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재윤
-시민의 선택, 권한 아닌 위임
-점령군 행정의 착각과 위험
-고착화된 독선 무뎌진 감각
-시정의 주인은 시민들이다
-지금이라도 초심 돌아봐야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실현된다. 지방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과 군수, 지방의회 의원 모두 시민이 직접 선출한다.
"시정을 맡기니 시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 달라" 당선자는 시민의 대리인으로서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시민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시민 곁에서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권력의 성격은 변질된다. 처음엔 지지에 대한 책임감으로 신중했던 이들이, 어느새 권한을 사유화한다.
"내가 시장이다"라는 표현 속에 '시정을 내 뜻대로 하겠다'는 오만이 깃든다. 선거로 선출된 공복이 아니라 적을 몰아낸 뒤 시청을 접수한 점령군처럼 말이다. 더 큰 문제는 단체장과 함께 입성한 별정직 보좌진들이다.
일부는 정책을 보좌하며 묵묵히 행정을 뒷받침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권력의 대리인인 양 조직을 주무르고, 공무원 위에 군림하려 든다. 시장의 의중을 앞다퉈 해석하며 비위를 맞추는 이른바 '권력의 주변부'가 오히려 시장보다 더 깊은 폐해를 낳는다. 이들과 공직사회의 긴장은 갈수록 심화한다.
특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는 바로 시장 배우자의 권력 사유화다. 공식 직책도 없는 그가 권력 주변을 활보하며 공직자와 시민 위에 군림하려 한다. "시장님 사모님이 말씀하셨다"는 말 한마디가 지시로 둔갑하고, 공직자들은 비공식 권력에 휘둘린다. 배우자는 선출된 적도, 검증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그림자처럼 시정을 관여하는 모습은 지방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시장이라는 자리는 시민이 부여한 것이다. 공적 절차에 기반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 주변 인물들은 어떤 공적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영향력을 행사한다. 배우자가 '내가 곧 시장'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시민이 위임한 민주주의의 원칙은 왜곡된다. 이는 명백한 월권이며 시민에 대한 모욕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선 시민과의 협치는 사라지고, 공무원과의 소통은 지시 전달로 변질된다. 각종 위원회나 간담회는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하고, 시민 의견은 귀찮은 간섭쯤으로 치부된다.
행정은 더 이상 '공공'을 위한 것이 아닌 '권력자와 그 주변'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퇴보이며, 지방 자치의 심각한 위기다. 시정의 주인은 시장이 아니다. 공무원은 개인 비서가 아니다. 모든 정책은 시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며, 그 혜택도 시민을 향해야 한다. 시민의 세금으로 시민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단체장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하물며 그 곁의 배우자가 권력을 휘두른다면, 이는 시민이 위임한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중대한 일탈이다.
언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언론을 적대시하고 비판을 차단하려는 시도는 독선의 또 다른 얼굴이다. 시장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스러운 측근도, 박수만 치는 언론도 아니다.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진심을 담은 비판과 조언을 들을 줄 아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시민을 위한 행정의 출발점이다. 민심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임기는 유한하다. 남은 시간을 자기만족이나 권력 유지에 쓸 것인가, 아니면 시민과의 신뢰 회복에 쓸 것인가.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점령군은 퇴각하면 그만이지만, 잘못된 시정은 시민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공직자는 시민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가교'이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성채'가 아니다. 공공의 이름으로 시작한 일이 사익으로 변질되는 순간, 권력은 정당성을 잃는다. 귀를 열고, 눈을 뜨고, 마음을 낮추는 것. 그것이 시민이 바라는 진짜 시장의 모습이다.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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