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직구 핵직구] 한동훈과 ‘당게’ 사건

  • 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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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03 06:00  |  수정 2025-12-02 20:31  |  발행일 2025-12-02
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12월3일은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사건이 발생한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밤 외출에서 돌아온 귀가 직후 한 친구로부터 "계엄이 발동됐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TV를 켜자 시뻘겋게 상기된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이 등장했고, 그의 입에서 '계엄'이란 두 글자가 튀어나오자 순간 정신이 들었다. 입에서 '미친X'이란 욕설이 튀어나왔다. TV는 곧이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정문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이미 정문을 봉쇄하고 있었고, 시민들이 몰려가 항의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놀란 아내가 "우리도 여의도로 가야지"라고 말했지만, 필자는 "유혈사태가 날지 어떻게 아느냐"며 진정시켰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45년 전의 5·17 비상계엄 사태가 악몽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안절부절 가슴을 졸이며 TV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마치 해피엔딩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성사된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에 박수를 보냈다. 이어 정부의 계엄해제 발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까지, 길고도 긴 밤을 하얗게 새웠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이 이처럼 12·3 계엄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날 가장 눈에 띈 인물은 한동훈 당시 국민의 힘 당대표였다. 그는 윤석열이 '계엄선포'를 외친 지 5분 만에 계엄반대 메시지를 발표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다. 국민과 함께 막겠다"였다. 집권당 대표가 밝힌 이 공개 메시지로 계엄사태는 반전의 흐름을 타는 계기가 된다. 12·3 계엄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과 군인들의 소극적 불복종이라면, 분명 한동훈의 이 메시지는 여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한동훈은 첫 등장때만 해도 모두에게 호감이 가는 정치인은 아니었다. 윤석열 덕에 법무장관으로 벼락출세했고, 또 '낙하산'으로 당대표를 거머쥐었다. 처음엔 윤석열 아바타나 후계자쯤으로 여겨겼다.


과거 수사검사시절 대기업 총수들을 집요하게 몰아붙여 구속시키고, 문재인 정부 시절엔 보수인사들을 궤멸시켰던 그의 전력과 악평도 선입견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계엄 당일 한동훈의 행동은 올바르고 용감했다. 마치 1991년 소련의 공산당 강경파들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몰아내려고 일으킨 '8월 쿠데타' 때 의사당 건물을 봉쇄한 탱크 위에 올라가 저항을 촉구한 보리스 옐친이 연상될 만했다. 그때야 비로소 한동훈이 민주적 정치 지도자로서 자격을 갖추었다는 평가가 나왔을 것이다.


한동훈은 최근 대장동 항소포기 사건과 론스타 재판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그의 지나친 엘리트주의에 고개를 돌리던 사람들도 이런 성과들에는 수긍하고 칭찬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 한동훈 전 대표에게 납득하지 못하는 그림자가 있다. 바로 '당원 게시판' 사건이다. 지난해 11월 당의 당원게시판에 윤석열과 김건희에 대한 비난글이 대거 올라오면서, 이 중 일부에 한동훈 당시 대표와 그 가족이 개입했다는 의혹과 논란이다. 여기에 한동훈 측은 분명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민의 힘 당지도부가 1년 전 사건을 끄집어내 다시 조사에 착수하자 한동훈은 "계엄의 바다를 건너 미래로 가야할 중요한 시기에 당을 퇴행시키는 시도가 안타깝다"고만 밝혔다. 이런 소극적인 대처는 결국 자신이나 가족들이 연루됐음을 시인하고 있는 것으로 읽힐 뿐이다.


물론 계엄에 대한 사과 문제로 궁지에 몰린 장동혁 지도부가 한동훈에게 정치적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한동훈의 많은 공(功)이 '당게' 사건이란 작은 과(過)로 덮이는 것이 현실인 만큼, 가족들의 개입이 있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큰 정치인다운 자세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현 지도부에 비해 더욱 빛나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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