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우미건설, 서한건설, HS화성 본사 전경. 각 건설사 제공
대구 건설업계가 성장 한계성에 봉착했다. 십수년째 전국 시공능력평가(시평) 순위에서 50위 전후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일찍이 수도권과 전국으로 사업 무대를 넓혀 시평 20위권 내에 안착한 광주 건설사와 달리 대구 건설사들은 높은 지역 의존도로 지역 경기 악화의 타격을 그대로 받고 있다. 이로 인한 지역 건설업의 마이너스 성장은 대구 전체 지역내총생산(GRDP) 역성장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수도권 및 역외 시장 공략을 통한 체질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980~90년대만 해도 대구 건설업계는 '빅3'로 불리던 청구·우방·보성 3사를 바탕으로 전국을 호령하기도 했다. 연극인 박정자가 출연한 광고 "우방에서 살아요" 광고문구는 당시 대구 건설사의 위상을 드러낸 일화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지역 경제가 건설산업의 상당한 전후방 효과를 받는다는 점에서 대구 주요 건설사의 성장 한계성은 아쉬운 대목이다.
대구와 전남광주에 본사를 둔 주요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순위 추이
◆ 박스권 갇힌 대구 건설사
영남일보는 국토교통부가 매년 발표하는 종합건설사 시공능력평가 순위를 지난 20년 간 전수 추적했다. 대상은 전국 100위 내 중견 건설사로, 대구와 전남·광주에 본사를 둔 지방 건설사다.
20년 간의 순위 추이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대구 건설사의 성장성이 정체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대구는 100위권 내 진입한 건설사 숫자와 위치에서 모두 광주에 크게 뒤졌다. '2026년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에 포함된 기업은 대구 4곳, 광주 7곳이다. 대구 중견 건설사 층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구에서는 HS화성(구 화성산업) 48위, 서한 49위, 태왕이앤씨 67위, HXD화성개발 88위다. HS화성이 줄곧 대구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국적인 위치에서는 한계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HS화성은 2015년까지 40~50위대를 차지하다, 2016년 31위까지 잠시 올랐다. 하지만 2020년 다시 40위권으로 밀린 뒤 40위권을 유지하는 중이다.
2003년 법정관리를 졸업한 서한은 2013년 100위 내 진입하며 성큼 올랐고 2017년 46위로 50위권에 들어선 뒤에는 등락을 반복하며 올해 49위로 마감했다. 태왕이앤씨의 경우 유동성 악화로 기업회생신청을 했지만 2011년 594위에서 시작해 2018년 91위, 2025년에는 최고 성적인 54위까지 오른 뒤 올해 67위로 떨어졌다. 최근 10년 간 대구 중견 건설사들이 50위 전후에 머물러 있는 상태인 것.
반면 광주 건설사의 보폭은 달랐다. 전국 20위 내에만 2개 건설사가 이름을 올렸다. 2007년 174위이던 제일건설은 2014년 100위에 진입한 뒤 거침없이 성장하며 2024년 15위까지 올라섰다. 올해는 17위다. 광주에 본사를 둔 우미건설도 2012년 50위권 진입 후 상승세를 나타내며 올해 18위에 안착했다. 시평 40위의 대광건영은 2007년 405위에 머물렀던 건설사이고, 라인건설(42위) 역시 최근 10년 사이 급성장해 대구 건설사 규모를 뛰어넘었다.
◆ 대구와 광주, 무엇이 달랐나
불과 20년 전 시공능력평가액 1천억원에 미치지 못하던 제일건설은 올해 2조7천억원을 넘겼다. 이처럼 평가액 1조원을 넘는 건설사가 광주에서만 4곳이다. 이들 건설사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내리 1조를 성큼 넘어섰다. 3조원에 육박하던 해도 있었다. 반면 대구는 HS화성이 2017~2019년, 2022년 1조원을 소폭 넘겼을 뿐이다.
'조' 단위 평가액은 본사를 둔 지역 내 사업만으로는 도달하기 쉽지 않은 규모다. 광주 건설사의 비약적 성장 배경은 사업 무대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20년 간 공개된 공사 계약현황에서 대구와 광주 주요 건설사의 경영 차이점은 뚜렷하게 확인됐다.
영남일보는 건설사 매출과 영업이익 기반이 되는 계약 건수와 규모를 공시 시점 기준으로 지난 20년 간의 사업보고서와 비상장 건설사는 감사보고서의 주석을 통해 전수조사했다.
제일·우미건설의 경우 2008년부터 2025년 사이 계약한 공사 가운데 전남·광주지역 내 비중은 10% 후반대에 그쳤다. 70% 후반대에서 80%가 본사 소재지 밖의 계약건으로, 일찌감치 사업 무대를 전국으로 넓혔다고 해석된다. 이 기간 제일·우미건설의 대구경북 내 공사 계약건도 31건에 달했다. 영호남이 경제·사회적 교류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남권으로의 진출도 빨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광건영은 지난해 4천415억원 규모의 경북 구미산단 공사 계약을 따냈고, 금호건설은 3천234억원의 구미천연가스발전건설 공사를 수주했다. 제일건설은 대구 달성군 테크노폴리스와 대곡지구 등에서 공동주택인 제일풍경채를 잇따라 공급했다.
제일건설은 경기와 인천, 대구, 세종에서 우미건설은 경기, 전북, 경북, 충북 등에서 고르게 사업을 진행했다. 사실상 전국을 무대로 한 수주활동에서 성과를 나타냈다는 평가다.
지역(전남·광주) 밖 공사 계약의 약 60%는 사업 성장성이 높은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집중됐다. 실제로 제일건설은 미래 먹거리를 찾아 호남권을 벗어난 사업에 집중했고, 이를 위해 10년 전에 이미 영업과 사업 관련부서 등 본사 인력의 60%를 서울에 배치해 수도권 시장에 대응하는 중이다.
제일건설 기획홍보실 백현철 매니저는 "한해 분양사업을 6건까지 할 만큼 공영택지를 중심으로 주택공급에 적극 뛰어들었고, 사업 실적이 하나 둘 쌓이고 공동주택의 입주민 만족도가 커지면서 전국적으로 회사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며 사업을 더 확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구 건설사의 역외 진출은 이같은 광주 건설사와 비교하면 한발 늦었다는 평가다.
대구 상위 2개사(HS화성·서한)의 2010년부터 2026년 반기보고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732건 공사 계약 가운데 대구·경북 외의 계약은 255건, 약 34%에 그쳤다. 대구·경북 사업이 65%로, 두 건설사의 사업 무대는 대구·경북에 집중됐다. 그 영향으로 지역 부동산경기 사이클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구조적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HS화성의 이 기간 지역 밖 사업 비중은 36.6%, 서한은 32.5% 수준이다. 특히 광주지역 계약은 5건에 불과했다. 주택사업의 경우 HS화성은 단 한 건도 없을 정도다. 호남권 시장 진출에 소극적이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HS화성은 수도권 사업 확장을 위해 지난해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기존 서울지사를 주택영업본부로 격상해 영업력을 강화했고 이후 서울경기에서 성과를 내는 중이다. 2024년 11월 서울 중랑구 면목동을 시작으로 이번달 계약이 이뤄진 서울 강남구 비취타운까지 서울경기도에서 10건의 수주를 확보했다. 서한 역시 이번달 전남광주 양산센트럴 지역주택조합 주상복합 공사를 수주하는 등 역외 사업을 넓혀가는 중이다.
HS화성 최혁 전략실장은 "우리 회사가 (시평 순위) 박스권에 갇혀 있는 건 사실이다. 지역 사업 비중이 큰 만큼 대구·경북 부동산경기 침체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면서 "호남 건설사와 비교하면 과거 보수적 안정적 경영을 해왔고, 2~3년전부터는 서울 정비사업에 적극 참여해 강남·서초구 등에서 수주 잔고가 쌓이고 있다. 중랑구 면목동에서도 대규모 주택타운을 건설하게 돼 서울에서 인지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정비사업 특성상 수주에서 실제 매출 반영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2028년 이후 박스권을 탈출해 시평 순위도 30위권으로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대구 경제 건설산업 침체 연계돼
전국·대구 건설업 부가가치 및 성장률 <출처 대구정책연구원>
문제는 이같은 대구 건설업계의 성장 정체가 대구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역 경제가 건설산업의 상당한 전후방 효과를 받고 있는만큼 건설경기 침체는 곧 대구 지역내총생산 성장률하락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 건설사들은 그동안 사업 무대를 대구·경북권에 집중해 왔기 때문에 지역 부동산 경기 사이클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이러한 여파가 대구 경제 전반으로 이어졌고 이는 지표로도 확인되고 있다. 지역 건설사의 역외 지역 사업 확장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 중 하나다.
대구 건설업의 부가가치는 2022년 4조1천50억원이던 것이 최근 3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2025년 2조5천922억원으로 감소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은 -1.3%로 전년(-0.8%)에 이어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다.
대구 실질 성장률을 끌어내린 첫 요인은 건설업 부진으로 꼽힌다. 건설업 부가가치가 급감한 지난해 대구 건설업 성장률은 -17.9%, 2024년에는 -21.4%를 각각 나타났다. 이 기간은 미분양 등으로 대구 부동산시장 침체가 급격하게 이뤄지던 시기로, 지역 부동산경기가 건설업 전반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결과로 해석된다. 전국 건설업은 2024년에는 -3.0%, 2025년은 -9.3%로 대구와 차이를 보였다.
특히 2024년 대구 건설업의 지역 경제 성장률 기여도가 -1.4%포인트(p)로 분석된 것을 고려하면, 건설업에서의 마이너스가 대구 전체 역성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대구정책연구원 전송곤 연구원은 "건설산업 자체가 대구 GRDP에 미치는 절대적 비중은 그리 높지 않지만, 지역경제에 건설업 전후방 효과가 상당해 건설산업 경기에 따른 영향을 직접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하며 "지난해 대구의 GRDP가 전년 대비 -1.3%로 역성장했는데 이 가운데 건설업 비중이 -0.9%p다. 역성장 영향의 70%를 건설업이 차지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 연구원은 "건설업계 성장을 위해서는 대구 지역 내 수주활동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지역 건설사들이 지역을 벗어나 전국으로 움직여야 한다. 특히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있는 호남권을 비롯한 서울 수도권으로 확장할 필요성이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민간 영역의 침체를 공공 발주 확대 등으로 보완하고, 신산업 중심의 인프라 투자를 확장하는 시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윤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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