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르포] 교동귀금속 거리에 번지는 ‘명품 그림자’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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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7 16:44  |  수정 2025-08-18 14:32  |  발행일 2025-08-18
샤넬 반지·까르띠에 팔찌…카피본 성행
예물 문화까지 바꾼 명품 열풍…“똑같다”
지난 15일 대구 중구 교동귀금속거리 한 매장 진열대에 다양한 귀금속들이 전시돼 있다. 이지영 기자

지난 15일 대구 중구 교동귀금속거리 한 매장 진열대에 다양한 귀금속들이 전시돼 있다. 이지영 기자

"정품이랑 똑같은데 매장에서 살 이유가 있나요.", "결혼식 맞춰 카피본 사면 다들 진짜로 알아요."


김건희 여사의 명품 논란이 이어지던 지난 15일 오후, 대구 중구 교동귀금속거리의 쇼윈도는 반짝임으로 가득했다. 뜨거운 햇볕에 거리는 다소 한산했지만, '백화점' 간판 아래 모여 있는 좌판 매장들은 샤넬·까르띠에·반클리프를 흉내 낸 반지와 목걸이들로 빽빽했다. 손님이 들어설 때마다 "어서 오세요", "신상품 들어왔어요"라는 외침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샤넬 '코코 크러시' 반지를 찾자 상인은 기다렸다는 듯 반지를 보여줬다. 현금 110만원, 카드 결제시 126만원. 정품 가격은 490만원에 이른다. 반지는 겉모습은 물론, 안쪽의 로고 각인까지 그대로였다. 상인은 "정품하고 똑같다. 매장에서 살 이유가 없지 않냐"고 했다. 금 중량을 줄여 폭을 좁힌 저가형도 있었다. 가격은 70만원대. "돈이 부족하거나 그냥 자기 만족하려는 사람들이 사 간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꾸준히 인기 있는 품목은 까르띠에 '러브' 팔찌였다. 현재 홈페이지 가격은 950만원이지만 이곳에서는 360만원선. 금이 많이 들어가는 디자인이라 값은 비쌌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찾는 제품"이라고 했다. 상인은 "백화점은 브랜드 값이고, 여기는 금값과 수공 값"이라며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다"고 강조했다.


지난 15일 대구 중구 교동귀금속거리 한 매장 진열대. 일반 제품 사이로 샤넬·까르띠에·반클리프 등 명품 카피본이 함께 놓여 있다. 이지영 기자

지난 15일 대구 중구 교동귀금속거리 한 매장 진열대. 일반 제품 사이로 샤넬·까르띠에·반클리프 등 명품 카피본이 함께 놓여 있다. 이지영 기자

김 여사로 인해 주목받은 반클리프 목걸이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일부 상인들은 "카피본은 안 판다"고 했지만, 쇼윈도에는 이미 비슷한 디자인이 진열돼 있었다. 기자 신분을 밝히자 상인들은 말을 아꼈다. "디자인이 비슷할 뿐이지 똑같은 건 아니다", "요즘 사람들 짝퉁 안 찾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단속을 의식한 기색은 숨기지 못했다. 실제 가품을 판매하다 적발되면 상표법 위반으로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상인들은 명품 카피본이 퍼지면서 예물 문화까지 달라졌다고 귀뜸했다. 예전처럼 반지·목걸이·귀걸이·팔찌를 한 세트를 맞추는 대신 명품 브랜드 카피본 반지 하나만 나눠 끼거나 팔찌를 더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는 것. "예물로 샤넬 반지를 하면 다들 정품으로 안다. 오해할 일 없다"는 상인의 말이 씁쓸하게 들려왔다. 결혼 예물마저 명품 로고가 체면을 대신하는 시대가 됐다.



대구 중구 교동귀금속거리 한 매장 안에서 손님들이 진열대를 둘러보고 있다. 이지영기자

대구 중구 교동귀금속거리 한 매장 안에서 손님들이 진열대를 둘러보고 있다. 이지영기자

백화점 매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은으로 만든 티파니 '하드웨어' 디자인 반지가 "정품과 똑같다"라는 설명과 함께 25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모든 매장이 카피본을 취급하는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아예 들이지 않았다"며 자체 디자인만 내세운 곳도 있었다. "카피본은 개성이 없다"며 독창적 디자인을 찾는 손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고객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한 50대 여성은 "정품이랑 똑같은데 왜 비싼 돈을 내냐"며 샤넬 반지를 샀다고 했다. "정품을 사는 게 오히려 아깝다"는 반문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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