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2027학년도 대입 수시원서 작성이 한창인 고3 교실, 학생들의 손끝에선 견고한 대학 서열의 지도가 그려진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열 손가락을 다 꼽아도 지역 거점 국립대인 경북대의 이름은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발표된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의 1차 패키지 지원 대상 결과는 대구·경북 지역사회에 깊은 허탈감을 남겼다.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가 선정되어 연간 700억 원 규모의 집중 투자를 받게 된 반면, 대구·경북의 거점 국립대인 경북대는 탈락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격상시켜 수도권 집중과 극심한 입시 과열 구도를 깨뜨리겠다는 야심 찬 정책이다. 왜곡된 대입 체제를 바로잡아 고등교육 생태계를 개선하고, 교육의 힘으로 지역 혁신을 이끌고 국가 균형 발전을 실현하겠다는 정책적 의지와 명분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첫발을 뗀 지금, 이 사업은 교육개혁과 균형발전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가치 모두에서 논리적 모순과 정책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서열화된 대학 체제가 불러온 대입 과열 경쟁을 변화시키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교육 개혁 의지에서 시작됐다. 대학 체제가 서울 중심의 최상위권 일부 대학이 아니라 균형적인 고등교육 생태계로 건전하게 안정되고 확산되기를 희망한다며 시작한 것이 '서울대 10개 만들기'였다.
하지만 일부 대학만을 선별해 예산을 몰아주는 현재의 '선택과 집중' 방식은 교육 개혁의 선한 의지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려온 지역 국립대에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분명 반가운 마중물이다. 그러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아득한 격차를 메우기도 전에, 지역 국립대 내부에서부터 또 다른 서열화를 조장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소수 대학에 대한 특혜로 귀결된다면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를 살리겠다는 교육 개혁의 명분은 있을 곳이 없다.
정치적 차원의 '국가 균형발전' 논리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진정한 균형발전은 특정 지역을 배제하지 않는 전 국토의 균등한 성장을 전제로 한다. 9개 거점 국립대는 각 권역의 산업과 혁신을 이끄는 핵심 축이며, 대구·경북 역시 정부가 공언한 '5극 3특' 권역별 성장 로드맵의 중요한 한 축이다. 그럼에도 첫 단계에서부터 거대 권역인 대구·경북의 핵심 축을 통째로 비운 것은 심각한 하자를 스스로 만든 꼴이다. 하나의 권역을 소외시킨 균형이 가능하기나 할 것이며, 가능하다 한들 누구를 위한 것인가.
1차 사업이 마무리되는 2030년, 막대한 예산 지원에서 소외된 경북대의 위상은 어디쯤에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단지 대학 하나의 추락으로 끝날 것인가. 대구·경북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박탈감은 결코 이기적인 지역주의가 아니다. 출발선에서부터 정당성을 잃어버린 국가 정책에 대한 질문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진정한 교육개혁이자 국가균형발전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정책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9개 거점 국립대 전체를 서울대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한다는 보편적 지원 원칙을 확립하고, 모든 거점 대학이 권역별 전략 산업과 연계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포괄적 로드맵으로 재편해야 할 것이다. 국회 예산 심의와 정책 수정 과정을 통해 이 사업이 일부 대학의 특혜를 넘어 모든 지역 거점 국립대와 지역사회가 함께 살아나는 진정한 개혁의 발판으로 재정립되기를 기대한다.
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입니다. 지역의 이야기를 새롭게, 의미있게 써보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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