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휴가는 ‘Visit 경북 북부’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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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30  |  발행일 2025-06-30 제23면

아프리카 대륙 가운데쯤에 '르완다(Rwanda)'라는 나라가 있다.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면적쯤 되는 작은 나라다. 얼마 전 국내 한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이 나라를 찾아 관광지를 둘러보는 장면이 나왔다. 자못 놀랐던 것은 이 나라의 때묻지 않은 자연도, 독특한 문화와 풍습도 아니었다. 여느 아프리카 국가에선 볼 수 없는 '깨끗한' 거리 풍경이었다. 인도(人道)에 작은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모르고 보면 선진국의 어느 거리 같다. 수년 전, 잉글랜드 프로축구(EPL)를 시청하다 스타디움에 설치된 A보드 광고판 문구가 눈길을 끈 적이 있다. 'Visit Rwanda(르완다를 방문하자)'. 문구에서 알 수 있듯 전형적 관광 캠페인이다. 광고 단가도 만만치 않을 텐데, EPL 경기장에까지 '르완다를 방문해 달라'고 광고를 왜 냈을까.


그 배경엔 르완다의 슬픈 현대사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그 곳에선 약 100일 동안 80만~100만명이 인종 청소를 당하는 내전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었다. 르완다 내전은 오랜 식민 지배가 낳은 상처, 민족 정체성 문제, 지역 갈등, 국제사회의 무관심 등이 맞물려 빚어진 참극이다. 놀랍게도 르완다는 내전의 폐허에서 시작해 기적적인 재건을 이뤄냈다. 바로 그 중심에 'Visit Rwanda'가 있었다. 르완다 정부는 2018년 EPL 아스널 선수 유니폼 소매에 'Visit Rwanda'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프랑스 프로축구팀 파리 생제르맹(PSG)과도 스폰서십을 맺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관광 수익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고급 리조트·생태 투어를 하려는 유럽인들의 발길이 이어진 덕이다. 'Visit Rwanda'는 단순한 관광 캠페인을 넘어 르완다 국가 브랜드 재건의 토대가 됐다. 지금 르완다는 국제 사회에서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로 통하고 있다.


다소 뜬금없이 르완다 얘기를 꺼낸 것은 우리 경북이 떠올라서다. 지난 봄 대형 산불이 할퀴고 간 북부지역(안동·의성·청송·영양·영덕) 말이다. 지금 이 곳에서도 '폐허의 땅에 재건의 씨앗을 심기 위한' 관광 캠페인이 한창이다. 지난달 영양에서 열린 '산나물 먹거리 한마당'은 여러모로 뜻깊었다. 화마로 상처를 입은 지역민의 일상 회복을 염원하는 장이었기 때문이다. 사흘간 전국에서 11만 여명이 찾았다. 안동에선 '왔니껴 투어'라는 프로그램이 재미를 봤다. 안동 관광지를 둘러본 뒤 전통시장을 찾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이 덕에 지난달 안동을 찾은 관광객이 전달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의성에선 '의성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광고가 눈길을 끈다. 경북도도 '온(ON)-기(氣)프로젝트' 등 다양한 관광 시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들 캠페인의 일관된 모토는 '관광=기부'다. 도와 시·군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화마가 덮쳤던 북부지역 5개 시·군 관광지의 지난달 입장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늘어났다.


한 지인이 최근 우연찮게 안동의 산불 피해 마을을 들렀다. 여전히 생채기에 신음하는 모습에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고 한다. 곧 여름 휴가철이다. 올핸 '경북 북부'를 찜해 놓는 게 어떨지. 안동의 고색창연한 고택도 좋다. 청송의 천혜 절경, 영양의 청정 밤하늘, 영덕의 푸른 바다도 압권이다. 경북 북부 여행은 단지 휴가에 머무르지 않는다. 상처를 보듬어 주는 '연대와 동행'이다. 이 여름, 'Visit 경북 북부'를 권한다.


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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