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중도의 실종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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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1 06:55  |  수정 2024-03-21 06:56  |  발행일 2024-03-21 제22면
조국혁신당 제3지대 지배
양당 공천 잣대는 충성도
국힘·민주 강성 정당 예약
멀어지는 '골디락스 정치'
또 '운칠기삼 선거'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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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조국혁신당이 떡하니 제3지대에 똬리를 틀 줄이야.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이 26.8%를 찍으면서 18%의 민주연합을 앞섰다(리얼미터 여론조사). 이 정도면 '지지율 깡패'다. 조국혁신당의 득세는 종전의 총선 방정식과는 사뭇 궤가 다르다. 대개는 중도 성향 정당이 제3지대를 평정했다. 2016년 총선에서 3지대를 섭렵하며 원내 3당으로 우뚝 선 국민의당이 대표적이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는 '극중'이란 말을 즐겨 사용했다. 조국혁신당은 튄다. 강성 정당에다 좌편향 색채가 짙다. 당 강령을 봐도 비례대표 후보 면면을 봐도 그렇다. 1호 공약이 '한동훈 특검법 발의'다. 조국혁신당의 돌풍에 눌렸을까.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줄곧 '약풍 모드'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의 진단대로 "지역구에서 제3세력을 이끌 주체가 없다".

제3지대뿐 아니다. 거대 양당의 공천 지도도 강성 일변도다. '친윤불패' '친명 프리미엄' '이재명 방탄' 같은 조어는 주류의 압도적 승리를 웅변한다. 국민의힘 핵심 친윤 의원들이 단수공천 됐고,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주저앉혔던 '연판장 초선' 대부분도 당의 천거를 받았다.

민주당은 '개딸'의 지지를 업은 친명 후보의 기세에 비명 현역 의원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대장동 '법률 호위무사'들이 대거 공천장을 손에 쥐었다. 면접에서 탈락한 김동아 변호사를 구제하는 과정은 블랙 코미디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량품으로 비하한 친명 양문석 후보도 살아남았다. 정봉주 후보가 '목발 경품' 막말로 아웃된 서울 강북을에선 결국 비명 박용진 후보가 탈락했다. 이재명 대표는 친명엔 "표현의 자유"라며 감쌌고 비명은 노골적으로 비토했다.

다양성 상실도 나쁜 그림이다. 254개 지역구 공천을 확정한 국민의힘 후보의 평균 연령 58.1세. 10명 중 8명이 5060이다. 여성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비례대표 명단을 두곤 호남·청년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

양당은 공천 과정에서 당의 정체성과 정책 방향성을 정립하지 못했다. 감동과 쇄신도 없었다. 대통령과 당 대표에 대한 충성도, 선명성이 후보 낙점의 결정적 동인이 되곤 했다. 정작 가산점을 받아야 할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후보는 배제됐다. 김세연·표창원을 닮은 후보를 기대했건만, 시스템 공천을 빙자했지만 시스템의 알고리즘은 공정하지 않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다 공천을 통해 강성 정당을 예약했다. 22대 국회의 험로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강 대 강 여야 대치정국이 이어지며 극단의 정치가 펼쳐진다는 의미다. 팬덤 직거래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실사구시 정책의 추동력이 약화한다는 뜻이다.

'골디락스'는 인플레이션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잠재성장률에 육박하는 성장이 상당 기간 이어지는 경제 국면을 말한다. 정치도 골디락스 상황이 이상적이다. 협상과 대화의 정치, 연중 일하는 국회, 정당의 중도 외연 확장, 중산·서민층에 소구력 높은 정책 입안 등이 골디락스의 필요조건이다. 한데 여야의 공천과 정책은 '중용(中庸)의 철학'을 투영하지 못했다. 제3지대도 강성 정당이 지배하고 거대 양당마저 강성으로 물드는 중이다. 이러면 "'개딸'도 싫고 '용산'도 싫다"는 중도·무당층이 갈 곳이 없다. 4·10 총선 또한 '묻지마 선거' '운칠기삼 선거'가 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한국 정치의 난삽한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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