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부터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구미시청, 경주시청, 상주시청, 포항시청, 안동시청 전경. 이미지=챗GPT
최근 경북도내 군(郡) 단위 지자체들이 행정력 부재로 한 해 예산의 30% 안팎을 고스란히 묵히는 실태(영남일보 6월17일자 5면 보도)가 드러났다. 치밀한 검토 없이 무작정 국·도비부터 따내고 보는 '묻지마식 공모사업' 유치와 텅 빈 시설물을 방치하는 '사후관리 부실'이 낳은 결과였다.
예산 규모가 훨씬 크고 인프라가 갖춰진 시(市) 단위 지자체들의 살림살이는 어떨까.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 단위 지자체들이 묵혀둔 잉여금의 금액 규모는 최근 5년간 19조 원에 가까웠다. 일부 지자체는 막대한 예산을 쓰지 못해 금고에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한편에서는 수천억 원의 빚(지방채)을 안고 있는 기이한 행태도 보였다.
◆ 경북 10개 시 5년간 18조 원 묵혀…"이월액 많기 때문"
영남일보가 '최근 5개 연도(2020~2024년) 경북 22개 시·군 세입·세출 결산자료'를 전수 분석한 결과, 도내 10개 시(市) 단위 지자체가 지난 5년간 다 쓰지 못하고 남긴 결산상 잉여금(이월액, 불용액, 보조금 반납액 등) 총액은 무려 18조7천741억 원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12개 군(郡) 단위 지자체의 잉여금 누적액(12조1천246억 원)을 6조 6천억 원 이상 훌쩍 웃도는 규모다.
지자체들은 막대한 잉여금에 대해 "대규모 SOC(토목·건축) 사업의 특성상 해를 넘기는 '이월액'이 많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실제로 잉여금은 크게 △다음해로 넘기는 이월액 △사업이 취소되거나 예산이 남아 쓰지 않은 불용액(집행잔액) △국·도비를 제때 쓰지 못해 돌려주는 보조금 반납액으로 나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월액 비중이 높다는 변명도 결국 '예산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한 결과라고 꼬집는다.
장기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당해 연도에 실제 집행 가능한 금액만 쪼개서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데, 일단 예산부터 몽땅 잡아두고 관행적으로 이월시키는 행정 편의주의가 잉여금 덩치를 키운다는 것이다. 여기에 애초에 수요를 잘못 예측해 남긴 불용액과 짝을 맞출 시비(市費)가 부족해 돌려주는 보조금 반납액은 명백한 예산 운용 실패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 수요예측·시비 매칭 고려 없는 묻지마식 기획이 문제
그래프=Gemini
5년 누적 기준으로 결산상 잉여금이 가장 많은 지자체는 포항시(2조9천617억 원)였다. 이어 경주시(2조2천725억 원), 안동시(2조2천541억 원), 구미시(2조1천6억 원), 상주시(1조9천499억 원) 순으로 나타났다. 상위 5개 시가 5년 동안 쓰지 못한 예산만 합쳐도 11조5천389억 원을 훌쩍 넘긴다.
포항시청 예산법무과 김수정 예산팀장은 "포항시 전체 예산 규모에 비하면 묶여있는 매몰 비용이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계획적으로 집행되지 않아 이월 예산액이 많은 부분은 관리가 필요한 것이 맞다. 이월액을 줄이고 (집행률을) 맞추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수조 원대 잉여금이 쌓이는 구조적 모순 속에, 일부 지자체는 막대한 예산을 쓰지 못해 금고에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한편에서는 수천억 원의 빚(지방채)을 안고 있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2024년 말 기준 지방채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기초지자체의 평균 채무비율(예산 대비 채무)은 1.43%이다. 그러나 5년 누적 잉여금 1위(2.9조 원)를 기록한 포항시의 채무 잔액은 2천623억 원으로, 채무비율이 8.51%에 달해 전국 기초 평균의 약 6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 누적 잉여금 4위(2.1조 원)인 구미시 역시 1천279억 원(채무비율 4.66%)의 채무를 안고 있었다.
더욱이 경북 도내 22개 시·군(기초) 전체의 채무액 4천591억 원 가운데, 포항과 구미 두 도시의 채무액 합계(3천902억 원)가 전체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빚이 집중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엇박자 재정 운용에 대해 지자체 집행부는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과 대규모 인프라 사업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김원대 구미시청 예산재정팀장은 "예산을 치밀하게 예측하더라도 구미나 포항 같은 산업도시의 경우 산업적 특성과 경기 흐름에 따라 불가피하게 예산이 초과되거나 이월되는 부분이 발생한다"고 항변했다.
막대한 잉여금을 두고도 지방채를 발행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세대 간 비용 분담'과 '재정건전성 관리' 논리를 내세웠다.
김 팀장은 "당장 예산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여력도 일부 있지만, 장기 인프라 사업은 한 해에 예산을 전액 투입하기보다 혜택을 함께 누릴 미래 세대와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이어 "2021년까지만 해도 2천억 원이 넘었던 지방채가 매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전체적인 재정건전성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시급하고 꼭 필요한 사업에 한해서만 지방채를 운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항시 역시 '미래 먹거리'와 '인프라 투자'를 강조하며 지방채 발행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김수정 포항시 예산팀장은 "채무는 장기 미집행 공원에 대한 보상 및 조성과 2011년부터 추진해 온 영일만 일반산업단지 조성 등 산업 다변화 사업에 투입된 것"이라며 "포항에 꼭 필요한 미래 산업 먹거리를 위한 것이지, 소모성 현금 복지를 위해 발행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 포항시의 지방채 규모는 시에서 충분히 관리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집행부의 '미래 투자' 및 '세대 간 비용 분담' 논리는 의회에서 곧바로 민낯을 드러냈다.
포항시의회 김종익 의원은 지난해 12월 제327회 제1차 본회의 5분 발언을 통해 "2020년 716억 원이던 지방채 잔액이 2025년 말 2천898억 원으로 무려 400%나 폭증했다"며 집행부의 방만한 채무 관리를 꼬집었다.
이어 "당장 2026년도 지방채 원리금 상환액만 265억 원에 이르는 등 원리금 상환 때문에 가용 재원이 더욱 부족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게 됐다"며 "이로 인한 막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가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잉여금을 남겨두고도 굳이 외부에서 고금리 빚을 끌어와 매년 세금으로 이자를 부담하는 것은, 미래 세대와 합리적으로 '비용'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이자 상환 부담'만 전가하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경북도 공모사업으로 추진되는 '구미컨벤션센터 주차타워 조성 사업'은 대표적인 세금 가중 사례로 꼽힌다. 이지연 구미시의원은 지난 3월 열린 제294회 제1차 기획행정위원회에서 총 133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시비 부담률이 절반(약 50%)에 육박하는 데다, 14억 원의 부지 매입비는 별도로 구미시가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조 원대의 잉여금을 금고에 묶어둔 탓에 가용 재원이 부족해져 매년 수천억 원대 빚(지방채)의 이자를 무는 처지임에도, 주차장 하나를 짓기 위해 또다시 막대한 시비를 쏟아부어야 하는 행정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자체가 빚을 유지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세대 간 비용 분담' 논리에 대해 하혜수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현세대가 낸 조세만으로 충당하면 편익 수혜자와 비용 부담자 간에 괴리가 생겨 이를 일치시키기 위해 지방채를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역으로 지방채를 과연 어떤 사업에 지출하기 위해 냈는지 세세하게 따져봐야 한다. 수천억 원의 지방채가 미래 세대를 위한 필수 인프라에 쓰였는지 그 내역을 철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 멀쩡한 도로 엎고 뜬구름 민자 유치…의회에서도 질타
5년 누적 기준으로 도내 최대 잉여금을 기록한 포항시의 경우 주먹구구식 사업 추진과 예산 낭비 정황이 시의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열린 포항시의회 제325회 제1차 건설도시위원회에서 김은주 의원은 포항시의 '흥해 특별도시재생 사업'과 관련, 무리한 예산 편성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 김 의원은 "사전 절차를 굉장히 꼼수와 편법을 써서 이행하지 않고, 이를 근거로 6개 사업에 120억 원의 예산을 달라고 들어온 것은 부적절하다"며 집행부의 기획을 직격했다.
멀쩡한 인프라를 엎고 강행하는 중복 투자 문제도 꼬집었다. 김 의원은 "지진 이후 이미 2천900억 원이 투입됐음에도 도로를 정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기존 도로를 없애고 광장과 주차장을 또 만들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팔리지 않는 땅을 팔아준다는 의혹을 살 수 있다"며 특정 지역에 편중된 무분별한 예산 낭비와 사업 추진 관행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김은주 의원은 최근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언급됐던 120억원이 소요되는 6개 사업은 결국 무산됐다"고 밝혔다.
'실현 불투명한 매칭 사업'의 실체도 지적됐다. 양윤제, 김하영 의원은 지난해 9월 열린 건설도시위원회에서 포항시가 추진 중인 '복합 해양레저관광도시' 사업을 겨냥해 "국비 2천억 원을 받아오며 민간 투자 1조 1천억 원을 유치하겠다지만, 정작 민간이 투자를 포기해도 이를 강제할 장치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수조 원대 잉여금이 쌓이는 구조적 한계를 두고, 무리한 재원 확보 관행과 엉성한 기획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포항시의회 김종익 의원은 지난해 12월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사전에 재정 여건을 면밀히 분석하지 않은 채 기관들의 이해에 따라 무턱대고 사업을 따오는 경우가 이어지면서 우리 시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며 시비 매칭 능력을 외면한 집행부의 묻지마식 행정을 직격했다.
구미시의회 김영길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장기간 소요되는 사업인 경우에는 행정적 사전절차를 충실히 이행해 그해 꼭 필요한 예산만 계상할 수 있어야 하며 기 확보된 예산은 사업계획을 철저히 이행해 이월 또는 불용되지 않도록 예산의 효율적 집행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이월·불용액을 남기는 관행에 일침을 가했다. 이어 "공모사업의 경우 집행부에서는 공모사업이 우리 시에 꼭 필요한 사업인지 사전에 면밀히 검토한 후에 공모에 임해야 한다"면서 "국·도비 보조사업은 국·도비 비율을 높여 과도한 시비가 매칭되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안동시의회 여주희 위원은 지난해 문화복지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집행률이 68%에 그친 사업을 겨냥해 "우리가 계획단계에서부터 프로그램 운영 규모와 수요예측이 적정하게 이뤄졌는지 또는 집행과정에서 프로그램이 취소나 축소되지 않았는지,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며 부실한 수요예측과 허술한 예산관리를 꼬집었다.
학계에서도 지자체의 엇박자 재정 운용과 상습적인 잉여금 발생에 대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꼼꼼한 감시를 촉구하고 있다.
하혜수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당초 예측했던 사업 수요가 사라져 지출을 다 하지 못해 잉여금이 생기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일단 따고 보자'는 식의 무리한 보조사업 유치"라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매칭사업을 따오고 보니 정작 지역에 참여할 기업도 없고 사업자도 정하지 못해 예산을 반납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고보조금은 다시 올려주면(반납하면) 그만이지만, 짝을 맞추려던 지방비는 결국 잉여금으로 남아버린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자체 실정과 맞지도 않는 사업에 불요불급하게 지출하려다 묶여버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이렇게 막대한 예산이 남도록 방치해서는 안 됐다"고 강조했다.
김지혜
현상의 이면을 짚어내는 지혜로운 기자가 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