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1시쯤 찾은 대구 서구 '달성토성마을 다락방' 전경. 구경모 기자
장장 13년에 걸쳐 진행된 대구 서구지역 마을형 도시재생 '시즌1' 사업이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랐다. 낙후 지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2013년부터 5개 권역을 대상으로 진행된 도시재생사업이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서구는 1980년대까지 섬유산업을 토대로 지역 경제를 이끌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달서구 분구·주력 섬유 산업 침체, 공단·주거지 노후화가 겹치며 쇠락의 기운이 완연했던 서구가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도시 재생사업이 서구 부흥프로젝트 출발의 중심에 있다.
◆사랑방 된 주민카페, 폐공가는 도심 농장으로
지난 2일 찾은 대구 서구 달성토성마을 다락방 3층 주민카페에서 마을 주민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경모 기자
지난 2일 오후 2시쯤 찾은 서구 비산2·3동 달성토성마을 다락방. 도시 재생사업 일환으로 2017년 문을 연 이곳 3층 주민 카페는 평일 낮인데도 만석이었다. 창가에선 주민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고, 통유리창 너머로는 달성토성의 짙은 녹음이 펼쳐졌다. 한 층 밑 교육 공간엔 매주 수요일 열리는 시 낭송 수업을 받기 위해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일찍 오셨네요" "지난주는 왜 안 보였어요"라는 간단한 인사말이 오갔다. 수업 개시 전에 준비된 좌석은 대부분 찼다. 주민 30명으로 구성된 달성토성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한다. 카페에서 음료를 만들고 손님을 맞는 직원 5명도 모두 마을 주민이다.
달성토성마을 주민이자, 협동조합 총무인 이갑연(55)씨는 "주민들이 직접 배우고 일하는 공간이 새로 생기면서 우리 마을에도 다시 활기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지난 3일 오후 찾은 인동촌 스마트웰빙농장에서 주민들이 LED 재배대에서 자란 채소의 생육 상태를 살피고 있다. 구경모 기자
이튿날인 3일 오후 찾은 비산동 인동촌 스마트웰빙농장에선 주민 2명이 채소를 수확하고 있었다. 이곳은 백년마을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방치된 폐공가 부지를 활용해 지은 농장(2021년 10월 개소)이다. 농장 내 4단 재배대에는 LED 조명을 받은 상추와 케일 등이 빼곡했다. 스마트팜에서 만난 주민 곽정숙(여·68)씨가 들어 보인 육묘판엔 사흘 전 심은 씨앗에서 작은 싹들이 촘촘하게 올라와 있었다. 곽씨는 "주민 4명이 2명씩 조를 짜 육묘부터 재배와 수확·포장까지 한다. 일 평균 25~30㎏의 채소를 생산해 서구청 구내식당과 노인·복지시설 등에 납품한다. 남는 물량은 지역 복지단체에 기부한다"며 "큰돈을 버는 일은 아니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스마트팜이 생긴 뒤 마을 사람들과 한결 가까워진 것 같다"고 했다.
◆758억원으로 만든 '다섯 마을, 다섯 재생'
대구 서구 평리1동 열차촌 일대가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공공 주차장과 쉼터, 마을 안내시설이 갖춰진 '열차촌 기억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진은 철거된 빈집 부지에 조성된 기억공간. 영남일보DB
서구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5개 권역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했다. 권역명은 달성토성마을·원고개마을·원대로마을·인동촌백년마을·평리들마을이다. 5개 권역에 투입된 총 사업비는 769억3천800만원(국비 316억5천500만원·시비 158억2천750만원·구비 234억9천550만원·공기업·기금·민간 59억6천만원)이다.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이지만, 모든 마을에 똑같은 시설을 짓는 방식은 피했다. 마을마다 처한 환경과 주민 수요, 보유한 역사·문화 자산이 다른 만큼 권역별 특성을 살린 맞춤형 재생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새로 들어선 건물보다 주민들 스스로 마을을 운영할 수 있는 자생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현재 5개 마을엔 각각 주민협동조합이 설립돼 모두 209명이 참여하고 있다. 주민들은 도시재생으로 조성된 카페와 공방, 스마트팜, 주민복지시설 등을 직접 운영한다.
서구 도시재생의 출발점인 달성토성마을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사업이 진행(103억원 투입)됐다. 노후주택 124가구를 정비하고 달성토성 둘레길과 골목정원, 주민공방을 조성했다. 주민들이 직접 가꾼 골목 정원을 마을 투어와 카페·식당 운영으로 연결했다. 낙후된 주거지를 마을 관광 자원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재생사업(118억2천여만원)이 진행된 원고개마을은 옛 파출소와 빈집을 마을뮤지엄, 북카페, 목공 체험장으로 되살렸다. 주민 51명이 참여한 협동조합이 목공 체험과 상품 제작, 카페 운영을 맡으면서 '주민 주도형 경제' 기반을 마련했다.
원대로마을에는 2018~2022년 198억4천만원을 투입해, 비원뮤직홀(200석)과 주민건강센터, 커뮤니티센터를 조성했다. 노후주택 81가구와 공영주차장 3곳도 깔끔하게 정비됐다. 철도 주변 노후 주거지를 공연과 건강·여가 기능을 갖춘 문화·생활복지 거점으로 바꾼 것이다.
인동촌백년마을은 2019~2024년 사업(191억6천만원)이 이뤄졌다. 건강나눔센터와 스마트팜, 통합공공임대주택(12가구)이 들어섰고, 노후주택 145가구와 골목길도 정비됐다. 고령자가 많고 복지시설이 부족했던 마을에 건강·주거 지원과 주민 일거리를 함께 마련한 사례다.
서구 도시재생사업 중에서 이제 남은 곳은 2022년 158억원을 투입해 시작한 평리들마을이다. 사업 4년차인 이 마을엔 6·25 전쟁 이후 철길 주변에 형성된 열차촌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노후주택 108가구와 주차·안전시설이 정비됐다. 열차촌 기억공원과 공영주차장이 들어섰고, 스마트가로등(32개)과 방범용 CCTV(4개)도 설치됐다. 이달 준공될 들마을커뮤니티센터와 오는 12월 개소할 창업소통공간 '들꽃'을 끝으로 도시재생사업은 모두 종료된다.
전문가들은 서구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주민 관계 회복'과 '지역 애착심 향상'이라는 무형 자산을 남겼다고 평했다. 계명대 이재용 교수(도시계획학과)는 "건물을 새로 짓고 도시 외관을 크게 바꾸는 게 도시재생의 목표는 아니다. 진정한 도시재생은 주민들이 지역 정체성을 되찾고 '우리 마을'이라는 애착을 갖는 데서 시작된다"며 "서구 사업은 주민들이 카페와 공방, 스마트팜 등을 직접 운영하며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마을 전체의 활력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달 준공을 앞둔 대구 서구 평리1동 들마을커뮤니티센터 전경. 사업비 84억원이 투입된 센터에는 공유부엌과 무인카페, 프로그램실, 주민사무실 등이 들어선다. 구경모 기자
◆도시재생 넘어 '머무는 정주도시'로
권오상 서구청장. 대구 서구청 제공
권오상 대구 서구청장은 지역 내 도시재생사업이 서구 위상을 되찾아 줄 출발점으로 평가했다. 내년부턴 주민들이 계속 살고 싶고, 외부인도 많이 정착하는 '정주 도시'를 만드는 데 행정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권 청장은 "서구는 과거 섬유·염색산업을 토대로 대구 경제를 견인했지만 산업 침체와 공단·주거지 노후화가 겹치면서 낙후 지역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며 "13년간 추진한 도시재생은 쇠퇴한 골목에 사람과 일자리를 되돌리고 서구가 재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이어 "서로 공동체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 마을'이라는 자부심을 되찾은 게 도시재생사업의 진정한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과제는 조성된 거점시설의 안정적 운영이다. 주민조직의 자체 수입만으로 인건비·관리비를 충당하긴 힘든 만큼, 도시재생지원센터를 통해 협동조합별 재정·운영 상태를 계속 들여다볼 계획이다. 또 회계 컨설팅과 공모사업 연계, 상품·체험 프로그램 개발도 지원할 예정이다. 권 청장은 "평리들마을 사업까지 끝나면 물리적인 시설 조성은 끝이 난다. 주민이 공간을 계속 이용하고 운영해야 도시재생이 완성될 수 있다"며 "시설별 운영 성과를 점검하고 주민조직에 필요한 교육과 컨설팅, 판로 확대 등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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