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논설실장
휴일이면 종종 팔공산 쪽으로 나들이를 간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에 못다한 책읽기 혹은 신문읽기에 몰두하면 소소한 즐거움이 된다. 2주 전인가. 파계사로 올라가는 도로 변을 스치다, '그래 기름을 넣자' 하고 주유소에 세웠다. 이 일대에 기름값은 시내보다 대략 50~100원 정도 싸다. 그날은 경유로 1550원 전후였다. 소비자로서 나의 선택은 절묘했다. 그날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 뉴스에 주유소가 장사진을 쳤다. 하루 지날 때마다 기름값은 100원씩 퍽퍽 올랐다. 1주 전 그 주유소를 지나면서 보니 1900원대였다. 놀란 건 내 차의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쌌다.
한국은 에너지원(源)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국가다. 기름값은 인플레이션의 방아쇠다. 그래도 그렇지, 한국의 기름값 폭등은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과하다. 사재기에 능숙한 국민이 아닌데 이해하기 어렵다. 경유가 더 비싸진 이유(다소 비슷하게 완화됐지만)는 소비의 비탄력성 때문이라나. 산업현장이나 트럭 등은 경유값이 올라도 울며겨자먹기로 소비해야 한다.
걸프만의 화염은 잠잠하던 경북 성주의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를 소환했다. 방공망이 부족해지자 미국은 한국에 배치된 페트리어트와 함께 사드를 중동으로 옮기는 모양이다. 발사대 차량이 성주를 빠져나가는 것이 포착됐다. 사드 하면 한때 온 나라를 들쑤신 이슈 아닌가. 전자파로 튀겨진다는 말이 나왔고, 성주 참외 못 먹는다고 아우성 쳤다. 쓸데없이 중국을 자극한다는 친중 정치구호도 난무했다. 그때 야당이던 민주당은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 권력은 태도를 변화시키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 자산 반출에) 반대 의견을 냈지만, 우리 의견대로 전적으로 관철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고 다소 무덤덤하게 코멘트했다. 사드 반대론자들은 다시는 들여오지 말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그 강도는 예전 같지 않다. 사족을 붙이면 난 사드 논란 당시 골프장이 미사일 기지로 활용된다는 점이 더 신기했다. 물론 그 골프장 주인인 롯데는 중국에서 뭇매를 맞고 쫓겨났다.
미국의 이란 폭격은 한국 주식시장을 전 세계에서 가장 요동치는 장(場)으로 만들었다. 이틀간 무려 1천 포인트, 약 700조원이 증발하기도 했다. 투자자 간에 불공평한 자산 이동이 있을 법하다. 대신 국뽕(애국심)을 고조시키는 소식도 전해졌다. UAE(아랍에미레이트 연합)가 한국의 미사일 방어무기 천궁2를 추가 도입하기로 했다. 대구공항에 UAE 수송기가 목격됐다. 천궁2 제작은 구미 LIG넥스원과 한화 계열 기업이 담당한다.
'앤스로픽'이란 미국 기업이 AI 인공지능의 세계적 선도 기업이란 건 이번 전쟁을 통해 처음 접했다. 앤스로픽은 자신들이 만든 AI 모델 클로드를 미 국방부가 무제한 활용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전쟁을 AI가 지휘할 수는 없다는 철학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미래 담론이 앞당겨졌다. 제 아무리 명분으로 치장해도 전쟁은 가공할 폭력이다. 이란의 여자 초등학교에 미국제 토마호크 미사일이 떨어져 170여 명의 어린 꽃들이 주검을 맞이했다. 이게 미국에서 터졌다면 트럼프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전쟁은 인간의 고정관념을 바꾸고, 소비행태를 역전시키며, 불평등한 자산이동마저 가능케 한다. 죽이는 것은 기본이다. 탐욕과 정복은 인간의 본성인가. 칸트의 '영구 평화론'이 떠오른다. 지상의 모든 나라가 공화정을 기초로 세계 시민권으로 뭉치는 세상이다. '마지막 인간'이 다스리는 전쟁 없는 평화는 아직 불가능해 보인다.
트럼프 전쟁에 기름값 역전
성주 사드는 중동으로
국산 천궁은 몸값 치솟아
이란 초등학생의 떼죽음
AI가 전쟁을 지휘하다니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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