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서 제명된 한동훈 전 대표가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끝내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제명을 결정하면서 '보수 분열'에 대한 중앙 정치권의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최대 지분을 가진 TK(대구경북)의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하다. 3년여 전 한 전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TK를 방문했을 당시 시도민들이 뜨거운 환영을 보내며 사실상 정치무대로 이끌었던 점을 상기하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사실 TK가 지난 10여년간 유력한 대권주자나 혁신리더가 등장할 때마다 그들을 키우기보다는 '제거'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영남일보는 보수진영의 고질병인 '뺄셈 정치'가 왜 하필 보수의 본산인 TK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리더십의 진공 상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진단한다.
1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TK 정치권에서 한 전 대표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하루 빨리 제명을 추진했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으로 풀었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경북에 지역구를 둔 A의원은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전 대표가 이렇게까지 당을 압박하고 공격하는 게 맞냐"고 했고, 대구에 지역구를 둔 B의원도 "한 전 대표가 우선적으로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며 제명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다른 의원은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대화로 풀어야 한다"거나 "결정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강성 당원들은 제명을 원하지만 6월 지방선거를 생각했을 때 보수가 분열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 20일 영남일보와 인터뷰에서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등에 이야기하고 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정치권에선 이번 한 전 대표 제명 사태와 관련해 '기시감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2015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외치다 '배신자'로 낙인 찍혀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난 유승민 전 의원, 2022년 대선과 지선을 승리로 이끌고도 '양두구육' 발언 논란 끝에 중징계와 탈당으로 내몰린 이준석 당시 대표, 그리고 이번 한 전 대표까지 TK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던 인사들의 퇴장이 묘한 동질감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 같은 TK정서의 기저에는 여전히 '탄핵의 상처'가 깊게 패여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지역정서는 배신에 대한 병적인 공포를 갖게 되면서 '배신자 트라우마'라는 거대한 족쇄가 채워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평론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를 쇄신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고, 바른정당 분당 등 여러 정치적 시도들이 대부분 실패하다 보니 '강성'의 논리가 정당화된 측면이 있다"면서 "결국 보수진영에서 충성은 절대적 가치가 됐고 반발할 경우 축출도 일상화하는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이는 결국 TK가 요구하는 정치적 지도자는 '혁신가'가 아닌, 체제에 순응하는 '관리자'에 머물러 있음을 방증한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언젠가부터 TK에서 우리 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적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한 전 대표의 제명 역시 그의 과오보다는 주류세력에 반기를 들었다는 '태도'가 지역정서의 역린을 건드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