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타버린 줄 알았는데”…산불 이후 고운사에 다시 온 봄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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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05 10:21  |  발행일 2026-04-05
산불 1년, 천년고찰 고운사 르포…자연복원 시작
전각 30동 중 21동 전소…새순·야생동물 다시 확인
인공조림 대신 자연복원 선택…활엽수 늘어난 변화
고운사 입구 등운산 고운사 현판 뒤로 검게 탄 능선이 이어져 있다. 이지영 기자

고운사 입구 '등운산 고운사' 현판 뒤로 검게 탄 능선이 이어져 있다. 이지영 기자

식목일을 이틀여 앞둔 지난 3일. 대구 북구IC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경북 의성으로 들어갔다. 지난해 3월 산불 피해를 입은 고운사를 향했다.


계절은 이미 봄이었다. 산과 들 곳곳에서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고, 고속도로 주변은 연둣빛이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남안동 나들목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달라졌다. 초록 대신 검게 탄 능선이 이어졌다. 겹겹이 이어진 산마다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운사 입구로 들어서는 길목 가로수에서도 흔적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벚꽃이 진 줄 알았다. 하지만 바닥에는 꽃잎이 없었다. 가까이서 보니 줄기와 가지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었고, 꽃은 드문드문 붙어 있었다. 인근 주민은 "불이 지나가면서 나무가 피해를 입어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불 피해를 입은 고운사 진입로 양옆에 벌목된 나무들이 쌓여 있다.

산불 피해를 입은 고운사 진입로 양옆에 벌목된 나무들이 쌓여 있다.

지난해 3월 고운사 일대는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천년사찰로 불리는 고운사도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건축 유산인 연수전과 가운루 등 주요 전각이 소실됐고, 사찰림 249㏊ 가운데 97.6%가 불에 탔다. 국내 사찰림 피해 가운데 최대 규모다.


경내로 들어서자 주차장 입구부터 벌목한 나무들이 길게 쌓여 있었다. 포크레인이 나무를 옮기고 있었고, 한쪽에는 상처 부위를 감싼 채 세워둔 나무가 따로 남아 있었다. '산불피해로 치료중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산불로 갈라진 범종과 숯처럼 변한 고목이 남아 있다. 당시 화마의 흔적이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산불로 갈라진 범종과 숯처럼 변한 고목이 남아 있다. 당시 화마의 흔적이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첫 번째 문인 '등운산 고운사' 현판을 지나자 검게 탄 산 능선이 이어졌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범종이 눈에 들어왔다. 종은 몸통이 갈라진 채 남아 있었고, 표면에는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종 앞에는 숯처럼 변한 고목 세 그루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당시 산불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주변에는 복원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다. 범종과 전각 복원을 위한 모금이 진행 중이었다. 고운사는 산불로 전각 30동 가운데 21동이 전소됐고, 사찰림 249㏊ 중 97.6%가 피해를 입었다.


대웅보전 앞 능선이 산불로 대부분 소실된 가운데 일부 식생이 남아 있다. 당시 화재의 확산 양상이 엿보인다.

대웅보전 앞 능선이 산불로 대부분 소실된 가운데 일부 식생이 남아 있다. 당시 화재의 확산 양상이 엿보인다.

불은 문화재도 집어삼켰다. 보물로 지정됐던 연수전과 경북도 문화재 가운루 등 주요 전각이 소실됐고, 현장에는 터와 일부 석재만 남아 있었다. 목재 구조물은 대부분 타 사라졌다.


산불로 훼손된 고운사 사찰림 일대에 복원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산불로 훼손된 고운사 사찰림 일대에 복원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사찰 관계자는 "불이 번지면서 보물로 지정된 전각들도 그대로 피해를 입었다"며 "당시 급하게 문화재를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와 석조여래좌상부터 먼저 반출했다"고 말했다. 이어 "불상과 광배는 옮겼지만 좌대는 미처 옮기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석조여래좌상은 현재 경주로 옮겨 보관 중이다. 불상이 있던 자리에는 안내판만 남아 있었다.


대웅보전 앞에는 연등이 걸려 있었고, 능선 아래에는 목련과 벚꽃이 피어 있었다. 검게 탄 산과 꽃이 한 화면에 들어왔다. 고운사에서 정원 관리를 돕고 있는 한 보살은 "처음 왔을 때는 다 타버린 모습뿐이었다"며 "지금은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다음 달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연등도 추가로 달고 주변을 정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산불 피해 속에서도 고운사 대웅보전은 불길을 피했다. 주변 능선에는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다.

산불 피해 속에서도 고운사 대웅보전은 불길을 피했다. 주변 능선에는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다.

산을 보면 능선 위쪽은 여전히 검게 남아 있었고, 아래쪽에는 풀과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타버린 자리에서는 이끼와 풀, 진달래 같은 낮은 식생이 먼저 보였다. 안동에서 왔다는 60대 여성 방문객은 "종종 고운사를 찾곤 했다. 큰 산불을 겪고도 꽃망울을 터뜨리고 새싹을 올리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며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10분의 1도 안 남은 느낌"이라고 했다. 이후 한동안 경내를 바라봤다. 속초에서 왔다는 70대 부부는 "뉴스로만 봤을 때는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와보니 조금씩 살아나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고운사 경내에 벚꽃이 핀 가운데 뒤편 능선에는 산불로 탄 흔적이 남아 있다. 회복과 상흔이 한 화면에 담겼다.

고운사 경내에 벚꽃이 핀 가운데 뒤편 능선에는 산불로 탄 흔적이 남아 있다. 회복과 상흔이 한 화면에 담겼다.

고운사의 변화는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 연구진의 중간 조사에 따르면 55개 지점을 분석한 결과, 침엽수림은 235.8㏊에서 3.4㏊로 줄고 활엽수림은 25.3㏊에서 363.5㏊로 늘었다. 전체 면적의 76.6%에서 자연회복력이 확인됐다.


자연복원 모니터링 과정에서는 수달과 삵, 담비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포함해 14종이 확인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운사는 산불 이후 인공조림 대신 자연복원을 선택했다.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계절이 지나면서 불에 탄 나무 사이로 어린 나무가 올라오고, 풀과 야생화가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대웅보전 뒤편 능선에 산불 흔적이 남아 있는 가운데 벚꽃과 소나무가 함께 서 있다. 일부 소나무는 하부가 불에 탔지만 수관은 살아 있다.

대웅보전 뒤편 능선에 산불 흔적이 남아 있는 가운데 벚꽃과 소나무가 함께 서 있다. 일부 소나무는 하부가 불에 탔지만 수관은 살아 있다.

복구 작업도 병행되고 있었다. 다음 달까지 벌목작업을 이어가 위험목을 정비할 계획이다. 불에 탄 나무는 시간이 지나며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자연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다만 개별 나무의 생존 여부는 즉시 판단하기 어려워, 생존 가능성이 있는 개체는 남겨두고 상태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고운사 측은 벌목한 목재 일부를 사찰 재건에 활용하고, 나머지는 장작 등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고운사 종무실장 스님은 "소나무 숲이 고운사를 대표하는 풍경이었지만 대부분 사라졌다"며 "지금은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나무 같은 방화수종 식재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산불로 검게 탄 능선 아래 진달래가 피어 있다. 불에 탄 자리 위로 봄이 올라오고 있다.

산불로 검게 탄 능선 아래 진달래가 피어 있다. 불에 탄 자리 위로 봄이 올라오고 있다.

고운사를 내려오는 길, 낮은 산 능선은 검게 드러나 있었다. 나무는 대부분 뼈대만 남아 있었고, 그 사이 산비탈에는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산불 1년. 검은 산 위로 다시 생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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