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흔 여전한 의성 고운사, 불자들 온정의 발길에 희망 움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가 지난 3월 발생한 대형 산불로 사찰 내 45개 동 중 25개 동이 잿더미가 됐지만 스님과 신도들이 힘을 모아 복원에 힘쓰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등을 달아둔 고운사 대웅전 모습.산불로 인해 파손된 고운사 범종의 모습.경북 의성 고운사(孤雲寺)로 들어서는 길목엔 따스한 봄기운이 가득했다. 하지만 조금만 눈길을 돌리자 산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산등성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화마의 무서움을 다시금 상기시켰다.지난 3월 발생한 대형 산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사찰 내 총 45개 동 중 보물로 지정된 가운루와 연수전을 비롯해 약사전, 극락전, 우화루, 범종각, 적묵당·연지암, 낙서헌, 최치원문학관 등 25개 동이 잿더미가 됐다. 다행히 대웅보전과 명부전, 나한전, 화엄문화템플관 등 일부 건물만이 기적처럼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화마의 상흔이 뚜렷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찰 주변엔 이미 새싹이 돋고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지옥 같았던 그날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곳이지만, 생명은 다시 태동하고 있었다.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지난 28일 오후, 평일임에도 고운사에는 산불 피해 이후 처음 찾는 발길이 속속 눈에 띄었다. 대웅보전 앞 마당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찰 측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역시 소박하게 행사를 치를 예정이다.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행사는 없다. 평소에도 간소하게 행사를 치렀는데, 올해는 산불 피해가 큰 만큼 더욱 소박하게 치를 계획"이라며 "산불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을 위한 기도와 희생된 이들을 위한 천도제를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등운 스님은 복구 작업 또한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문화재 복구는 정부의 예산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무리하게 급히 서두르는 것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차근차근 복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이어 등운 스님은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경북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불자들이 찾아와 위로해줘 감사하다"며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들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대웅전 한쪽에는 천막으로 만들어진 부처님 오신 날 맞이 등 접수처와 기와불사 접수처가 마련됐다. 신도들은 저마다 고운사 복구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접수처로 향했다.고운사를 방문한 신도 김정혜(39)씨는 "어릴 때 소풍 다니던 곳이 처참하게 무너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겁고 슬프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싶다"며 "매년 초파일마다 등 달고 갔지만 올해는 산불 이재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등을 달았다"고 말했다.또 다른 신도 이정호(65)씨는 "산불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방문했다. 큰 피해를 입었지만, 신도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으니 고운사가 다시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한편 등운 스님은 재난 상황에서 헌신한 공무원들과 소방대원들의 노고에 거듭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산불 진화에 필요한 소방헬기 등 장비 지원을 확대해 향후 비슷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대형 산불로 큰 상처를 입은 고운사는 조용히 회복을 준비하고 있었다. 봄바람 속, 잿더미를 헤치고 피어난 작은 꽃들은 마치 위로의 메시지처럼 따스한 희망을 전하고 있었다. 글=마창훈·정운홍기자 사진=정운홍기자 jwh@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