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시민이 주인공이 된 뮤지컬

  • 이창호
  • |
  • 입력 2025-08-26 10:12  |  수정 2025-08-26 10:15  |  발행일 2025-08-26

해마다 7월, 프랑스 남부의 고도(古都) 아비뇽은 지구촌 문화예술계의 주목을 한눈에 받는다. 세계 3대 공연예술축제의 하나인 '아비뇽 페스티벌'이 열려서다. 무려 한 달 간이다. 이 축제가 세계적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비결은 멀리 있지 않다. 축제의 주역이 바로 지역 주민이라는 점이다. 뮤지컬 '왕의나라' 연출을 맡고 있는 이정남 감독은 소문난 '아비뇽 마니아'다. 아무리 바빠도 해마다 아비뇽에 들러 공연을 하거나 관람을 하고 있다. 이 감독은 지난해 이 축제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페스티벌 'OFF' 부문에서 공연된 한 작품('사람들의 식사')에서 연극에 문외한인 한 시민 부부가 즉석에서 무대에 올려졌다는 것. 이들은 공연 전까지 자신들이 배우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저 무대에서 함께 밥먹고 수다를 떠는 일상의 모습이 연극이 된 것이다. 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꾸며진 연기가 아닌 진정한 삶의 모습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극장 공연 뿐만이 아니다. 거리에서도 지역 주민이 배우로, 연출가로 참여하는 공연이 무수하다.


중국 장예모 감독의 '인상 시리즈(印象系列·중국 명승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공연이 세계적 흥행 신화를 쓴 것도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에 있었다. 구이린에서 공연된 '인상유삼저(소수민족 삶을 그린 뮤지컬)'는 배우 300 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지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어부·농부·상인들이다. 이들은 낮엔 본업에 임하다가 저녁이 되면 무대에 오른다. 노를 젓던 어부는 무대에서도 노를 젓는 연기를 한다. 현실과 연기 사이의 경계가 없다. '인상 시리즈'는 공연예술이 지역 공동체의 삶을 보여주는 가장 진솔한 장(場)임을 웅변한다.


지난 14~16일 경북 안동의 한 야외무대에서 뮤지컬 '왕의나라' 시즌3 '나는 독립군이다'가 공연됐다. 시종일관 펼쳐진 3D 비디오 매핑 영상과 할리우드 영화 OST와 같은 감흥을 자아내는 음악은 만원 관객의 혼을 빼놓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기자의 감동샘을 자극한 것은 뮤지컬에 직접 출연한 안동시민들이었다. 해마다 수십명의 시민 배우가 오디션을 거쳐 무대에 오른다. 배우 뿐만이 아니다. 어린이·어머니 합창단, 풍물패, 태권도시범단 등도 무대를 함께 꾸민다.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이지만 공연에 임하는 열의(熱意)만큼은 프로 배우 못지않다. 이번 공연에서도 모두 일심동체가 돼 안동의 독립운동 역사를 노래와 퍼포먼스로 풀어냈다. 이만하면 조금 오버해 '안동판(版) 아비뇽' '안동판 인상 시리즈'다.


공연예술은 '모두가 함께 할 때' 진가를 나타낸다. 특히 시민이 무대에 선다는 건 단순한 '참여'가 아니다. 자신과 터전의 얘기를 진솔하게 전한다는 의미다. 이는 결국 문화적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뮤지컬 '나는 독립군이다'를 사흘 내리 봤다. 문득 뇌리를 스친 게 있다. '잘 만든 뮤지컬 한 편이 도시의 얼굴을 바꿀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다. 이 감독에 따르면 아비뇽 페스티벌 무대에 올려지는 연극·뮤지컬 공연은 무려 2천여 편에 이른다. 한 달 간 10만 여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아비뇽이 1년 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부양 효과를 거둔다. '인상 시리즈'도 장기간 흥행을 통해 지역 경제에 큰 활력을 줬다. 곱씹어 볼 대목이다. '왕의나라'도 충분한 상품성을 갖추고 있다. 뮤지컬을 안동의 시그니처 문화 상품으로 육성해 봄직하다.


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기자 이미지

이창호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