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독이 든 성배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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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4 06:52  |  수정 2024-04-04 06:53  |  발행일 2024-04-04 제23면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다는 포도주잔을 '성배(聖杯)'라고 한다. 성배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수난이 임박했음을 뜻한다고 한다. '독이 든 성배'라는 말도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축구 감독직(職)을 '독이 든 성배'라고 부른다. 축구 감독이 얼핏 대단한 자리로 보여도 쓰디쓴 대가가 따른다는 얘기다. '파리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옷 안주머니에 늘 사표를 넣고 경기에 임하는 감독도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을 10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경질됐다. 이를 꼬집어 독일 월드컵 주최 측이 '독이 든 성배'라고 했다. 이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의 대명사로 통했다.

역대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중에선 거스 히딩크·파울루 벤투 등 성공한 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불명예 퇴진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2월 물러난 위르겐 클린스만은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됐다. 그저 사람 좋다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박항서 감독에 이어 베트남 축구를 이끈 필리프 트루시에 감독도 최근 짐을 쌌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인도네시아에 거듭 패한 뒤 다이렉트 경질됐다. 대한민국 여야 정당의 수장(首長)도 '독이 든 성배'로 부를 만하다. 선거 결과에 자신들의 정치적 명운이 걸렸기 때문이다. 총선을 눈앞에 둔 가운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심정일 게다. 오는 10일 밤 누가 독배를 들고, 누가 축배를 들지 지켜볼 일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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