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아직도 일제 행정구역에 묶인 대구 ‘현풍’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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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6 13:33  |  수정 2025-08-17 19:00  |  발행일 2025-08-17
1914년 조선총독부 행정 통폐합으로 강제 편입…지금까지도 ‘달성군’
곽재우·문석봉 등 항일의 상징, 현풍의 역사 기록과 문화재 복원 시급
대구서 편입된 다른 면들은 모두 복귀…현풍만 제자리 못 찾아
군위군 대구 편입 모델처럼 ‘현풍군’ 단독 기초자치단체 복원 제안
산업·교통 요충지에 역사·문화 브랜드 더하면 지역 발전 시너지 기대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서 바라 본 현풍읍 전경.< 현풍역사바로알기 추진위원회 제공>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서 바라 본 현풍읍 전경.< 현풍역사바로알기 추진위원회 제공>

광복 80주년을 맞아 잃어버린 옛 지명을 되찾기 위해 활동 중인 유판호 현풍역사바로알기 추진위원장이 대구 달성군 현풍읍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펜을 손에 쥔 채 역사적 사실과 복원 필요성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강승규 기자

광복 80주년을 맞아 잃어버린 옛 지명을 되찾기 위해 활동 중인 유판호 현풍역사바로알기 추진위원장이 대구 달성군 현풍읍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펜을 손에 쥔 채 역사적 사실과 복원 필요성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강승규 기자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하지만 대구 달성군 현풍읍은 여전히 일제가 만든 행정구역 틀 속에 갇혀 있다. 1천500년 역사를 품은 옛 현풍군은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대구 외곽 12개 면과 함께 경북 달성군에 강제 편입됐다. 이후 대구에서 편입된 면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현풍군만 아직 '대구시 달성군'이라는 이름 속에 묻혀 있다.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고자 동분서주 하는 유판호 현풍역사바로알기 추진위원장을 만나 자세한 상황을 들어봤다.


▶현풍은 어떤 곳인가.


"현풍은 신라 경덕왕 35년(776) '현효현(玄驍縣)'으로 개명된 후 조선시대 '현풍현', 1895년 '현풍군'으로 승격되기까지 1천500년 넘게 이어진 고읍이다. 삼국통일기엔 전국 10정 중 가장 큰 삼량화정이 서산성에 있었다. 깃발 색이 검은색(玄)이라 '현(玄)' 자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역사적으로 구국·충효의 상징이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의 본향이었고, 정유재란 황석산성 전투에선 곽준 현감이 "이 성은 내가 죽을 곳"이라며 끝까지 싸우다 순절했다. 두 아들 곽이상·곽이중도 함께 전사했고, 며느리 거창 신씨는 시아버지·남편·시동생 죽음을 뒤따라 자결했다. 선조는 이 집안을 '일문삼강(一門三綱)'이라 정려했고, 오늘날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에 그 충절이 남아 있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엔 문석봉 의병장이 일본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현풍은 일제 입장에선 반드시 눌러야 할 항일 거점이었다."


▶일제는 왜 현풍군을 없앴나.


"1910년 국권을 빼앗은 일제는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고자 행정구역 대수술을 단행했다. 항일 기운이 강한 현풍을 약화시키려면 독립된 군의 형태를 없애야 했다. 그래서 1914년 현풍군 전체와 대구 외곽 12개 면을 묶어 경북 '달성군'을 신설했다. 군청은 대구 도심, 지금의 대구백화점 옛 본점 자리에 뒀다. 교통이 불편한 시대에 하빈·구지·공산·가창 등 먼 지역은 군청에 가려면 하루가 꼬박 걸렸다. 행정 효율은커녕 군민 불편만 키운 통합이었다."


▶대구에서 편입된 면들은 모두 돌아갔다.


"대구에서 달성군에 편입된 12개 면 중 7개 면은 1928년부터 4차례에 걸쳐 대구로 복귀했다. 나머지 5개 면도 1995년 대구시에 편입됐다. 대구의 뿌리인 면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근데 유독 현풍군 권역만은 광복 80년이 된 지금까지 제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통합 이후 어떤 피해가 있었나.


"첫째 역사 왜곡이다. 달성군 뿌리는 대구와 현풍 모두다. 반면 '대구의 뿌리 달성' '충효의 고장 달성' 같은 간행물은 모두 대구의 뿌리만 강조한다. 현풍의 맥은 공식 기록에서 끊겼다. 둘째, 문화재·상징물 변질이다. 현풍사직단이 '달성사직단'으로, 현풍향교 유도회가 '달성지부'로 바뀌었다. 500년간 현감을 지낸 선정비 42기도 군청 앞으로 이전됐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현풍군청, 동헌, 객사, 앙풍루·조양각 등이 사라졌고, 원호루만이 이전 복원됐다. 셋째, 정체성 단절이다. 젊은 세대는 현풍군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대구의 뿌리 달성'이라는 구호가 굳어져, 현풍이 달성의 뿌리라는 사실이 가려졌다."


▶현풍군 복원을 위한 해법을 제안한다면.


"군위군의 대구 편입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 광역지자체는 대구시로 두되, 지자체는 '현풍군'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일제가 인위적으로 만든 달성군 체제가 해소되고, 통합 이전의 정상 구조로 돌아갈 수 있다. 병행해야 할 사업도 많다. △현풍읍지 발간 △문화재 원형 복원 △역사공원·기념관 조성 △현풍 역사와 문화 전시 △현풍 고유 축제 발굴 △팔장군 분묘지 발굴 △삼량화정 최고 책임자와 국보 138호 금관 연관성 규명 등도 추진해야 한다."


▶현풍 복원이 지역 발전에도 도움 될까.


"현풍은 이미 국가산단, 달성 1·2차 산단, 테크노폴리스, DGIST, 국립과학관 등 산업·연구·교육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서부관문IC를 비롯해 중부내륙·광주고속도로, 국도 5호선이 교차하는 교통 요충지다. 역사·문화 브랜드까지 회복되면 관광·산업·교육이 동반 성장하는 시너지가 난다. 달성군의 균형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지금 인구는 북부(다사·화원)에, 군청·기관·기반시설은 남부(현풍권)에 몰려 군 전체가 하나의 구심점을 찾지 못한다. 현풍 복원은 이 균형을 맞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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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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