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저출생과의 전쟁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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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0 06:51  |  수정 2024-03-20 06:54  |  발행일 2024-03-20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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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편집국 부국장

얼마 전 대구 동구혁신도시 한 대형카페에서 잊혀 가던 기억을 되살리는 꽤 유쾌한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앉은 자리 좌우와 뒤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와서 차와 빵을 즐기는 젊은 부부들이 있었다. 식당, 카페 등 공공장소에서 어린아이를 본 경험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우는 아이의 목소리는 물론 옆에서 빵을 먹여주는 엄마, 이를 맛있게 받아먹는 아이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이 풍경을 대구 전역, 나아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부영그룹이 2021년 이후 태어난 직원 자녀에게 현금 1억원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출산장려책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사례는 기업으로서는 최초다. 정치권도 총선을 앞두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공약을 경쟁하듯 내놨다. 유급 배우자 출산휴가(아빠휴가) 1개월 의무화, 육아휴직 급여 상한선 상향, 초등 3년까지 유급 자녀돌봄휴가 신설,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 1억원 대출 및 출생 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 차등 감면 등을 공약했다.

저출산 문제가 오죽 심각하면 이럴까 싶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무려 7.69%나 감소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역대 최저라는 기록을 계속 갈아치운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국가 소멸 시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이다.

인구가 줄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의 인구소멸 추세를 방치할 경우 2070년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6.4%가 65세를 넘길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도 있다. 이에 부영그룹의 출산장려금 1억원 지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액이기도 하지만 민간기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 실질적 제도를 제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 같은 기업형 출산장려책이 다른 기업들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최근 정부에서 도입하기로 한 초등학생 방과후 학교와 돌봄교실을 통합한 늘봄학교에 대한 기대도 크다. 지난해 시범 도입한 데 이어 이달부터 2천개 초등학교에서 실시한 뒤 2학기부터 전국 6천여 개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학교가 유치원·어린이집보다 일찍 끝나기 때문에 부부 중 누구 한 명이 퇴근할 때까지 말 그대로 '학원 뺑뺑이'를 시켜야 한다.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에다 사교육비도 큰 문제다. 이는 청년세대가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늘봄학교는 시행 초기라 여러 가지 보완점이 대두되지만 이를 잘 수정해 나가서 학부모의 기대를 충족하길 바란다.

저출생 고령화가 심각한 경북도에서도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저출생 대책 마련을 위한 '끝장 토론'을 벌이는 등 정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싸고 좋은 주거안정정책 △결혼에 대한 메가톤급 지원정책 △아이돌봄 시범타운 조성 등 실효성 있는 10개 과제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앞으로 이의 성과에 따라 인구 소멸 초읽기에 들어간 경북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 15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예산으로 380조원을 투입했지만 나아질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출산율은 점점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국가소멸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는 물론 기업, 국민도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희망찬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수영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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