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동서고금에 걸쳐 군주의 품격은 직언(直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서 종종 비교된다. 입안의 혀처럼 구는 신하를 곁에 둔 군주는 많았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신하의 쓴소리까지 국가 경쟁력으로 삼은 군주는 흔치 않았다. 조선왕조사에서 세종과 그의 둘째 아들 세조가 비교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두 임금의 상징적 차이는 조선 전기 최고의 학문연구기관인 집현전(集賢殿)을 대하는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세종은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집현전에 모아 제도와 문물 정비를 이끌도록 했다. 주목할 점은 세종이 집현전을 단순한 어명(御命) 수행기관으로만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집현전은 임금의 입맛만 맞추는 기관이 아니었다. 세종 25년 4월 실록에 따르면,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은 세자의 섭행(攝行·통치 대행) 문제를 놓고 "지존에는 두 임금이 없고, 정권도 나눌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학자들이 지병으로 고생하던 임금의 처지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미래 권력'인 세자 앞에서도 국가의 법통과 제도 질서를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반면 세조에게 집현전은 고까운 존재였다. 그는 집현전의 쓴소리를 국가 발전의 자양분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다. 이는 세조의 정통성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세조는 단종 복위 운동을 빌미로 집현전을 폐지했다. 바른말을 하는 인적 기반을 뿌리째 들어낸 셈이다.
오늘날 정부와 광역지자체에도 집현전과 같은 '싱크탱크'가 있다. 경북도 산하에는 경북연구원이 있다. 경북연구원은 데이터·제도 분석을 통해 정책을 뒷받침하고, 때로는 도정의 방향을 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 경북연구원을 둘러싸고 씁쓸한 뒷맛을 남긴 일이 있었다. 두 달 전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6·3 지방선거 출마로 자리를 비운 때였다. 경북연구원은 '경북 청년인구 50만 명 선 붕괴'를 골자로 한 이슈 리포트를 발표했다. 언론은 일제히 관련 기사를 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파장이 일었다. 경북도 간부 공무원이 경북연구원에 전화를 걸어 질책성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민감한 시기에 왜 이런 리포트를 냈느냐', '왜 붕괴라는 용어를 썼느냐'는 식의 훈계조였다. 심지어 리포트를 쓴 연구원을 본청으로 불렀다는 말도 들린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왕왕 있었다고 한다.
이유 불문하고, 해당 공무원의 언행은 부당한 압박이다. 난센스다. 경북연구원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선거를 앞두고 불편한 통계가 나왔다고 연구기관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 공무원이 왜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리포트 발표 시점과 표현을 문제 삼아 질책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리포트는 경북도정을 살릴 일종의 경고등이었다. 오히려 관계 공무원이 리포트를 들고 경북연구원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야 할 일 아닌가. 경북연구원은 경북도 산하기관이지만, 때로는 도정에 직언을 마다하지 않아야 할 지식인 집단이다. 경북도 공무원들은 이 점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세종 대(代)에 부국강병의 꽃을 피운 데는 집현전을 키우고 존중한 게 큰 몫을 했다. 학자들에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일이다. 이런 점에서 연구기관을 '부속실(附屬室)' 대하듯 하는 경북도 일부 공무원의 언행은 비판받을 만하다. 민선 9기 도정을 완성해야 하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지금 필요한 공무원은 "잘 돼 갑니다"만 되뇌는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통계와 비교, 냉정한 분석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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