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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 구미가 두루미와 고니의 천국이 되려면
3월 초 충남 천수만에 겨울진객 흑두루미떼 1천400여 마리가 찾아왔다가 서해안을 따라 북상했다. 전례 없이 전 세계 개체 수 1천800~2천 마리 중 70%가 이곳을 찾은 셈인데, 그 이유가 뭘까.'두루미삼총사(단정학·재두루미·흑두루미)'는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 연중 볼 수 있었는데, 구미에 특히 많았다. 매학정(梅鶴亭·구미시 고아면 예강리)은 조선의 유학자 황기로가 두루미를 키웠던 곳이고 무을면 수다사(水多寺) 벽화에는 스님이 학에게 물을 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구미는 낙동강과 인접해 물이 많고, 해평·원평·광평·괴평·진평·신평·구평동처럼 유독 넓은 평야가 많아 새의 먹이가 풍부했다. 경북대 박희천 생물학과 명예교수가 2006년 선산에 조류생태환경연구소를 설립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이곳에는 두루미, 재두루미 40여 마리가 복원돼 있다.흑두루미와 재두루미는 동·서해안을 따라 남하한다. 동쪽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그 지류인 감천 강정습지와 해평습지, 금호강 달성습지, 우포늪, 주남지, 을숙도 등이며, 서쪽은 한강 및 금강하구, 천수만, 순천만 등지다. 대개 이곳에서 겨울을 나거나 일본 남부로 간다. 하지만 흑두루미는 낙동강루트를 점차 포기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지역 금호강 모래톱에도 보이던 흑두루미는 90년대 중반 이후 달성습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즈음 설치한 고령군 다산면 흑두루미전망대는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흑두루미는 구미 해평습지로 북상해 2000년 초 2천500여 마리까지 늘었다가 2017년 80마리로 급감한 뒤 2020년부터는 낙동강에서 아예 사라졌다. 다만 50~100여 마리의 재두루미는 낙동강 습지에 머문다. 그 이유는 감천과 낙동강 두물머리의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는 구미시와 박 교수 등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그 많던 흑두루미는 강(江)사업으로 모래톱이 줄고, 벼농사 대신 축사나 비닐하우스가 들어선 낙동강 대신 순천만으로 몰려갔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2009년부터 300개 가까운 전주를 뽑아 흑두루미가 전선에 걸리지 않은 채 맘대로 하늘을 날 수 있게 하고, 논을 사서 두루미에게 볍씨를 무료로 제공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1999년 80마리였던 흑두루미는 매년 늘어나 작년 겨울엔 6천400마리나 찾아왔다. 상업과 관광은 덤으로 따라왔다. 순천만흑두루미쌀, 생막걸리현학(玄鶴), 흑두루미누룽지가 브랜드가 되고 인구 29만명의 도시가 국제정원박람회를 유치하는 기염을 토했다.최근 구미시가 지산샛강생태공원 명소화 사업의 하나로 '큰고니벅스'라는 무인카페를 만들었다. 또 경관 조명등과 황토맨발길, 주차장을 확충한다고 한다. 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고니(백조) 덕분이다. 2004년 10여 마리였다가 2018년 806여 마리, 2023년엔 1천400마리까지 날아왔다. 한반도를 찾는 고니 중 약 30%인데, 구미시가 구미천 샛강 우각호에 연꽃, 부들과 같은 습지성 식물을 많이 심어 이들을 유인한 덕분이다.바라건대 원앞들 쪽은 '인간 친화적'으로 하더라도 괴평교에서 남쪽 지산교 구미천에 이르는 삽지들 주변은 사람의 간섭이 전혀 없는 '고니 친화적' 습지로 꾸미면 좋겠다. 50억원을 들여 문을 연 안동 낙동강 백조공원이 8년 동안 유지하다 작년 폐쇄된 전철을 밟아선 안 되기 때문이다. 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동대구로에서] 혁신의 새 지평을 여는 국산 의료용 로봇
의료용 로봇. 일반 시민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이미 한국 의료계에선 자리 잡았다. 장점은 정밀한 수술과 작은 절개 및 회복 기간 단축, 의료진 노동 감소, 환자 안전성 향상 등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물론 단점도 있다. 높은 비용과 기술적 제약, 학습 곡선, 의존성, 접근성 제한 등이 존재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경험에 따라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중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이 개발 중인 의료용 로봇은 대다수 재활·요양용이다. 수술용 로봇과 비교해 시장 규모가 작다. 수술용 로봇이 의료 현장에 쓰이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장이 개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품이 있다. 바로 미국 의료기기 기업인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의료용 로봇 '다빈치'다. 그동안 수술용 로봇 시장은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독무대였다. 이 회사의 '다빈치' 로봇은 수술용 로봇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능한 의료진과 첨단 의료 설비를 갖춘 병원들이 앞다퉈 다빈치 로봇 수술 실적을 자신의 의료 수준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여길 정도로 다빈치 지명도가 높다. 다빈치 로봇을 처음으로 개발한 미국의 대표적인 비영리 연구개발기관인 'SRI인터내셔널'은 미국 국립보건원으로부터 모금 받았고,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은 전쟁터에서 다친 군인 치료에 대한 수술용 로봇의 필요성을 인정해 로봇 개발을 적극 후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개발된 다빈치 로봇은 세계적으로 수천 대가량이 보급됐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유수 병원들이 거액에도 다빈치 로봇을 구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만큼 로봇 수술의 유용성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산업용 로봇 사용률 1위인 한국 입장에선 자존심이 조금 구겨지는 대목이다.2주 전 구병원은 국산 1호 복강경 수술용 협동 로봇을 활용한 '담낭 절제술'을 성공했다. 당시 수술실에서 지켜본 이 로봇은 다빈치 모델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어 보였다. 오히려 기능이 더 좋아 보였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협동 로봇에 내시경 카메라를 탑재한 복강경 수술 보조 솔루션이 수술 현장에 직접 투입된 것은 처음일 정도로 의료계에선 이목이 쏠렸다. 대당 가격도 8천만~1억원 사이로, 보통 수십억 원에 달하는 다빈치 모델에 비해 많이 저렴하다. 앞으로 대장암 등 고난도 수술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새로운 의료 로봇 기술과 글로벌 가격 경쟁은 국내 수술용 로봇 업체들이 돌파해야만 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오랜 시간과 자본을 투입해 개발한 국산 수술용 로봇이 세계 시장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개발 업체만의 힘만 가지고는 힘들 수 있다. 게다가 이웃 중국도 수술용 로봇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성장 엔진 부재로 다소 혼란스러운 한국이 의료용 로봇 분야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도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의료 분야는 제도적인 규제가 많은 분야인 만큼 그 어떤 분야보다도 정부와 공공기관 후원이 절실하다. 각별한 관심만 가진다면, 분명 국내 의료기술의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 개발된 혁신적인 의료 로봇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국내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선도적으로 주도할 수 있단 의미다. 국내 의료 산업 성장과 함께 한국 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 기술 발전은 환자들에게 더 나은 의료 서비스 제공도 가능하다. 이제 의료용 로봇 강국을 꿈꿔 보자. 강승규 사회부 차장강승규 사회부 차장
[자유성] 계란 투척
이란투석(以卵投石).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라는 뜻이다. 약자가 강자에 맞서는 행위를 은유하는 사자성어다. 실현 불가능한 일을 일컬을 때도 쓴다. 약자와 강자 사이 말고도 반대와 불만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정치인·스포츠 스타 등 셀럽을 향해서도 계란 투척이 벌어진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후 공항에서 한 시민이 던진 빨간색 페인트 계란에 정통으로 맞았다. IMF 환란을 자초했다는 이유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전국농민대회에서 갑자기 날아든 계란에 얼굴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한 남성으로부터 "BBK 사건 전모를 밝히라"는 소리를 들으며 계란을 맞았다. 비운의 정치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후보 시절 계란 봉변을 피하지 못했다. 전례에 비춰 정치인에게 '계란 세례'는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동정 여론 확산과 지지층 결집 등 반등의 계기가 될 수도 있어서다. 일종의 '수난(受難) 스펙'인 셈이다. 선거를 앞두고 "달걀 좀 맞으러 갈까"라는 말이 나도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노무현은 쿨했다. 계란을 맞고 난 뒤 "달걀을 맞아 일이 잘 풀리면 얼마든 맞겠다"며 "정치인들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나"라는 어록을 남겼다. 최근 미국프로야구(MLB) 개막 경기를 위해 입국한 LA다저스 선수단에게 20대 남성이 날계란을 던지는 일이 발생했다. 구단 측은 "다행히 맞지 않았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구단 측이 아량을 베풀었지만 이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계란이 몸에 맞은 경우는 물론 몸에 맞지 않은 경우에도 형법상 폭행죄로 처벌을 받는다. 계란 투척 자체가 정신적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김기억 칼럼] TK 정치 르네상스 시대 오나
22대 총선이 16일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28일부터 후보자들의 본격 선거 운동도 시작된다. 여야는 이번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패할 경우 받아들여야 할 후폭풍이 간단치 않다. 여당은 대통령 레임덕을 피할 수 없고, 야당은 당 대표의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 차기 대선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만큼 총선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반면 대구경북지역 총선은 일부 선거구(경산, 대구 중구-남구)를 제외하고는 벌써 파장 분위기다. 늘 그랬듯 TK 총선의 본선은 선거가 아니라 공천이기 때문이다. 비록 본선은 흥미가 없지만 22대 총선 후 TK는 정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TK 현역 64%가 생존했다. 21대 총선에서는 생존율이 34%에 그쳤다. 과거 어느 총선 때와 비교해도 현역 생존율이 높다. 본격적인 공천 시작 전만 하더라도 현역 교체율이 70%는 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무더기 대통령실 인사나 검사 공천설도 끊이지 않았다. 막바지 '묻지마 낙하산'이 대구 3곳(중구-남구, 북구을, 동구-군위갑)에 투하됐지만 대통령실 인사나 검사는 없었다. 그래도 TK 민심은 싸늘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역들이 많이 생존해 예전과는 달리 TK 의원들 선수 분포가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TK 정치의 위상으로 이어진다.선거 때마다 개혁과 교체대상이 되면서 TK 의원들은 초선과 재선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21대 국회에서 대구는 12명 중 9명(초선 7, 재선 2명), 경북은 13명 전원(초선 7, 재선 6명)이 초·재선 의원이다. 반면 22대 국회는 선거 결과에 따라 다소 변수는 있을지라도 대구는 3선 이상 다선이 4명, 경북은 5~6명이나 된다. 국회는 선수가 벼슬이다. 3선이 되면 중진으로 불리고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주호영 의원은 당선된다면 6선이 된다. 국민의힘이 이번 총선에서 1당이 된다면 국회의장 도전도 가능하다. TK 의원이 국회 의장직을 맡은 것은 2000년 16대 국회에서 이만섭 의원이 마지막이었다. TK는 선거 때만 보수 정당의 성지이고, 선거가 끝나면 변방 취급을 받은 탓에 다선 의원의 무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상임위원장 자리 하나 맡기조차 힘들었으니, 국회의장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 됐다.22대 국회가 구성되면 TK 다선 의원들의 책임은 선수만큼이나 커진다. 이제 선수 탓에 현안 해결이 쉽지 않다는 핑계도 댈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 TK 의원들은 존재감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왔다. 3선 이상이면 주요 이슈에 제 목소리를 내고,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정치인이 돼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TK 의원 전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허주 김윤환 의원 같은 다선 의원도 나와야 한다. TK 의원들이 교체와 개혁 대상이라는 굴레를 벗기는 것도 다선 의원들의 몫이다. 선거 때마다 투하되는 낙하산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인재 발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물론 지역 현안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22대 국회에서 TK 의원들의 선수 비율은 초·재·다선이 골고루 분포된 황금 비율에 가깝다.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정치 환경이다. 어쩌다 TK 정치권이 정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 같은 TK 정치 르네상스가 22대에서 그칠지 23대 국회에서도 이어질지는 고스란히 TK 22대 국회의원들의 몫이다.김기억서울본부장
[자유성] 과일지도
과일값이 역대급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생산의 문제인지, 유통의 문제인지 콕 집어내기는 애매하지만 어쨌든 소비자들이 지갑을 선뜻 열기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별다른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던 사과나 배 등 국민과일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수입 과일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고 있다. 특히 지구 온난화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지금은 수입이지만 20~30년이 지나면 국산으로 자리 잡을 과일도 상당수 있다.'과일지도'는 경북 사과·나주 배처럼 유명 생산지와 재배지역을 지도에 표시한 것이다. 1~2년 사이 변화를 느끼거나 인식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10년 단위로 끊어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우리 농업환경에 맞는 '작물별 재배지 변동 예측 지도'를 개발하기도 했다. 여기엔 2090년까지 10년 단위로 사과·배·복숭아·포도·단감·감귤 등 6대 과일의 재배 가능지 예측이 담겼다.통계청의 '과수재배 농가 및 면적' 조사결과에 따르면 2020년 사과재배면적은 2010년에 비해 4천500㏊가 줄었다. 경북 등 주산지의 면적이 크게 줄어든 반면, 강원도는 정선·양구 등지에서 164% 증가했다. 배·복숭아·포도는 2050년 정도까지 재배지가 소폭 늘어났다가 감소하고, 단감과 감귤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앞으로 30~50년 후엔 강원 일부에서만 사과·배·복숭아 등의 재배가 이뤄질 전망이다. 과일지도에서 거의 모든 작물의 재배지 북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장준영 논설위원
[월요칼럼] 에고(EGO) 게임
에고(EGO)는 '나'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현대에서도 '자아(自我)' 개념으로 통용되지만 국어사전의 풀이는 좀 난해하다. "철학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반응·체험·사고·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라고 규정돼 있다. 축약하자면 에고란 모든 외부 대상과 자신만의 개별성을 구분 짓는 인간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에고는 몇 가지 특성을 띤다. 동일시와 분리감이 대표적이다. 동일시는 자신의 몸과 소유물(이름·직업·재산·지위 등)이 곧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란 존재가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분리감을 느낀다. 동일시가 강할수록 분리감도 커진다. 인간이 외로움과 소외감에 쉽게 빠지는 이유다. 에고의 어두운 측면은 이게 다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끊임없는 결핍감이다. 고대 불교에서는 이를 '두카(dukkha)'라고 했다. 삶의 근원적인 불만족과 고통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다. 인간의 모든 부정성은 공포와 불만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게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를 띠면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해친다. 그런 사례는 부지기수지만 인류사에서 가장 최악이 집단 학살극이다. 과거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국민 약 200만명을 살해했다. 특히 안경 쓴 사람들을 죄다 죽였다.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만한 지식인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600만명을 학살한 히틀러 같은 빌런도 마찬가지다. 탐욕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간 에고의 광기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에고는 인류 공통의 문제다.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단지 정도 차이는 있을 뿐 모든 사람에게 장착돼 있다. 숙명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면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남에게 약점이 될만한 에고를 숨기고 사회생활에 적합한 심리적 가면을 쓰고 있다. 인격·개성을 뜻하는 '퍼스낼리티(personality)'의 어원이 '페르소나(persona·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인 이유다. 일찌감치 셰익스피어도 "인생은 연극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도 사회라는 연극 무대에서 인격의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에고는 물질만능주의와 생존경쟁이 심할수록 힘을 얻는다. 현대사회가 에고의 전성시대인 건 필연적이다. 에고의 또 다른 속성 중 하나는 '내가 무조건 옳고 가장 잘났다'이다. 대개는 이 같은 속내를 감추지만 그 반대인 사람들도 있다. 특히 정치인이 그렇다. 그들은 날개를 활짝 편 공작새처럼 자신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다. 지배욕과 권력욕은 더 강하다. 하지만 그들의 욕망을 채워줄 '높은 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피 튀기는 자리싸움이 벌어지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한다. 듣기 좋은 레토릭이다. 설사 진짜 꽃이라고 쳐도 너무 상했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다. (일부라는 전제를 달지만) 정치 협잡꾼들의 저질 에고게임이 점입가경이다. 선거가 거짓과 꼼수, 막말, 위선, 배신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하다못해 감옥에 있어야 할 범죄자들까지 설치며 정의를 부르짖고 있다. 해도 너무한 야바위 선거판이다. 유권자가 정신 똑바로 차리는 수밖에 없다. 허석윤 논설위원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화목 보일러
젊은 소방관 두 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갔던 문경 신기공단의 화재는 공장 내 전기튀김기의 온도제어기 작동 불량으로 드러났다. 소방청은 또 사고 발생 이틀 전 공장 관계자가 화재 수신기 경종을 강제 정지시킨 탓에 불이 크게 확산한 뒤에 119에 신고해 늑장 대응 했다고 조사 결과를 밝혔다. 안이한 태도가 참사를 일으킨 인재였다는 결론이다.얼마 전 문경의 한 농가에서 화목보일러 취급 부주의로 추정되는 불이나 주택이 모두 탔다. 이날 문경의 다른 지역에서는 봄철 산불 예방을 위한 선제 조치로 산림과 인접한 화목보일러 사용 40여 가구에 대한 안전점검과 주민 계도를 했다. 화목보일러가 연료비가 싼 대신 취급을 소홀히 할 때 화재 위험을 안고 있어서 주의를 촉구하기 위해 당국이 나선 것이다.최근 3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화목보일러 화재는 1천2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화재 위험성이 크다는 방증이다. 화목보일러는 연료비 등의 이유로 기름이나 가스보일러 사용을 꺼리는 농가에서 주로 설치해 사용한다. 장작을 사지 않더라도 가까운 산에서 연료를 조달할 수 있어 선호하는 농가가 많다. 하지만 관리 부실로 불이 날 위험을 늘 안고 있다. 장작 등의 땔감을 보일러와 가까이 두거나 타고난 재를 대충 살펴보고 산기슭이나 농지 주변에 버렸다가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봄철에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마음도 해이해지기 쉬워 화목보일러 사고가 빈발한다. 공장 화재든 화목보일러 화재든 소중한 인명과 재산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 또 방심과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 인재라는 점도 같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하프타임] 잡아놓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 대한 지지가 불 보듯 뻔하게 진행되고, 결과도 이미 예측된다면 지역의 발전과 개인의 삶엔 하등의 도움이 되질 않는다. 아마 이는 인지상정일 것이다. 오는 4·10 총선에선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을 좀 더 경쟁토록 해 끝까지 선택의 기준을 냉정하고 날카롭게 설정해 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정당이나 후보자의 야망을 이루어주는 유권자가 아니라, 유권자의 희망을 대리할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잡아놓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이미 정해진 정당이나 정해진 후보에게 '묻지마식 지지'를 해온 것에 대한 정치적 풍자이고 반성이다.선거철 TK 지역의 공천과정을 살펴보면 가장 큰 특징이 대폭적인 물갈이를 해왔다는 점이다. 보수 정당이 그동안 물갈이의 지표를 높이기 위해 활용해 온 지역이다.공천도 항상 막바지에 결정해 왔다. 정치권의 각종 구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 끝까지 이런저런 '말 놓기'를 계속하다가 결정하기 일쑤였다.의아한 건 그렇게 내린 결정에 대한 저항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거철마다 TK가 잡아놓은 물고기로 전락해버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사실 공천은 지역 주민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이 같은 바람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TK에선 보수와 진보 정당 간 경쟁이 사실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점도 지역 주민들의 뜻이라면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정당이나 후보자 선택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당이나 사람을 기준으로 선택하면 된다. 문중 따라가기, 당에 대한 충성도 등으로 이뤄진 평가나 선택은 경계해야 한다.'묻지마식 지지'는 정당이나 후보자들을 불편하고 안일하게 만드는 일일뿐만 아니라 주권자로서 우리의 권리도 제약당하고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정당 내에서 경쟁을 좀 치열하게 하고 유권자들이 날카로운 분석과 기준을 갖고 선별한다면, 유권자인 우리에게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선거국면에선 정당 간 경쟁, 그게 불가능하다면 정당 내 경쟁을 치열하게 거치도록 해 그 선택을 유권자들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선거다.힘들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정체성의 정치를 유지한다면 지금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사회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우리는 투표장에 들어가서만 주인이고, 투표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노예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라는 말을 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일부에선 민주주의 제도보다 더 좋은 제도가 아직 없어 한계가 있는 줄 알면서도 민주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선거운동 기간만큼이라도 유권자인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주변이나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은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오는 4·10 총선에서는 좀 더 경계심을 갖고,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판단했으면 한다.피재윤 경북본사피재윤 경북본사
[이재윤 칼럼] TK, 또 잡은 물고기 신세인가
#초장 끗발 파장 맷감= 공식 선거기간 개시(28일)도 전에 대구경북은 조기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본선 같은 공천 싸움이 끝난 탓이다. 수도권·PK·충청권에선 하루가 다르게 지지율이 출렁이는데, TK 25개 선거구 중 한두 곳 빼곤 다 '빼박'이니 흥행 실패를 피할 수 없다.국민의힘의 TK 공천을 평한다면 '초장 끗발 파장 맷감'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25명 중 9명이 탈락했다. 교체율 36%, 역대 최소 폭이다. 직전 총선 교체율 64%에 크게 밑돈다. 경선 16곳 중 12곳에서 현역이 이겼다. 현역 불패 공식이 깨진 건 단 4곳. 뚜껑 열기 전엔 '역대급 교체' 공포감이 팽배했다. '90% 물갈이설'까지 돌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특이 상황'을 만든 제1 원인은 '김건희 특검법'이다. 현역 의원을 최대한 추슬러 표 단속할 필요가 있었을 터이다. 10명 중 3, 4명꼴 생존이 힘든 대구경북에서 재공천이란 좁은 문을 대거 통과한 TK 의원들은 김건희 여사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한다. 대구의 3선 이상 중진, 경북의 재선 의원 모두 생존했다. 다 '영부인 덕'이다. 대통령실 출신 중 경선을 거쳐 공천장을 거머쥔 후보는 단 1명. 그게 '김건희 특검법' 때문인 건 역설적이다. 물갈이 갈증이 있었지만 '조용한 공천'은 대체로 후한 평가는 받았다. 뒤가 말썽이었다. 막판 내리꽂다시피 한 3, 4개 선거구의 물갈이는 특검법 부결 후 '국민추천 프로젝트'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단행됐다. 뒷간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랐던 걸까. 명칭의 모호함 속에 공관위 측근, 서울 TK 내리꽂기 꼼수가 숨어 있었다. 목적한 바를 다 이룬 후의 일탈이 비겁했다.#공천 끝, 총선 파장= 선거는 정점을 향해 치닫는데, 대구경북은 파장 분위기다. 선거 사이클의 괴이한 불일치는 TK의 고질적 핸디캡이다. 신줏단지 모시듯 매번 '묻지마 투표'로 지역민 무시 공천을 자초했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물갈이가 문제? 실은 어장의 난부(爛腐)가 심각하다. 자업자득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 자부심 가득했던 '보수의 심장'은 그걸 교묘히 부추기는 이들에 의해 '보수의 섬'으로 고립 중이다. '컬러풀(colorful)'도, '파워풀(powerful)'도 가슴만 뛰게 할 뿐 한갓 신기루. "무슨 공당의 공천이 호떡 뒤집기 판인가"(홍준표 대구시장)라고 힐책해도 모두 데면데면하고 처연한 척이다.#TK 공약 실종= 열기가 식은 곳, 잡은 물고기만 득실대는 곳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TK 공약 실종'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번도 같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어제 대구와 경산을 찾았지만, 특별한 정책이나 공약을 내놨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대구에서 "저의 정치적 출생지"라 추켜세웠던 게 새해 벽두, 두 달이 훌쩍 넘었다. '심장'이고 '텃밭'보다 '격전지'가 더 중했을 터이다. 홍 시장의 일침에는 불편한 심기가 읽힌다. "중요 국가정책 발표는 하나도 없고 새털처럼 가볍게 처신하면서 매일 하는 쇼는 셀카 찍는 일뿐이니 그리해서 선거 되겠나."연애 시절 달달했던 남녀가 결혼 후 왜 싸우고 냉랭해지겠나? 독점 때문이다. 경쟁이 사라진 거다. 격전지 수도권, 부산에선 선심 공약이 쏟아지는데, 역대급 조용한 텃밭 본선에선 공약이 사라졌다. 정치적 독점의 폐해다. 텃밭이라 지나쳐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역차별당해서도 안 된다. 논설위원이재윤 (논설위원)
[영남타워] 고교 시절의 그 서점과 재수 시절의 제일서적
경남 거창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다. 이웃한 합천에서 자란 필자에게는 첫 객지 생활이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가파른 길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애써 숨이 찰 때까지 뛰어 보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학교를 마치면 하숙집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때 처음 '고독'과 '외로움'을 알게 됐다. 그나마 유일한 즐거움은 서점에서 죽치고 놀기였다. 학생들이 많은 도시라 수험서가 책꽂이를 가득 채웠지만, 구석 자리에는 문학 서적도 간간이 들어왔다. 유난히 소설을 좋아했던 필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점으로 향했다.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읽고 또 읽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올 때면 준비한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 그 메모지가 한 권의 책이 되기도 했다. 습한 종이 냄새가 무척이나 좋았다. 후각이 나를 상기시켰다. 서걱거리며 넘어가는 책 소리는 설레게 했다. 청각이 나를 상기시켰다. 서점 주인 아저씨는 그런 필자를 내쫓지 않았다. 읽기만 하고 사지는 않는 '진상 고객'인데도 말이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인아저씨는 필자가 '합천 촌놈'이라는 것을 친구들을 통해 알았다고 한다.) 졸업 후 대구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모든 게 낯선 객지 생활이었다. 하루하루가 덜컥거렸다. 하숙집 가까운 곳에 '제일서적'이 있었다. 파란색 간판이 마음에 들었다. 공부하기 싫은 날이면 학원 대신 제일서적을 찾았다. 1층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새 책 냄새가 후각을 상기시켰다. 그 냄새가 은은한 비누 향처럼 밀려왔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담백한 향, 그 향기를 즐기며 서점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렸다. 난초처럼 갈래갈래 퍼져나가는 서점의 내부는 깊고 넓은 바다처럼 보였다. 읽고 또 읽었다. 기초나 개론 수준의 딱지를 떼고 깊이 있는 주제의 책으로 넘어갈 때면 으쓱해하기도 했다. 참고서 살 돈으로 좋아하는 소설 한 권을 들고나올 때면 마음 한편이 가벼워졌다.(여태 어머니는 이 사실을 모르신다.) 고교 시절 거창의 그 서점은 문을 닫았다. 제일서적도 마찬가지다. 서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2년마다 발간하는 '2024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군위군과 경북 청송·봉화·울릉군에는 서점이 한 곳도 없는 '서점소멸지역'으로 분류됐다. 서점이 하나뿐인 '소멸 위험지역'은 전국 25곳 가운데 경북이 4곳(고령, 성주, 영양, 의성)이나 됐다. 가슴 아픈 일이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마치 '멸종'처럼 읽혀 편치 않다. 다행히 의미 있는 움직임이 대구에서 일어나고 있다. 디자인·출판·기획 전문회사인 '밝은사람들'이 대구와 경북 '서점소멸지역'에 서점을 차릴 수 있도록 원스톱 지원에 나선다고 한다. 이 회사는 올해 설립 25주년을 맞았다. 최근 출판·마케팅 및 공간디자인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 TF팀을 꾸리고 군위·청송·봉화·울릉군에 서점 창업을 돕기로 했다. 예비창업자가 서점을 열 점포를 확정하면 현지답사에 나선다. 이후 실내외 공간디자인부터 도서 공급, 홍보, 마케팅 등 운영 전반을 무료로 컨설팅한다. 서점 창업 후 북 토크, 출판기념회 등의 행사도 할 수 있게 돕는다. 현재 청송에서 서점을 운영하려는 예비창업자와 협의 중이라고 한다. 매번 강조하지만 서점(책방)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고교 시절의 그 서점과 재수 시절의 제일서적처럼…. 밝은 사람들이 일으킨 잔물결이 거센 파도가 되길 바란다. 백승운 문화부장 백승운 문화부장
[박규완 칼럼] 중도의 실종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조국혁신당이 떡하니 제3지대에 똬리를 틀 줄이야.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이 26.8%를 찍으면서 18%의 민주연합을 앞섰다(리얼미터 여론조사). 이 정도면 '지지율 깡패'다. 조국혁신당의 득세는 종전의 총선 방정식과는 사뭇 궤가 다르다. 대개는 중도 성향 정당이 제3지대를 평정했다. 2016년 총선에서 3지대를 섭렵하며 원내 3당으로 우뚝 선 국민의당이 대표적이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는 '극중'이란 말을 즐겨 사용했다. 조국혁신당은 튄다. 강성 정당에다 좌편향 색채가 짙다. 당 강령을 봐도 비례대표 후보 면면을 봐도 그렇다. 1호 공약이 '한동훈 특검법 발의'다. 조국혁신당의 돌풍에 눌렸을까.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줄곧 '약풍 모드'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의 진단대로 "지역구에서 제3세력을 이끌 주체가 없다".제3지대뿐 아니다. 거대 양당의 공천 지도도 강성 일변도다. '친윤불패' '친명 프리미엄' '이재명 방탄' 같은 조어는 주류의 압도적 승리를 웅변한다. 국민의힘 핵심 친윤 의원들이 단수공천 됐고,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주저앉혔던 '연판장 초선' 대부분도 당의 천거를 받았다. 민주당은 '개딸'의 지지를 업은 친명 후보의 기세에 비명 현역 의원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대장동 '법률 호위무사'들이 대거 공천장을 손에 쥐었다. 면접에서 탈락한 김동아 변호사를 구제하는 과정은 블랙 코미디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량품으로 비하한 친명 양문석 후보도 살아남았다. 정봉주 후보가 '목발 경품' 막말로 아웃된 서울 강북을에선 결국 비명 박용진 후보가 탈락했다. 이재명 대표는 친명엔 "표현의 자유"라며 감쌌고 비명은 노골적으로 비토했다.다양성 상실도 나쁜 그림이다. 254개 지역구 공천을 확정한 국민의힘 후보의 평균 연령 58.1세. 10명 중 8명이 5060이다. 여성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비례대표 명단을 두곤 호남·청년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양당은 공천 과정에서 당의 정체성과 정책 방향성을 정립하지 못했다. 감동과 쇄신도 없었다. 대통령과 당 대표에 대한 충성도, 선명성이 후보 낙점의 결정적 동인이 되곤 했다. 정작 가산점을 받아야 할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후보는 배제됐다. 김세연·표창원을 닮은 후보를 기대했건만, 시스템 공천을 빙자했지만 시스템의 알고리즘은 공정하지 않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다 공천을 통해 강성 정당을 예약했다. 22대 국회의 험로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강 대 강 여야 대치정국이 이어지며 극단의 정치가 펼쳐진다는 의미다. 팬덤 직거래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실사구시 정책의 추동력이 약화한다는 뜻이다.'골디락스'는 인플레이션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잠재성장률에 육박하는 성장이 상당 기간 이어지는 경제 국면을 말한다. 정치도 골디락스 상황이 이상적이다. 협상과 대화의 정치, 연중 일하는 국회, 정당의 중도 외연 확장, 중산·서민층에 소구력 높은 정책 입안 등이 골디락스의 필요조건이다. 한데 여야의 공천과 정책은 '중용(中庸)의 철학'을 투영하지 못했다. 제3지대도 강성 정당이 지배하고 거대 양당마저 강성으로 물드는 중이다. 이러면 "'개딸'도 싫고 '용산'도 싫다"는 중도·무당층이 갈 곳이 없다. 4·10 총선 또한 '묻지마 선거' '운칠기삼 선거'가 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한국 정치의 난삽한 현주소다. 논설위원논설위원
천리포수목원
목련(木蓮)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는 뜻이다. 목련과에 속하는 식물은 100여 종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것은 목련과 함박꽃나무다. 주변에 흔히 보이는 흰색의 목련은 대개 중국 원산의 백목련이다. 우리 고유의 목련은 한라산 개미목에 자생하며 꽃잎이 6장으로 백목련에 비해 폭이 좁고, 만개하면 기부에 붉은 색을 띤 꽃잎이 활짝 열린다. 백목련 역시 6장의 꽃잎으로 이뤄져 있으나 꽃잎처럼 탈바꿈한 꽃받침 3장이 가세, 9장으로 보인다. 꽃잎이 순백인 데다, 폭이 넓고 다 피어도 완전히 벌어지지 않아 신비감을 자아낸다.보라색 꽃을 피우는 목련은 자목련이라 부르는데, 꽃잎 바깥 쪽은 자주색이면서 안쪽은 흰색이다. 일본 원산의 일본목련은 잎이 긴 타원형으로 길이가 20~40cm에 이르며 꽃의 지름이 15cm 정도로 커서 난대 수종임을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필자는 11년 전 경북 상주시 천봉산에서 일본목련나무를 처음 보았다. 정원수로 심은 나무에서 씨가 운반돼 야생에서 자라게 된 것으로 추정됐는데, 요즘에는 이 산의 남쪽 사면에 꽤 번져있다.목련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충남 태안군의 '천리포 수목원'을 빼 놓을 수 없다. 1946년 한국에 연합군 중위로 온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는 천리포에 수목원을 조성하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목련 종을 구해다 심었다. 이 수목원이 오는 29일부터 24일간 목련축제를 연다. 그동안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은 산정목련원에서 가드너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프로그램도 있단다. 목련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동대구로에서] 국가대표 이강인에 기대한다
포털 검색창에 '하극상'을 입력했더니 한 축구선수의 기사가 쏟아진다. 불과,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 직전까지 '슛돌이'란 애칭으로 압도적 사랑을 받던 이강인 이야기다. 격세지감이 있다. 황선홍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대표팀 명단에 이강인을 포함시켰다. 임시감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실력으로 보자면 이강인의 국가대표 발탁은 당연하다. 대신, 황 감독은 '실력으로 속죄하라'는 미션을 내렸다. 축구팬들의 공분을 의식해서일까. "운동장에서 일어난 건 운동장에서 풀어야 한다"고도 에둘러 설득했다. 하지만 이강인 사태는 운동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만큼 운동장에서 풀어내긴 어려울 것이다. 물리적 충돌은 4강전 전날, 선수들이 저녁식사를 하던 식당에서 발생했다. 국가대표 이강인은 아홉 살 많은 주장에 대들었다. 맞짱을 떴다. '국대'라는 로열티가 그렇게 가벼운 일이었나. 화가 안 풀렸는지 경기에서 패스를 주지 않는 대담함까지 연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11명이 유기체가 돼 움직여야 하는 축구에서 이는 퇴출의 명분으로 모자람이 없다는 게 상식이다. 축구팬들은 그가 일으킨 하극상에 상처를 받았다. 국가대표라는 무게를 우습게 본 젊은 선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강인은 손흥민 주장과 맞짱을 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주장들을 발끈하게 만들었다. 후배들에게 때때로 상처받는 어른들의 마음마저 건드렸다면 과한 해석일까. 실력자의 인성, 태도, 예의는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어쨌거나 그 상처는 아직 봉합되지 않았다. '현역 최고 야구 스타' 오타니 쇼헤이. 그가 최근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개막전을 위해 입국하자 야구팬들이 난리가 났다.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의 중심이다. 그는 10년 연봉 7억달러(약 9천324억원)의 미국 프로 스포츠 역대 최고 대우를 받는 선수다. 100년 넘게 프로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투타겸업'을 이룬 주인공이다. 겸업의 경지는 완벽에 가깝다. 2018년 메이저리그에 진출, 신인왕을 차지했다. 3년 뒤, MVP까지 거머쥐었다. 오타니는 모나지 않은 인성으로 팬들의 사랑을 더욱 끌어들인다. 일본에서는 한때 이른바 '오타니 계획표'가 유행한 적이 있다. 다음은 그가 계획표에 적은 문구들. 쓰레기 줍기, 인사하기, 물건을 소중하게 쓰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그는 "누군가가 버린 운을 줍는다는 생각으로 구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고도 했다. 야구 기술에만 천착할 줄 알았던 슈퍼스타는 인간성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내면까지 챙겼다. K리그에서 활약 중인 울산 주민규 선수는 이번에 33세라는 역대 가장 많은 나이에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뽑혔다. 국내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며 숱하게 물망에 올랐지만 번번이 외면받은 끝에 승선했다. "그동안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담담히 고백한 주민규는 "막내란 생각으로 '머리 박고' 열심히, 진짜 간절하게 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이 한마디에 많은 팬들의 가슴이 뭉클했으리라. 국가대표는 그런 '간절한'자리여야 한다. 당연한 자리가 돼선 안 된다. 이번 논란으로 스물세 살 이강인도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강인 국가대표의 간절한 모습을 기대한다. 이효설 체육팀장이효설 체육팀장
[자유성] 구미형 인구정책
경북도가 ‘초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구미형 인구정책'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04년까지 평균 연령 30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를 자랑하던 구미시는 2014년 35.1세로 올라간 뒤 지난달 말 평균 연령은 41.36세가 됐다. 구미시 합계출산율은 2019년 0.98에서 지난해 0.71까지 떨어졌다. 낮은 출산율은 인구 감소를 부추겨 불과 수년 만에 구미시 인구는 1만여 명이나 줄었다.‘구미형 인구정책’은 이런 난관을 뚫기 위해 채택됐다. 최종 목표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 만들기’이다. 주요 정책은 △365소아청소년진료센터 △구미형 신생아집중치료센터 △24시 마을 돌봄터 △야간 연장 어린이집 △저출산 대책 전담반(T/F) 운영이다. 신혼부부가 출산과 육아 문제로 불이익을 받거나 고통받는 일은 더는 없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지난해 1월 개원한 경북 중·서부권 최초의 365소아청소년진료센터는 구미시와 인근 4~5개 시·군에서 연간 환자 9천17명이 찾아 현재 필수의료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비교적 성공한 사례다.오래전 혹독한 저출산을 경험한 독일은 보육 시설 확충과 전일제 학교 운영으로 육아 문제를 해결했다. 사정이 비슷한 스웨덴은 ‘아빠 육아 휴직 할당제’를 신설해 최대 480일간 부모 휴가를 사용하도록 강제했다. 과감한 육아 정책을 도입한 두 나라의 현재 출산율은 1.5∼1.8명으로 반등했다. 저출산 극복으로 인구 감소에서 탈출하려는 ‘구미형 인구정책’이 이들 국가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해도 가야 할 길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영남시론] 저출생과의 전쟁
얼마 전 대구 동구혁신도시 한 대형카페에서 잊혀 가던 기억을 되살리는 꽤 유쾌한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앉은 자리 좌우와 뒤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와서 차와 빵을 즐기는 젊은 부부들이 있었다. 식당, 카페 등 공공장소에서 어린아이를 본 경험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우는 아이의 목소리는 물론 옆에서 빵을 먹여주는 엄마, 이를 맛있게 받아먹는 아이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이 풍경을 대구 전역, 나아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최근 부영그룹이 2021년 이후 태어난 직원 자녀에게 현금 1억원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출산장려책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사례는 기업으로서는 최초다. 정치권도 총선을 앞두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공약을 경쟁하듯 내놨다. 유급 배우자 출산휴가(아빠휴가) 1개월 의무화, 육아휴직 급여 상한선 상향, 초등 3년까지 유급 자녀돌봄휴가 신설,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 1억원 대출 및 출생 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 차등 감면 등을 공약했다.저출산 문제가 오죽 심각하면 이럴까 싶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무려 7.69%나 감소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역대 최저라는 기록을 계속 갈아치운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국가 소멸 시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이다.인구가 줄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의 인구소멸 추세를 방치할 경우 2070년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6.4%가 65세를 넘길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도 있다. 이에 부영그룹의 출산장려금 1억원 지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액이기도 하지만 민간기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 실질적 제도를 제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 같은 기업형 출산장려책이 다른 기업들로 확산되기를 바란다.최근 정부에서 도입하기로 한 초등학생 방과후 학교와 돌봄교실을 통합한 늘봄학교에 대한 기대도 크다. 지난해 시범 도입한 데 이어 이달부터 2천개 초등학교에서 실시한 뒤 2학기부터 전국 6천여 개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학교가 유치원·어린이집보다 일찍 끝나기 때문에 부부 중 누구 한 명이 퇴근할 때까지 말 그대로 '학원 뺑뺑이'를 시켜야 한다.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에다 사교육비도 큰 문제다. 이는 청년세대가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늘봄학교는 시행 초기라 여러 가지 보완점이 대두되지만 이를 잘 수정해 나가서 학부모의 기대를 충족하길 바란다.저출생 고령화가 심각한 경북도에서도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저출생 대책 마련을 위한 '끝장 토론'을 벌이는 등 정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싸고 좋은 주거안정정책 △결혼에 대한 메가톤급 지원정책 △아이돌봄 시범타운 조성 등 실효성 있는 10개 과제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앞으로 이의 성과에 따라 인구 소멸 초읽기에 들어간 경북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정부는 지난 15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예산으로 380조원을 투입했지만 나아질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출산율은 점점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국가소멸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는 물론 기업, 국민도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희망찬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김수영 편집국 부국장김수영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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