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잘 버텼다 경북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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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29 06:00  |  발행일 2025-12-28

2025년의 끝자락에서 '경북'을 되돌아 본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상투적이지만 달리 대신할 말이 없다. 올 한 해 경북에서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시련과 긴장, 영광의 교차였다. 초대형 재난으로 시작해 역사에 길이 남을 글로벌 이벤트로 마무리됐다. 그 사이엔 도정(道政) 시스템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시험하는 모멘트도 있었다. 낼모레, 섣달 그믐날이 지나도 올 한 해는 좀처럼 잊히지 않으리라.


지난 봄, 경북 북부지역에서 난 초대형 산불은 사상 최악의 피해를 냈다. 자연 재난 앞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운이 나빠 일어난 사고'로 치부됐던 산불이 이젠 '기후위기형 복합 재난'으로 악화됐음을 확인했다. 산림 관리, 산불 감시 및 초기 대응 시스템, 농·산·어촌 고령화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들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경북의 산림 면적 비율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는 든든한 자산이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엔 상시적 위험 자산이다. 혹독한 산불을 겪은 경북은 사후 복구 중심의 대응을 넘어 예방 중심 산림정책으로의 변화가 절실함을 깨달았다. 단순한 '재난 대응'이 아닌 '기후위기 적응 행정'으로의 전환을 요구받은 것. 2025년 초대형 산불은 그런 '엄중한 경고'였다.


5월 말 경북도민은 또한번 충격을 받았다. 다름 아닌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자신의 암 진단 사실을 공개한 일이다. 이후 그는 휴가를 내고 항암 치료에 전념했다. "이왕 내 몸에 들어온 암, 함께 살아가며 반드시 내보내겠다" 그의 마인드는 초긍정적이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멘탈이 무너질 법도 한데, 평소 다져온 체력을 바탕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놀라운 회복 속도를 보여줬다. 사실, 이 도지사가 암 투병 이후 도정의 연속성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기우였다. 놀라울만큼 안정적으로 운영됐다. 무릇 행정은 개인이 아닌 조직과 제도로 작동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도약의 기회도 찾아왔다. 가을,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는 경북 도정의 가장 굵직한 성과였다. 경북은 처음으로 매머드급 외교 행사를 치르며 지구촌에 명함을 내밀었다. 이 도지사는 암 투병 중에도 APEC 준비를 진두지휘했다. 관계 공무원과 경주시민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나섰다. 도시 인프라, 행정력, 시민 의식이 동시에 검증됐다는 점에서 경북 도정의 외연은 급속도로 넓어졌다.


'잘 버텼다' 자칫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뉘앙스를 주는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이 세밑, 경북에 건네고 싶은 말이다. 초대형 산불에도 좌절하지 않았고, 행정 수장의 건강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APEC 성공 개최로 미래를 설계할 자양분을 쌓았다는 말이다. 이 모든 걸 위해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자기 몫을 해냈다. 또 누군가는 희생적 양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격려와 존중의 마음을 전한다. '잘 버텼다'라는 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음을 뜻한다. 사흘 뒤면 새해다. 모두의 이목이 쏠리는 지방선거의 해다. 경북은 다시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된다. 기후위기와 인구소멸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경북도와 시·군의 미래를 누가 더 잘 열어갈 수 있는 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 중요한 선택에 경북의 앞날이 달려있다. 잘 버틴 2025년 경북, 술술 풀리는 2026년이 되길 기원한다.


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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