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현진건기념사업회 회장
문학관은 문학 유산의 물리적 보존 공간, 문학적 상상력의 실험실인 동시에 인간 정신의 진화를 기록한 문화 유전자 저장소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문학관은 단순한 유물 전시 공간을 넘어 시대 정신을 체화하는 사회적 공기인 셈이다. 요컨대, 문학관은 과거를 보듬고 현재를 알차게 가꾸며 미래를 열어가는 문화 창달의 자궁이자 전진 기지다.
문학관의 진정한 가치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있다. 과거의 축적된 삶도 필요하지만, 현재의 목소리도 반영돼야 한다. 작가의 발자취, 초고, 초판본, 사진 등은 물론이고 영상, 홀로그램 등 첨단 기술 활용의 결과물도 도입해야 한다.
뜻이 있으면 길이 보인다.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으면 있어야 할 문학관, 제대로 된 문학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문인이 문학관 건립에 뜻을 모으는 일은 비교적 용이하겠지만, 칼자루와 돈주머니를 틀어쥔 정치인과 공직자가 문학관 건립에 관심과 애정을 갖도록 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 등 기존 시설에 시민의 발길이 뜸한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문학관 설립을 위한 필연적 선택지는 명확하다. 정치인과 공직자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도록 유도하는 작업이다. 대부분 선출직인 그들의 눈은 표를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표는 사람이 선호한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동호인이 급증한 파크골프에 예산을 앞다투어 투입하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 가치와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다수 시민이 선호해야 한다는 현실적 전제가 충족돼야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가 올라간다.
민간기업의 기탁금이나 독지가의 기부금이 아니라 공적 예산을 끌어와 문학관을 건립하고자 한다면 시민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문학관을 만들어야 가능하다는 게 그 기본 요건이라는 결론이다. 이는 문학관의 지향점과 창의적 콘텐츠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존의 아날로그 아카이빙만으론 눈길을 끌 수 없고 그에 더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첨단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시민과 소통하는 플랫폼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금의 독서 경향은 종이책에서 전자책, 오디오북으로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가늠하긴 힘들지만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해 문학 콘텐츠를 영상이나 홀로그램으로 시현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성장 단계별로 복원된 작가가 자신의 당시 삶과 소회를 말하는 '살아있는 연표 콘텐츠'도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구현해낼 수 있다.
현대는 융합과 통섭의 시대이다. 학문에서 학제적 어프로치가 상식이고 기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스터디 카페 등과 문학관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고 다양한 기능을 수용해야만 살아남는다. 문학관에서 최신 베스트셀러를 비롯한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고, 관심 가진 분야의 문학사를 섭렵하며, 각종 문학 작품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을 복제품으로나마 감상하고, 차를 마시면서 공부하는 건 허황한 꿈이 아니다. 블록체인 기법을 채용해 문학 작품의 저작권을 완벽하게 보호해주는 서비스도 문학관의 부수적 기능으로 당연히 필요하다.
문학관이 전통적 아날로그와 복고적 아카이빙에 집착하는 한 희망이 없다. 문학관을 지어 사익을 추구하자는 건 절대 아니다.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문학관이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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