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대구 달성토성 남측 진입로 신설부지 일대에서 정밀발굴조사 현장공개 설명회가 열린 가운데 발굴된 성벽 유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구광역시가 발주하고 대동문화유산연구원이 수행한 이번 조사는 도로 개설에 앞서 유적의 구조와 보존 상태를 확인하고 조사 성과를 공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1천700년 전 신라시대 당시 대구지역 세력들의 뿌리와 위상을 가늠케 할 고대 성곽인 '달성토성'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대구시가 발굴조사를 통해 '달성토성' 일부 구역에 대한 현장 모습을 공개하면서다. 시는 현 달성공원을 품은 달성토성 공간을 역사공원이자, 휴식 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인 만큼, 지역 내 역사적 정체성을 가진 문화유산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구시가 추진 중인 달성 토성 발굴조사 위치 및 추진 일정. 대동문화유산연구원 제공
◆달성토성 복원 사업
22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대구시는 달성토성 원형을 복원하고,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도심 내 역사 문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달성 복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업 기간은 2025~2034년이며, 총 사업비는 655억원(국비 418억원·시비 237억원)이다.
이번 사업의 전제 조건은 달성토성에 대한 발굴조사다. 발굴조사는 대동문화유산연구원 주관으로 진행된다. 앞서 연구원 측은 발굴조사 진행 속도가 빠른 달성토성 남측 성벽에 대한 현장 설명회를 갖고, 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이후 달성공원 동물원이 2028년 대구대공원(수성구 삼덕동)으로 이전되기 전인 2027년까지 연차적으로 '남측 성벽'과 '북측 성벽', '옛 신사터 부지' 등 3곳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는 달성토성 복원을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된다.
대동문화유산연구원 김경수 과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달성은 축조 당시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이후 상부에 석축을 덧쌓고 표면을 고운 점토(피복토)로 마감한 구조로 확인됐다"며 "이에 따라 달성은 토성에서 석성으로 변화해가는 과도기적 형태의 성곽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달성은 아래부터 경사지게 석축을 쌓아 하중을 분산시키는 등 정밀한 축성 기법이 적용됐다. 이는 대구 지역의 선진화된 고대 토목기술 수준을 보여준다"고 부연했다.
야외전시관 예상도. 대구시는 옛 신사터 발굴 시 유구를 훼손하지 않고 현장에서 보존·전시할 수 있도록 상부에 지붕을 설치한 야외전시관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때 단차를 활용한 설계를 통해 기존 지형을 살리고 관람 동선을 확보할 계획이다. 대구시 문화유산과 제공
대구시는 오는 2028년쯤엔 달성 복원사업이 '5부 능선'을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달성토성 구역에 포함된 달성공원 내 동물원 이전 작업이 완료되는 시기와 맞물리는 만큼,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본 것이다. 사업은 2034년까지 동물사 철거(일부 리모델링·활용)를 시작으로 성체부 수목 정비, 달성역사관과 야외전시관, 숲놀이터 조성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예컨대 현 동물원 내 물새사와 잉어장, 물개사 등은 생태연지 등 수변공간으로 활용하고, 호랑이사는 내실과 방사장 일부를 철거해 어린이 숲놀이터로 조성한다.
특히, 야외전시관은 옛 신사터 발굴과 연계해 진행된다. 이곳엔 유구를 훼손하지 않고 현장에서 보존·전시할 수 있도록 야외 지붕이 설치될 예정이다. 이때 단차를 활용한 설계를 통해 기존 지형을 살리고 관람 동선을 확보할 계획이다.
김신영 대구시 문화유산과장은 "올해 11월, 남성벽과 북성벽의 발굴 성과를 집대성한 학술발표회를 열어 달성의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정립할 계획"이라며 "복원 과정에서 성벽의 수목을 정비해 가려졌던 토성의 윤곽을 선명히 드러내고, 향후 동물사육장 철거와 원지형 복원을 병행해 달성토성 본연의 가치를 회복함과 동시에 시민들이 일상에서 즐겨 찾는 도심 속 역사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2천년 역사 품은 달성토성
1917년 촬영된 대구 중구 달성 남벽 전경.국립중앙박물관
국가지정유산 사적인 '대구 달성'은 신라시대 당시 제12대 왕 '첨해이사금' 15년(261년)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삼국사기)돼 있다. 대구 분지 지형을 이용해 성벽을 쌓아 올린 토성으로, 경주 월성에 비견될 만큼 삼국시대 대구 세력의 위상을 상징하는 핵심 성곽으로 꼽힌다.
달성은 시대에 따라 대구를 지탱하는 중심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는 관아가 설치된 행정 거점이었다. 조선시대엔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임진왜란 중이던 선조 29년(1596)에는 기존 토성에 석축이 더해졌고 경상감영이 이곳에 설치됐다. 그러나 정유재란으로 감영이 소실되면서 경상감영은 달성을 떠나 안동으로 옮겨졌다가, 1601년 중구 포정동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달성은 우리 역사의 뼈아픈 단면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명분으로 일본군대를 대구 달성토성 일대에 주둔시켰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달성을 자신들의 전승 기념비적인 공간으로 변질시키기 시작했다.
1905년 일본 수비대장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된 달성은 이듬해 일왕에게 절을 하는 '요배전'이 들어섰고, 1913년엔 '대구신사'가 건립되기에 이른다. 대구의 상징적인 공간에 신사를 세운 것은 지역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치밀한 의도였다. 이로 인해 당시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신사에 강제로 참배해야 하는 굴욕적인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신사는 1966년이 돼서야 철거됐다. 대구시는 내부 현대화 작업 등을 거쳐 1969년 달성공원으로 개원했다. 이듬해인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꽃사슴 5마리를 기증한 것을 계기로 공원 내 동물원이 조성됐다.
◆"역사적 정체성과 시민 일상 공존 둘 다 고려를"
대구한의대 김세기 명예교수(역사관광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영남고고학회장 등을 역임하고 '대구지역 고대정치체의 형성기반과 달성토성의 위상' 논문을 펴낸 대구한의대 김세기 명예교수(역사관광과)는 달성토성을 대구 지역 초기 국가 형성의 중심지로 평가했다.
김 교수는 "달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역 정치세력이 형성되고 성장해 온 과정을 보여주는 핵심 유적"이라며 "특히 달성 일대에서 확인되는 고분군과 유물 분포를 보면, 이곳이 당시 지역 권력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달성' 발굴조사가 가능했던 이유로 '입지적 탁월함'을 꼽았다. 과거 대구 비산동과 대명동 일대에 걸쳐 형성됐던 '달성고분군'이 6·25 전쟁과 급격한 도시화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옛 흔적이 사라지다시피 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달성은 높은 지대에 외벽 높이 17m에 달하는 압도적 규모로 축조된 덕분에 거센 도시화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며 "지금은 복개돼 사라졌지만, 과거 성곽 둘레를 감싸고 흐르던 대구천이 천연 해자(성곽 방어를 위한 물길) 역할을 하며 유적의 경계를 지켜준 것도 원형 보존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향후 복원 방향에 대해선 '역사적 정체성'과 '시민의 일상'이 공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 교수는 "그동안 달성이 동물원이라는 이름에 갇혀 그 가치가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단순한 물리적 복원을 넘어 발굴된 유구의 가치와 달성의 역사적 서사를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자 도심 속 문화 안식처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달성토성을 세계적 유산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방법에 대해선 "2017~2019년 정치권과 중구청을 중심으로 달성토성과 경상감영, 대구읍성을 연계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논의된 바 있다. 당시 중구청이 연구용역을 통해 사전조사를 진행했지만, 평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이후 사업이 지지부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대구시가 복원 로드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재도전의 적기다. 발굴조사를 통해 고대 토목 기술의 정수가 확인되고 있고, 내년 말까지 조사가 마무리되면 유구 출토 등 학술적 근거도 한층 탄탄해질 것"이라며 "시의 복원 사업과 발맞춰 체계적인 세계유산 등재 준비를 병행한다면, 달성토성이 대구를 넘어 세계적인 역사문화 랜드마크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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