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칠곡 경계선에 걸친 참외밭... '성주참외' 명칭을 못 쓰는 성주농민의 마음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석현철 기자
"참외하우스 6동이 한 농장에 붙어 있는데 두 동은 성주 땅이고 네 동은 칠곡 땅입니다. 성주에 보조사업을 신청하면 두 동만, 칠곡에 신청하면 네 동만 따집니다."
경북 성주군 선남면 용신리에서 참외농사를 짓는 차장완씨의 농장 한가운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행정구역 경계선이 지나간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재배하는 작물도 같다. 같은 농로를 이용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참외를 키워 성주지역 유통망을 이용한다. 하지만 지번 하나 때문에 한 농장이 성주와 칠곡으로 갈린다.
낙동강 물길 변화와 제방공사로 만들어진 성주군 선남면 용신리와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의 기형적인 행정경계가 40년 가까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그 피해를 농민들이 떠안고 있다.
영남일보가 과거 행정기록과 자체 보도, 주민 인터뷰 등을 종합한 결과 이 문제는 적어도 35년 전부터 행정구역 조정 필요성이 공식 제기됐지만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해묵은 현안이다.
◆강물은 움직였지만 경계는 옛 물길에
문제의 뿌리는 낙동강의 물길 변화와 제방 축조에 있다.
과거 성주와 칠곡의 행정경계는 낙동강 물길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러나 오랜 세월 유수가 변하면서 물줄기가 칠곡 쪽으로 이동했고 1980년대 낙동강 연안개발사업으로 제방까지 만들어지면서 과거 하상이던 땅이 성주군 선남면 들녘과 사실상 하나로 연결됐다.
현재 용신리 들녘 쪽에 위치한 칠곡군 관할 토지는 약 87만3천㎡다. 대부분 하천부지이며 이 가운데 농지는 약 19만2천㎡(5만8천여 평)에 이른다.
행정기관은 이미 오래전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1991년 경북도의회 회의록에는 '칠곡군과 성주군 간 행정구역 경계조정'이 공식적으로 등장한다. 당시 성주군은 낙동강 건너 성주 쪽에 위치한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 하천부지 1.33㎢를 성주군으로 편입해 달라고 경북도에 건의했다.
1일 성주군의회 배재억 의원이 농촌의 현실과 주민의 생활권이 행정과 제도에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지역 여건을 반영한 제도 개선을 제안하고 있다. 성주군의회 제공
당시 경북도는 문제지역에서 성주 주민 34가구가 26필지, 22만6천700㎡를 경작하고 있었으며 칠곡 주민 가운데 거주자나 경작자는 한 명도 없다고 파악했다.
칠곡군도 경계조정 필요성에 찬성했지만 칠곡군의회가 반대하면서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칠곡에서는 대구·구미 등 인접 도시로 행정구역이 잇따라 편입되면서 추가적인 군 면적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12년에도 다시 협상…14년 지나 또 제자리
문제를 해결할 기회는 이후에도 있었다.
영남일보는 2011년 이 지역의 생활권과 행정구역 불일치 문제를 보도했고, 2012년에는 성주군과 칠곡군이 87만3천151㎡에 대한 경계조정을 협의하고 있다고 후속 보도했다.
당시 성주군의회가 칠곡군의회를 찾아 협의를 벌였고 칠곡군도 주민 불편 해소를 위해 경계조정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배재억 성주군의원에 따르면 2013년 당시 이성재 군의원도 군정질문을 통해 이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1991년 경북도 차원의 경계조정, 2012년 양 지자체 협의, 2013년 군정질문까지 이어졌지만 2026년 현재 행정경계는 그대로다.
◆하우스 6동이 '성주 2·칠곡 4'
행정기관의 협상이 멈춘 사이 불편은 고스란히 농민들의 몫이 됐다.
차장완씨가 경작하는 참외하우스 6동 가운데 성주군 지번은 2동, 칠곡군 지번은 4동이다.
차씨는 "농민 입장에서는 하나의 농장인데 성주군에 보조사업을 신청하면 성주 땅만 보고 칠곡에 가면 또 칠곡 땅만 놓고 판단한다"며 "이런 상태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처지의 농가는 차씨뿐만이 아니다. 차씨와 배 의원 등에 따르면 용신1리에서 성주와 칠곡 양쪽 농지를 함께 경작하는 농가는 5~6가구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수확 이후 발생한다.
성주 농민이 동일한 시설과 재배기술로 참외를 생산하더라도 칠곡 지번 농지에서 생산한 참외를 '성주'로 원산지 표시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차씨는 이 일대에서 실제 원산지 표시 문제로 적발된 농가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차씨 역시 원산지 문제를 겪은 뒤 칠곡 지번에서 생산한 참외는 '경북'으로 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주 농민들이 객토하고 시설에 투자하면서 수십 년간 노력해 만든 것이 성주참외 브랜드"라며 "땅만 칠곡이지 농사를 짓는 사람도 성주 사람이고 생산과 선별, 유통도 성주에서 하는데 성주참외라고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답답하다"고 말했다.
원산지를 '경북'으로 표시하면 법적인 문제는 피할 수 있지만 농민들의 고민은 남는다. 산지유통과 대형 유통업체 납품 과정에서 '성주참외'라는 지역 브랜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 판매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농관원도 현행법상 원칙 적용…"제도를 바꿔야"
그렇다고 원산지 표시제도를 임의로 완화할 수도 없다.
원산지 표시제도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지역 농산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제도다. 농관원 역시 현행 규정에 따라 실제 생산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배 의원이 이번 문제를 단순한 행정구역 편입을 넘어 제도개선 문제로 접근하는 이유다.
배 의원은 "모든 경계지역 농산물에 예외를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다"며 "성주 농지와 연접해 사실상 하나의 농장으로 수십 년간 경작했고, 경작자의 생활권과 생산·선별·유통체계까지 모두 성주에 속하는 특수한 경우에는 영농생활권 등을 고려할 수 있는 단서조항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하천의 유로 변경이나 국가 제방사업 등으로 실제 생활권과 행정구역이 뒤틀린 특수지역에 한정해 예외 규정을 마련하는 방안을 국회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기관에 건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땅의 주소'와 '농민의 생계' 함께 푼다
근본적인 해법은 행정구역 조정이다.
하지만 35년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단순히 칠곡군에 "땅을 넘겨달라"고 요구하는 방식만으로 풀기는 어렵다.
칠곡군 입장에서는 관할면적 감소에 따른 지방재정상의 영향과 다른 경계지역으로의 파급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배 의원은 이에 따라 성주군도 국·공유지와 하천 주변 유휴지 등을 조사해 칠곡군의 면적 감소를 보완할 수 있는 대체지역을 제시하는 등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협상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합의점을 찾은 뒤에는 지방자치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경계변경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행정구역 조정에 또다시 수년이 걸릴 가능성에 대비해 용신1리 5~6농가가 당장 겪고 있는 원산지 표시와 농업지원 문제는 별도의 제도개선을 통해 해결하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의원은 "행정구역을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농민들에게 그때까지 계속 불편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다"며 "경계조정은 원칙대로 추진하면서 연접농지를 장기간 경작해 온 농민들의 원산지 표시 문제부터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1991년 성주군은 경계조정을 공식 건의했다. 2012년 성주와 칠곡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2013년에는 성주군의회에서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그리고 2026년 배 의원이 또다시 군의회 본회의장에서 같은 문제를 꺼냈다.
그 사이 성주참외는 전국적인 농산물 브랜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차장완씨의 참외하우스 6동은 지금도 '성주 2동, 칠곡 4동'으로 나뉘어 있다.
강물은 오래전 움직였고 주민들의 생활권과 영농경제권도 하나가 됐다. 바뀌지 않은 것은 지도 위 행정경계뿐이다.
35년간 행정이 풀지 못한 경계선 하나 때문에 농민들은 지금도 하나의 농장을 둘로 나눠 지원을 신청하고, 같은 농장에서 생산한 참외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출하하고 있다.
이번에는 '검토'와 '협의'로 끝날 것인지, 35년 묵은 행정경계를 현실에 맞게 바로잡고 농민들이 당장 겪는 제도적 불편부터 해결할 것인지가 성주군과 칠곡군, 중앙정부에 다시 주어진 과제다.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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