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낮 기온이 35℃를 오르내리는 지난 25일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1년6개월째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박정혜씨가 건물 아래에서 올려준 얼음물을 받고 있다. <박용기 기자>
"화재가 난 공장을 회사에서 철거한다고 하잖아요. 그때 눈앞이 캄캄했어요. 공장이 없어지면 우리의 삶과 희망도 모두 사라진다는 생각에 공장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옥상에 올랐던 것입니다." 27일로 무려 567일이다.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세계 최장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박정혜씨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녀를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가. 9면에 관련기사
영남일보는 지난 25일 오후 회사 옥상 아래에서 박씨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옥상에서 손을 힘차게 흔드는 모습과 달리 박씨의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이제 옥상에서 그만 내려오고 싶어했다. 그는 "몸과 마음 모두 한계에 이르렀다. 더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그냥 버티는 중"이라며 "더위 때문에 힘들고 현기증이 난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어 "현재 옥상 텐트 그늘막 아래 온도가 39℃다. 텐트 밖 옥상 온도는 45℃쯤될 것"이라며 "체력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하루하루 버텨낼 정신적인 힘까지 모두 소진된 상태"라고 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에 따르면 현재 박씨 건강은 좋지 않다. 최근 장염으로 체력을 많이 소진했으며 이후에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회사 전체가 현재 단수 중으로 박씨가 있는 옥상에는 수돗물도 공급되지 않는다. 지난해엔 폭우로 텐트가 무너지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한계에 이르렀다. 지난 4월27일까지 박씨 옆에는 같은 해고노동자인 소현숙씨가 함께했지만, 소씨는 건강 악화로 고공농성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전기가 들어오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박씨는 끝까지 버틸 생각이다. 그는 "우리가 절박한 마음으로 고용승계를 외치고 있지만, 회사는 전혀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노동자가 무슨 잘못이 있나. 회사가 자기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내팽개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단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 뿐"이라며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지만, 포기하고 내려갈 수 없다. 우리가 그동안 겪은 고통과 해고가 아무 일 없는 듯 묻혀질까봐 두렵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새 정부가 이런 박씨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철도노동자 출신인 김영환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6일 현장을 방문해 박씨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 진행된 다른 해고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김 장관은 '해답'을 가지고 다시 찾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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