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누가 保守를 論하는가?

  • 마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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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29 18:24  |  발행일 2026-04-30
마창훈 / 경북본사 부장

마창훈 / 경북본사 부장

"나는 보수입니다."


기억이 좀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된 이야기다. 총선을 앞둔 어느 봄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중앙의 고위급 인사가 출마를 결심하고 귀향한 그해, 그와 필자가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출향인 모임에서 주목을 받아 본격적으로 정계 입문을 결심한 뒤,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고향을 찾은 정치 지망생과 언론 종사자 간의 만남. 그로부터 이십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 그 자리에서, 그와 나눈 대화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한 인사와 함께 덕담을 나눈 것이 전부였을 법한 그날의 대화가 평범한 일상 중 하나로 남지 않고,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더듬어 보면 이렇다.


첫 만남에서 대화로 이어진 지 10분 남짓 흘렀을까. 그는 자신을 일컬어 보수주의자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TK에 두 발을 딛고 산다고 해서 너나없이 모두가 보수를 지향할 것이라는 생각에 쉽게 한 말 아닐까'라는 의구심에서 강한 반발 심리를 가졌던 것 같다.


그렇게 촉발된 논쟁은 "그렇다면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필자의 원론적인 질문 하나로 짧게 끝을 맺었다. 그가 예기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듯,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정치를 지망하는 유력 인사와의 관계는 호불호를 떠나 유기적으로 흘러야 한다. 따라서 취재원의 말에 집중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도 모자랄 판국에 난데없이 왜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지금에 와서야 당시를 곱씹어 보면 직업관에 충실하지 못했던 혈기 왕성한 젊은 기자의 한심한 처신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살짝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시절 그 기자에게는 본업에 앞서 정말 양보하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 중 하나가 있었다. 보수는 자유나 민주주의를 의미하고, 진보는 곧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공산주의자, 즉 좌파거나 빨갱이라는 왜곡된 등식이 고착화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었다. 특히 시대를 막론하고,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보수주의자가 지켜야 할 최대의 가치와 덕목은 공동체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애족(愛族)'과 '애민(愛民)'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도 한몫했다.


각설하고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보수의 본질은 세월과 연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태도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존중하고 공동체의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며,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진정한 의미의 보수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해방 이후 정치판을 갈라친 지역감정과 이념 논쟁으로, 비좁은 한반도가 남과 북에서 또 동과 서로 사분오열된 지 80년을 훌쩍 넘겼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강산이 8번이나 바뀐 지금도 우리 정치판 구도에는 조그만 변화의 조짐조차 읽히지 않는다. 게다가 선거철만 되면 대구·경북에 출마한 후보 중 열에 아홉이 자칭 보수임을 강조하며 한 표를 호소하는 모습을 아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도매금으로 묶어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출직을 꿈꾸는 선량이라면 최소한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보는 무엇을 주창하는지에 대한 개념 정도는 정립한 후보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창훈/경북본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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