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에서 '영업이익률(OPM) 20%'는 이른바 '꿈의 숫자'로 불린다. 압도적인 기술 독점력과 시장 지배력이 없다면 도달하기 힘든 마의 장벽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계의 공룡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나 '도쿄일렉트론' 정도가 20%대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며 '글로벌 톱티어'로 군림하고 있을 뿐이다.
대구·경북에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훌쩍 뛰어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 중인 혁신 기업 3곳이 등장했다. 단순 가격 경쟁을 넘어 독자 기술력과 글로벌 고객사 확보, 선제적 투자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결과라는 데 의미가 있다.
영남일보가 지역 주요 상장기업 125개사 중 매출액 영업이익 수치가 모두 존재하는 97개사를 대상으로 2025년도 사업보고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씨엠티엑스', '에스앤에스텍', '월덱스' 3곳이 글로벌 톱티어와 맞먹는 20~32%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우량기업 수준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 가능한 수익 구조를 갖춘 지역 기업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 3사는 초고수익을 바탕으로 대구·경북 지역 내 선제적인 대규모 시설 투자도 단행하고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가 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된 이후, 씨엠티엑스의 363억 원 추가 투자와 월덱스의 2천600억 원 규모 투자 협약은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소재·부품 밸류체인 집적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성장이 단순한 기업 실적을 넘어 '수도권 쏠림'을 타개할 지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이러한 혁신 소부장 기업들의 선전은 대구·경북 산업 지형의 판도를 바꿀 분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지역 제조업을 받쳐온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이나 단순 하청 가공 업종이 구조적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이들 3사가 보여준 '초고수익 성장 모델'이 지역 산업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대구경북 상장기업 영업이익률 상위 10개사. <자료=각사 사업보고서, 표=생성형AI(제미나이) 생성>
◆전체 상장사 평균 6배 넘는 반도체 소부장 영업이익률
영남일보 분석에 따르면 대구 경북 전체 97개 상장사 전체의 2025년 합산 영업이익은 6조8천억원. 전체의 77%인 75개사가 흑자를 냈으며 22%인 22개사는 적자였다. 상장사 다섯 곳 중 하나는 적자를 낸 셈이다. 흑자를 낸 75개사의 평균 OPM은 3.8%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20% 이상의 OPM을 기록한 반도체 소부장 기업은 씨엠티엑스, 에스앤에스텍, 월덱스 세 곳이다. 반도체 소부장 3사의 평균 OPM은 24.4%로 전체 평균의 6.4배에 달한다.
반도체 소부장 3사에 이어서 건설·건물 2개사의 OPM 평균이 8.3%, 전자부품(13개사) 8.1%, 식품·음료(3개사) 7.5%, 에너지·가스(2개사) 5.9%, 자동차부품(17개사) 4.2% 등의 순으로 높았다.
에스앤에스텍의 영업이익률은 2021년 12.8%에서 2022년 13% 2024년 16.8%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다가 지난해는 20.7%로 마의 20% 벽을 뚫었다. 지난 5년간 OPM의 꾸준한 우상향 성장세를 보였고 매출도 5년간 147% 성장하는 등 외형과 수익성을 동반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월덱스도 2022년 19.8%에서 2023년 22.5%로 20%대에 진입한 이후 2024년 22.9%, 2025년 20.1%로 꾸준히 20%대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고점 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20~23% 박스권에서 안정적인 OPM을 유지하고 있다.
2025년 신규 상장한 씨엠티엑스는 지난해 OPM 32.3%로 125개 상장사 중 1위를 차지해 신생 강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씨엠티엑스는 원재료인 실리콘 인곳을 자회사에서 직접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구축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에스앤에스텍은 EUV 공정이라는 가장 높은 기술 장벽 시장을 선택했다. 월덱스는 대만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아 미국 시장 둔화를 상쇄했다.
결국 세 기업의 높은 영업이익률은 단순한 경기 호황이 아니라 기술 경쟁력, 고객 다변화, 선제적 설비투자라는 세 축이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다.
대구에 본사를 둔 '에스앤에스텍' 기업소개 영상 캡처.
◆'슈퍼 사이클' 올라탄 반도체 소부장 3사의 경쟁력
영업이익률 1위는 구미의 씨엠티엑스다. 지난해 11월 코스닥에 상장한 반도체 소모성 부품 기업 씨엠티엑스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32.3%(매출 1천606억 원).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비슷한 수준이다.
씨엠티엑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TSMC 1차 협력사 지위를 확보했고, 미국 마이크론으로부터 '최우수 공급사'로 선정, 공급을 확대하면서 생산능력 증설에 나서고 있다. 구미 지역에 363억 원을 추가 투자해 실리콘 전극 등 반도체 부품 공장 증설에도 나섰다. 글로벌 장비사인 램리서치와의 특허 무효 심판에서도 잇따라 승소하며 기술 자립도를 입증하고 있다.
대구의 에스앤에스텍 역시 20.7%(매출 2천437억 원)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차세대 EUV 블랭크마스크 국산화를 앞세워 삼성전자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417억 원을 투입해 EUV용 검사장비 양산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용인에 EUV 전용센터를 준공해 블랭크마스크와 펠리클의 국산화 양산에 시동을 걸었다. 삼성전자의 4나노 파운드리 공정에 국산 EUV 마스크 첫 테스트를 진행하며 시장 진입을 가시화했다.
구미의 월덱스도 20.1%(매출 2천918억 원)를 기록했다. 실리콘 링과 전극 분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대만 시장 확대에 성공했다. 월덱스는 2030년까지 2천6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시설 투자를 단행해 반도체 부품 생산량을 대폭 확대한다는 밸류업 계획을 발표했다.
씨엠티엑스 구미공장 전경. <씨엠티엑스 제공>
◆"축배는 이르다"… 지속 가능성 입증할 과제 산적
초고수익 기업이라고 해서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외형 확장에 안주하지 않고, 시설 투자의 실제 가동률 확보와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이 동반되어야 글로벌 톱티어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실제로 씨엠티엑스는 32%대 영업이익률이 코스닥 상장 직후의 일시적 프리미엄 효과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 같은 이익률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남았다. 상장 이후 오버행 우려와 자회사 '셀릭'의 중복상장 가능성도 시장에서 제기된다. 지난 5월 신한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오버행 우려와 단기 모멘텀 부재를 지적한 바 있다. 씨엠티엑스 올해 1분기 실적이 계절적 비수기 영향으로 일시 둔화된 상황이었고, 2월20일 3개월 락업 해제에 따른 약 8%의 물량 부담이 겹치면서 수급 부담이 확대되면서 주가 조정 국면을 겪은 바 있다.
에스앤에스텍은 아직 EUV 제품이 대규모 양산 수주로 연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술 검증 이후 실제 고객 주문 확대가 남아 있다. 지난 6월11일 홍콩, 싱가포르에서 해외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NDR을 개최한 에스앤에스텍 측은 "EUV 제품 검증이 완료되면 본격적으로 양산에 돌입해 공급 역량을 지속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월덱스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와의 갈등 속에서 대규모 투자와 주주환원 사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가 기업가치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높은 영업이익률은 기술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지배구조와 자본배분까지 시장의 평가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김재홍 월덱스 선임매니저는 "현금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기업을 성장시키고 그 결실을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과 나누고자 한다"며 "우선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지난 7월23일 구미시와 2천600억원 규모의 투자 협약을 체결했으며, 2030년까지 실리콘 및 쿼츠 등 신규사업을 포함한 첨단 생산시설 확충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낮아진 ROE(자기자본이익률)를 끌어올리기 위해 최근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발표했으며,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율을 2027~28년 당기순이익 40%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높여갈 것"이라고 밝혔다.
월덱스 본사 전경. <월덱스 제공>
◆설비투자, AI·반도체 호황 사이클 당분간 이어지며 실적 지속될 것
전문가들은 AI 및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들 3사의 선제적 설비투자가 결실을 맺으며 견조한 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구미 국가산단을 중심으로 첨단 반도체 공급망이 집적되면서, 수도권 쏠림 현상을 극복할 지역 경제의 강력한 원동력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씨엠티엑스는 363억원, 월덱스는 2천6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추진 중이다. 씨엠티엑스 측은 높은 영업이익률은 원재료 수급 내재화를 통한 일관 생산 체제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실리콘 인곳(Ingot)을 외부에서 매입해 가공하는 타 경쟁사와 달리, 자회사 '셀릭(Selic)'을 통해 인곳을 자체 생산하며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지난해 상장한 씨엠티엑스는 올해 1분기 441억원의 매출과 13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1분기에도 여전히 30%의 OPM을 기록하면서 지속성을 증명하고 있다.
양종석 씨엠티엑스 상무는 "생산 능력(CAPA) 확장에 발맞춰 자회사 셀릭 역시 대구경 인곳 생산 등에 대응하고 있어 고수익 구조는 높은 영업이익률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스앤에스텍 역시 EUV 양산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실적 호조가 아니라 지역 산업 생태계 자체를 바꾸는 투자다. 구미 국가산단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집적되면서 수도권에 집중됐던 첨단 제조업이 지역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3년 OPM 16.6%, ROE 11.7%였던 에스앤에스텍은 2024년 16.8%·12.3% →2025년 20.7%·19.1%까지 OPM과 ROE를 끌어올리며 EUV 국산화 수혜와 수익성 개선의 성장 스토리가 완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단순 퀄(품질) 테스트를 넘어 실제 수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에스앤에스텍은 대규모 양산 준비를 위한 제품 인증에 진전이 보이고 있다고 했다.
에스앤에스텍은 최근 발표한 IR자료를 통해 "차세대 EUV 블랭크마스크와 펠리클은 단순한 R&D 단계를 지나 국내외 주요 파운드리 고객사와 양산 적용을 위한 최종 품질 검증을 긴밀하게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용인 전용센터 준공과 대규모 검사 장비 반입은 고객사의 양산 스케줄에 맞춰 진행한 선행 투자"라고 밝혔다.
월덱스의 OPM은 2023년 22.5%에서 0.4%p오른 22.9%의 고점을 찍고 지난해 20.1%로 하락했다. ROE는 같은 기간 22.5%에서 21.1%로 하락하다 지난해 11.8%로 급락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자회사 WCQ의 부진과 손상차손 97억원의 영향을 받았고, 순이익 감소와 자본총계 증가 등 이중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20%이상의 OPM을 유지한 것은 건실한 영업 체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회성 실적 그치지 않게 입체적인 지원으로 생태계 조성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분석 결과가 단순한 일회성 실적 발표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역 차원의 입체적인 지원책과 생태계 조성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기술 독점력'을 유지하기 위한 R&D(연구개발) 및 고급 인재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압도적인 영업이익률은 결국 끊임없는 원천기술 확보에서 나오는 만큼,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를 중심으로 지역 대학 및 연구기관과 연계한 맞춤형 반도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한층 가속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소재·부품 밸류체인의 밸류업(Value-up)과 클러스터화도 시급하다. 씨엠티엑스, 월덱스, 에스앤에스텍 등 앵커 기업들의 대규모 시설 투자가 지역 내 협력사들의 기술 격상과 고용 창출로 확산될 수 있도록 산단 내 상생 협력 네트워크를 더욱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는 것.
대구상공회의소 한 관계자는 "제조업 마의 장벽인 OPM 20%를 돌파한 기업들이 지방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대구·경북이 첨단 소재·부품 기술의 중심지로 도약할 잠재력을 충분히 입증한 것"이라며 "이들 기업이 수도권 쏠림을 막는 단단한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주 여건 개선과 규제 완화 등 다각도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박상현 iM증권 수석전문위원은 "글로벌 AI기업들의 투자 사이클이 내년 상반기까지 양호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도 양호한 사이클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다만 AI라는 것이 이제는 단순히 AI가 아닌 피지컬 AI나 다른 심화된 AI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이런 점이 실제 실물 경기에 어떻게 잘 도입되고 반영되느냐가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동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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