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선의 심심한 이야기] 보통 날의 대화

  • 최호선 심심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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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08 18:49  |  발행일 2026-09-09
최호선 심심책방 대표

최호선 심심책방 대표

내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믿어주시고 무조건 응원해주시던 아빠가 치료하기 어려운 암에 걸렸을 때,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 사실을 말해드리지 못했다. 아빠가 인생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가장 마음이 아픈 일은 낳아주시고 사랑으로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한 번도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모두 진실을 알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고 인정하기 싫었던 마음이 컸다. 차마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낼 용기가 없었다. 우리 가족은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빠는 늘 자기 인생을 적극적으로 멋지게 사는 분이라서 내가 조금만 용기를 냈더라면 마지막 인사를 했을 텐데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못하고 보내 드려서 후회스럽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세요. 완치될 수 있어요. 쾌유를 빕니다.


이런 인사와 격려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고 존엄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무척 중요하다. 현세적인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부분을 상당히 어려워하고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책방에 와서 '임종'이라는 제목의 책을 훑어보던 어르신이 "나는 장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이런 책은 재수가 없어"라고 하셨다.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지 여쭈었더니 "팔 학년 칠 반"이라고 하셨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기대수명이 83.7세니까 이 어르신은 벌써 평균보다 오래 사는 쪽에 속하시는데 무척 건강해 보이셨고 당신이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나이와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나는 연세가 많은 분, 몸이 많이 아픈 분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죽음을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 굳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죽음은 건강할 때, 젊을 때, 기분이 좋을 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영화나 드라마를 매개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되고 가족이나 친지의 장례식 때 자연스럽게 대화를 해보는 것도 괜찮다. 죽음 이야기는 닥치고 나서 급히 할 것이 아니라 보통 날의 평범한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이 좋겠다.


최근 나이 듦과 죽음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고령화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죽음, 재수 없다고 기피할 것인가? 존엄한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계기를 만들 것인가? 나는 늘 후자를 선택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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