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한국만 '불(弗) 난리'다. 정부의 온갖 노력에도 원 달러 환율은 고공행진이다. 원화 가치는 동병상련인 이웃의 엔보다 더 떨어진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앞으로가 더 암울하다. 내년엔 1,600원대 진입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경제가 멀쩡하다며, 그 진원지를 '서학개미' 탓으로 돌린다. '그릇된 처방'을 한 당국은 신뢰를 잃고 '양치기 아저씨'로 전락할 판이다. 사실 우리는 경상수지 흑자국이다. 수출은 호조세다. 얼핏 보면 환율이 치솟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멀쩡한 나라가 왜 이렇게 됐을까. 환율을 보면 개발국보다 못한 나라로 치부된다. 난리의 사단은 당국이 구조조정 노력을 게을리한 데서 비롯된다. 팬데믹 시기 풀린 돈 탓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미국은 금리를 5.5%까지 올렸지만, 한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3.5%에서 그 궤도를 이탈했다. 금리 차이는 지금도 1.5%포인트 난다. 미국보다 금리가 낮으면 우리 기업마저 원화를 들고 있을 이유가 줄어든다.
여기다 미국은 긴축 정책으로 유동성(돈)을 흡수, 달러 신뢰를 찾았다. 하지만 한국은 돈을 더 푸는 '양적 완화'를 지금껏 유지한다. 지난 4년 내내 통화량을 더 늘린 셈이다. 경제 체력이 약하다 보니 돈을 풀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GDP 대비 통화량 비율(ELQ지수)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국 ELQ지수는 190% 안팎으로, 미국(90% 수준)의 두 배를 웃돈다. 돈이 미국보다 두 배 더 풀렸다는 방증이다. ELQ지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동남아 국가보다 원화 가치가 더 하락하는 이유다.
양적 완화는 부작용이 만만찮다. '모르핀'과 다름없다. 돈이 풀렸다고 해서 서민 지갑이 두꺼워지는 건 아니다. 투자에 먼저 나선 부자만 자산을 늘리고, 그런 여력이 없는 서민은 고물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결국, 빈부격차만 더 키운다. 이른바 '캔틸런 효과'다. 실제로 지금 인플레이션이 심하진 않다지만 체감 물가는 엄청 높다. 그렇다고 우리 경제 사정이 좋아졌는가. 안타깝게도 '환율 리스크' 부메랑만 맞았을 뿐이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마저 확장 재정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이는 통화가치를 포기한 국가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협상과 서학개미가 환율 폭등에 불을 지핀 셈이다.
환율 역습은 시작됐다. 지난달 생활 물가는 3% 가까이 올라, 1년 4개월 만에 최대폭을 기록한 점이 그 방증이다. 고환율 발(發) 인플레이션 조짐이다. 엔화 가치가 10년 만에 반 토막이 난 일본도 물가 급등으로 서민 삶이 팍팍하다. 우리는 싫든 좋든 일본을 답습한다. 경제 구조도 환율도 그렇다. 일본 마냥 '부자 국가, 가난한 국민'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고환율은 우리 경제에 보내는 경고음이다. 실물성장보다 빠른 속도의 통화팽창은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똑똑한 정부 책임자들이 모를 리 없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구조적인 문제이지 유동성 부족 탓은 아니다. 고환율은 미국과 금리, 통화량 차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학개미 투자를 죄인 취급하는 건 천부당만부당하다. 단지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런데도 당국은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남 탓만 하니,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지금 필요한 정책은 체질 개선형 긴축이다. 이게 환율 안정의 첫걸음이다. 통화 위기는 국민이 자국 돈을 버릴 때 시작한다는 폴 크루그먼의 경고를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수석논설위원>
환율 고공행진 근본 원인은
돈 많이 풀고, 금리 낮은 탓
서학개미 투자는 현상일뿐
환율 역습 인플레이션 조짐
체질 개선형 긴축부터 해야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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