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이강덕 전 포항시장. 이 전 시장 제공
학창시절 이강덕 전 포항시장(가장 오른쪽). 이 전 시장 제ㅗㅇ
안녕하세요. 포항 시민과 함께 걸어온 이강덕입니다.
잠시 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면 소재지에서도 7~8㎞ 떨어진 포항 장기면(당시 영일군) 시골 마을에서 매일 비포장도로 4㎞를 걸어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사계절이 바뀌는 들길을 걸으며 낭만을 배우기도 했지만, 1970년대 초반의 시골은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당시는 의료보험도 제대로 없었고 의사도 부족했습니다. 병원비 몇 만 원이 없어서 한창인 30~40대 나이에 수술 한 번 못 받아보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이웃들이 참 많았습니다. 가장이 죽고, 엄마가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아이들의 삶은 엉망이 되곤 했습니다. 그 가난과 죽음 앞에서 느꼈던 짙은 연민과 안타까움. 어쩌면 제 마음속 공직에 대한 씨앗은,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돕고 싶다는 그 절박한 고민에서부터 싹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는 "고등학교까지만 시켜줄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야속하다기보단, 제 스스로 길을 개척하길 바라셨던 투박한 응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웃을 돕고 싶다는 고민과 학비까지 장학금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생각했기에 '경찰대 1기' 입학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양경찰청장 재임 당시 이강덕 전 포항시장. 영남일보DB
◆ 제복의 무게, 그리고 지향점
경찰에 입문한 뒤 기획·정책 부서에 오래 있었지만, 제 시선은 늘 '현장'과 '생명'을 향해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범죄 앞에서 경찰의 대응은 윗선 보고가 아니라 '최우선적인 생명 보호'가 되어야 했습니다.
부산경찰청장 시절 발생한 김길태 사건은 뼈아픈 교훈이었습니다. 김길태 사건은 2010년 부산 사상구에서 꽃다운 예비 중학생이 납치·성폭력·살해된 사건으로 당시 사건이 발생한데에는 폐가가 그대로 방치되는 등 주변환경이 좋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인구 500만이 넘는 도시가 타 시도보다 CC(폐쇄회로)TV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대응에 나섰습니다. 당시 부산시장과 시의회 등을 설득해 사상구 등 서민 거주 지역에 대대적으로 CCTV를 확충하고, 상황실 기능을 전면 개조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단순 당직이 아닌 상황실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늘 근무하게 해 조직의 긴장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현장에서 즉각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치안총감에 오른 뒤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해양경찰청장에 부임했을 때 저는 조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겠단 생각에 다시 한 번 신발끈을 조여맸습니다.
당시 제가 조직에 가장 먼저 던진 화두는 단순했습니다. "우리의 지향점은 육지가 아니라 바다"라는 것입니다. 저부터 부임 직후 배를 타고 인천에서 이어도를 거쳐 속초까지 바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문화도 많이 바꿨습니다. 해양경찰청 관공서는 육지가 아니라 바다에 붙어 있어야 하고, 조직원들의 진급도 육지 사무실이 아니라 거친 파도와 싸우는 함정 직원들이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체력 검정에서 쓸데없는 팔굽혀펴기를 없애고, 바다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를 보는 수영 테스트로 바꿨습니다. 바다 원숭이라 불리는 일본의 인명구조대 '우미자루'와 미국의 '가디언'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직원들에게는 "바다에 빠진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곤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제복 입은 자의 숙명이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도발에는 즉각 함정과 비행기를 띄워 단호히 경고하며 해양 영토를 지켰고, 아프리카 해적에게 납치된 국민을 구하기 위해 지구 끝까지 쫓아가는 집요함을 주문했습니다.
이강덕 전 포항 경찰 초임 시절 모습. 이 전 시장 제공
◆ 무너진 몸, 다시 일어선 맨발의 시간
2014년 고향의 부름을 받고 포항시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지진과 태풍, 철강 산업의 위기 등 포항은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정말 정신없이 현안과 씨름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2023년 제게 전립선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엔 화도 나고 좌절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되뇌었습니다. '시장이라는 자리는 시민을 위해 쓰이는 공기(公器)이자 도구인데, 내가 내 몸 관리를 엉망으로 해서 시민들에게 차질을 빚게 했구나'라고요.
독하게 술과 담배를 끊었습니다.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고, 집 근처 산과 저수지 주변을 맨발로 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강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투병의 시간은 저를 꺾은 것이 아니라, 제 삶과 책임감을 더욱 단단하게 벼려준 담금질의 시간이었습니다. 오히려 이 시련 덕분에 제 주변을, 그리고 아픈 이웃들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경북에 암 환자 동호회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절망의 끝에서 맨발로 땅을 디디며 느꼈던 흙의 온기처럼, 이제는 제가 도민들에게 그런 따뜻하고 든든한 온기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한 번 쓰러져 본 사람만이 누군가를 부축해 줄 수 있는 법이니까요.
2014년 이강덕 당시 포항시장(앞줄 왼쪽 첫째)이 취임 후 처음으로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는 습. 영남일보DB
◆ 치밀하게, 끈질기게…경북의 미래를 향해
사실 최근 대구·경북 통합 등 굵직한 현안들을 보며 깊은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깊이 공부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타 지역이 얼마나 내밀하고 체계적으로 법안을 준비했는지 보십시오. 반면 우리는 너무 산만한 것은 물론 치밀하지도 못합니다. 도정(道政)을, 시민의 삶을 결정짓는 일을 건성으로 해선 안 됩니다. 시도민들의 민생이 걸린 엄중한 문제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늘날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배곯는 국민을 향한 절절한 헌신과 더불어 미래를 내다보는 '치밀한 혜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를 깔고 제철소를 짓기 위해 수없이 현장을 오가며 감독했던 그 집요함이 오늘날의 구미와 포항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뼈아프게도 '정보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놓쳤고, 그 결과 지금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AI와 로봇'이라는 또 한 번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경북이 가진 풍부한 전력망(원전)을 활용해 도내 전체에 'AI 고속도로'를 깔아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그 인프라 위에 로봇 산업을 얹어 경북의 제조업 전반을 완전히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다른 지역은 전기가 부족해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입니다. 치밀하게 연구하고 오랫동안 준비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걷던 시골 소년의 눈에 맺혔던 가난한 이웃들의 눈물, 거친 바다에서 배운 제복의 희생정신, 그리고 포항의 위기와 제 개인의 병마를 극복하며 얻은 단단함. 이 모든 궤적은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습니다.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소중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정치. 치밀하게 미래를 설계하는 리더십. 그 길을 향해, 저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맵니다.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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