의 소통이 있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작금의 시대, 윤석열 정부의 내부 소통은 어떤가. 언로가 더 열려있을 법한데, 직언의 소통을 찾기 힘들다. 그간의 일방통행식 인사(人事)만 봐도 그렇다. 대통령은 요직에 학교 선·후배를 앉혔다. 헌법재판소장 후임으론 서울대 법대 동기를 지명했다. 오죽하면 '대통령실은 대통령 지인 직업소개소'라는 비아냥까지 나왔겠나. 잊힌 'MB맨'까지 소환해 알짜 자리를 맡겼다. 참모들과의 논의 과정이 왜 없었겠나. 문제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라는 불신감이다. 관련해 현 정부 출범 1년 6개월간 가장 잘못한 건 '인사'라는 여론조사 결과(한국갤럽 3일 발표)는 주목할 만하다.'친분 인사'와 '과거 회귀 인사'는 대통령을 '우물'에 가둬 놓을 수 있다. 선택된 지인 가운데 어느 누가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겠나. 듣고 싶은 말만 주고받는다. 정부 스스로 엄격한 제어를 할 수 없다. 의아한 인사가 잇따라도 참모 가운데 아무도 "천부당만부당하다"고 직언하지 않는다. 국무총리의 책임이 작지 않다. 총리직이 옛 정승처럼 쓴소리하라고 있는 자리임을 모르는가. 여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에게 찍소리조차 못하고 있지 않나.대통령 비위만 맞추는 참모는 존재 이유가 없다. 정부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정권 말기 단 소리만 들었다. 결과는 실패 아니었나.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과(功過)를 떠나 직언의 소통을 제일로 쳤다. 국무회의에선 '폐부를 찌르는 정문일침(頂門一鍼)'이 용인됐다. 쓴소리를 한 참모는 대통령 눈 밖에 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됐다. 윤 대통령이 곱씹어볼 만하다.윤 대통령이 민심 보듬기에 부쩍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보선 패배가 뼈아팠고, 보수 언론의 비판적 시선에도 당황했을 터. TK의 예전 같지 않은 민심에도 적잖이 놀랐을 게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소통 부족을 지적하는 이가 많아서 많이 반성하고 소통하려고 한다." 대통령의 최근 워딩이다. 각성과 변화를 다짐한 것은 고무적이다. 말에 그쳐선 안 된다. 대통령이 정부 안에서부터 '소통의 리더십'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지근거리에 '쓴소리맨'을 많이 두시라. 하시라도 싫은 소리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잘못을 지적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리스크는 없다. 마침 여권에서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참에 대통령은 '후환(後患)없는 쓴소리 판'을 깔아 놓아야 한다. 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귀화 외국인의 벼슬
조선시대 때도 외국인이 귀화한 사례는 꽤 있었다. 전쟁통에 들어와 눌러앉은 여진인과 왜인이 많았다. 특별한 기술이 있거나 전공(戰功)을 세운 이들은 벼슬을 얻었다. 인조 때 박연이라는 우리 이름을 가진 외국인이 있었다. 1627년 조선 해역에서 표류했다가 귀화한 네덜란드인 얀 얀스 벨테브레다. 첫 벽안(碧眼)의 귀화자였다. 조정(朝廷)은 그의 손재주를 알아보고 훈련도감 내 한 직책을 맡겼다. 그는 조선에서 살 팔자라거니 여겼다. 딴 생각하지 않고 대포·조총 등 무기 개발에 앞장섰다. 무과에 합격한 뒤 조선 여인과 혼인해 자식도 낳았다. 조선인이 됐지만 숨길 수 없는 게 있었다. 다름 아닌 향수병. 1653년 조선에 표류한 같은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의 통역을 도와주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극에 달했다. 하멜을 만날 때마다 고향 타령을 하며 울었다고 한다. 박연은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선에서 생을 마감했다. 앞서 임진왜란 땐 사야가 라는 왜장이 조선군에 투항한 뒤 귀화해 큰 전공을 세웠다. 귀화명은 널리 알려진 김충선이다. 선조는 그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라는 종2품 벼슬을 제수했다. 그는 1642년 72세의 나이로 지금의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세상을 하직했다. 최근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우리나라 특별귀화 1호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연일 화제다. 그의 가문은 4대에 걸쳐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토종 한국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첫 일성이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언인 '마누라와 자식만 빼놓고 다 바꿔라'였다. 초심을 잃지 않고 정치개혁을 이끌어 주길 바란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미성년자 흡연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저서에서 "나이 어린 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나쁜 짓이다. 무엇보다 어른과 맞담배를 하는 것은 도리에 크게 어긋난다"고 했다. 애연가로 알려진 연암 박지원(朴趾源·1737~1805)도 어른과의 맞담배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해동역사'를 쓴 실학자 한치윤(韓致奫·1765~ 1814)은 "양반에서부터 부녀자, 어린아이, 노비까지도 담배를 하지 않는 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시대 이옥(李鈺·1760~1813)이 지은 담배 백과사전 '연경(煙經)'엔 '어린아이가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피운다. 가끔씩 이 사이로 침도 뱉는다. 가증스럽다'라고 적혀 있다. 17세기 중반 조선에 표류한 헨드릭 하멜의 '하멜 표류기'에도 '조선에선 어린아이도 담배를 피운다'는 글이 있다.이처럼 담배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남녀노소의 '최애 기호 식품' 가운데 하나였다. '담배를 피우면 숙취(宿醉) 해소에 좋고, 식후 소화도 잘된다'는 소문이 나 한방 약초로까지 여겨졌다고 한다.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묻지도 않고 권했을 정도다. 후한 '담배 인심'이 이유 없이 생겨난 게 아니다. 다만, 조선 시대 때도 지금처럼 '미성년자 흡연'에 대해선 곱지 않은 시각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나라가 나서서 금지하지는 않았다. 최근 영국 정부가 '청소년 흡연'과의 전쟁에 나섰다. 담배 구입 연령을 해마다 1년씩 높여 미래 세대는 성인이 돼도 아예 담배를 살 수 없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청소년 흡연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로서는 허투루 넘길 뉴스가 아니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빈대
조선시대 땐 절에 빈대가 들끓어 스님이 불을 지르고 자취를 감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달성 대견사지와 청도 장연사지에도 그런 구전(口傳)이 있다. 이하석 시인은 과거 영남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지방 관청 아전의 닦달과 뇌물 등쌀이 심했는데, 이를 견디다 못해 절에 불을 지르고는 빈대 때문에 절이 망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고 했다. 빈대는 '인간 빈대 아전'을 빗댄 말이라는 것이다. 한 암행어사는 '빈대의 악몽'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조선 후기 함경도에서 감찰 활동을 벌인 구강(具康)이다. 그는 일기에서 '수십 수백 마리가 넘는 빈대 같은 것이 이불 속에 여기저기 숨어 있어 비린내가 코를 찔러댔다. 태어난 이래로 고생이 이날 밤과 같은 경우는 없었다'고 술회했다.이처럼 빈대는 오래전부터 인류 곁에서 서식해 온 해충이다. 예로부터 빈대에 빗댄 속담도 많다. 대표적인 게 '빈대도 낯짝이 있다'(염치없는 사람을 나무랄 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쓸데없는 잘못 때문에 위험을 자초하다), '빈대 붙다'(남에게 빌붙어서 득을 보다) 등이다. 수십 년 전 거의 사라진 빈대가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다시 스멀스멀 나타나고 있다. 내년 올림픽을 앞둔 프랑스 파리에서도 빈대 출몰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근데 현지 한 방송에서 "프랑스에 이민자가 많아 빈대가 기승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됐다. 누가 들어도 차별·혐오적 워딩이다. 요즘 빈대는 웬만한 살충제엔 까딱도 안 해 박멸이 여의치 않다고 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 듯하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한글날 단상
기자가 쓰는 글 가운데 이른바 '캘린더(calendar) 기사'라는 게 있다. 언론계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은어(隱語)다. 연중 각종 기념일을 즈음해 쓰는 맞춤형 기사를 일컫는다. 가령, 어린이날엔 어린이 인권을, 현충일과 6·25전쟁일엔 호국보훈을 주제로 기사를 만들곤 한다. 해마다 '그날'을 맞으면 의무감에 취재를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땐 "맨날 똑같은 얘기, 좀 쌈박한 주제 없어?"라는 데스크의 질책을 피하기 어렵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제 577돌 한글날. 고민이다. 뭘 써야 할지. 염치불고(廉恥不顧)다. 다시 세종 임금을 소환한다.작금, 세종 임금에게 송구스러운 게 뭘까. 무분별한 외래어, 한글 파괴하는 청소년 언어, 여전한 일본어 잔재…. 어디 한두 가지일까. 글은 그렇다 쳐도 모골을 송연케 하는 '막말'은 세종 임금에게 가장 면목 없는 짓이다. 우리 사회 전방위에 퍼져 있다. 특히 정치인의 막말은 뉴스 단골이 된 지 오래다. 막말 정치인은 자성(自省)은커녕 오히려 '한 건 했다'는 태도다. 잘못된 자기 과시와 소영웅주의에 다름없다.무수한 막말 가운데 '인간 쓰레기'라는 게 있다. 해만 끼치고 아무 쓸모 없는 이를 일컫는다. '인간 부류 가운데 모든 사람으로부터 악당이라고 지탄받는 사람이 있다. 그냥 쓰레기이니까 조심하면 된다'('강신주의 감정수업' 중). 틀린 말이 아니다. 상대가 누가 봐도 무뢰한(無賴漢)이라면 적어도 속으론 '인간 쓰레기'라고 여겨도 문제는 아닐 터. 근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인간 쓰레기'로 부른다면 온당한 언사(言辭)일까. 당치않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치판에서 서슴없이 내뱉어진다. 얼마 전 탈북민 출신의 태영호 국회의원이 그 소리를 들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야당의 무관심을 비판하자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북한에서 쓰레기가 왔네"라고 했다. 유시민씨도 최근 2030 남성이 이용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 "쓰레기통 속에 가서 헤엄치면서 왜 인생 일부를 허비해야 하냐"고 했다. 박 의원과 유씨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알고 보면 '인간 쓰레기' 막말의 원조는 북한 아닌가. 고(故)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비서가 과거 "김일성은 속물"이라는 말을 했다가 '인간 쓰레기'라는 비난을 들었다. 태영호 의원도 김정은 비판 자서전을 냈다가 "천하의 인간 쓰레기"라는 욕말을 들어야 했다. 북한발(發) 막말에서 '인간 쓰레기'는 그래도 점잖은 축에 속한다. 과거 북한은 우리 정부를 향해 '겁 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라고도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놈' '바보' '멍텅구리'라고 했다. 입에 담기도 민망하다. 급기야 북한 방송은 아시안게임 남북 여자축구 결과를 전하면서 한국을 '괴뢰'라고 부르고 표기했다. 북한 막말의 '화룡점정'을 보는 듯하다. 그렇다고 북한을 향해 '북괴'라고 맞대응할 순 없다. 똑같이 '언어 황폐 국가' 소리를 들으면 안 되니까.아직도 막말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정치인이 많다. 그런 자는 정치판에서 소외 받아야 마땅하다. 과거 "문재인 모가지 따는 건 시간 문제"라고 막말을 해 논란을 일으킨 신원식 신임 국방장관도 마찬가지다. 떠밀려 사과는 했지만 인성(人性)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정치인·관료들이 되새겨야 할 말이다. 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논설위원의 직터뷰] 개그맨 겸 대학교수 김홍식씨 "만만하지 않은 직업 '김샘'…폰게임보다 더 흥미 있는 수업 다짐"
"너그 아부지 뭐하시노?" 선생님들이 대놓고 이렇게 말한 시절이 있었다. 영화 '친구'에서 담임교사를 연기한 배우 김광규의 명대사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오래전 KBS TV '폭소클럽'의 '떴다 김샘'에 출연한 개그맨 김홍식의 이 대사가 귀에 더 익다. 얼마 전 TV 토크 프로그램에 나온 그를 봤다. 재담(才談)이 여전했다. 하 수상한 작금의 세상, 당최 웃을 일이 없다. 문득, 개그맨인 그는 웃으며 살고 있는지, 웃으며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 얘길 듣고 싶었다. 그의 인생 스토리도 함께. 틀에 박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관계가 아닌 오랜 개인적 인연으로서. 그를 만났다. '떴다 김샘'에 나올 때가 서른다섯, 지금은 쉰넷이다. 트레이드 마크인 '헌팅 캡'은 그대로였다. 이젠 턱수염 말고도 콧수염도 있다. 또 어엿한 대학교수가 돼 강단에 서고 있다. 근데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인생의 등불과도 같았던 어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신 후여서다. 그는 상을 치른 뒤 한 달간 매일 어머니 묘소에 들렀다고 한다. "약속엔 10분 일찍 나가 기다리고, 남한테 뭔가를 받으면 꼭 배로 돌려줘래이." 생전 어머니가 늘 강조하신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숙연한 분위기에서 첫 질문을 던졌다.▶대학에선 무역학도, 사회 첫발은 이벤트 MC. 흔치 않은 진로였습니다. "글쎄요. 천상 '마이크 체질'이랄까. 어릴 때 소풍·운동회 장기자랑 사회를 도맡았죠. 무역학과(영남대 87학번)는 그냥 취직 잘된다 해서…. 입학 후 첫 신입생 환영회에서 사회자를 본 순간 '히어로'처럼 느껴졌어요. 강렬한 그 첫인상이 절 이벤트 MC로 이끌었죠. 초·중·고 때 했던 가락도 있어서. 몇 가지 스킬을 익혀 MC 알바를 뛰었죠. 학과·동문회 페스티벌…. 열심히 쫓아 다녔습니다. 마냥 대학 등 젊은 층 행사를 할 순 없었죠. 졸업 후엔 '무대'를 바꿨어요. 회갑·칠순·팔순 잔치 등으로. 그렇게 제 첫 명함을 파게 된 겁니다.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트로트 가수 이찬원도 같은 영남대 상대 출신인데, 재학 중 이벤트 MC로 이름을 날렸다네요. '동종업계 선후배' 사이인데, 언젠간 한번 만나겠죠.(웃음)"▶'김홍식' 하면 '폭소클럽'의 '떴다 김샘'이죠.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는데."'궁하면 통한다' 옛말 틀린 게 없어요. 2004년,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죠. 지인에게 큰돈을 빌려주는 바람에…. 걱정하는 아내에게 '1년 안에 답을 낼게'라고 큰소리쳤죠. 믿는 구석도 없이. 정 안되면 쪽지('성공해서 돌아올게, 미안해') 써놓고 떠날 생각도 했어요. 그러던 중 '폭소클럽'에 평소 존경하는 MC 선배 한 분이 나오게 됐어요. 근데 무대에서 진땀을 흘리는 선배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어요. '내가 만약 저 무대에 선다면…' 평소 운전 중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해요. '김샘' 캐릭터도 운전 중에 나온 것입니다. 학창시절 별의별 선생님이 다 있었잖아요. 영화 '선생 김봉두'처럼 돈 밝히는 선생님도 있었고, 영화 '친구'의 단순무식한 선생님도 있었고. '두 캐릭터를 짬뽕해 보면 어떨까.' 폭소클럽 담당 작가에게 제안했죠. 결국 'OK' 사인을 받아 코너를 따냈어요. 결과는 대박이었죠.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가 내 인생의 큰 재산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떴다! 김샘' 인기에 힘입어 '투사부일체' 등 영화에도 나왔죠. 큰물에서 계속 놀 수 있었는데, 왜 대구에 남았는지."제가 전국구 스타가 된다고 쳐요. 대구를 떠나 서울에 살아야 하고, 친한 친구도 자주 만나기 어렵고. 많은 걸 포기해야겠죠. '가늘고 길게 살자'고 다짐했죠. '팔자를 고쳤어도 난 변한 게 없다.' 그런 모습을 주위에 보여주고도 싶었어요. 저보다 앞서 방송에 진출해 변한 사람을 많이 봐 온 터라,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대학교수로서 인생 3라운드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학교 생활은 재미있는지."2009년 개그맨 남희석씨 추천으로 강의(대경대 초빙교수)를 시작했죠. 지금은 사학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전임교수가 됐고요. '공동체 질서와 삶' '대인관계' '리더십'을 가르쳐요. 어때요, 어울리나요? '짝퉁 샘'에서 진짜 선생이 됐지요.(웃음) 처음엔 직업병인지, 과거 '김샘' 이미지로 학생들을 웃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연차가 쌓일수록 '재미'가 다가 아니더라고요. 짧은 한 시간이라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래서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요. 수업 내용 중 뭐가 좋고 안 좋은지를. 수업 중 휴대폰 게임 하는 친구를 꾸짖을 순 없어요. '내 수업이 지루하다'는 방증 아니겠어요. 게임보다 더 흥미를 주는 교수가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지요. 아무튼 선생이라는 직업, 결코 만만치 않아요. 그렇지만 다양한 분야에 있는 졸업생들을 보면 큰 보람을 느껴요."▶요즘 '일타강사 김샘'으로도 유명하던데요. "다 '김샘' 캐릭터 덕분이죠. 강연 활동의 피크 시절은 지났죠. 지금은 '하향 안정화'에 있지만 여전히 소중한 밥벌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 강의의 특징은 '주문식'이라는 점입니다. 의뢰 기관에 '원하는 주제'를 먼저 물어 보지요. 이래야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 오거든요. '입맛'을 맞춰 주니까. 청중이 청소년이라면 미리 아이돌 가수 등 그들의 최애 관심사도 함께 공부해 놓고요. 강연 집중도가 확 달라져요. 과거 정보통신부에서 한 강연이 변곡점이 됐어요. 신문 기사에 '김샘, 정보통신부 최고 강사로 등극하다'라는 제목이 뽑혔어요. 강의 평점이 무려 96점. 직전 강연이 황우석 박사였는데 85점을 받았거든요. 강연가로 클 수 있는 기폭제가 됐죠. 이후 관공서 강연 의뢰가 줄을 잇기 시작했어요. 역시 '인생은 타이밍'입디다."▶코로나 팬데믹 땐 강연이 없어 답답했겠습니다."직격탄을 맞았죠.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니. 매출 감소 '100%'. 미치겠더라고요. 학교 말고 내가 뭐라도 일을 더하고 있다는 걸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장 수입도 급감했고요. 이만하면 'N잡러 강박증'이죠? 결국 큰 딸과 함께 밤에 택배 알바를 했답니다. 몸은 고됐지만 저는 물론 딸에게도 '돈보다 값진 그 무엇'을 몸소 느끼게 해 준 일이었죠. 우리, 더 늙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합니데이.(웃음)"▶교육자로서 최근 이슈인 '교권 추락'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겠네요."오래전부터 학부모들을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었어요. 모든 게 가정교육인 것 같아요. 좀 야박한 얘기 같지만, '학부모 과잉 민원'도 그 학부모 윗대로부터의 가정교육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봐요. 과거 사립 중고교 교장 모임에서 '공교육과 학부모' 주제의 강의를 제안한 적이 있어요. 교장들이 좋은 생각이라며 동석한 교육계 윗분에게 건의를 했죠. 근데 그분이 저를 힐끗 보더니 '내가 얘기를 해도 안 듣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더라고요. '하물며 니가 뭐라고'라는 말이 생략된 뉘앙스였죠. 솔직히 자존심 상했죠. 교권이든, 학생 인권이든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새겨야 합니다. 임시처방격으로 어느 한쪽을 옹호하면 다른 한쪽에서 문제가 불거질 수 있잖아요. 양자 관계가 '풍선'은 아니잖아요. 함께 존중돼야 하니까. 서로가 지키지 않으면 안될 강력한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 몫이겠지요"▶과거 영남일보 칼럼에서 '인생 뭐 있나'라는 화두를 던졌지요. 김샘표 '웃으며 사는 법'은 무엇인지. "'그럴 때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 제 카카오톡 대문에 적힌 글입니다. 인생 좌우명이죠. 제 행복감의 원천이기도 하죠. 타인들 때문에 상처받아 화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이 글을 떠올려요. 귀신같이 그런 감정이 사라진답니다. 습관적으로 제 자신에게 최면을 걸다시피 하니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사는 것 같아요. 기자님도 한 번 실천해 보세요. 인생 뭐 있나요."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팬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식당 등에서 가끔씩 저를 알아보는 분들에게 물어 봐요. 제가 어떤 이미지였냐고. '촐랑촐랑 까불지 않고도 대중을 즐겁게 해줬다'고 덕담을 해주더라고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언젠간 잊히겠지만 '골치 아픈 일도 쉽게 풀어주는 선생이었다'라고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김홍식씨가 화이트보드에 적은 인생 좌우명 글귀 '그럴 때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를 가리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는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이 글만 떠올리면 웃고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자유성] 줄서기 문화
점심때 회사 인근 맛집에 긴 대기 줄이 선 경우 발길을 돌릴 때가 있다. 밥 한 끼가 뭔 대수라고, 굳이 식당에서까지 차례를 기다릴 필요가 있냐라는 알량한 자존심이다. 한국인은 혼자서는 잘 기다리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러 타인과 함께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엔 익숙하지 않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트라우마 탓일 수도 있다. 과거 예약문화가 드물었던 시절, 긴 대기 줄엔 으레 불청객인 '새치기족'이 있었다. 시비가 붙어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줄 서면 손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진 것도 그 때문이리라.섬나라 영국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깡패' 같은 짓도 많이 했지만, 국민 저변엔 '줄 서는 문화'가 뿌리 내려 칭송을 받았다. 영국인의 줄 서기 습관은 각별하다. 영국인이 혼자 길거리에 서 있으면 금세 행렬이 생긴다는 얘기도 있다. 인기 스포츠인 프로축구·크리켓·테니스 대회에 줄을 서서 입장하는 요령을 담은 안내 책자까지 나와 있다. 지난해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 대기 줄은 최장 16㎞에 이르렀다. 추모객은 불과 몇 분간의 참배를 위해 길게는 하루 이상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이른바 '웨이팅(waiting) 맛집'이 인기다. 유튜브 먹방과 SNS 영향이다. 웨이팅 시간·인원은 해당 식당의 퀄리티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그래서 웨이팅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다. 웨이팅 맛집에 사람이 몰리자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엔 '바람잡이 대기 줄 알바 모집 공고'도 등장했다. 손님이 많은 것처럼 홍보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대행 전성시대'라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단식
옛 선조들은 곡기를 끊는다는 뜻으로 '절곡(絶穀)'을 행했다. 자식이 병치레 잦은 부모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마음으로 절곡했다. 드문 일이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지아비를 따라 죽고자 절곡한 아내도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충직한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절곡한 경우가 아니겠나. 무소불위(無所不爲)에 대한 약자의 저항과 분노 수단으로써. 절곡은 지금의 '단식(斷食)'이다.단식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 1950년대 프랑스의 유명 여성 모델 마르셀 피숑. 그녀의 '단식 자살'은 지구촌에서 오랫동안 회자됐다. 1985년 64세 나이로 절명했다. 무려 열 달 만에 그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프랑스 국민에게 더욱 충격을 준 것은 그녀가 남긴 '단식 자살 일기'였다. '단식 17일째: 변기에 앉아 있기가 점점 고통스럽다. 심장이 텅 빈 것 같다.' '32일째: 이 더러운 세상에 저주 있어라. 수박 한 조각을 얻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 버리겠다.', '45일째: 이제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 시간 흐름에 따른 고통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최근 한 라디오 프로에서 "2018년 단식 때, 사흘이 지나니 오장육부가 틀어지더라. 7~8일째엔 숨이 가쁘고 별도 보였다. 몰골이 처참해졌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이 보름을 넘겼다. 그가 '출퇴근 단식'을 할 때부터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민주당 안팎은 물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출구는 마련됐다. 이쯤에서 접는 게 맞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권력유한
1975년으로 기억한다. 새벽부터 우체국 앞에서 줄을 선 날이 있었다. 아프리카 가봉의 오마르 봉고 온딤바 대통령 방한 기념 우표를 사기 위해서였다. 안타깝게도 훗날 이사를 가면서 우표를 잃어버렸다. 휘귀본은 아니지만 지금은 나름 값어치를 할 게다. 그가 2007년에도 방한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국의 봉고 승합차 이름은 내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그럴듯한 얘기 같지만, 사실 이 차명(車名)은 일본 마쓰다의 '봉고'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어쨌든 봉고 대통령의 이런 자찬성(自讚性) 멘트는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42년간의 독재 집권 동안 모두 4차례 한국을 방문한 친한파였다. 첫 방한 땐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카 퍼레이드도 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큰 화제를 모은 탓인지 그가 한국에서 여배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가짜뉴스도 나돌았다. 2009년 오마르 봉고가 세상을 떠난 뒤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는 다름 아닌 그의 아들 알리 봉고 온딤바였다. '공화국' 가봉이 사실상 '세습 왕조국가'가 된 것. 아들도 친한파다. 다섯 차례나 방한했다. 지난해 7월엔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과거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도 출연했다. 그런 그가 최근 쿠데타에 의해 축출됐다. 최근 치러진 대선에서 3연임이 확정되자 군부가 들고 일어선 것. 그는 올해로 14년째 재임 중이었다. 부자(父子) 합쳐 56년. '권력유한(權力有限)'을 다시금 느끼지만, 또 다른 독재의 서막인 것 같아 씁쓸하다. 그나저나 북한의 세습 통치는 언제쯤 끝이 날까. 3대(代) 도합 75년째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귀를 씻고 싶다
세이(洗耳). '귀를 씻는다'라는 뜻. 옛적 선비들 사이에서 있었던 관행이다. 악담이나 추담을 들으면 귀가 더럽혀진 걸로 여겨 물로 귀를 씻었다. 상스러운 언어가 뇌리에 남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 귀씻이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이가 있었다. 조선시대 영조 임금이다. 그는 상대의 언행이 탐탁지 않으면 하던 일도 멈추고 귀를 씻었다. 사도세자와 극심한 갈등을 빚을 땐 더 유별났다. '한중록'에 따르면 하루는 영조가 세자 처소 앞을 지나면서 밥 먹었느냐고 물었다. 세자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네 먹었습니다"라고 했다. 세자를 병적으로 싫어했던 영조, 그 말소리조차 소름 끼쳤는지 곧바로 귀를 씻었다. 각설하고, 작금도 귀씻이 할 게 차고 넘친다. 관료나 정치인의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이다. 자기 일인 걸 알면서도 아무런 상관없는 듯 말하는 버릇이다. 모른 척하거나 책임을 떠넘긴다. 짜증과 분노를 유발한다. 멀리 볼 것 없다. 지난달 막을 내린 새만금 잼버리 때다. ①"위기 대응을 통해 세계에 대한민국 역량을 보여줬다"('부산엑스포 유치에 악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동문서답도 유분수지, 유체이탈 화법의 극치였다. ②"대회를 유치한 대통령으로서 사과를 전한다.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문재인 전 대통령) 현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③"SNS 소통이 과거보다 활발해져 초반에 문제가 이슈화된 것이다. 과거엔 국민 소득 수준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인내의 수준도 높았다."(김관영 전북도지사) 집행위원장·개최지 수장으로서의 할 말은 아니었다. 조선 성종 임금은 천재나 인재지변 때마다 '내게 잘못이 있는지, 언로가 막혔는지' 등 10여 가지를 꼽으며 스스로를 반성했다. 숙종 때 김창업이 쓴 '연행일기'엔 중국에서 안씨(顔氏)하면 아무리 비천해도 고매한 사람으로 존중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가문 대대로 지켜 온 '안씨가훈십조' 덕택이었다. 그중 하나가 '잘된 일은 남 탓으로, 잘못된 일은 반드시 내 탓으로 돌려라'는 것이다. 1990년대 '내 탓이오 운동'이 문득 기억난다. 이기주의에 매몰돼 서로 남 탓하지 말고 자기 반성을 먼저 하자는 캠페인이었다. 이들 얘기를 곱씹어 본다. '사과의 정석'을 다시 깨닫는다. 관료·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네 범인(凡人)도 사과를 허투루 해선 안 되겠다. 사과하는 '척'이 아니라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는 얘기다. 사과의 키포인트는 잘못에 대한 인정이다. 사족이 없어야 한다. '다만' '하지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줬다면' 등의 군더더기 말. 이들 표현은 '사과하고 싶지 않다'는 뜻과 다를 게 없다. "이유 불문, 내 잘못이다" 진정한 사과는 이 한마디면 끝이다. 그래야 사과에 의구심이 남지 않는다. 잼버리를 둘러싼 공방이 여전하다. 자칫 덤터기를 쓸까 봐 책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이때다 싶어 진영 싸움만 벌인다. 국민이 무슨 죄냐. 그런 작태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귀도 눈도 씻고 싶다. 김 여가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잼버리와 관련해 처음으로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도 책임 소재는 감사원 감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누구의 책임이 큰지 모르고 있나?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이자 관할 부처 수장인 김 장관의 책임은 결코 작지 않다. "최종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이런 사과를 듣기란 요원한 것인가.이창호 논설위원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마돈나
현대 팝음악이 비디오를 만나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한 데는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도 한몫했다. 과거 고교생 시절, TV를 통해 본 마돈나의 공연 퍼포먼스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 채 무대 바닥을 문대는 몸짓은 눈길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그녀의 대표곡인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1984년)'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마돈나는 이 파격적 몸짓으로 세계 팝음악계 '1호 섹시 여가수'가 됐다. '라이크 어 버진'은 발매 한 달 만에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뒤 무려 6주간 정상을 지켰다. 마돈나는 끊임없이 '선정성'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당당했다. 그녀는 "농염한 몸짓을 선보이는 것도 지능을 뽐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한 음악 시상식에선 "나는 오랫동안 창녀·마녀로 불렸다. 왜 여성은 섹시하면 안 되나. 나는 억압을 비판한다"고 했다. 세계 대중 음악사에서 마돈나를 빼놓고 페미니즘을 논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 마돈나가 최근 65세 생일을 맞아 "내 생일 최고의 선물은 '레이징 말라위(Raising Malawi)'를 지원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레이징 말라위는 마돈나가 아프리카 최빈국인 말라위에서 부모를 잃은 어린이를 돕기 위해 세운 단체다. 그녀는 올해 초 심각한 박테리아 감염 증세로 병원 신세를 졌다. 그녀 얘기를 풀이하면 '한번 아파보니 타인을 돕겠다는 의지가 훨씬 확고해졌다'는 것이다. 마돈나를 보니 은퇴 후 암 투병 중에도 아프리카 어린이를 도와 세계인의 존경을 받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오버랩된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상훈
예로부터 상(賞)과 훈장(勳章)은 쉽게 줘서도, 쉽게 받아서도 안 된다고 했다. 조선시대 단종 임금 때 사육신 가운데 한 명인 하위지(1412~1456)는 생전 수양대군(세조)으로부터 끊임없는 회유를 받았다. 단종 1년, 하위지는 집현전 동료와 함께 '역대병요(歷代兵要·역대 전쟁과 평가를 담은 병서)' 편찬을 끝냈다. 이 공로로 수양대군으로부터 직품 특진의 상훈(賞勳)을 받게 됐다. 그러나 하위지는 단칼에 거절하고 고향인 경북 선산에 내려왔다. 하위지가 수양대군의 불순한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 '임금님이 어직 어리신데, 대군이 상훈을 미끼로 조정 관료의 환심을 사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 신하들도 그런 유혹에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게 거부의 이유였다. 가히 '대쪽같은 심지(心志)'라 할 만하다. 현대사에선 고(故) 전두환 대통령이 상훈을 남발했다. '쿠데타 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요량이었다. 대표적 사례로 그가 1980년 12월31일자로 수여한 훈장은 모두 52개다. 훈장을 받은 이들은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한 신군부세력이다. 한마디로 '셀프 훈장 파티'다. 결국 훈장 대부분은 훗날 5·18 재평가에 따라 박탈됐다. 애초부터 줘서도 안 되고, 받아서도 안 될 훈장이었다. '새만금 세계 잼버리대회'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운데 최근 막을 내렸다. 행사를 주관한 전라북도가 이미 지난해 12월 관계 공무원에게 포상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취지는 '공무원 사기 진작'. 기가 찬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엄중한 문책이 있어야겠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납량
납량(納싩). 들일 납, 서늘할 량. '시원함을 들인다.'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기운을 느낀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 시(詩)에도 '납량'이라는 시어가 나오는데, 시구(詩句)를 해석하면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서 무더위를 잊는다'이다. 예로부터 피서는 나무 밑에서 부채질하며 쉬는 게 정석이었는가 보다. 고금에 걸쳐 납량의 매뉴얼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가운데 괴담을 듣거나 공포를 간접 체험하는 게 있다. 현대의 우리에겐 납량 영화·드라마가 친숙하지 않을까. 아주 오래전 국내 극장가에선 이른바 '귀신 영화'가 관객의 혼을 뺐다. '월하의 공동묘지' '목 없는 미녀' '무덤에서 나온 신랑' '살인마'…. 제목만 읽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TV가 대중화되면서 극장용 납량 영화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TV에서도 '전설의 고향' 등 납량 드라마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납량 영화는 최근까지 명맥은 이어 왔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여고괴담'이다. 1998년 1편이 나온 이후 6편(2021년)까지 만들어졌다. 이제 납량 영화·드라마의 존재감은 확실히 떨어졌다. 영상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한껏 높아져서다. 고퀄리티 'K 무비'를 비롯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OTT(넷플릭스·티빙·디즈니+) 등. 한여름 밤, 납량물 말고도 무더위를 잊게 할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최근 울산의 한 여름축제에서 과거 일제의 생체실험부대인 '731부대'를 납량 체험 소재로 준비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주최 측이 사과는 했지만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간 짓을 했다. 사족 하나. 납량의 표준 발음은 뭘까. 정답은 '남냥'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믿을 수 없는 사회
"엄마, 보고 싶었어요." "아들아~" 아들은 웃었고, 어머니는 울었다. 얼마 전 국방TV가 공개한 영상의 잔상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영상 속 아들은 지금 이 세상에 없다. 그는 16년 전 순직한 공군 파일럿이다. 이른바 '인공지능(AI) 딥페이크(deepfake·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을 통해 가상인간으로 부활해 어머니와 만난 것. 딥페이크인 걸 미리 알고 봐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숨길 수 없었다. 고인이 된 유명 가수·탤런트도 이 기술에 의해 부활해 팬들 앞에 선 적이 있다. 이만하면 우리 인간보다 더 휴머니즘적인 AI다. 논란의 소지가 없지 않지만, 평범한 우리네 장례식·기일 제사에도 고인이 이렇게 소환돼 자식들과 회포를 풀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는 AI 아닌가.학습효과가 덜 돼서일까. 불민(不敏)해서일까. 감쪽같이 속은 게 있다. 리오넬 메시의 기자회견 영상에 당했다. 한 중국 기자가 "이강인 파리 생제르맹 입단이 마케팅용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메시가 "중국은 존중이라고는 없는 나라"라고 일침을 날렸다. 대한민국 선수를 감싸주는 워딩이다. 중국 기자의 무례함(2011년 중국 기자가 허재 농구 감독에게 "한국 선수들은 왜 오성기를 향해 서지 않냐"고 물은 일)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였다. 제 버릇 개 못 주는 질문쯤으로 여겼다. 한동안 이 영상을 믿었다. 나중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엉터리 자막을 입혀 편집한 가짜 영상이라는 것을. 기막힐 만큼 진짜 같다. 같은 질문의 일본 기자 버전(음바페 회견 영상)도 'AI 딥보이스(deepvoice·음성합성기술)'로 만들어진 조작 영상이었다. 가짜든 진짜든, 뭔 대수라고. 그냥 웃고 넘길 B급 페이크로 치부하면 될 영상이다.그러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 '믿을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섬뜩함이다. 더 큰 문제는 AI가 범죄에 악용되고 있는 점이다. 특정인의 얼굴을 알몸 사진·영상과 합성해 성착취물을 만들어 퍼뜨린다. 걸그룹 가수도 피해를 봤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게 이런 거다. 이것만 보면 딥페이크와 딥보이스는 현대문명의 총아가 아니다. 괴물로 크고 있는 녀석들이다.뭐든 정치와 엮이면 탈이 나는 법. AI도 그렇다. 가짜뉴스 양산의 도구로. 국내외를 막론한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치매 관련 책을 고르는 영상이 SNS에 떴다. 조작 영상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아킬레스건인 건강 문제를 건드린 것. 우리에겐 내년 총선이 걱정이다. 이미 지난해 지방선거 때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거짓 영상이 나돌아 논란이 됐다. 여론 조작에 AI 만 한 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진짠지 가짠지 분간하기 힘든 거짓 영상(선거 후보자 언행 조작 등)이 전방위로 퍼진다면 큰일이다. 유권자의 판단을 흐려 놓는다. 결국엔 선거판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은 이전투구에 빠져들 게 뻔하다. 그러는 사이 딥페이크 등 영상은 하루가 다르게 교묘히 진화할 것이다. 기상천외한 거짓 영상이 출현할 것은 불문가지다.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만큼. 관련 규제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잠만 자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손 놓고 있는 이유가 뭔지. 자기들과 관계된 일인데도 말이다. 믿을 수 없는 사회, 우리 유권자가 눈을 더 부릅떠야 할 판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영상은 의심부터 하자. 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쌍절곤
2004년 개봉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가끔씩 VOD(주문형비디오)를 통해 다시보기를 하는 영화 가운데 하나다. 극 중에서 현수(권상우 분)는 쌍절곤을 연마해 학교 옥상에서 교내 빌런들을 제압한다. 50대 이상 남성이라면 과거 쌍절곤을 만져본 이가 꽤 있을 게다. "아뵤~" 1970년대 홍콩 영화에서 이 괴성을 지르며 쌍절곤으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액션 스타 리샤오룽(이소룡)에 누구나 한 번쯤 빠졌을 것이다. 관객의 속을 이토록 후련하게 한 배우가 또 있었을까. 흐느적거리는 듯 휘두르는 쌍절곤과 노란색 바탕의 검은색 줄무늬 운동복. 영원히 잊히지 않을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당시 재개봉관에서 리샤오룽의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친구들과 쌍절곤을 휘두르며 리샤오룽을 흉내 내기 바빴다. 서툰 쌍절곤질에 자기 뒤통수를 때리기 일쑤였다. 어릴 적 추억의 한 페이지다.쌍절곤은 두 개의 막대를 사슬로 연결한 무술용 기구다. 고대 중국에서 사용했던 병기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일본 오키나와 전통 무술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어찌 됐든, 쌍절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굿즈'로 남아있다. 지난 20일은 리샤오룽이 33세에 요절한 지 50년이 된 날이었다. 그날을 전후해 홍콩에서 그를 추모하는 열기가 뜨거웠다. 홍콩인들은 "리샤오룽은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생전 맹활약할 때 홍콩 무술 영화의 인기는 시쳇말로 '넘사벽'이었다. 그런 홍콩영화가 요즘 국내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것 같아 아쉬운 마음에 쌍절곤의 추억을 소환해 봤다. 이창호 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경북대 '내년도 의대 모집정원' 학칙개정안, 법제심의위·학장회의 통과
"더 미루기 힘들어"…계명대·영남대 의대, 13일부터 임상실습 수업
많이 본 뉴스
오늘의운세
닭띠 5월 9일 ( 음 4월 2일 )(오늘의 띠별 운세) (생년월일 운세)
영남생생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