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계란 투척

  • 이창호
  • |
  • 입력 2024-03-26 06:48  |  수정 2024-03-26 06:48  |  발행일 2024-03-26 제27면

이란투석(以卵投石).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라는 뜻이다. 약자가 강자에 맞서는 행위를 은유하는 사자성어다. 실현 불가능한 일을 일컬을 때도 쓴다. 약자와 강자 사이 말고도 반대와 불만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정치인·스포츠 스타 등 셀럽을 향해서도 계란 투척이 벌어진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후 공항에서 한 시민이 던진 빨간색 페인트 계란에 정통으로 맞았다. IMF 환란을 자초했다는 이유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전국농민대회에서 갑자기 날아든 계란에 얼굴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한 남성으로부터 "BBK 사건 전모를 밝히라"는 소리를 들으며 계란을 맞았다. 비운의 정치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후보 시절 계란 봉변을 피하지 못했다.

전례에 비춰 정치인에게 '계란 세례'는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동정 여론 확산과 지지층 결집 등 반등의 계기가 될 수도 있어서다. 일종의 '수난(受難) 스펙'인 셈이다. 선거를 앞두고 "달걀 좀 맞으러 갈까"라는 말이 나도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노무현은 쿨했다. 계란을 맞고 난 뒤 "달걀을 맞아 일이 잘 풀리면 얼마든 맞겠다"며 "정치인들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나"라는 어록을 남겼다. 최근 미국프로야구(MLB) 개막 경기를 위해 입국한 LA다저스 선수단에게 20대 남성이 날계란을 던지는 일이 발생했다. 구단 측은 "다행히 맞지 않았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구단 측이 아량을 베풀었지만 이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계란이 몸에 맞은 경우는 물론 몸에 맞지 않은 경우에도 형법상 폭행죄로 처벌을 받는다. 계란 투척 자체가 정신적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기자 이미지

이창호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