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플리츠' 주름의 아름다움

  • 박준상
  • |
  • 입력 2024-04-12 06:59  |  수정 2024-04-14 15:18  |  발행일 2024-04-12 제26면
일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선보인 '플리츠' 라인
단순한 주름 아닌 접었다 폈다 반복한 혁신적 디자인
'스티브 잡스 목폴라'로도 유명…몇 해 전 '주름바지' 유행
주름에 골에 스며든 미야케의 디자인과 그 아름다움
기자가 바라본 주름과 이제 생길 주름엔 어떤 것이 스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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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별세한 일본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뉴욕타임즈 캡처
일본의 디자이너인 이세이 미야케는 1971년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 1973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쇼를 선보였다. 미야케는 1988년부터 의류의 주름을 연구했다. 옷감을 재단하고 옷의 형태를 잡아 재봉한 후 주름을 넣어 '가먼트 플리팅(garment pleating)'이라는 기술로 '플리츠(PLEATS)' 라인을 선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여성복 '플리츠 플리세'를, 남성복 라인으로 '옴므 플리세'도 내놓았다. 플리츠 라인은 가벼우면서도 실용적이다. 입는 이의 몸집에 따라 주름이 더 펴지거나 접혀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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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므 플리세'의 가디건. 인터넷 캡처
이 주름은 '구김'이 아니다. 종이를 안과 밖으로 반복해서 가로로 또는 세로로 접는 모양이다. 앞의 문장은 기자의 관찰대로 쓴 것이었는데, 찾아보니 실제로 미야케는 일본 전통 종이접기(origami)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곡선까지 만들어 내며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또 다른 면으로 넓어진다. 또 다른 면은 한쪽에서 바라봤을 때고 사실은 모든 게 한 면이다. 미야케의 디자인은 '한 장의 천(a piece of cloth)'이라는 콘셉트를 이어오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외형적 특징이랄까,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와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검은 터틀넥.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이 플리츠 라인이다. 몇 해 전 여름에 유행해 많은 여성들이 '주름바지'를 입었다. 삼각형이 여러 개 짝을 지어 타일 모양을 만들어내는 그 가방, 바오바오(Baobao)도 미야케의 작품이다. 플리츠 형식으로 의류와 잡화를 생산하는 국내 브랜드도 많이 생겼다. 이렇게 미야케의 플리세는 말 그대로 '주름'의 골처럼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다.

1991년생인 기자는 주름에 대한 기억이랄까, 생각이 많지 않다. 그 시절치곤 나름 늦둥이여서 그런지 부모님의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친구들 부모님의 주름보다 깊어 보였다. 그리고 지금 30대 중반에 가까워진 기자에게도 이마의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면서 이 주름이 벌써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부모님의 주름처럼 깊어질까, 생각한다. 미야케가 만든 옷의 주름에는 접힘과 펴짐 사이에 아름다움을 채워 넣었다. 옷 이야기 실컷 하다가 갑자기 부모님의 주름을 생각한다니, 주책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는 답을 주시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주름에는 무엇이 담겼고 무엇이 쌓이고 있을까. 낳아주셨을 때의 부모님의 나이를 지나고 곧 지날 기자의 주름에는 무엇이 담길까. 이 글을 쓰면서도 고민과 생각의 한 줄이 주름으로 새겨졌을까. 그저 시간이 풍화(風化)한 흔적이 아니길 바란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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