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창간 76주년 사람과 지역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x
이창호 기자
전체기사
[자유성] 인종차별 발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는 선수와 관중의 인종차별적 언행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가하기로 유명하다. 최근 토트넘의 로드리고 벤탕쿠르가 동료인 손흥민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본인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가시지 않는 탓인지 토트넘 아시아 투어 명단에서 빠졌다. '산소 탱크' 박지성도 EPL 시절 인종차별의 모욕을 피하지 못했다. 한때 박지성 응원가로 울려퍼졌던 '개고기 송'엔 인종과 문화에 대한 편견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열렬한 응원가였기에 너그럽게 들어줄 만했다. 2013년 한 에버튼 팬은 박지성을 향해 "칭크(chink)를 쓰러뜨려라"고 소리쳤다. 이 일로 그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칭크'란 '찢어진 눈'이란 뜻이다. 서양인이 동양인을 비하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얼마 전 TV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박명수가 인도의 현지인으로부터 '코리아 칭챙총'이라는 말을 들어 논란이 됐다. '칭챙총'은 중국인의 말은 모두 똑같이 들린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동북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표현이다. 최근 울버햄튼의 황희찬이 이탈리아 구단과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로부터 '재키 챈'이라는 말을 들었다. 재키 챈은 홍콩 배우 성룡의 영어 이름이다. 이 또한 유럽인이 아시아인을 조롱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손흥민은 그런 황희찬의 SNS에 'No room for racism(인종차별이 설 곳은 없다)'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지구촌 인간사(人間事), 상호 존중의 가치가 지켜진다면 여하한 차별 논란도 없을 게다. 그 게 옛날 도덕 시간에 배운 '인류공영(人類共榮)'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 아니겠는가. 이창호 논설위원
[논설위원의 직터뷰] 최영호 한국·우크라이나 뉴빌딩협회 사무총장
지난 5일 오후 5시 대구 동구 신천동의 한 농업회사 내 회의실. 한창 줌(Zoom) 국제화상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 모습을 나타낸 우크라이나 현직 변호사 테티아나 티쉔코씨가 "대한민국의 우수한 양파 종자를 우크라이나에 심고 싶다. 수확해 유럽시장에 수출도 하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 계획이다. 이참에 한국 기업을 유치할까 싶은데 도와달라"고 했다. 이에 우리 쪽 관계자들은 "전시(戰時) 중인데 재배에 참여할 농업인을 확보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 뒤 "긍정적으로 검토해 답장을 주겠다"고 했다. 이 농업회사는 영하 30℃까지 견딜 수 있는 양파 종자를 개발한 곳이다. 이날 회의를 주관한 이는 최영호(60) 한국·우크라이나 뉴빌딩협회(이하 한·우크라 뉴빌딩협회) 사무총장이다. 그는 고시출신으로 대구시에서 26년간 공무원(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대구본부장·정책기획관·교통국장 등 역임) 생활을 해 오다 지난해 말 정년퇴직했다. 그의 인생 2막 얘기를 들어 봤다. 작년말 26년 공직생활 마친 후 '더 넓은 무대서 봉사' 계획하다 職 제의 받고 올 1월 정식 출근 '新우크라 건설' 힘보탠다 취지 단체명 '뉴빌딩' 활동 10개월차 수자공 등 개인·기업 100여 회원 우리나라 면적 6배인 땅덩어리 경북과 農道·대마산업 등 공통점 도가 필요로 하면 '윈윈' 도울 것 ▶인생 2라운드, 글로벌한 판을 펼치셨네요."지난해 1년간의 공로연수 때 많은 걸 생각했죠. 남은 인생 'How to live'에 관한 고민, 뭐 그런 거죠. 공직을 좀 더 이어가겠다는 생각은 시쳇말로 1도 없었어요. 간도 크게 60 평생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뭔가를 하고 싶었죠. 이왕이면 좀 더 넓은 무대에서 봉사하는 일 말입니다. 같은 해 10월쯤 지인의 소개로 한·우크라 뉴빌딩협회 모임을 나가게 됐어요. 한두 번 참석해 보니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러다 협회 사무총장직 제의를 받고 올해 1월부터 정식 출근하게 됐어요. 많은 퇴직자들이 겪는 '은퇴 우울증'도 없이 곧바로 인생 2막을 열었으니 복 받았지요.(웃음)" ▶한·우크라 뉴빌딩협회, 다소 생소합니다."본격적으로 활동한 게 한 10개월 됐어요. 아직 새내기 단체죠. 하는 일은 크게 두가집니다. 첫째는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와 난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입니다. 진영을 떠나 꼭 필요한 일이지요. 사실, 두 번째가 중요해요. 훗날 전쟁이 끝난 뒤 재건사업에 우리의 많은 공·사기업이 참여하도록 해법을 모색하는 일입니다." 사단법인인 한·우크라 뉴빌딩협회는 지난해 6월 설립됐다.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공동대책위원회(2022년)가 모체다. 같은 해 9월엔 국토교통부 산하 법인으로 등록됐다. 과거 우크라이나 대사를 지낸 이양구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국내외 포럼을 열거나 현지 파트너 단체와 수시로 협의를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과 재건사업에 대한 관심과 전략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현재 개인 회원 50여 명, 기업 회원 50여 곳을 두고 있다. 개인 회원엔 전문가도 포진돼 있어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건설·한국수자원공사 등 굵직한 공·사기업도 회원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리빌딩(re-building)'이 아니라 왜 '뉴빌딩(new-building)'인지."궁금해하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당초엔 재건을 뜻하는 '리빌딩'으로 네이밍할 계획이었죠.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 재건을 넘어 국가를 완전히 개조하고 싶다는 의지를 전해 왔어요. 이 기회에 옛 소비에트연방 시절의 묵은 때를 완전히 벗기겠다는 각오죠. 세계와 유럽 국가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74년 전 6·25전쟁의 상처를 딛고 선진국에 오른 '한강의 기적'을 잘 알고 있더라고요. 자신들도 '드니프로강의 기적'을 만들고 싶대요. 전후 재건의 롤모델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겠죠. '신(新)우크라이나' 건설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탠다는 취지에서 '뉴빌딩'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이거 손 놓고 있어선 안 되겠네요. "재건사업의 규모만도 한화 기준 향후 10년간 650조원 이상이에요. 전쟁이 더 길어지면 1천2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도 있고요. 위기에 놓인 세계경제 현실에서 새로운 돌파구임은 분명합니다. 가까운 일본은 아주 공격적으로 뛰어들었어요. 우리도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됩니다. 우리 기업이 참여할 만한 데는 주택·도로 등 사회 인프라를 비롯해 에너지(원자력 등)와 농업·교육·의료 분야입니다. 특히 농업의 경우 현지에서 고소득 작물을 키워 유럽시장에 판매하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반도체·뷰티 등 한국의 강점 분야에 대한 인력 양성을 통한 시장 개척도 좋아 보이고요. 여기에 우크라이나 MZ세대를 겨냥한 K팝 등 한류문화까지 얹으면 더 바랄 게 없지요."▶재건사업에 대한 지역 기업의 관심은 어떤지요."대구에선 6개 기업이 회원으로 있어요. 좀 더 많은 지역 기업이 참여하면 좋겠지요. 재건사업이라는 게 다소 생소하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틈새시장 규모가 꽤 큽니다. 대구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클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이미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도 있고요. 공무원 할 때 인연을 맺은 지역 기업에 부지런히 홍보하고 권유할 작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과거 경자청 등 근무 경험이 소중한 자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대구시·경북도 등 지자체도 참여하면 좋겠는데요."말씀 잘하셨어요. 우크라이나를 보면 우리 경북도가 떠올라요. 우크라이나 땅덩이가 우리나라의 6배입니다. 유럽 밀의 60%를 생산해 '유럽의 빵 바구니'로 통하죠. 경북도 우리나라에서 '농도(農道)'로 알아주잖아요. 대마 산업 등 서로 공통점이 많습니다. 윈윈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예요. 경북도가 뜻이 있다면 협회 차원에서 적극 도와주고 싶어요."▶지난 5월 우크라이나를 직접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러시아의 공습이 부쩍 늘고 있는데…."비교전 지역인 우크라이나 서쪽은 프랑스 파리에 왔나 싶을 만큼 평온하더라고요. '여기도 사람 사는 데구나'라는…놀랍기도 했고요. 반면 동쪽은 아무래도 전선과 가까운 탓에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어요. 수도인 키이우 방문 마지막 날 밤 호텔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긴급 사이렌이 울렸어요. 객실 방송에서 빨리 지하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죠.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지만 말로 표현 못할 공포감을 느꼈어요. 역시 전쟁터는 전쟁터이더군요."▶언제 또 우크라이나에 가시나요."8월 말쯤 다시 가보려고요. 지난 방문에선 진행 중인 사업(한국 기업 전용단지 조성 등)에 대해 초기 점검을 한 정도였고. 재방문 땐 우리 측 NGO들과 힘을 합해 병원 설립을 모색해 보려고요. 트라우마 등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가 많잖아요. 썩 크지는 않지만, 우리로 치면 동네 의원급 같은 병원이라도 지어 그들을 케어할 생각입니다. 이후엔 규모를 키워 일반 의료센터·정신보건센터를 추진할 계획도 있고요. 그나저나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할 텐데…."▶앞으로의 포부 한 말씀 해주시죠."10여년 전 행안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요. 근데 올해 다시 서울살이를 해보니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과거보다 더 크다는 걸 느꼈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어요. 공직을 떠나 있으니 눈에 더 잘 보이더라고요. 협회 일로 주중엔 서울에 있지만 엄연한 대구시민입니다.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뭔지 늘 고민하겠습니다."최 사무총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이 기자, '60+' 인생을 시작해 보니 공직 때보다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그는 요즘 틈나는 대로 '좋은 책'을 찾아 읽는다고 했다. 100세 시대, 남은 40년 후반전에선 인문학적 소양이 긴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퇴직 이후에도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선택의 순간이 오는데, 그럴 때 자기만의 축적된 사고(思考)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04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인생 황금기는 60~75세'라는 워딩을 인생 표어로 정했다고 한다. 귀담아들을 만한 말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최영호 한국·우크라이나 뉴빌딩협회 사무총장이 영남일보 편집국에서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지역 기업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참여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해 우크라이나 국기를 직접 만들어 가져와 포즈를 취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사설] 경북 동해안, 세계지질공원 지정받을 자격 충분하다
포항·경주·영덕·울진의 경북 동해안 일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받을 수 있을까. 그 면적만도 2천693.69㎢다. 지난 11일부터 나흘간 해당 지역에서 유네스코 현장 실사가 펼쳐져 관심을 모았다. 방한한 2명의 유네스코 평가자는 울진 성류굴을 비롯해 영덕 신재생에너지 전시관·포항 호미반도 둘레길·경주 양남 주상절리 등지를 둘러봤다. 오는 9월 예비 결과에 이어 내년 프랑스 파리 정기총회에서 최종 발표된다.예단하긴 이르지만 경북 동해안권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지정될 자격은 충분하다. 해당 지역마다 독특한 지질 자원을 품고 있어서다. 천연기념물인 성류굴은 길이가 870m에 이른다. 이곳에선 종유석·석순·석주·동굴진주 등 다양한 생성물을 볼 수 있다. 포항 호미곶~구룡포 해안은 계단 형태로 이어지는 해안단구인 점에서 이채롭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도 다른 나라에선 보기 드문 형태다. 부채 모양을 비롯해 위로 솟거나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양 등 다양한 주상절리를 감상할 수 있다. 경북 동해안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 국내 여섯 번째다. 성사된다면 관광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 충북 단양도 최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현장 실사를 받았다. 국내 세계지질공원은 2010년 제주를 필두로 경북 청송·광주 무등산·강원 한탄강·전북 서해안 5곳에 이른다. 경북 동해안이 내년 세계지질공원에 꼭 등재돼 세계적 명소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한다. 남은 기간 미흡한 점이 없는지 경북도와 해당 지자체가 긴장을 놓지 않고 준비해 주길 바란다.
[자유성] 조선시대 폭우
'지례와 군위에 천둥과 바람이 크게 일고 비와 우박이 섞여 내렸다. 내린 곳마다 큰 나무가 넘어지고 곡식이 쓰러졌다.'(선조 33년 7월), '삼척에서 광풍·폭우로 인가가 표몰하고 익사자가 104인이나 되다.'(영조 20년 8월), '평안북도 희천군에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범람해 남녀 374명이 수재를 당해 죽었으며, 576호의 집이 떠내려갔거나 무너졌다.'(고종 36년 8월)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유난히 '여름철 집중 호우'에 관한 기록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별다른 수재 예방책이 없던,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고 살아야 했던 그땐 장마·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기습 폭우로 인한 침수 때 옥에 갇힌 죄수들은 꼼짝없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끔찍한 피해 상황은 임금에게 깨알같이 보고됐다. 현군(賢君)은 천재지변을 자기 탓으로 여기며 백성의 고충을 헤아리기도 했다. 폭우에 관한 옛 기록을 접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못해 시려온다. 장마철을 맞아 '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되는 일이 잦아졌다. 이 문자는 '1시간 강수량이 50㎜ 이상'이면서 '3시간 강수량이 90㎜ 이상'이면 발송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될 수준의 호우는 776차례(152일) 있었다. 대부분 장마·태풍 기간인 7∼9월 집중됐다. 지난주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에 '물폭탄'이 쏟아져 인·물적 피해가 속출했다. 가히 '폭우의 시대'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는다. 장마철 으레 내리는 비로 여겼다간 큰코다친다. 이 같은 극단적 폭우는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서 비롯된다. 철통같은 대비만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이창호 논설위원
[사설] 학폭 입시 반영,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격 시행하길
학교폭력(이하 학폭)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자엔 유명인의 과거 학폭 논란이 종종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다. 학폭 피해자들은 세월이 흘러도 악몽과도 같은 옛 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학교 근처만 지나도 가해자 얼굴이 떠오른다고 한다. 피해자의 시간은 멈춰 있는데 정작 가해자 중 상당수는 피해자를 괴롭힌 과거를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북대와 계명대가 2025학년도 입시부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의 조치사항을 전형에 반영하기로 확정했다. '학폭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인식을 교육현장에 뿌리내리겠다는 취지다.학폭 입시 반영은 지난해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폭 논란'이 발단됐다. 정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의 일환이다. 과거 학교 현장에선 학폭 문제에 대해 쉬쉬하거나 온정에 치우친 면이 많았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피해자는 제대로 구제받을 수 없었고, 교권도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학폭 가해자에겐 무관용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돼야 함이 마땅하다. 학폭 입시 반영은 피해자의 심리적 회복을 위해서도 온당한 방침이다. 경북대와 계명대는 향후 입시에서 학폭위 조치 기준(1~9호)에 따라 해당 응시생에 대해 감점 처리할 계획이다. 의약학 계열의 경우 학폭 이력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상대적으로 점수 편차가 크지 않고 경쟁이 치열해서다. 그 이전에 국민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약학 계열에 과거 학폭을 휘두른 전력자가 진학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모쪼록 대학은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원칙에 입각해 학폭 페널티를 매겨 주길 바란다. 폭력 없는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길이다.
[자유성] 올림픽 이색종목
옛 초등학교 운동회 때 가장 용을 써서 겨룬 종목을 꼽으라면 단연 줄다리기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도 유달리 손에 땀을 쥐게 한 장면은 줄다리기였다. 재밌는 건 줄다리기가 과거 한때 올림픽을 대표하는 종목이었다는 사실이다. 파리 올림픽(1900)부터 앤트워프 올림픽(1920)까지 열렸다. 당시 줄다리기 강국은 영국이었다. 두 차례나 금메달을 땄다. 대표팀은 전문 선수가 아닌 직업 경찰관들로 구성됐다고 한다. 사실, 줄다리기는 여전히 지구촌 많은 나라에서 즐기고 있는 경기다. 국제연맹도 꾸려져 있어 올림픽 종목 재지정을 위한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비공식이긴 하나 예술 종목이 열린 적도 있었다. 스톡홀름 올림픽(1912)부터 런던 올림픽(1948)까지다. 건축을 비롯해 기악·오케스트라·독창·합창·회화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1~3위에겐 당연히 메달이 주어졌다. 앞서 1900년 파리 올림픽은 가히 엽기적이다. 정규종목에 '비둘기 사격'이 있었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아 결국 폐지됐다. 오는 26일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 신규 종목 가운데선 '브레이킹'이 이채롭다. 최근 비보이 김홍열(홍텐)이 한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다. 그는 올해 만 39세로 한국 브레이킹계의 레전드로 통한다. 20대 초반의 비보이들도 혀를 내두를 강인한 체력과 묘기에 가까운 브레이킹을 보여준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이렇게 경쟁할 수 있다는 걸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듯하다. 그의 올림픽 메달 도전을 응원한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불구대천 원수도 아닌데
불구대천(不俱戴天). '하늘을 같이(俱) 머리에 이지(戴) 못한다'라는 뜻이다. 같은 하늘 아래에 함께 있어선 안 될 원수(怨讐) 사이를 일컫는다. 예로부터 부모형제의 원수는 '불구대천지원수' 또는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하늘에 사무치도록 한이 맺히게 한 원수)'라고 불렀다. 침략과 저항으로 점철된 동서고금의 역사는 불구대천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사 인간사, 쌔고 쌘 게 불구대천의 사연 아니던가. '엘 클라시코(El Clasico)'. 스페인 프로축구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일컫는다. '고전의 승부'로 풀이돼 자못 고상하게 읽힌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두 팀은 불구대천의 앙숙이다. 둘이 맞붙으면 우리나라 축구 마니아들은 '불구대천 더비'라고 한다. 역사적 이유가 있다. 바르셀로나가 15세기 스페인 통일 전까지 언어·문화가 다른 카탈루냐 지방의 핵심 도시였기 때문이다. 과거 스페인 파시스트 독재자인 프랑코 총통은 수도인 마드리드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차별·탄압했다. 반골 기질이 강한 카탈루냐와 그 구심체 역할을 한 FC 바르셀로나엔 유달리 가혹했다. 아직도 두 지역 간 감정의 골은 메울 수 없을 만큼 깊다. 미국 프로야구에서도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는 오랜 세월 불구대천 원수였다. 레드삭스가 베이브 루스를 헐값에 양키스에 팔아버린 게 화근이었다. 레드삭스는 2004년 우승하기 전까지 무려 86년간 챔피언 반지를 단 한 번도 끼지 못했다. 이를 '밤비노의 저주'라고 불렀다. 이 둘이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을 경우 우리로 치면 '불구대천 시리즈'로 통했다. 어디 스포츠뿐이겠나. 작금 대한민국 여야 정치판도 영락없는 '불구대천판'이다. 원 구성을 둘러싼 극한 대치 끝에 정상화의 문은 열렸지만 여전히 죽기 살기식 전쟁터다. 삿대질·비아냥·고성으로 가득하다. 거대 야당의 안중에 여당은 없다. 자신들 입맛에 맞는 법안을 일방 통과시키기 바쁘다. 21대보다도 더 사나운 약육강식판이다. 갈등과 대립을 통한 승자독식만을 탐할 뿐이다. 같은 진영 안에서도 불구대천이 없을라고.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이들의 모골송연한 '총질'이 볼썽사납다. '오징어게임'이 따로 없다. 무서운 화약고 같은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심산하다. 웃기게도,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 난 여야도 특권 유지·세비 인상 등 공동의 이익을 위해선 귀신같이 한마음이 된다. 이러니 뽑아주고 후회한다는 말이 국민들 입에서 나오는 거다. 세상에 영원한 불구대천은 없는 법. 먼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 철천지원수 사이인 오나라와 월나라도 한 배를 타지 않았나(吳越同舟). 한때 서로가 원수였던 미국과 베트남도 근년에 이르러 파트너십을 맺었다. 미국은 또 영원한 앙숙인 러시아와도 국제우주정거장 운영만큼은 머리를 맞댄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인 학살'로 원수가 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역사적 앙금을 털어내고 손을 잡았다. 북유럽 국가에선 집권당 소속 국가수반이 몇 날 며칠 야당 대표와 함께 나토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야당도 엄연히 국가를 이끌어 나갈 존재'라는 정치철학이 뿌리내렸다. 여야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다. 이 모두 안보와 국익의 이해관계가 맞으면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는 사례다. 지금 한국은 민생과 안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한 시기다. 여야가 서로 손을 못 잡을 이유가 없다.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도 아닌데.이창호 논설위원 이창호 논설위원
[사설] 본격 장마 시작, 철저한 대비만이 人災 막는다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에 장마가 시작됐다. 우리 지역에도 호우로 인해 도로가 물에 잠기고 나무가 쓰러지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향후 간헐적 소강상태는 있겠지만 한반도 주변에 장마전선이 자리하면서 이달 말까지 잦은 비가 이어질 것이다. 이번 여름은 평년보다 덥고 비가 더 많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됐다. 무엇보다 단시간 내 강풍을 동반한 가공할 양의 비가 쏟아지는 '집중호우'에 대한 경각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오는 15일은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가 발생한 지 1주년 되는 날이다. 이 사고로 차량 17대가 고립돼 14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을 입었다. 앞서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때 포항 냉천 범람으로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8명이 숨진 비극도 아직 우리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하지만 매번 이 같은 대형 참사가 나도 관계 당국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 최근 발표된 감사원 조사(2023년 11월~올해 2월) 결과에서도 침수 우려가 큰 전국의 지하차도 182곳 가운데 159곳이 인근 하천 물에 의한 침수 위험을 차량 통제 기준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 진입 차단 시설이 없는 곳도 132곳이었다. 감사원 조사 이후 일부 보강 조치가 이뤄졌지만 극한 집중호우의 위력에 얼마만큼 대응할 수 있을지 안심할 수 없다.장마철, 민관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지자체 등 관계 기관은 관내 시설물을 수시로 살펴보며 미흡한 점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시민들도 집 주변 배수 시설 점검, 빗길 조심 운전 등 안전수칙을 지켜야 한다. 철저한 대비만이 인재(人災)를 막을 수 있다.
[자유성] 초고령 국가수반
영조 임금 38년(1762) 11월 어느 날에 주강(晝講·임금을 모시고 법강을 행하던 일)이 열렸다. 영조는 신하들에게 "동짓날이 또 이르렀으니, 내 나이 한 살이 더하게 됐다. 중용에 '대덕(大德)은 장수(長壽)한다'는 말이 있다지만, 나는 얕은 덕으로 장수를 누리니 마음이 몹시 부끄럽다"고 했다. 같은 해 앞서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일에 대한 가슴 아픈 회한(悔恨)이었으리라. 영조는 재위 52년(1776) 83세 일기로 승하했다. 조선 역대 왕 가운데 가장 장수한 왕이다. 현 지구촌엔 장수하는 국가수반이 꽤 있다. 대표적 인물은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 올해 91세로 세계 최고령 국가 지도자다. 42년간 집권을 유지해 온 원천은 유감스럽게도 '철권 통치'다. 한국에선 역대 최고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할 때 나이가 75세였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74세 때 권좌에 올랐다.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누가 승자가 되든 역대 최고령 미국 대통령이 된다. 트럼프(1946년 6월14일생)가 이길 경우 내년 1월 취임일 기준 78세219일로 역대 최고령이다. 현 최고령은 2021년 1월 취임 때 78세61일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이다. 바이든(1942년 11월20일생)이 재선할 경우 82세로 자신이 세운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사정이 이러니 미국에선 '초고령 대통령'을 걱정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트럼프는 최근 지지자들로부터 생일 축하 노래를 선물받자 "'생일 축하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특정 시점이 온다. 그날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고 싶다"고 했다. 나이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천하의 트럼프도 나이 듦에 대한 소회는 남다르지 않으리라. 이창호 논설위원
[사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차단에 총력 기울여야
잊을 만하면 도지는 가축 전염병으로 지역 축산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5일 밤 경북 영천시 화남면 한 대규모 양돈 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최종 확진됐다. 최근 어미돼지 폐사에 따른 동물위생시험소 검사 결과 14마리 가운데 13마리가 양성으로 확인된 것. 경북에선 1월15일(영덕) 이후 두 번째, 전국적으론 한 달 만에 4번째 발생했다. 경북도는 초동방역팀을 현장에 파견해 출입을 통제하고 역학조사 및 방역조치를 실시했다. 이번 ASF 발생 영천 양돈농가의 돼지 사육 두수(2만4천여 마리)는 국내 단일 농가로는 최대 규모다. 올해 첫 발생 농가(500마리)의 48배에 이른다. 이 농장과 역학 관계에 있는 돼지 농장만도 40여 곳이 넘는다. 해당 농장에서 돼지를 출하한 도축장 출입 차량 관련 돼지농장도 500곳을 웃돈다. 추가 발병 방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이번 ASF 발생이 당장 돼지고기 수급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 하지만 자칫 확산되기라도 한다면 오를 대로 오른 식탁 물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경북지역 양돈농가는 612곳으로 모두 141만1천여 두를 사육 중이다. ASF는 폐사율 100%로 '돼지 흑사병'으로도 불린다. 아직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았다. 확산 방지에 실패할 경우 국내 양돈산업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방역 조치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야생 멧돼지에 의한 확산 우려도 큰 만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양돈 농가도 방역 수칙을 준수하고 의심 증상 땐 지체 없이 방역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자유성] 마초 문화
지금으로 치면 '마초(macho·남성 우월주의)사회'인 조선시대 때도 남자가 유교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할 경우엔 가차 없이 벌을 받았다. 세조실록 8권에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선성군 이무생(李茂生)이 창기(倡妓)에 빠져 아내를 바깥으로 내쫓아 놓고선, 자기 아내가 제 발로 나가버려 교화(敎化)하기 어려웠다고 핑계를 댔다. 지극히 부당하니 성상의 재결을 청한다'고 하니, 명하여 이혼(離婚)하게 하고 이무생의 직(職)을 파면했다"라고 적혀 있다. 천하의 남존여비(男尊女卑) 시대였지만 조강지처를 버린 행위만큼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었다. 작금의 시대, 이 지구촌엔 가부장적 마초 문화가 여전히 득세하는 나라가 꽤 있다. 첫 번째로 꼽으라면 스페인이다. 지난해 여자 월드컵 결승전 시상식에서 발생한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장의 '강압 키스' 논란이 대표적 예다. 스페인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반(反)마초' 여론이 들끓자 그는 결국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까지도 '마초맨'임을 과시하는 러시아도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마초 국가다. 원래 마초는 나쁜 뜻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근육의 힘으로 가정과 국가를 보호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의 마초는 분명 일그러진 마초다. 최근 멕시코에서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탄생했다. 그러나 새 역사가 쓰인 지 하루도 안 돼 멕시코 현직 여성 시장이 피살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뿌리 깊은 마초의 나라임을 실감케 한다. "진정한 변화는 아직 멀었다"라는 비관론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이제 막 불기 시작한 여풍(女風)이 고질적 남성 우월주의를 타파해 나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셰르파(Sherpa)
"한국은 이제 영국·인도·일본·중공 등에 이은 8번째 에베레스트 정복 국가로 에베레스트 올림픽 금메달국이 됐다." 산악인 고상돈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1977년 9월15일)을 다룬 1977년 9월18일자 영남일보 고정 칼럼 '자유성'에 실린 내용의 일부다. 훗날 잡지에서 본 컬러 사진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고상돈이 위아래 빨간색 방한복에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커다란 무전기를 멘 채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음을 확인했다는 희열감이 사진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고상돈이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네팔인 '셰르파(Sherpa)' 펨바 노르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셰르파는 히말라야 등산에서 짐을 나르며 길을 안내하는 이를 일컫는다. 에드먼드 힐러리는 1953년 5월29일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세계에서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 클라이머와 셰르파의 관계를 넘어 진정한 '친구'로 발전한 두 사람의 우정은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외려 힐러리보다 텐징의 공이 더 크다는 평가도 있었다. 최근 카미 리타 라는 네팔인 셰르파가 사상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등정 30회'에 성공했다. 역대 가장 많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이가 된 것이다. 어떤 클라이머든 셰르파 없는 히말라야 정복은 상상하기 힘들다. 둘 사이의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곱씹어 볼 대목이다. 여와 야는 '국민 행복 실현'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때론 머리를 맞대야 하는 사이다. 진영논리에 따른 정쟁(政爭)을 멈추고 여든 야든 스스로 먼저 셰르파의 역할을 자처해 협치의 물꼬를 터야 하지 않겠나.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갖다 붙이면 다 '고난의 서사'
DJ(김대중)와 YS(김영삼).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이 두 사람보다 더 극적인 '고난의 서사(敍事)'를 가졌던 이가 있을까. DJ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의 최대 라이벌로 떠오른 뒤 운명과도 같은 고난의 길을 걸었다. 유신 반대에 나선 그는 1973년 일본에서 중정 요원들에 의해 납치된 뒤 피살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풀려났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선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YS는 3선 개헌 반대에 앞장서던 1969년 자택 부근에서 유독물질 테러를 당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는 그의 명언은 한국 민주화 운동사의 기념비적 레토릭으로 남아 있다. 적어도 이 둘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진, 그 누구도 이설을 달 수 없는 고난의 아이콘이었다. '고난 없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불문율은 바로 그들로부터 시작됐다. 작금 정치판에서도 고난의 서사가 없을라고. 근데 유감스럽게도 왜곡돼 있다. 엄연한 사법 리스크가 수난사(受難史)로 치환되고 있는 것. "조국 전 장관이 모진 역경(고난)을 이겨낸 영웅으로서의 귀환을 준비하고 있다." 2년 전 신평 변호사가 한 이 말은 결국 현실이 됐다. 조 전 장관은 지난달 총선에서 12석을 따낸 원내 제 3당의 대표가 돼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풀 죽어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종횡무진 거침없다. 호사가들은 그를 차기 대권주자로 꼽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혼란스러워 한다. 내로남불의 화신인 그가 '민의의 대변자'가 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오십보백보다. 숱한 사법 리스크 속에서 끊임없이 '고난의 정치인'임을 강변한다. 당내 측근은 그의 처지를 DJ의 고난과 동급으로 여길 정도다. 가당치도 않다. 군사독재에 맞서다 모진 탄압을 받은 DJ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고난의 서사는 국민이 수긍해야 성립된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그런데도 정치인의 '고난 코스프레'가 먹히는 덴 이유가 있다. '팬덤(Fandom·특정 인물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무리)'이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령 이 대표나 조 대표가 어떤 명백한 잘못을 하더라도 이해하고 지지하겠다는 부류다. 시쳇말로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DJ나 YS도 팬덤을 가졌다. 하지만 그땐 무조건적 지지가 아닌 '비판적 지지'였다. 그게 이치에 맞지 않은가. 지금과 같은 맹목적 팬덤의 정치문화는 진영논리에 따른 분열과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팔 뿐이다. '우리 말고 모두가 괴물'이라는 혐오가 퍼진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는 황제적 1인 보스정치를 고착화하는 숙주가 될 수도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팬덤에 기반을 둔 정치인이다. 지금 그를 겨냥한 당 안팎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 팬덤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일까,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팬덤 정치의 공식에 비춰 '맞으면 맞을수록' 그의 지지율은 올라갈 게 뻔하다. 이른바 '한동훈표 고난의 서사'가 쓰여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팬덤이 빚어내는 '고난의 서사'는 한국 정치의 퇴보를 가져올 뿐이다. 쓴소리 하나 하겠다. 한 전 위원장은 스스로 팬덤의 굴레에서 벗어나라. 그걸 못하면 '민심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이는 이 대표와 조 대표도 무겁게 새겨야 한다. 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사설] 대구시 公試 거주지 제한 폐지, 도시 품격 높이는 시도다
대구경북의 많은 젊은이가 수도권으로 떠나는 가운데 대구시가 내년부터 신규 공무원 임용 시험(이하 공시)에서 거주 요건(대구 거주 또는 과거 3년 이상 대구 거주)을 폐지하기로 했다.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처음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전국의 인재들에게 공직 문호를 넓혀줌으로써 대구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나아가 '전국 3대 도시'라는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함"이라고 했다. 대구가 전국 각지 출신의 청년들로 붐비는 '개방과 활력의 도시'로 변모할 수 있을지 자못 주목된다. 공시 거주 요건 폐지는 청년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지방의 현실에 비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북지방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와 경북의 청년(19~39세) 인구는 58만5천명, 52만9천명이었다. 2015년 대비 각각 17.1%, 23.7%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인구 순유출도 대구가 3천31명, 경북이 3천273명에 이른다. 지역의 미래인 청년층의 이탈이 멈춰지지 않는다면 도시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공시 거주 요건 폐지가 당장에 청년 인구 급증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바람직한 인구 유입책이 될 수 있다. 홍 시장 말대로 '대구라는 닫힌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발판'인 것도 분명하다. '공평한 기회 대(對) 역차별 우려'라는 엇갈린 반응도 나올 수 있겠지만 잘만 시행한다면 '대구의 품격'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향후 타 지역 출신 청년들이 대구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대구시는 다양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수도권으로 떠난 젊은이가 돌아오고, 지역 청년도 이곳에 남으려 하지 않겠나.
[자유성] 태형(笞刑)
놀랍게도 성군(聖君)으로 통한 세종 임금 때 형벌이 가장 많이 내려졌다. 당시의 태평성대도 크고 작은 범죄에 무관용으로 응징했기에 가능했다. 대명률(大明律)에 따라 사형(死刑)을 비롯해 유형(流刑)·도형(徒刑)·장형(杖刑)·태형(笞刑)으로 구분해 벌을 줬다. 이 가운데 가장 가벼운 태형은 작은 형장(刑杖·신문용 몽둥이)으로 볼기를 때리는 형벌이다. 죄의 경중에 따라 10~50대를 때렸다. 세종실록에 "사헌부에서 계하기를 '김포 현령의 아내가 조령을 따르지 않고 얼굴의 건(巾)을 걷고 출입하니, 형률에 의거해 태형 50대를 치고 속전(贖錢)을 징수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라는 글이 있다. 양반가 부녀자가 얼굴을 드러내 놓고 다닌 죗값도 태형이었던 것. 태형은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유지되다 3·1운동 이후 유화정책에 따라 폐지됐다. 하지만 태형은 여전히 지구상에 존재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싱가포르다. 16~50세 남성에 한해 적용한다. 중범죄자의 경우 징역형과 함께 태형이 내려진다. 맞다가 살이 터지고 피가 솟구치면 병원 치료를 받는다. 상처가 나으면 남은 매질이 계속된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같은 아파트 주민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아 온 50대 한국 남성이 8년4월 반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나이가 쉰 살을 초과해 태형은 모면했지만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다. 어쨌든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5위인 싱가포르에서 아직도 '전근대적 형벌'이 있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세계적 부국(富國)이라고 해서 반드시 '선진국'은 아니다. 싱가포르를 '존경받는 국가'로 선뜻 인정하기 어려운 것도 장기 일당독재와 권위주의적 형법제도가 아무런 저항 없이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창호 논설위원
실마리 안 보이는 의대 증원 갈등
의대 정원 증원 청원 5만 명 돌파…'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 운영 중단
보도의 그 후, 뉴스 후(後)
반월당·봉산·두류 지하도상가 점포 '일반경쟁입찰' 붙인다
많이 본 뉴스
오늘의운세
용띠 7월 27일 ( 음 6월 22일 )(오늘의 띠별 운세) (생년월일 운세)
영남생생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